8 월14일 오후 4시. 미국 뉴욕과 남동부, 캐나다 토론토를 중심으로 한 북동부 지역에 사상 최악의 정전사태로 대도시가 호흡을 멈췄다. 교통, 통신..등 도시가 대혼란에 빠져 5천여 만 명이 암흑의 고통을 겪었으며 7조원의 피해를 가져왔다. 최첨단 시설 위에 세워진 도시에서 후진국형 대형사고가 터진 셈이다. 그 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빛이 꺼지면 세상은 암흑의 고통에 빠진다. 암흑은 모든 삶을 정지시키고 고통과 절망을 가져온다. 고통의 게헨나 ‘흑암’을 몰아내는 것은 오직 빛뿐이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셨다. 빛의 사명보다 소금의 사명이 먼저 요구되었다. 소금의 순결한 삶이 우선될 때 빛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휠라 코리아 윤윤수 대표이사는 최고경영자에겐 세 가지 3S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Speed. 정보의 즉시성, 신속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Strong. 강력해야 한다. Smart. 도덕적으로 모범이 되어야 한다. 고객과 임직원을 섬기며 부드러운 열린 경영을 해야한다. 일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고 성실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동일한 3S 덕목이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된다. 세상 속에서 도덕적인 모범이 되어야 한다. 빌 립보 교회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에서 바울에게 첫 사역의 기회를 제공한 도시였다. ‘마게도냐인의 환상’(행16:8-10)에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시작된 첫 번째 교회였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세 번 방문했다. 신학자 사우는 “이 서신은 바울 사도 자신의 가슴에 달린 창문과도 같다”고 설명한다. 바울은 자신 속에 계시된 그리스도를 그의 창문을 통해 자신의 가슴을 열어 보이고 있다. 신학자 본 소든은 “우리는 이 서신을 읽으면서 매우 거룩한 땅을 밟게 된다. 빌립보서는 의심할 여지없이 바울의 마지막 친서이다”라고 빌립보서의 귀중함을 강조했다. 빌립보서를 통해 우리는 ‘세상 속에서 순결한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생활과 사역의 교훈을 배울 수 있다. 복음의 세 가지 삶의 방식 독일의 변증 철학자 헤겔은 삶의 인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아는 만큼 볼 수 있다. 끊임없이 교양을 채우고, 깊은 사색을 반복하면, 인식의 진보는 마지막 종착점으로 절대정신에 이르게 된다. 인식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 자기 계발이다.“ 1. 첫 번째 삶의 방식. 복음의 교제(1:3-11)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1:3-5) 빌 립보 교회는 바울에게 기쁨과 즐거운 추억을 남긴 교회였다. 바울은 10여 년 전을 되돌아보며 미소 짓고 있다.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감사하고 기뻐했다. ‘생각’ ‘므네이아’ 즐거운 회상을 뜻한다. 바울에게 빌립보 교회는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합동신학대학원 교장이셨던 김명혁 목사는 “인 생에 필요한 것은 만남이다. 구원도, 목회도, 선교도 만남이다. 우리의 삶이 복음적 삶이 되기 위해서는 만남의 확장이 필요하다. 유학시절, 도서관에서 공부가 전부인줄 알고 생활하다가, 만남의 축복을 깨달았다. 주말엔 사람들을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고, 피크닉과 운동회를 가지면서 만남의 축복을 더욱 깊이 누리게 되었다. 사마리아 여자도 주님을 만남으로 변화되었다.”고 칼럼을 쓰셨다.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도 빌립보교회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복음 안에서의 교제는 끝까지 지속되는 만남이다. 교제의 중요성(1:6-8) “너 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1:6-8) ‘ 나홀로 족’으로 주를 섬기는 사람들은 결국 플라스틱 화분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 주님은 ‘따스한 관계’ 안에서 일하시고 역사 하신다. 복음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세상 속에서 고립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순결이 아니다. 도피일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따른 지 수년이 지나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 버린다. 그들은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간다. 세상 속에서 순결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세상 바깥에서 숨어사는 신자들일 뿐이다. 바울과 빌립보교회에서 보여준 우정을 세상에 보여주는 이 시대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한다. 헨리 나우엔은 “거의 모든 인간관계가 일정한 가치에 따라 판단된다. 고용자는 피고용자를 지식과 기술과 능력으로 판단한다. 은행과 상점은 신용에 따라 사람을 대우한다. 친구는 공통된 관심사를 기초로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교제는 조건 없는 사랑이어야 한다. 자식의 지능지수가 40이라고 해서 다른 자식과 맞바꾸지 않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조건 없는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주님은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사회가 버린 사람들 곧 가난한 자들과 죄인들, 창녀들의 친구셨다. 두 번째 중요성(7절) 빌립보 교회는 ‘다 나와 함께 참예한 자들’ 이었다. ‘매임, 변명, 확정함’은 모두 법률적인 용어다. ‘확정’은 계약이 법적으로 유효함은 보증하는 것을 말한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의 마음에 있었다. 애정과 관심의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바울의 전도사역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과 좌절을 함께 나눈 교회였다. 바울과 빌립보 교회는 ?동정- 동역?의 협력의 교제를 가졌다.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동정하고, 소망을 주고, 복음을 위해 함께 고난을 받았다. 오늘 교회도 세상에 대해 동정하고, 소망을 주고, 함께 고난을 받을 때 세상 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한국사회에 자살 바이러스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자살자 숫자도 1991년 6,593명에서 2002년 1만3,055명으로 10년 사이 2배로 증가했다. 연세대 황상민 심리학교수는 “자살하는 사람은 쉽게 죽는 방법을 선택한다. 고층아파트와 고층빌딩 밀집이 음독자살하기 위해 약을 사야하는 시간이 필요 없는 투신자살을 선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투신자살 현상을 해석했다. 또 다른 교수는 “도저히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할 때 투신자살을 하게된다”고 분석했다. 카드 빚을 견디지 못하고, 직업을 구하지 못해 좌절하다가 막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교회는 1시간에 1.5명이 자살하는 현 사회에 대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세상 속에서의 순결한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굿 모닝시티 분양 사기 사건은 한국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대형사고였다. 자본금 7억으로 9천억 짜리 사업 프로젝트를 사기치는 일이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투자자 3천여 명의 사람들은 가난 속에서 평생 모은 돈을 다 잃어야 했다. 그리고 그 돈의 일부인 4억2천만 원이 민주당 정대철 대표에게 대통령 만드는 정치자금으로 사용되었다는 것도 국민들을 실망하게 한 사건이었다. 대선 자금 절반 이상이 돼지저금통에서 나왔다던 대통령의 말도 무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기 사건의 주범 윤창렬씨는 기독교인이었다. 세 번째 중요성(8절) 바울과 빌립보교회의 교제는 고품격의 교제였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만들어지고 성취된 우정과 사랑이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극진한 사랑으로 얼마나 여러분을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는지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 잘 알고 계십니다’ 기독교의 본질과 생명과 거룩함은 사랑이다.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새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세상 속에서 순결한 그리스도인들이다. 술과 담배. 영화보기.. 도덕적 기초수준이 아니라 세상에 흉내낼 수 없는 ‘그리스도의 심장’의 사랑이 기독교인의 윤리이며, 삶의 스타일이어야 한다. 화 가 이중섭 선생은 앓고 있는 친구 문명을 가면서 “미안하네, 벌써 찾아오려 했는데 빈손으로 오기도..” 하며 말을 흐리자, 친구는 “빈손이면 어떤가, 자네 형편 다 아는데..” 이중섭 화가는 들고 온 물건을 친구에게 건네주며 “자네 주려고 가져왔네. 이걸 가져오느라 좀 늦었지. 복숭아 그려왔다네.. 복숭아 사줄 돈이 없어서, 그려만 왔네..” 이중섭 선생의 따뜻한 우정은 친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었다. 그 그림은 그의 심장으로 그려온 따뜻한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세상과 교회에 대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순결한 삶을 살려면 ‘복음에 대한 절대정신’을 소유해야 한다. 우리는 복음의 능력으로 구원받았으며(롬1:16), 세상 한가운데서 복음을 중심으로 거룩한 삶을 연출하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도록 ‘복음의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복음 안에서의 생존과 능력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복음의 절대정신을 소유하기 위해 바울의 삶의 방식을 배워야 한다. 빌립보서 1장엔 복음에 대한 세 가지 생활방식을 바울이 자서전적인 고백을 쓰고 있다.
첫 번째 중요성(6절) ‘시작’과 ‘이루심’은 양끝을 의미한다. 책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이다. “내 안에서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그 일을 그분의 은혜로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바울은 10년 전 빌립보교회가 회심했을 때 착한 일을 시작하신 주님의 일을 완전케 하실 것을 주님이 보장하신다고 말한다. 복음 안에서의 참된 교제를 통해 주님께서 ‘선한 일’ 곧 구원과 인생의 완전함을 성취해 가신다.
챔버스는 “예배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중 제일 좋은 것을 다시 드리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좋은 것, 그분의 사랑을 다시 드리는 것이 참된 예배라면 복음의 첫 번째 삶의 방식인 ‘복음의 교제‘야말로 오늘의 교회와 신자들이 추구해야할 복음의 절대정신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