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4년 1월호


즐거운 일과 행복한 쉼


유학생활을 시작한 지 2년 지난 그동안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그중 중요한 깨달음은 휴식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매우 긴장하여 숨차게 앞만 보고 달려갔지만 장기적으로 도달해야할 목표지는 재충전없이 단번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일과 쉼의 조화가 적당히 이루어져야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음을 더 깊이 느낀 시간들이었다. 먼 이국까지 올 수 있었고 공부할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즐겁게 공부하는 한편 안식은 안식으로서 잘 쉬는 것이 하나님의 설계가 아니가 생각이 든다. 이런 점에서 일년 반의 유학기간 동안 생활 방식을 적극적으로 바꾼 부분이 있다면 바로 취미생활일 것이다. 유학생활에 공부하기도 바쁜데 웬 취미까지야 하며 의아해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이전까지의 시간에서는 아직 진로가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서지 못하였고 소비적인 문화가 체질적으로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에 소시민적인 취미 생활을 하찮게 보아온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흐릿한 정신으로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도 의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잠시 머리를 식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이곳 생활에 적응하면서 안식의 활동이 원래의 삶을 더 충실하게 만들어줄 수있는 좋은 취미가 발견되었다. 하나는 직접 체험하기 어려운 실생활의 대화를 많이 보여주는 영화를 보는 것, 둘은 달리기, 셋은 인터넷으로 수필을 읽는 것이다. 영화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여러가지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달리기는 나의 몸을 이해시켜주었으며 감동을 주는 글들은 나의 정신세계를 살찌워주었다.


영화로 세상보기


처음 영화를 보기로 시작한 이유는 영어 공부를 위해서였다. 누가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면 간단한 생활표현을 익히는데 좋을 것이라고 하는 말에 얇은 귀가 혹해서 한두개 사서 보는데 정신연령이 낮아서 그런지 혼자 낄낄대며 보곤 했다. 그런데 기왕이면 영화를 보면서 뭔가 더 생각할 수 있는 주제에 자연스레 손이가게 되었다.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다양한 모습으로서 가족사를 그린 작품, 인종갈등 문제을 제기한 작품, 도시민의 소외를 그린 작품, 미국의 잘 보이지 않는 문제를 다루는 것들이 더 의미있었다. 감명깊게 본 영화로는 Malcom X, Ali, Ali documentary, Do the Right Thing, Jungle Fever, Glory, Color Purple 등이다. 내가 미국의 흑백갈등문제에 관련된 작품에 손대게 된 이유는 몇 가지 체험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게 소외되고 있는 흑인들에 대해 주류사회의 문제의식은 미국 사회의 다른 문제와 흡사하게 공동체적으로 정책적으로 이 문제를 이렇게 풀자 하는 논의는 거의 없는 것같다. 사회의 유기적 구성원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문화적, 정서적, 경제적 역량을 길러주는 교육에 참여하지 못함으로 발생하는 사회 부적응 현상은 개선되어야 할 사회문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건전한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의 약화가 흑인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직관적으로 생각해본다. 뭐 이건 남의 나라 일만이 아니긴 하다. 한편 기독교적 시각으로 인생을 잔잔하게 그린 A river runs through it, 장애인의 시각에서 부녀간의 사랑을 그린 I am Sam, 형제애를 보여주는 The eighth, The rain man, 주어진 인생에 최선을 다할 것을 말하는 Forrest Gump 등은 단순하면서도 정갈한 대사로 주제를 잘 전달하고 있다. 단정한 노목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은(We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 쉽게 잊혀지지 않는 울림으로 강하게 자리잡는다. 지식이 지나친 세상에서 단순하고 어린아이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정신장애인(Sam)은 성경이 말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 한다. 그의 말대로 사랑이란 일관성이며 듣는 것이며 그냥 있어주는 것이다. (Love is constancy, listening and just being there beside them). 사람들은 그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거라고 말하지만 Forrest Gump의 변함없는 사랑은 이 세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언어를 넘어선 감동은 삶의 또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몸이 가르쳐주는 지혜


두번째는 달리기. 문약한 서생이지만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머리도 둔해지는데 체력까지 무너지면 안된다는 위기의식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겨울 방학 들어 본격적으로 시작한 달리기의 목표는 3.5마일 30분 주파. 처음에는 5분 시속 7마일로 달리는 것부터 시작하여 하루에 2분 30초씩 추가하니 대략 일주일 정도부터는 상당한 거리를 달리게 된다. 인터벌에 다리 근육 강화 운동을 하여 몸 전체를 일사분란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신기한 것은 처음에는 10분 달리기가 거의 죽을 맛인데, 하루 지나고 나서 다시 그 거리를 뛰어보면 그리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 머리 속으로 더 높은 목표를 설정했고 몸이 적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 속으로 그 옛날 군화 신고 뛰어다니며 부르던 군가를 부르며, 2분 남으면 애국가를 일절부터 사절까지 외치며 오늘도 해냈다는 자신감으로 힘차게 발을 내딛는다. 달리기를 하다보면 몸에 붙어 있는 살들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운지 불필요한 것들은 당장이라도 떼내고 싶다. 목표치가 가까와오면 숨가빠지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단순하고 순박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싶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 버려야 한다.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나의 욕심이다. 또 몸은 가르쳐준다. 나는 살아있고 자라고 있다고. 사춘기 시절 급박한 몸의 변화를 보며 나 자신도 신기해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오직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 내 안에 있는 생명의 활력을 다시금 느껴본다. 나의 몸은 나의 것이 아니고 오늘도 내게 생명력을 불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함부로 대하지 말고 관리해야 함을 깨닫는다. 지속적으로 달리다보면 체중은 비슷한데 몸이 하나로 뭉쳐짐을 느낄 수 있다. 팔도 다리도 앞으로 나가는데 적당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호흡과 맥박도 고르게 맞추어진다. 교회가 하나가 될 때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움직임보다 전신의 나아감에 힘을 더하고 서로에게 힘을 더해주는 상승의 관계를 갖게 된다. 하나가 된 공동체는 공동의 선을 향해서 서로를 사랑하고 격려하며 힘이 되어주는 떼낼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인터넷에서 보석 캐내기


세번째는 인터넷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의 자취가 남겨진 글들을 읽어보는 것이다. 이코스타를 비롯하여 수필닷컴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환경에서 얻는 간접체험은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언젠가 ‘자식에게 주는 아버지의 글’에서 ‘좋은 글이 있으면 다른 사람과 나누어라’라는 충고가 있었는데 좋은 글을 찾아 나의 생각을 덧붙여 다른 사람과 나누면 그 가치가 더욱 커질 것같다. 내가 발견한 좋은 글과 내의 단편적인 상념의 글과 내가 읽고 싶은 책과 내가 읽고 싶은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의 생각을 하나하나 따라가다보면 나를 지탱해주고 있는 이상과 희망을 되새길 수 있는 나와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이런 글들을 다음(Daum)카페에 하나씩 올려놓으면 보이지 않는 나의 생각의 단초들은 하나의 나무로 성장한다. 다른 이들의 고민과 나눔의 양분을 받은 나의 정신은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자라난다. 가끔은 소재를 잡아 글을 써보기도 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산고 속에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저런 상념을 끄적거리는 것이 무슨 효용이 있겠는가 반문을 해보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나의 분신을 남기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살아가는 즐거움, 자라나는 기쁨


Have you gazed out on the ocean Seen the breaching of a whale? Have you watched the dolphins frolic in the foam? Have you heard the song the humpback hears five hundred miles away Telling tales of ancient history of passages and home?


I want to live I want to grow I want to see I want to know I want to share what I can give I want to be I want to live


-  John Denver, I want to live 중에서


유학생활이라고 해서 공부만 하라는 법은 없다. 틈틈히 남는 시간은 그냥 보내기 아까운 귀한 하늘의 선물이다. 이곳에서 경험하는 공부와 취미생활 우리들에게 자라가는 기쁨을 선사해준다. 생명을 소유하여 조금씩 성장하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 삶이 고통이라지만 문득문득 느끼는 살아가는 즐거움은 하나님이 주신 보상인 듯싶다. 성실한 노동 뒤의 달콤한 휴식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안식일 것이다. 세상은 넓고 내가 공부하고 있는 주제는 세상의 단한면이므로 곳곳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하려면 세상을 보아야 할 것이다. 자연을 관찰하고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던 성프란채스코처럼 영화를 보고 몸을 움직이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다면 과장일까? 안식과 일 모두 주님의 손에 달린 것이며 그 과정을 통해 살아가는 즐거움, 성장하는 기쁨을 주신 주께 감사드리며 주님의 풍요가 넘치는 삶을 위해 오늘도 정진한다. 또 다른 배움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