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4년 4월호

내 자신도 캠퍼스 안에서 소그룹을 섬기고 있기에 매달 나오는 eKOSTA의 유학생사역 섹션은 나의 좋은 길잡이가 되어 왔다. 그랬던 곳에 나의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캠퍼스 사역에 자신의 눈물과 시간과 열정을 쏟으시는 선배님들의 노하우에 비하면 내가 깨달은 것은 정말 작고, 부족하지만 내가 소그룹을 시작하면서 적용했던 것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나의 경우는 학교를 옮기고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한 소그룹이기에 새로운 곳에서의 유학생 사역, 특히 캠퍼스 사역을 하시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동기



새로운 곳으로 오기 전, 계속해서 제자 삼으라는 말씀이 한 학기 동안이나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주님 내 삶에 주인 되시고’라는 찬양을 부르게 되었는데, …주 뜻 이루려고 날 예정하셨네, 오직 주님만 내 일생과 내 영혼의 주되시네 주 말씀 전하라 날 선택하셨네



주의 능력으로 인도하사 크신 이름 이루소서 의지합니다….



이때 정말 주 말씀 전하려 날 선택하셨네라는 꿈을 꾸면서, 뭔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받고 있던 하나님의 은혜를 말씀으로 전해야 겠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그 시점 정들었던 DC에서의 2년간 생활을 뒤로하고, 새로운 학교인 Univ. of North Carolina at Greensboro로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유학생으로의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1. 한 명을 잡아라



모임을 시작하려면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캠퍼스에 대해 같은 비전을 품을 수 있는 동역자를 만난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 싶지만, 이런 귀한 동역자를 찾기는 커녕 스타팅 멤버들도 만나기 힘든 것이 현실인 것 같다.



그래서 첨에 동역자를 생각하면서도 모임을 시작하기 위한 구성원들은 아직 미국에 유학온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을 주된 대상으로 하게 되었다. 보통 유학온지 얼마 되지 않은 학생들은 아직도 그들만의 시간 테이블을 무엇으로 채우려고 구상하는 반면에, 비교적 유학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학생들의 경우는 흔히들 말하는 바쁜 유학생활과 그 지역에 있어서는 어느덧 익숙졌다는 생각때문에, 새로운 모임이나



잘 모르는 누군가를 잘 따르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자기들이 도와주려고 하지 어떤 새로운 질서에 편입되길 꺼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약간의 어려움 점이 있기 때문에 기존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접근 하기 보다는 새로운 사람들 위주로 모임을 편성하기 휠씬 쉬운 것 같다.



나의 경우도 처음 와서 아직 유학생활에 자리잡지 않고 있는 사람들 대상으로 모임 구성을 했는데, 어떤 친구의 경우는 모임의 뜻은 좋지만, 유학생활에 자리부터 잡고 난 후에 성경공부를 하고 싶다는 애기를 했었다. 그래서 오히려 자리잡았을 때는 자기만의 시간 테이블을 다 채워져 난후라 뭔가를 집어 넣으려면 쉽지 않을꺼라는 전후 사정 애기를 했더니 자신도 그 부분을 이해하며 참여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한 명씩 한 명씩 만나서 캠퍼스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하게 된 인원이 5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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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팀웍을 형성해라 (같이하는 느낌)



시작하기로는 했지만, 이제부터는 누가 인도하느냐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문제가 이어졌다. 나의 경우는 전에 캠퍼스 소그룹 모임에서 양육을 받았기에, 그 성경공부의 모델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모임에서 이렇게 했으니까 그 모임대로 거기서 했던 방식으로 해야 되다는 발언은 친구들에게 오히려 거부감이 들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건 꼭 ‘내가 어디 캠퍼스 선교단체 출신인데, 우리도 그렇게 해야 돼’ 하는 식의 꼭 점령군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전에 있던 캠퍼스 소그룹에 대한 이야기는 입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러면서, 꼭 누가 인도하고 가르치고 전한다는 표현보다는 서로 섬기고 같이 준비하고 나눈다는 어법으로 서로의 이해를 구했다.



그리고, 찬양할 수 있는 친구가 찬양을 준비했고, 그런 과정에서 수요일에 한번 더 모여서 기도모임을 갖기로 하고 온라인 상의 카페도 관리해야 하는 일등이 생겨 각각 한 파트씩 다 맡아서 하게 되었다. 그렇게 서로가 같이 준비해서 나누고 같이 만들어 간다는 느낌이 계속 형성되니까, 그것이 자발성으로 이어졌고 캠퍼스의 다른 지체들도 함께하는 모임으로 발전해 나아갔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3. 지체들에게 동기 심어주기와 인도자의 목적의식 갖기



모임 안에서 정확한 목적의식 갖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다.



우리가 세운 첫번째 기치로는 유쾌한 성경공부가 되자는 것 이였다. 비록 짧은 내 신앙생활의 경험이지만, 성경공부 하면 일단 재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신앙생활 오래한 분들도 성경공부는 재미없는 것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성경공부에 대해서 지루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모임의 동기를 줄 수 있는 것은 그런 부분을 깨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유쾌한 성경공부가 되도록 유도했고, 때마다 이 동기를 계속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너무 유쾌하다 보니 웃다가 끝난 적도 여러 차례 있어서 반성을 여러 번 했던 적도 많은 것 같다.



그럼 여기서 어떻게 유쾌하게 모임을 유도하냐라는 질문이 생길 것 같다.



누구나 잘 알겠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관심사를 많이 끄집어 내어 말씀으로 연결시키는 것 같다.



특히 많이 했던 것은 청년들의 빅 이슈인 이성문제의 소재를 이용해서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연결 시켰던 부분 이였던 것 같다. 예를 들면 기도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얼마나 해야 되며 등의 내용이 나오면 바로 이성 교제시 새로운 여자친구 사귀면 얼마나 전화통화 하냐라는 등등의 상황을 나누면서 결국 사랑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연결시키는 일들을 많이 했다.



사실 때로는 무리하게 연결시키다 보니 억지도 가끔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일단 모임을 편하게 만들기까지는 했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인도자가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오천명에게 이적을 베푸시면서 우리들의 필요를 채우셨지만, 제자들에게 항상 포커스하셨던 제자 삼기 위한 우선순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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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 심는자냐? 물을 주는자냐?



 1.0″>내게 소중한 캠퍼스 간사님 2분이 계신다. 지금도 항상 멘토로 형, 누나로 도움을 많이 주시는 분들이 .



신앙생활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을 때 만난 첫 성경공부의 간사님을 생각하면 죄송하지만 무엇을 배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기억 나는 것이 있다면 사도행전 배울 때 자기 이름이 성경에 첨으로 나온다고 기뻐하며 했던 말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확실하게 느꼈던 것은 이 간사님이 내가 하나님을 알았으면 하는 간절함 마음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임의 지체들을 모두 사랑했다는 것이다. 어느날 이메일함을 정리하다가 이 간사님이 보낸 메일들이 우리 어머니가 보낸 메일가 비슷하다는 것을 보고 어머니 만큼의 사랑이 날 변화시켰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난 간사님은 어찌나 유머와 말을 잘 하든지 그 때 배운 디모데전후서의 내용은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작년에 고린도전서에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고린도전서 3:6-7) 라는 말에 나에게 심는 자로서 물을 주는 자로써 도움을 주었던 그 두 분을 생각하고 정말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자라게 하셨구나 느끼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적이 있다.



그래서 항상 심는 자로서의 역할이냐 아니면 내가 물을 주는 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하나에 대해서 생각하며 모임을 섬기려 하고 있다.



5. 중립성을 지켜라



 1.0″>캠퍼스안에 학생들을 여러 가지로 분석해 볼 때 크게 교회 다니지 않는 친구들의 이유를 살펴보면 여 러 가지의 해석이 나온다. 특히 내 불신자 였을때의 유용한 경험과 그 부류의 친구들을 볼 때, 교회나 기독교인에 대한 편견이 있거나, 아니면 예수님이라는 분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접해 보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편견이 있는 친구들의 경우는 성경 공부란 교회에 데리고 가기 위한 교회 2중대쯤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이때 그들이 불편해 할 수 있는 요소들(교회에 나가자, 독선적인 것, 강요)을 보여주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이다.



한번은 이런 식으로 전도하며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 교회가 뭐가 중요하냐, 그러다 교회 안가도 된다는 말까지 했었다. 사실 이것이 오해가 되어서 내 자신이 교회에 나가지 말라는 캠퍼스 사역자로 지역 교회 분들에게 뜨거운 오해를 샀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모임 안에서도 밖에서도 성경공부만 나오고 교회에 나가지 않는 지체들보고 걱정과 우려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 생각에는 하나님도 모르는 친구들이 나와서 하나님 말씀을 입술로 읽고 배우고 있다는 자체가 기적이지 교회에 나가고 안 나가고는 그 이후에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캠퍼스 주변에 교회들이 여럿이기에 자칫, 섬기는 자가 이런 민감한 사안에서 중립성을 갖지 못한다면 잘못된 오해는 가지고 있는 지체들을 품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세 번째 기치 중에 하나인 오직 하나님 편에만 서는 성경공부라는 것이 이래서 생겼다.



결국 세가지 기치 유쾌한 성경공부-동기부여, 참 제자되는 성경공부-우선순위 의식고취, 하나님 편에 서는 성경공부-본질을 통한 중립성확보로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주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잠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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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온라인상의 활발함을 이용하여 모임의 활발함을 이끈다.



서로 팀이라는 느낌과 긴밀한 관계가 되지 못하면 그냥 형식적으로 모임에 나오고, 와서도 그냥 나누지 못하고 앉아 있다가 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활용하고 있는 것이 온라인의 활발함을 유도해서 모임의 활발함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누군가 글을 쓰면 꼭 긴 답장을 달아주기보다 짧게라도 덧글을 달아주고 QT나눔의 경우는 릴레이식으로 하도록 유도하며, 한 주의 활동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자주 올리면 지체들은 어떤 것이 올라왔나 궁금해서라도 들어오고 모임이 있기까지 함께 움직인다는 느낌을 만들어 주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100번째 200번째 글을 올리는 사람에게 상품(간사가 식사 한끼 대접등)을 주는 것이라든지, 그 주 했던 성경공부 모임 때의 사진을 찍어서 첫 화면에 올리는 것등이다. 



하지만 1/3 법칙이 있듯이 1/3은 활동하고 1/3은 들어와서 보기만 하고 1/3은 관심 없는 현상이 나타난다.



결과들



제자를 삼으려고 시작한 캠퍼스 사역이 결국 나를 제자로 만들었다.



여기에서 캠퍼스 모임을 통해서 말씀 전하고 예수님 따르기를 결단하는 몇몇 친구들을 나타났고, 그 친구들 중에 하나가 세워져서 지금은 이 모임을 섬기고 있으며 난 다른 캠퍼스에서도 새로운 모임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외형상의 결과 보다는 제자를 삼으려고 했던 것이, 언제가부터 이 캠퍼스에서의 사역을 통해 내가 제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 이였다.



찬양할 때, 기도할 때에도 성령님의 살아계심을 느끼지만, 무엇보다도 내 입술에서 하나님 말씀이 나갈 때 내 안에 강하게 움직이시는 성령님의 느낄 수 있었고, 그렇게 한 주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며 산다는 것이, 제자 삼는다는 것과 제자 되는 것과 동일한 가치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성화란 끝이 없지만, 내가 직접 제자 삼으려 할 때 내 신앙의 자체도 제대로 살아날 수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가운데 기록한대로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길이 평탄하게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1:8>



 



새소망



캠퍼스 사역을 했던 것이 신앙생활 한지 2 년째 되는 때였다. 그냥 학교 다닐 때부터 서클 만들기 좋아하는 내가 예수님 만난 열정으로 성경공부 모임을 만들면서, 내가 제자 되어 갔던 놀라운 일들을 생각하면, 그 분을 알기에 두려운 마음이,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던 일들 그리고 보여주실 일들에 대한 기대가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그분에게 정결하게 서고 싶다는 새 소망이 생겼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 <빌립보서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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