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4년 10월호

저는 미국에서 9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두 달 전에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던 곳도 미국이었고 또 거기서 제 짧은 인생의 가장 긴 시간을 살았기 때문에 애착이 많이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는 거기서 유학생으로서 또 유학생들을 섬기며 경험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부족하지만 나누려고 합니다. 그런 부족함들은 그분이 채우시리라 믿으면서 말입니다.


우선 저는 고등학교 때는 동네 교회 출석으로 제 “크리스천 임무”를 다한다고 생각했었고 대학교 때는 영어로 하는 성경공부를 나갔습니다. 그때도 소그룹 리더이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섬겼다기 보다는 이미 모임을 잘 나오는 친구들을 끼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때문에 워싱턴 디씨를 오게 되면서 KBS (Korean Bible Studies)라고 하는 한국인 성경공부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주어졌던 한국인 유학생 사역은 KBS란 채널을 통해서 이루어졌지만 이 글에서는 KBS란 성경공부보다는 제가 경험하고 느낀 유학생 사역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글을 읽고 계신 많은 분들이 유학 경험이 있으시거나 유학생들이셔서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유학생 사역의 가장 핵심 부분을 꼽으라면 저는 관심과 사랑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어지는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관심, 사랑, 신뢰는 떨어져서 하나하나씩 단계적으로 쌓아지거나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가지 모두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이기에 함께 말씀 드리겠습니다.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나에게 익숙한 모든 것들을 뒤로한 채 어떠한 목표를 갖고 미국이라는 땅덩어리에 오셨습니까? 언어, 문화, 음식, 사고방식이 다른 나라에서 그 목표만 바라보고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많이 들 생각하지만 제가 만났던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극복하고 있다기 보다는 겨우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고, 교우 관계도 좋고, 성적도 잘 나왔지만 미국에서 느끼는 이질감과 외로움을 표출할 수도 해소할 수도 없는 그런 공적인 상태에 있는 친구들을 많이 봤습니다.


이런 친구들을 온전히 채워주시는 분은 예수님이라고 성경은 저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로새서 1장 9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0장 4절)


가질 수 있는 건 다 갖은 것 같은데도 자꾸 허전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저희들에게 완전함이 무엇이며 또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직접 보여주셨고, 가르치셨던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유학생 시기에 가장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 것도 이 혼란의 시기는 저희가 가장 vulnerable한 상태에 있는 바로 그때이기 때문입니다. 인정하던 그렇지 않던 성경에서 만난 예수님은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셨습니다. 가장 가깝게 지내셨던 가난한 자, 병든 자, 창기들…이들은 사회적으로 위기에 처한 이들이었습니다. 유학생의 처지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에 저희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접하게 하고 그 분을 개인적으로 만나게 도와주는 것이 아주 효과적이라는 결론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일단 유학생들은 관심을 갈망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하거나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관심이 아닌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품는 관심이어야 합니다. 위에 언급했듯이 관심과 사랑 그리고 신뢰가 연관되어있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호감을 사기 위한 관심은 몇 번의 연락과 만남, 단순히 인간적인 표면적인 만남으로 그칩니다. 인간적인 만남이 목표가 아니라 한 영혼이 예수님과 만날 수 있도록 사용되는 것이 저희의 목표인데 거기에 사랑이 결여된 것은 바로 실패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하면서 그 하나님을 알게 해주겠다고 접근하면서 사랑을 보여주고, 느끼게끔 도와주지 못한다면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낫다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사랑도 하지 못했던 존재들이지만 하나님의 저희를 향하신 사랑을 알았고, 인정했고, 그분이 저희를 먼저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존재들 또 그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창조해주셨는데, 사랑을 먼저 깨달은 자들로서 사랑이 듬뿍 담긴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신뢰는 어떻게 쌓아지는 걸까요? 꾸준한 관심과 사랑으로 키운 영혼이 인간적으로 저희를 신뢰하게 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목표는 예수님을 믿게 도와주는 것이지 저희를 좋아하고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인정 받기 위함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도구로 사용 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나는 죄인이었고 예수님이 내 죄를 십자가에서 없애주셨고 내 목숨을 다시 살리셨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신 나의 구세주 이심을 믿는 것예수님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너 믿어라”로 해결되는 문제는 절대로 아닙니다. 일단은 저희 삶에서 그 믿음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갖아주고 사랑을 보여주게끔 하는 원동력이 예수님이다라는 느낌은 반드시 전달되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은 성령님이시기에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저희 삶에서 예수님이 드러나시는지 점검하는 것 어찌 보면 이것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제가 너무 두서 없이 달려온 것 같습니다. 앞에서 말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신뢰는 제가 경험한 사역 가운데 중요하다고 느낀 몇 가지에 불과합니다. 그 세가지 요소만 있으면 성공적으로 영혼들이 낚인다는 말은 망언입니다. 저희를 쓰시는 것도 주님이시고 사람을 낚으시는 것도 주님이십니다. 저희는 단순히 도구일 뿐입니다. 도구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저희가 할 수 있는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