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7년 5월호

머리말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에는 학교에서 선생님들께서 예습과 복습을 참 많이 강조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기 전까지 예습이라는 것은 여전히 생소한 단어로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대학원 수업은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참고로 저는 ‘문과생’입니다) 주로 reading과 발제, 그리고 거기에 기반한 토론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반강제 혹은 강제적으로 예습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는 학교 밖에서 먼저 예습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교회 대학부에서 참여했던 성경공부 모임은 숙제 시스템을 갖고 있었습니다. 즉 일주일에 한 번 성경공부를 하면서, 다음 주 본문을 미리 읽고, 요약하고,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을 정리하기 위한 숙제 용지를 미리 나누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 때만 해도 ‘선배’는 어느 정도(?) 무서운 존재였던 분위기였고, 또한 숙제를 안 해 오면 기도제목 나눔 금지 등의 벌칙이 가해졌기 때문에 다들 나름대로 열심히 숙제를 해왔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인도자로 또 때로는 참여자로 성경공부를 하면서, 어떠한 형태로든 또 어떠한 깊이로든 성경 본문을 미리 예습하고 온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모임의 성격, 참여하는 지체들의 영적 상황 등에 따라 조절할 수도 있겠지만, 그룹 성경공부(GBS)라는 것이 함께 모임을 갖는 그 몇 시간에 제한되지 않고 예습을 통해 더욱 확장된다면 지체들이 말씀을 좀 더 깊게 묵상을 하고 삶에 적용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여자가 성경 본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없이 성경공부에 온다면 인도자의 본문 이해를 따라가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많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궁금함과 질문이 없다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인도자에 의해 설정되는 인식의 틀 안에서만 성경 본문을 바라볼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생각과 나눔과 적용을 위해 제기되는 질문들 중에는 단 수 십 초 만의 생각으로 대답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간적인 의미에서) 짧은 생각으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교과서적인 대답에 그칠 가능성도 많은 것 같습니다. (‘교과서적인’ 대답이라는 것이 ‘정답’이라는 측면에서는 굳이 부정적일 이유는 없지만, 자신 스스로의 생각에서 나온 대답이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주입을 통해 주어진 대답이라는 측면에서는 부정적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성경공부를 예습하는 것은 참여자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의지를 좀 더 자극하고, 그 의지가 현실로 드러나는 것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를 위해 지혜를 모으는 일이 필요하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직,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이러한 예습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1. QT를 통한 예습


성경공부 모임을 갖기 이전에 성경공부 본문을 갖고 QT를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기초적인 내용 이해와 묵상을 미리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제가 속해 있는 캠퍼스 성경공부 모임에서는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QT 일정이 있는데, 성경공부 본문을 성경공부 당일과 그 전날에 배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성경공부 모임이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QT 일정이 없어도,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성경공부 본문을 주중에 QT 하시도록 권면할 수 있겠습니다.


이 방법의 장점은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 자연스럽게 예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QT와 성경공부 예습을 굳이 분리하지 않음으로써 예습에 대한 부담감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거꾸로 QT를 독려하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같이 성경공부를 했던 어떤 지체도 QT를 안 하다가 성경공부 본문 QT부터 조금씩 시작한 적이 있습니다. (본인의 말로는 ‘어차피’ 공부하게 될 본문이니 QT를 했다고 하더군요.)


2. 질문을 통한 예습


제가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성경공부가 귀납적 성경공부 방식을 따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또한 어떠한 ‘전달’의 방법을 취하든, 대부분 몇 가지 ‘질문들’ 을 중심으로 성경공부는 진행됩니다. 때로는 성경 본문의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들도 있고, 때로는 묵상을 통해 적용점을 이끌어내는 질문들도 있습니다.


사실 어떠한 질문들은 대답하는 데에 있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묵상이나 고민을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들을 모임에서 처음 접하고 또 그 자리에서 나누어야 하는 경우에는 아주 피상적인 묵상과 나눔 밖에는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혹은 결국에는 진행자의 이야기에 너무 많은 비중이 실려버리게 됩니다. 만약 참여자들이 이 질문들을 미리 알고 성경공부 모임에 올 수 있다면 나눔과 적용이 더욱 구체적이고 깊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금요일 저녁에 모임을 갖는데, 저는 늦어도 목요일 밤까지는 이 질문들을 참여자들에게 이메일로 미리 전달합니다. 그리 대단한 예습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성경공부 모임을 위해 캠퍼스를 걸어오면서 단 몇 분 만이라도 질문의 내용에 비추어 본문의 내용을 다시 생각해 보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질문들을 미리 읽고 생각해 오시지는 않지만, 가끔씩 성경공부 시간에 “간사님께서 보내주신 질문을 생각해 보았는데..” 라며 나눔을 시작하시는 지체들을 볼 때 마다 또 다른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이 방법을 사용하는 데에는 어려움과 위험도 있습니다. 첫째는 이 방법 역시, 그 질문들을 접하고 생각하기 이전에 성경 본문을 읽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QT를 통한 예습 등과 같이, 주중에 본문을 미리 읽게 하는 것과 병행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특히 귀납적 성경공부의 경우에는, 그 질문들이 참여자들에게 있어서는 성경 본문을 바라보는 데에 ‘색안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앞서 이야기한 대로, 그 질문들을 접하기 이전에 먼저 본문을 읽고 기초적인 개인 묵상을 하는 과정이 없다면 이러한 위험은 더 커질 것입니다.


3. 숙제를 통한 예습


앞서 언급한 방법의 연속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숙제’라는 말을 통해 조금은 더 책임감을 지워준다는 측면에서, 또한 준비하는 시간이나 분량에 있어 더 확장 되었다는 측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숙제’라는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참여자 모두에게 똑같은 과제를 줄 수 있습니다. 내용을 정리할 수도 있고, 문단을 나누어 올 수도 있고, 핵심 단어들을 뽑아 올 수도 있고, 아니면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 오거나 생각해 올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각자에게 다른 과제를 줄 수도 있습니다. 누구는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과 지역에 대해 조사를 해오고, 누구는 관찰 질문들을 뽑아보게 할 수도 있겠습니다.


‘숙제’라는 방법을 사용하면 참여자들의 예습의 깊이를 깊게 할 수 있고, 또한 성경공부 모임에서의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 역시 위험성이 없지 않습니다. 특히 인도자나 참여자가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의 책임감을 갖고 있지 않은 모임이라면 성경공부를 필요 이상으로 부담스럽게 여길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숙제는 계속 나가는데 숙제를 해 오는 사람은 계속 없다면 오히려 서로에 대한 민망함만 커져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모임이, 또한 자신 스스로와 참여자들이 이 정도의 책임 의식을 갖고 있다는 판단이 서지 않은 상태라면 이에 대한 욕심을 너무 내세우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꼬리말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는 목적은 우리의 ‘being’과 ‘doing’이 하나님의 ‘옳으심’에 합치되도록 하는 것입니다(딤후3:16). 마치 구약 율법의 정신이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같이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며 (레19:2), 예수님께서도 율법의 참 정신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우리도 완전해야 한다고 (마5:48)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단순히 말씀을 지식적으로 배우는 것과는 다르고, 따라서 내가 말씀을 붙들고 어떻게 한다기보다는 말씀이 나를 붙들고 어떻게 하시도록 나를 말씀 앞에 스스로 노출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룹 성경공부가 이를 위한 중요한 기회와 동기부여를 제공하게 되지만, 예습을 통해 좀 더 개인적으로 같은 말씀 앞에 다가서는 과정이 병행된다면 그룹 성경공부가, 그리고 그를 통한 참여자들의 삶이 좀 더 하나님 앞에 풍성하여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또한 저의 작은 경험들을 통해 확신을 갖게 됩니다.


저의 부족한 경험과 생각으로 ‘예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또 다른 경험, 조금은 다른 생각이 있다면 그것들이 함께 나누어져서, 말씀을 통해 제자를 삼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의 삶의 여정에 밑거름으로 쓰이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