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30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사춘기를 보낸 탓일까. 그 시절 나는 학교에 가고 싶은 날보다 가기 싫은 날이 더 많았다.

모든 과목이 힘들었지만, 체육시간이 내게는 가장 끔찍했다. 그 당시 내가 다니던 미국 학교에서는 체육시간이 실기와 필기로 나뉘어 있었다. 한 운동종목의 규칙과 경기방법을 강의하고 시험을 본 후, 남은 시간에 실기를 하는 것이다. 체육시간에 A학점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기억하지만, 필기시험만은 항상 100점을 받았다. 규칙과 방법을 잘 이해해 시험은 잘 봤지만, 실제로 경기를 할 때는 늘 실수를 해 사고를 치곤 했다. 농구시간에 공을 잡아서 패스를 해야 하는데, 공을 뺏기지 않으려고 계속 들고 뛰다가 제일 키 큰 남학생을 골대로 잘못 보고 점프해서 공을 그 남학생 코에다 박아 코피가 터지게 만드는가 하면, 미식축구 시간에는 공을 받아서 눈을 질끈 감고 뛰어야 할 반대 방향으로 열심히 뛰어서 모든 아이가 배를 잡고 구르게 하기도 했다. 수영시간에는 너무 긴장한 탓인지 한참 잘 가다가 물 속에서 기절해 선생님들을 다 물 속에 뛰어들게 만들기도 했다. 이론을 아는 것은 실제로 경험하여 알 때까지 배움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부터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 듯하다.

Tell me and I will forget, show me and I will remember. Involve me and I will learn.
(말해주는 건 잊게 되고, 보여주는 것은 기억하지만, 직접 참여하면 배우게 된다.)

미국에 살면서 자주 만나는 말인데 생각할수록 만고의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에드거 데일(Edgar Dale)의 『효과적인 배움』이라는 연구 조사서에 따르면, 배우는 방법에 따라 그 내용을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가 달라진다고 한다. 강의를 들었을 때는 5%를 기억하고, 혼자 읽었을 때는 10%를 기억한다. 그리고 시청각 교육을 통해서는 20%를 기억하고, 누군가 시범을 보여주었을 때는 30%를 기억한다고 한다. 그런데 토론에 참여했을 때는 50% 이상을 기억하고, 실제로 배운 것을 자신에게 적용했을 때는 75% 이상을 기억하고, 또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나누었을 때, 그러니까 배움의 적용을 바로 실생활에 응용하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었을 때는 90% 이상을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나눔이 살아 있는 소그룹에서의 배움은 확실하고 효율적인 교육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소그룹에서 확실한 배움을 얻기 위해서는 정확한 목적과 건강한 나눔을 인도할 수 있는 훈련된 인도자와 확실한 교육자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든 소그룹 모임은 중요한 두 가지가 갖추어진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그룹 사역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인도자가 잘 준비되지 않았을 때이다. 소그룹 사역은 인도자에 그 사역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준비되고 훈련된 인도자는 배움이 있는 살아 있는 소그룹을 위해 너무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교회마다 소그룹 사역을 시작하면서 많은 목사님이 평신도들을 소그룹 리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 여러 교회에서 소그룹 인도자 훈련을 진행하면서 평신도 리더들의 고충을 들어보면, 거의 비슷한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사역을 향한 열정은 있지만, 구체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막상 실제 소그룹 상황에서 인도자로서 알아야 할 방법들을 모르다 보니 점점 지치게 되어 기쁨으로 시작한 사역이 부담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교회들을 방문해 보면 너무 많은 사역을 맡기지도 않을 뿐 아니라, 꼭 필요한 몇 가지 사역만 하더라도 그 사역을 잘할 수 있도록 평신도 사역자들을 위한 정기적이고 구체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평신도 사역자를 자신이 하는 일에 기쁨과 의미를 느끼는 전문적인 사역자로 양성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열정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소그룹 사역자들도 나눔을 잘 인도하여 은혜로운 나눔을 통한 배움이 살아 있는 소그룹으로 인도할 수 있는 기술(SKILL)이 부족한 것을 가장 힘들어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소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어떤 기술이든 기술은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래되고 익숙한 방법들을 내려놓고 새롭고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향해 늘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방법들을 익히기 위해 스스로 도전하고 노력하면, 어느 방면에서든 전문가적인 기술을 가질 수 있다.

26년간 소그룹 성경공부를 인도해 왔지만 15여 년 전, 성경발견학습법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만나기 전에는 소그룹 인도를 강의식으로만 해왔고, 그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목사님이신 아버지의 서재에는 많은 주석서가 있었고, 매주일 주제별 성경교재를 가지고 여러 주석들을 동원에서 좋은 강의 하나씩을 준비해 가면 그룹원들로부터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고, 그 칭찬이 좋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강의하는 것이 좋아서였는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미리 공부해서 전달하는 소그룹 인도자로 오랜 세월을 살아오고 있었다.

그 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리더십 개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을 때이다. 나와 오랫동안 함께 소그룹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소그룹의 인원이 너무 많아져서 그룹을 나누어 인도자를 세우려고 하면 아무도 인도자로 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처럼 주석이나 참고자료가 풍성하지도 않았고, 또 나처럼 아는 것을 쉽게 전달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저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는 음식을 받아먹는 데만 익숙했던 그들은 스스로 먹고 또 다른 사람들을 먹여주는 일 앞에서 도무지 자신이 없어했고 쥐어주는 숟가락을 자꾸만 떨어뜨려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커피브레이크 인도자 훈련 워크숍에서 성경발견학습(Discover Bible Method)이라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 방법은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보이지 않던 세계를 볼 수 있는 새로운 눈과 듣지 못했던 것을 들을 수 있는 새로운 귀를 열어 주었다. 그리고 주입해 주는 강의를 편하게 들어왔던 소그룹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왜냐면 성경발견학습은 강의식으로 인도하는, 소그룹원들이 인도자 혼자 뛰는 운동경기를 관람자로 앉아서 구경만 하는 방법이 아니라, 소그룹원들이 모두 함께 직접 경기에 참여하여 뛰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성경발견학습이란 소그룹의 성격에 맞는 열린 질문(개방형 질문)으로 인도하는 귀납적 학습법이다. 그리고 이 방법은 도입과 관찰, 해석과 적용의 점진적 질문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학습법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질문이다. 성경 본문을 위한 귀납적 질문으로 인도하는 방법은 한국에서 여러 기관이 이미 사용하고 있지만, 성경발견학습과 기존의 귀납적 공부와의 차이는 맞춤형 질문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미 교재에 다 나와 있는 질문이 아니라, 뼈대가 되는 질문이 어느 정도 나와 있는 교재를 가지고 그룹의 신앙 정도와 성격에 맞는 보충질문을 인도자가 만들어 쉽고 마음에 와닿는 진행으로 인도하는 것이 성경발견학습이다. 보충질문들은 도입질문과 관찰질문, 해석질문과 적용질문들로 본문 속에서 만들어 내고, 인도자는 강의를 하지 않고 그 질문들을 통해서 소그룹원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 그 답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이 소그룹의 학습효과를 극대화하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일 수 있는 까닭은 질문을 받고 스스로 고민하고 애써서 발견한 진리는 강요하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강의식 인도를 하면서도 가끔 질문을 던지곤 했지만, 질문 만들기를 배우고 나서 뒤돌아보니 나의 질문들은 대부분 주입식 질문이었고 폐쇄형 질문이었다. 좋은 질문 만들기 강의를 통해 확실한 답을 얻은 나는 새로 배운 발견학습방법을 소그룹에게 바로 적용해 보았다. 열심히 강의 준비를 하던 시간에 머리를 싸매고 질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그 질문들을 소그룹에 던져 보았다. 그 후 내가 인도하고 있던 소그룹들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맛보기 시작했다. 소그룹원들이 말씀을 그들의 삶에 적용하고 주중에도 전화를 걸어 말씀이 자신들에게 준 놀라운 발견들을 나누는 것을 보면서,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를 해결한 듯한 기쁨이 찾아왔다. 모일 때마다 풍성한 나눔의 장이 열렸고, 말씀과의 깊은 만남은 사람들을 실의와 절망에서 일으키기 시작했다. 몇 달이 지나자 새로운 리더들이 기쁨으로 헌신했고, 많은 소그룹이 교회 안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후, 교회에 어려운 상황이 닥쳐서 담임목사님이 6개월도 넘게 공석일 때가 있었다. 이민 교회 현실에서 상당히 이동이 많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한 명의 교인도 요동하지 않고 교회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를 후원해 주며 말씀을 깊이 배우고 나눌 수 있었던 소그룹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소그룹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십수 년을 구체적인 교육 없이 강의식 인도자로 살아왔던 나는, 성경발견학습으로 인도하면서 건강한 나눔이 얼마나 엄청난 학습효과를 주는지 현장에서 생생히 경험할 수 있었다. 힘든 노력과 의지가 뒤따라야 했지만 성경발견학습법을 열심히 익히며 맞춤형 질문으로 인도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던 중, 전혀 기대하지 못한 때에 미국 교단의 부름으로 소그룹 사역자들을 훈련하는 강사로 서게 되었다.

소그룹 인도자 워크숍에서는 성경발견학습과 소그룹의 원리, 상황 대처법, 소그룹을 통한 전도와 실습 등을 훈련하게 되는데, 참석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이 바로 성경발견학습이다. 이 학습법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 만들기’를 학습하고 직접 질문 만들기를 해보게 하고, 만든 질문들을 수정해 드리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어문화가 질문보다는 주입식이기 때문에 질문 만들기를 힘들어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다. 소그룹 모임을 시작할 때는 어색함과 침묵을 날리기 위한 도입질문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적인 질문보다는 일반적인 질문, 심오한 질문보다는 재미있는 질문, 성경적인 지식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질문이면서도 오늘 나눌 말씀과 연관될 수 있는 질문이 좋은 도입질문이다. 도입질문으로 나눔을 시작하고 본문을 합독한 후, 관찰질문과 해석질문으로 들어간다. 관찰질문은 본문 속에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이고, 해석질문은 답이 본문에 그대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본문을 근거로 관찰한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는 성경발견학습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적용질문으로 하는데, 적용질문을 할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를 질문하여 다른 사람이나 교회를 비판하는 적용보다는 스스로에게 주시는 말씀을 나눌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과 과거 상황에서의 적용이 아니라 미래에 다가오는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지를 질문하여 미래지향적인 답을 나눌 수 있도록 한다.

이 학습법은 그 후 15여 년이 넘게 맡아 인도해 온 모든 소그룹 사역을 더욱 풍성하게 했고, 귀한 분들과 나눈 아름다운 시간들과 말씀들은 내게 생명과 같은 배움과 축복을 주었다. 수없는 감동의 나눔들이 기억 속에 있지만, 여호수아서를 공부할 때 소그룹에서 나눈 것들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 싶다.

 “좋은 리더가 떠나고 새 리더가 섰을 때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라는 도입질문으로 시작했더니 진지하고 재미있게 한국에 살 때 대통령이 바뀌던 때의 심정부터 교회에서 목사님이 바뀔 때의 느낌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함께 여호수아를 합독하며 관찰질문과 해석질문들을 시작했는데 그중에서 모두에게 생명의 말씀을 남겨 준 발견질문이 있었다.

“3절 말씀에서 어떤 땅을 다 주신다고 하셨나요? ”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다 주신다고 하시네요.”

해석질문으로 “그때 당시 누가 땅을 발바닥으로 밟고 다녔을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을까요?”라고 질문하자, 모든 소그룹원이 아마 노예들, 종들이었을 거라고 대답하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가 왕과 같은 자세로 그 땅을 정복하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수고하고 섬기고 순종하며 그 땅에 나아가기를 원하셔서 그렇게 명하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나요?”라는 적용질문이 던져지자 많은 소그룹원이 편하게 어떤 일을 이루어 보려고 기도하고 있던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자신들이 맡은 모든 일을 이루어 나갈 때, 왕같이 군림하고 편안히 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수고하고 더 노력하며 섬기는 자세로 해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말씀하신다고 나누어 주셨다. 그 다음주에 세미나 인도를 위해 한국을 나왔을 때 짧은 기간 안에 여러 도시와 교회를 다니며 긴 일정을 소화해야 했을 때, 좀 쉽고 편하게 사역하고 싶은 유혹이 찾아올 때마다 그 때 주신 말씀이 생명의 말씀으로 나의 심령을 바로잡아 주었다.

소그룹은 학습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많은 여건을 갖춘 곳이다. 후원과 소속감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말씀을 앞에 두고 깊이 경청하며, 또 좋은 질문들을 서로에게 던져서 고민하고 생각하면, 그 시간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각자에게 꼭 필요한 적용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 주신다. 소그룹은 참석자들로 하여금 대화의 기술과 발표력, 관계 형성의 중요한 윈리들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그런 원리들은 삶의 모든 분야에서 유용하게 활용되는 중요한 기술이다. 특히 질문 대화법은 일상 생활에서 우리에게 풍성한 대화의 삶을 여는 소중한 재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