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숨은 그림 찾기


공동경비구역 JSA(Joint Security Area)
비극의 자리에서 다시 부르는 희망가


 

















개봉연도 2000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박찬욱
원작 소설 DMZ (박상연 작, 민음사 1997년)
각색 박상연, 김현석, 정성산, 이무영, 박찬욱

주요 등장 인물

오경필 중사
이수혁 병장
정진우 전사
남성식 일병
소피장 (Sophie E. Jean)
최만수 상위
표장군
장소령


송강호
이병헌
신하균
김태우
이영애
김명수
기주봉
이한위


지난 3월 초순 드디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이하 JSA)를 보았습니다. 미시간대학 한국유학생회에서 주관한 ‘한국영화의 밤’ 덕분이었지요. 2000년 9월경에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를 1년 반이나 지나서야 처음으로 보게된 것입니다.


더 이상 깨지지 않으리라던 <쉬리>의 관중동원기록을 역사에 묻는 성공을 거두었던<JSA> . 당시 대부분의 보도내용은 이 영화를 <쉬리>와 동급으로 비교하는 분위기였는데, 개인적으로 <쉬리>란 영화를 ‘로맨스가 적당히 사탕발림된 어설픈 블락버스터(blockbuster)’ (특히 미국영화 을 꽤나 ‘참조’한 듯한 분위기의)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던 터라 동네 한국상점에 비디오가 나왔다는 입소문에도 초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집에 사는 외국인 하우스메이트들에게 우리나라의 문화를 알려야한다는 한민족으로서의 사명감이 불끈불끈 솟는 바람에 뒤늦은 밤나들이를 감행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난 느낌은 한마디로 ‘충격’이었습니다. 유신정권의 아스라한 끝자락과 80년대의 아수라들을 기억하는 386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더군요. “그곳에도 사람이 있었네 그려” “승냥이들이 아니더만” 식의 북한 다시보기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우리 민족 모두를 향한 깊은 외침. 뭔가 묵직한 것이 심장을 내리누르는 듯한 부담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만 삼개월이 지난 지금, 또다른 부담감으로 태평양 건너의 조국을 바라보며 이 글을 씁니다. (<JSA> 줄거리 보기)




<JSA>는 ‘현재-과거-현재-과거-현재’로 짜여진 미스테리 형식의 영화입니다. 플래시백(flashback) 효과로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수사관 소피와 함께 미궁의 사건을 해결하는 재미를 즐기는 동안, 관객은 그들이 풀어야할 수수께끼는 사라진 총알 하나의 행방도 아니요, 이수혁과 오경필 둘 중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중립국감독위원회(이하 중감위)의 보타장군이 처음 소피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말이지요.


 





보타 우리 임무는 누가 그랬는지를 찾아내는게 아니라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 내는 거네. 또한 수사 결과가 아니라 어떻게 수사를 해나가느냐가 중요하지. (Our job is to find out not who but why. Also what’s important is not the outcome but the procedure.)


제 1 부: AREA



<JSA>는 또한 ‘Area-Security-Joint’의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영화 제목을 거꾸로 해놓은 듯한 배열인데, 제1부 ‘Area’는 이름 그대로 ‘구역’, 즉 ‘남과 북’, ‘아군과 적군’, ‘양키괴뢰군과 빨갱이괴뢰군’으로 나뉘어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대치하고 있는 긴장된 분단상황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1부 Area는 이런 분단상황에 의한 편견과 허상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 지를 소피가 만나는 남북한 군인들을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총기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JSA에 파견된 한국계 스위스인인 소피소령은 보타장군으로부터 남과 북 어디도 자극하지 말고 철저히 중립을 지키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하지만 수사본부에서 만난 한국군의 표장군은 그녀에게 처음부터 선택을 요구합니다.


 





표장군 “중립국감독위원회? (코웃음치며)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어. 빨갱이, 그리구 빨갱이들의 적…. 여기 ‘중립’ 설 자리 없어, 선택만 있을 뿐이야…. 법대 나왔대며? 현명한 선택하리라 믿네.”


반공이데올로기로 철두철미하게 무장된 표장군에게 북한군은 한’마리’라도 더 쏴 죽여야 속시원한 야수들에 불과합니다.


 














표장군 (이수혁구출조의 책임자를 문책하며) “그래서? 그래서 중화기들도 일부러 엉터리로 쐈니? 나무나 부러뜨리라고 명령했어?”
대령 “그냥 구출조 엄호용으로 겁만 주라고 그랬습니다.”
표장군 “뭐? 야! 야! 니가 겁먹은게 아니구?”
표장군 (소피와 페르손더러 들으라는 듯이 강소령에게) “… 이 사건은 뭐 뻔한 거 아냐? 빨 갱이 놈들이 납치해놓구 자진월북으루 조작하려 한거. (강소령에게) 안그래? …우리 애…. (수혁의 곁에 앉으며) ….이름이 뭐랬지? … 그래 수혁이…. 우리 수혁이 포상휴 가 좀 보내주게 빨리 좀 끝냅시다. 대단한 놈이야, 이놈… (수혁의 두볼을 쥐고 흔들 어대며) 두마리나 사살하다니…. 아주, 영웅이야, 영웅! (수혁의 등을 두드리며 소피 에게) 안 그래, 장소령?”


북한군의 리상좌 또한 표장군에 뒤지지 않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위에 수혁에 쓰러져 있던 자리의 윤곽선을 들여다보는 소피에게 그는 “정확히 군사분계선 위에 쓰러지다니 어케 좀 연극같디 않소?” 라고 말하며 사건의 모든 책임을 남쪽으로 돌리며, 마치 남쪽의 뻔뻔스런 악선전에 대항하기 위해 오경필이 살아남아 준 것인양 그의 생존을 다행스러워 합니다.


빨갱이 아니면 빨갱이의 적. 적군 아니면 아군. 이처럼 단순명료한 이분법이 통하는 곳에서는 상대방을 바보로 만들거나 곤경에 빠뜨리는 등의 작은 일로도 쉽게 ‘장한’ 일을 한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북쪽을 살짝 묻거나 팔아 꾸며낸 거짓말 몇마디로 이수혁은 상급자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미화됩니다.


 








황중사 (소피에게) 수색을 나갔다가 혼자 낙오한 적이 있었습니다. 부대가 아주 발칵 뒤집 혔죠. 근데, 4시간만에 귀대를 해갔구 한다는 소리가 지뢰를 밟아갔구 그거를 해체 하구 왔다는 겁니다. 나참! 좌우간 난 그때 알았습니다. 야, 이 , 보통놈 아니구 나. 아, 독한 놈이구나 이거, 응?
대령 이수혁이, 그놈 남잡니다… 한번은 근무를 서는데 말입니다, 저쪽 애들이 우리 대통 령 욕을 막 하더랍니다. 이수혁이 그걸 듣고는 옆에 있는 돌멩일 집어서 쟤네 초소 유리창을 박살을 냈다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아이들 모아 놓구 한마디 했습니다. All right! 자알 했다 말이지.


나중에 이 진술들은 자기가 밟은 지뢰를 제거해준 북한군, 생명의 은인 오경필과 교신하다가 잘못 던진 돌멩이가 북쪽 초소 유리창을 깬 것으로 (관객에게만) 역전되어 진실이 밝혀집니다. 하지만 남쪽의 장군에게 대령에게 중사에게, 그리고 북쪽의 상좌에게 진실은 가리워진채 위장된 평화 속에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보타장군이 소피에게 “여긴 진실을 감춤으로써 평화가 유지되는 곳이네. 저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이 사건이 흐지부지 끝나는 거라구”(Here the peace is preserved by hiding the truth. What they really want is that this investigation proves nothing after all) 라고 했듯이 말입니다.


(영화를 함께 봤던 일본인 친구 사야코가 나중에 한가지 이해되지 않는 곳이 있다며 설명을 부탁해왔습니다. 북한군인(오경필)이 그 Pretty boy(이수혁을 말함)에게는 납치된 것으로 말하라면서 왜 자기는 그렇게 증언하지 않았는지 이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오경필이 이수혁과 형제 이상의 관계이기는 하지만 그에게도 사랑하는 조국이 있다. 그 조국이 비록 가난에 겨운 독재국가라도 사랑하는 내 나라가 대외적으로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도 나름대로의 이야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제 대답에 사야코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남북 각각의 장군들은 진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냐고. 그들이 진실을 알았건 몰랐건 남북한 각각의 국민/인민들에게 전해지는 뉴스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쪽에는 이수혁의 증언이, 북쪽에는 오경필의 증언이 진실인 것으로 보도되었을 것이다. 이런 저의 설명을 사야코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엔 함께 먹고 있던 피스타치오 여섯알을 동원해야만 했습니다. 함께 먹는 피스타치오는 고소했지만 내 나라의 슬픈 아이러니를 설명하는 입맛은 쓰디 썼습니다.)


 









남북이 이토록 첨예하게 대립하며,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그 평화가 무엇을 위한 것이든) 감추고자 노력하던 진실은 스위스 출신의 중감위 여자 소령이 개입함으로써 드러나게 됩니다. (왼쪽 두 개의 포스터를 비교해 보십시오.)


이제까지 우리가 진실이라고 들어왔고 그렇게 믿고있는 것 중에 정말 진실인 것이 얼마나 될까요? 갈라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남북의 독재자들은 각각의 국민과 인민들에게 얼마나 수없는 거짓을 말해왔으며, 오히려 그렇게 의도적으로 유지되는 긴장상태를 얼마나 즐거워했을까요?

아니, 애당초 결단코 각자가 추구하는 이념의 차이 때문에 남북이 갈라졌을까요? 아니, 6.25 전쟁에서 정말 무엇이 자유주의이고 무엇이 공산주의인지를 알고 싸우다 전사한 사람의 수는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이 영화는 이미 원죄처럼 되어버린 우리의 편견과 그 위험에 대해 끊임없는 화두를 던집니다.


제 2 부: SECURITY


 








이수혁에게 죽은 두구의 북한군 시체에 난 총상을 보고 소피는 수혁의 증언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됩니다. 정진우를 죽게한 것은 정조준되어 정확하게 발사된 첫번째 총알인데, 단순히 탈출만을 위한 총격이라면 왜 죽은 시체에 대고 일곱발이나 더 쏜 것일까? 최만수 상위를 죽게한 두번째 총알은 왜 ‘처형타입’으로 발사된 것일까? 도대체 이수혁의 어떤 복수심이 쓰러진 사람을 내려다 보면서 또 쏘게 만든 것일까?
게다가 수혁이 약실에 총알하나를 더 장전하는 습관이 없다는 사실과 사라진 한알의 총알에 근거하여 소피는 범행장소에 남성식 일병이 함께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하여 이 둘을 심문하는데, 그만 겁을 먹어 투신한 남성식의 회상을 통해 관객은 그들만의 비밀한 안전지대(security)로 함께 들어가게 됩니다.








수혁의 소대는 밤중에 수색을 나갔다가 길을 잘못 들어 북쪽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수혁이 볼일보는 사이에 황급히 남쪽으로 되돌아갑니다. 본의 아니게 낙오한 수혁은 돌아서다 지뢰를 밟게 되고,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으러 나온 북한군 정진우와 오경필과 조우합니다. 지뢰를 밟은데다 북한군까지 맞닥뜨리게 된 사면초가의 수혁은 당황하여 지뢰운운하며 진우와 경필을 쫓고, 지뢰라는 말에 도망가려는 그들에게 마구 욕을 해대다 결국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수혁의 말 한마디로 긴장상황은 맥없이 풀어집니다. 그런 수혁을 마주하고 선 경필과 진우. 그들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며 갈대밭을 뒤흔듭니다. 마치 앞으로 있을 그들 간의 해빙을 암시하듯. (영화 마지막의 스틸사진 장면과 함께 개인적으로 상당히 인상깊은 장면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눈이 쌓인 비무장지대에서 다시 한번 마주치게 됩니다. 소대원들을 뒤로 하고 중앙에 선 오경필과 황중사. 경필은 황중사와 남북의 담배를 서로 바꿔 피우다가 수혁을 알아보고 경필과 우진을 알아본 수혁은 그들에 대해 궁금해하게 됩니다. 이후 JSA에서 경필과 거울처럼 마주보고 꼿꼿이 서있던 수혁은 “그림자 넘어왔어, 조심하라”는 경필의 장난에 결심을 굳히고 결국 그에게 편지를 던져 보냅니다. 이렇게 유희처럼 시작된 둘의 우정은 정우진의 장난편지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넘게 됩니다. (실제로 다리를 건너는 수혁의 모습을 담지 않은채 이를 능란하게 표현해내는 카메라워크에 경탄을 금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광석을 들으며 술을 마시고, 지포라이터를, 누드잡지를 선물하며 비밀스럽게 키득대던 셋의 운명은 남성식이라는 공범을 끌어들이면서 바뀌게 됩니다. (이것은 성식이 듣던 카세트가 정방향에서 역방향으로 바뀌는 장면으로 암시됩니다.) 얼떨결에 수혁의 뒤를 따르던 성식의 순진한 두 발은 군사분계선 바로 앞에서 화들짝 놀라 멈춰 섭니다. 그것은 ‘넘을 수도 없고’, ‘넘어서도 안되는’ 금단의 선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54년 유엔과 북한의 협정에 따라 처음 만들어진 JSA는 1976년의 미류나무 도끼만행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남북의 왕래가 자유롭던 곳이었습니다. 군사분계선은 그 이후 만들어진 것입니다. 양측 군인들간 충돌 방지를 위해 표시된 선이 어느새 “넘으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는 선,” “넘으면 이적행위가 되는 선”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편견의 선”을 마주한 순간 성식의 두 발은 자동적으로 뒤로 당겨집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2부 Security의 도입부분, 남측의 서양인 관광단 쪽에서 북축으로 날아간 빨간 야구모자를 경필로부터 넘겨 받은 미군안내장교가 관광단에게 하던 대사가 인상적입니다.



“만일 제가 한국군이었다면 제 팔은 지금 막 북한과의 어떠한 교류도 금지하고 있는 남한의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셈입니다. 저는 잠입, 탈출, 명령위반, 무단이탈 등의 죄로 중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 제가 고맙다는 말까지 건넸었지요. 이런 경우, 남한은 북한과의 어떠한 통 신도 금지하고 있지요. 과장을 좀 하자면, 이 단순한 행위로 저는 교수형을 당할 수 있단 얘 기입니다.” (If I were a South Korean soldier, my arm just violated the National Preservation Law which prohibits any contact with North Korea whatsoever. I could be severely punished for infiltration, extrication, disobeying orders, and secession without permission. And ah…. I also said “Thank you”. In this case, South Korean law prohibits any type of communication with North Koreans. To exaggerate, I could be hanged for this mere action.)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군사분계선이란 무시무시한 용어에 비해 너무나도 시시한 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무작정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젊은이들. 그들이 무료함에 지쳐 서로 농담을 주고 받고 어쩌다가 초코파이를 나누어 먹었다면, 그것은 오히려 사람 사는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 일로 국보법 위반이네 뭐네 해서 감옥에 가는 현실이야말로 우습도록 슬픈 일입니다.


 







그런데 수혁과 성식은 단순히 한쪽 팔이, 그림자가 넘어가는 것,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농지거리와 초코파이를 주고 받는 것 이상의 모험을 감행하며 “편견의 선”을 넘나듭니다. 그들이 분단의 반세기, 그 오욕과 고통의 세월을 뛰어넘어 통일의 물꼬를 트러 북으로 건너간 “통일의 꽃돌이”가 되기에는, 그런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에는 그 동기가 너무 단순합니다. “따뜻하구만!” 오경필의 말처럼 서로의 품이 너무 따뜻했기 때문입니다. 막막하기만한 군생활에 서로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틈에서는 어떤 정치적 수사도, 이념도, 지도자도 너무 거창하기만 할 뿐입니다. 경필과 수혁, 우진 사이에 낄 자격이 없덨던 김일성 부자의 사진처럼 말입니다.


총알로 공기놀이를 하고 닭싸움을 하며 아이들 같이 즐거워하는 남북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의 놀이에 함께 빠져 듭니다. “그래 저렇게 쉬운 것을….” 이 생명 다해서, 꿈에도 소원이던 통일이 결코 어려운 일인 것만은 아니라고 잠시 생각하며…. 웃었다 울었다 하며…. 하지만 그럴까요? 아이들 놀이마냥 통일이 그렇게 쉬운 걸까요? 그들의 금지된 장난은 최만수 상위의 등장으로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제 3 부: JOINT


초소 안에 가득 너울대던 방귀냄새와 웃음들은 성식이 문을 여는 순간 공중에 얼어붙습니다. 최만수 상위가 문 밖에 서있었던 것입니다. 성식은 다리에 힘이 빠져 무너지고, 최상위와 수혁은 어느새 총을 빼들고 서로 겨누고 있습니다. 경필은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한 모두를 진정시키려 애쓰지만, 최상위의 명령에 어쩔 수없이 우진은 수혁과 성식을 향해 총을 빼듭니다. 이에 수혁과 성식은 경악하고, 최상위는 안도의 한숨을 토해내며, 경필은 체념합니다.


 



































경필 “….수혁아, 총 내려놔라. 이제 어쩔 수 없지 않갔어.”
수혁 “싫어!”
경필 “내가 잘 말해줄 테니까…. 자진 월북한 걸루 하구 우리 공화국에서 살자우, 응? (최 상위를 돌아보며) 그렇디요?”
(조금 멈칫거리며) “먼저 총 내리면 얘기해 보자.”
수혁 (버티며) “저 말 못 믿는 거 형이 더 잘 알잖아? 형두 그랬잖아, 공 세울려구 혈안된 라구. 우리 둘 다 죽여놓구, 잠입한 놈들 사살했다구 구라칠 게 뻔해.”
경필 “내가 책임지구 너희 살려주갔어, 기래두 이 형 못 믿니? (시선을 돌려) 성식아, 넌 믿지? 니가 좀 말해보라우.”
성식 (덜덜 떨면서 수혁에게 귀엣말로) “….저거…. 다 짜구 하는 거 아닐까요?”
우진 (총 쥔 손을 덜덜 떨면서 애원하듯) “수혁이 형, 기때, 우리 중사동지가 지뢰 끊어준 거 기억하죠? 길치 않아요? 총 내리라요, 예?”
수혁 “형이구 뭐구 다 필요 없어. 결국 우린 적이야. 나보구 겁쟁이라 그랬지? 봐봐, 내가 저 죽이는지 못 죽이는지 한번 봐봐.”
경필 “야, 이수혁이 이딴 식으로 나가다가는 전부 다 죽는기야. 야,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최 상위와 수혁을 번갈아 보며) 동시에 내리는 기야요, 우진이 너두! 내리시라요. 내리라.”
성식 (귀엣말로) “….아무래두 이상해요.”


수혁과 최상위의 가운데 서서 경필은 양팔을 벌려 둘의 총구를 아래로 누르고 결국 두정의 권총이 홀스터로 되들어갑니다. 수혁과 최상위의 안도의 한숨 속에. 긴장이 풀리면서 우진도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데, 순간 카세트가 정방향에서 역방향으로 바뀌면서 그들 모두의 운명은 다시 역류를 타게 됩니다. 그때까지 잔잔하게 흐르던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끝나고 갑자기 시끄러운 노래로 바뀌는 순간 그들은 모두 흐트러지며, 연이어 (최상위가 갖고있던) 무전기 잡음이 들리자 이에 당황한 최상위는 저도 모르게 무전기로 손이 갑니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초소의 창에 구멍이 뚫리고 성식의 총구에서는 연기가 오릅니다. 최상위가 쓰러지자 우진이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권총 손잡이를 잡지만, 순간 성식과 수혁이 발사한 총에 의해 이마가 뻥 뚫리면서 피가 튀고, 거의 동시에 손의 일부가 떨어져 나갑니다. 수혁은 우진에게서 총구를 돌려 경필에게 총을 겨눕니다. 한번. 두번. 그때마다 움찔 움찔하는 경필. 고장난 총은 격발되지 않고 경필의 얼굴은 충격으로 가득합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닌 성식은 이미 숨진 우진에게 총을 쏘아대다가 이제 경필에게 총을 겨눕니다. 멍청히 선 성식에게서 경필은 총을 빼앗아 살려달라는 최상위를 가차없이 사살합니다. 복수하듯이.


경필은 손수건으로 (성식의) 총을 깨끗하게 닦은 다음 수혁에게 건네주고, 우진의 다리께에 떨어진 피묻은 수혁의 (고장난) 총을 주워 수동으로 슬라이드를 원위치시킨 다음 역시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 성식에게 건넵니다. 수혁은 납치됐다가 탈출한거라고. 성식은 여기 없었던 거라고 말하며. 총성을 듣고 출동한 한국군의 총소리에 겁을 먹은 성식은 쓰러지면서 우진이 발사한 총에 다리를 맞아 잘 걷지 못하는 수혁을 버려두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고, 군사분계선 위에 쓰러진 수혁 위로 탄환들이 난무합니다.



“상호몰이해”와 “상호불신”. 최만수 상위는 남쪽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럴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남성식은 결국 북쪽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해하지 못한 자에게 오경필들은 반동들에 불과했고, 믿지 못하는 자에게 위기상황은 “다 짜고하는 쇼”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남성식 일병을 보면서, 처음 유학왔을 때 한국상점에서 마주친 12살 정도의 한 흑인소년이 생각나더군요. 후드가 달린 스웨트셔츠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두리번거리던 그 아이를 구석에서 물건을 고르다 본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툭 불거져나와 보이는 오른쪽 주머니가 꼭 총 같아 보였고, 그것은 헐리우드 영화를 통해서 매우 낯이 익은 모양이었습니다. 너무 놀라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저를 의아해하던 아이는 순간 상황을 알아차린 듯 가뜩이나 큰 눈이 더 둥그레지며 주먹 쥔 오른손을 빼더군요. 그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 마치 “Yeah, I get that a lot”하는 것 같았습니다. 미안했습니다. 그 아이가 흑인이 아니었더래도 제가 그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거창하게 인종주의를 비판하던 저도 지독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입니다. 모순이지요.







마찬가지로 남성식은 북에 대해 모순된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음악교과서에 실린 “우리의 소원”을 부르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을 기억하며, 통일을 부러워 하지만, 그 열망은 지극히 감상주의적입니다. 더 이상 넘어가지 말자는 수혁을 마지막이라며 북으로 데려간 사람은 바로 남성식입니다. 동생처럼 아끼며 구두를 닦아주고 생일까지 챙겨주던 정우진인데, 그는 마지막 순간 모든 신뢰를 잃어버립니다. 우리의 소원을 부르는 한편으로 주입된 반공교육 덕분으로, 북에 대한 공포와 의구심은 그의 동경보다 더 뿌리가 깊고 강했기 때문입니다. 왜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지, 통일은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나약한 감상주의자가 극도의 긴장상황을 맞았을 때 바로 남성식과 같은 반응을 보일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극도의 공포상황에서 남성식은 무전기를 뽑으려는 최상위를 오해하여 무의식적으로 총을 뽑아 발사합니다.


편견의 선을 넘어 자유를 만끽하는 것처럼 보이던 이수혁도 결국엔 “형이구 뭐구 다 필요 없어. 결국 우린 적이야!”라며 다시 편견의 선 안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리고 그는 사랑하는 형의 머리에 대고 총을 쏩니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표장군은 전쟁은 그렇게 쉽게 터지는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JSA와 같은 곳에 여러명의 남성식과 이수혁이 있을 때, “어!”하는 순간 일이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남성식과 이수혁은 바로 대부분의 전후세대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호주의”. “먼저 총 내리면 얘기해 보자”던 최만수 상위.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입니다. “햇볕정책”을 “퍼주기”로 매도하며 레드컴플렉스에 시달리는 전쟁세대와 전후세대 개개인의 북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더욱 부추기는 최만수들이 남쪽에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최만수 상위는 북에도 수없이 많겠지요. 최만수로 상징되는 이들은 크게 보면 두 종류가 있을 것입니다. 첫번째가 제 하우스메이트 안드레아 같은 사람들. 안드레아는 소련 공산당을 이를 갈며 증오하는 루마니아인입니다. 그 친구는 이 영화를 보고난 후 “이런 영화 만든 너희 나라 사람들 정말 나이브(naive)하다”며 흥분하더군요. 공산당이 어떤지 몰라서 그렇다고. 겪어봐야 안다고. 그런 놈들 잘 해줘 봤자 이용만 실컷 당하다 말거라고. 이북에서 종교박해를 받고 남하한 우리 조·부모님이 자주 하시던 말씀입니다. 두번째는 상호주의를 역설하며 분단상태를 고착화함으로써 그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세력들. 이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조성된 여론은 통일을 위한 키워드인 “상호신뢰회복”이나 “상호이해”보다는 “상호주의”를 복음으로 전파하고, 그 영향으로 편견에 싸인 남성식과 이수혁들은 주고 나서도 “다 필요없어!”라고 쉽게 포기하고마는 조급증에 걸리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악순환(Vicious circle)입니다. 오경필이 최만수를 처형한 것처럼 이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질 수 있을까요?


“상호이해,” “상호신뢰,” “반상호주의”. 영화에서 오경필이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피가 튀는 장면들이 끔찍하고 무서워서 거의 눈을 감고 있다보니 수혁이 경필에게 두번이나 방아쇠를 당겼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비디오로 다시 보면서 그 장면을 처음 본 순간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수혁이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고장난 총이 철컥 철컥 빈 소리를 낼 때마다 움찔거리던 오경필의 두눈과 경련이 일던 그의 뺨. 충격이었을 겁니다. 배신감이 들고 괘씸한 마음이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수혁을 보호합니다. 죽여도 시원치 않았을 수혁을 보호하기 위해 대질심문에서도 그를 공격하며 “인민공화국 만세!” “김정일 만세!”를 목이 쉬도록 외친 것입니다 .









소피 “남성식하고 이수혁을 용서할 수 있겠어요?”
경필 “우리가 남초소에서 기런 일 당했대면, 내가 먼저 쐈을 겁니다.”

“그래, 나라도 그랬을 거야.” 성식과 수혁에 대한 증오 대신 경필은 이해를 택합니다. “혹시 지금 이 총을 건네주면 나를 쏘지 않을까?” 이렇게 의심하는 대신 성식과 수혁을 믿고 총을 잘 닦아 그들에게 건넵니다. 이미 신뢰는 깨지고도 남았을 그런 판에 말입니다. “네가 준 만큼 갚는다”는 상호주의는 “네가 지금 내게 준 것은 어쩔 수 없어서” 라고 이해하고 신뢰하는 경필에게 힘을 쓰지 못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신뢰함으로, 양보하고 참아주자고 이 영화는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역할이 북한군에게 간 것 때문에 불편한 분들이 혹시 계신가요? 하지만 우리 그동안 좋은 역할 많이 먹지 않았습니까? 남성식, 이수혁, 최만수 (또는 표장군), 오경필, 그리고 정진우는 남과 북 양쪽에 공존하는 인간 군상의 전형일 뿐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극중 수사관으로 여성이 등장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입니다. 남성적 특성이 강한 ‘전쟁, 증오, 불신’의 코드가 지배적이던 지난 1953년 휴전 이후의 한반도에 이제는 여성적 코드인 ‘이해, 신뢰, 수용’이 들어설 차례라는 암시인 것입니다.


 





페르손 “중감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소령님은 53년이래 판문점에 부임한 최초의 여군 이십니다.” (Welcome to the 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ssion. You’re the first female posted here since ’53.)


그런데 더욱 의미있는 것은 그녀가 스위스 출신이라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그녀의 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인민군 장교였습니다.


 





보타 “한국전 당시 거제도에는 인민군 포로 수용소가 있었지. 거기엔 공산주의자와 강제 로 군대에 끌려온 반공주의자, 두 종류의 포로가 있었는데, 이렇게 서로 갈려서 수 도 없는 살육이 계속됐다네. ‘내전 속의 내전’이었지. 종전이 되자 포로들에게 선택 의 자유가 주어졌지. 자본주의 남으로의 귀순이냐, 사회주의 북으로의 귀환이냐…. 그러나 그 17만 명중 76명은 둘 다를 거부했는데, 이른바 ‘제3국행 포로’들이라네. 결국 세계 각지로 흩어진 그들 중 일부는 아직까지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네. 바 로 소령의 아버지 장연우 같은 사람이지. 자네 아버지는 그래도 운이 좋아 아르헨티 나로가서 스위스 여성과 결혼할 수 있었던거고…” (During the Korean War, there was a concentration camp for North Korean POWs in Goje Island. The North Korean POW’s were divided into two groups, communists, and anti-communists who were brought to war against their wishes. So many killings were committed on each side. It was a kind of ‘a civil war within a civil war’. After the war, the prisoners were ready for freedom to choose which side to go to: South Korea’s capitalist society, or back to communism in North Korea. But 76 prisoners out of 170,000 refused both. They were scattered all over the world, and some of their whereabouts are still unknown, like your father, Yon-Woo Jean. He was fortunate enough to go to Argentina to marry a Swiss lady.)


휴전이 성립되자 수용소의 포로들에게는 북한이냐 남한이야 아니면 제3국이냐라는 세갈래의 길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소피의 아버지를 포함한 일부는 중립국으로의 길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북으로 간 사람들의 자식 오경필과, 그렇게 남으로 간 사람들의 자식 이수혁과, 그렇게 중립국으로 간 사람들의 자식 소피가 다시 한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고 분단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한반도에…. 그리고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제 다시 시작이다” 라고 말하며 다시 선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판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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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경유해 여기로부터 제네바까지 2015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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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를 경유해 여기로부터 제네바까지 1976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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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을 경유해 여기로부터 제네바까지 1284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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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를 경유해 여기로부터 제네바까지 11100km


위는 소피가 군사분계선에서 빗속을 서성댈 때 보이던 표지판들입니다. 모두 소피의 고향인 스위스 제네바를 향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남과 북 모두를 부정하고 “중도의 길”을 선택할 것을 남북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의 이유도 방법도 모르는 남성식 같은 감상주의자들에게 그 답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념을 구실로 한 강대국들의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조국을 아파하며, 명실상부한 자주국가로 우뚝 설 조국을 꿈꾸며…. 통일 후 미국과 같은 체제를 택하건, 스웨덴/스위스 같은 체제를 택하건 (이 영화는 이것을 선호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주권국가로 당당히 서는 것”. 바로 이를 위해 우리가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어 했던 오경필의 ‘초코파이’ 대사가 있습니다.


 




















경필 (초코파이를 들고서 기쁘게) “거저 공화국에선 왜 이런 거 못 만드나 몰라? 웅?”
(경필, 봉지를 까서 초코파이를 한입에 넣는다.)
수혁 (경필에게) “형! 저, 아니 뭐 딴거는 아니고…. 안 내려올래?”
(경필, 씹던 동작을 멈추고, 우진과 성식 놀라 수혁을 바라본다.)
수혁 “초코파이, 배 찢어지게 먹을 수 있잖아. 어휴, 아니면 말구.”
(경필, 정색을 하고 씹던 초코파이를 그대로 손바닥에 뱉어낸다.)
경필 “거 이수혁이, 내 딱 한 번만 얘기할테니까 잘 들어드라우. 내 꿈은 말이야, 언젠가 우리 공화국이 남조선보다 훨씬 더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기야. 알갔어? 그때까진 어 쩔 수 없이 이 초코파이를 그리워할 수 밖에 없어.”


아무리 못난 부모라도 저버릴 수 없는 자식의 심정. 내 한 몸 잘 먹고 잘 입겠다고 조국을 버리기 보다는 그 조국이 언젠가는 잘 살게 될 거라는 꿈을 품고 살아가겠다는 경필의 말은 너무 당연한 말입니다. 그에게 있어 북한은 자기가 태어나 자란 조국,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사랑하는 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조국을 생각 만해도 가슴이 벅차듯이. 우리가 초콜렛 줄테니 조국을 저버리라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나기 때문에, 초코파이 줄테니 조국을 저버리란 말을 그들에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북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부정하려하지 말고 서로의 체제와 사상을 인정하고, 화해와 교류를 하자는 6.15 남북 공동선언문의 취지와 상통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흥행에 있어 때마침 나온 6.15 남북 공동선언문의 탄력을 상당히 받은 듯합니다. 한마디로 타이밍이 절묘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보다 가난하게 사는 연변동포들이나 중국인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며 심지어 그들을 착취하는 어글리코리안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마다, 과연 우리는 북을 인정하고 화해, 교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의심이 들곤 합니다. 우리가 실제로 바라는 통일이란 북을 흡수통일해서 우리 맘대로 쥐고 흔드는 그런 “헐리우드 블락버스터류”의 통일은 아닌가요. 얼마전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6.15 선언의 2항을 문제 삼으며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국가로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북한까지 그 체제로 가야 한다고, 초코파이 줄테니 항복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만약 북한이 자기 식대로 가자고 우기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든 남과 북을 갈라놓으려는 사고. 거창하게 통일을 운운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이런 “냉전적 사고”와 “편견의 선”을 넘어서야만 합니다.


6.15 남북 공동선언문은 “우리 다시 한번 시작해 보자”는 것에 불과합니다. 아직 실제적인 통일 논의가 시작된 것이 하나도 없는 백지상태에 있을 뿐입니다. “다시 한번 시작해 보자”던 경필은 ‘아직은 좀 더 기다려야할 것 같다’며 수혁에게 지포라이터를 돌려 줍니다. 과연 이런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입니까? 다시 한번 시작해 보자고 합의하는데만 50년이 걸렸는데, 다시 이를 뒤로 미루어야만 합니까? 통일의 첫삽을 아직 떠보지도 못했는데, 남침에 대한 사과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통일 논의는 가능하다며 언제까지 버틸 작정인지요.


 





소피 “하지만 일 초 먼저 쏘구, 늦게 쏘구, 그런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중요하지 않다면서 굳이 소피는 수혁에게 비밀을 알려주고, 사랑하던 동생이 죽은 책임을 어디에도 물을 수 없었던 수혁은 결국 방아쇠를 당긴 스스로에게 그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포스터는 “여덟발의 총성! 진실은 그곳에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비극의 날 울려퍼진 열한발의 총성 중에서 여덟발의 총성. 그림을 좋아하고 강아지를 좋아하던, 어머니와 여동생 하나뿐인 집안의 가장인 어린 소년병 정진우를 죽게 한 이수혁의 첫발. 그리고 그 주검위에 난무하던 남성식의 나머지 일곱발. 그렇게 정들어했던 동생을 두번 죽게한 그 여덟발의 총성에 바로 우리 조국의 비극이라는 진실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남성식과 이수혁으로 하여금 정우진에 대고 총을 쏘게 만든 ‘편견’이라는 진실을, 그 편견이 낳는 비극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하는 진실을, 이 영화는 보여주려한 것입니다. 이런 한반도의 비극이 언제까지 대물림되어야 할까요.


오경필. 정진우. 남성식. 이수혁. 남북의 인간군상들을 대표하는 이 네 사람을 함께 담고 있는 영화 맨 마지막의 흑백사진을 들여다보며 바로 분단된 우리 조국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하지만 남북을 갈라놓는 군사분계선, 그 비극의 자리에 서서 우리의 소원, 우리의 희망가를 다시 한번 불러보고 싶은 것은 오경필에게도 정진우에게도 남성식에게도 이수혁에게도 최만수에게도…. 모두에게 한결같은 바램일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待接)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律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미국의 911 참사 이후 아랍국가들에 대한 한국교계의 반응들에 의아해하며, 월드컵 경기장 응원석에 따로 앉아 열심히 한국을 응원하는 “하얀 천사들”을 바라보며, 우리 기독교인들은 과연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지 궁금해졌습니다. 특히 “복음”과 “학문” 이외에 “조국과 민족”을 비전으로 하는 코스타를 한달여 앞두고 있는 지금,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우리 기독학생들은 우리 조국과 민족에 대해 얼마나 무거운 부담을 마음에 두고 있는 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 나온 모 대통령 후보의 관훈토론회를 보면서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글의 내용은 100% 제 개인적 시각임을 알려 드립니다.


사족: 이 영화는 실력있는 배우들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합니다. 주연인 오경필 중사역의 송강호, 정진우 전사역의 신하균, 남성식 일병역의 김태우 뿐만 아니라, 지난 20여년간 한국 연극무대를 지켜온 표장군역의 기주봉이나 (이름은 모르겠지만) 황중사역을 맡은 조연배우들의 연기는 연기가 아니라고 착각할 만큼 정말 감칠 맛이 났습니다. <JSA>를 통해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수혁 병장역의 이병헌의 연기도 뛰어 났으나, 소피장(Sophie E. Jean)역의 이영애와 더불어 (우리나라 젊은 배우들의 공통된 문제점인) 발성미숙으로 인한 대사전달의 문제가 남아 있었던 것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