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숨은 그림 찾기


<아메리칸 사이코>
(American Psycho)
우리들 안의 Matrix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감독 Mary Harron

개봉연도 2000년
MPAA 등급 R 등급
 

주요 등장 인물

Patrick Bateman
형사 Donald Kimball
Paul Allen
약혼녀 Evelyn
정부 Courtney
비서 Jean


Christian Bale
Willem Dafoe
Jared Leto
Reese Witherspoon
Samantha Mathis
Chloe Sevigny


얼마 전 우연하게 <아메리칸 사이코>(American Psycho)를 보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으로 유력했던 Leonardo DiCaprio의 비싼 몸값 덕분에 대타로 뽑힌 Christian Bale. 평소 ‘연기 잘 하고 잘 생긴’ Bale의 팬임을 자처하던 터라, 그리고 Willem Dafoe나 Samantha Mathis, Reese Witherspoon이나 Chloe Sevigny 같은 연기파 배우들의 호화 캐스팅에 일단 관심이 생긴 터라 여타 매체의 평론에 귀가 솔깃하면서도, 감히 영화관 가까이에 갈 수 없었던 단 한 가지 이유는 바로 이 영화의 장르가 ‘Gore/Slasher’라는 것이었습니다. Bret Easton Ellis의 원작 소설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는 하지만, 이 영화는 문자 그대로 ‘피가 낭자하게 사람을 난도질해 죽이는’ 잔혹하고 불쾌한 묘사로 가득합니다. 영화 시사회에서의 인터뷰를 봐도 “우째, Christian Bale이…,” “저 사람이 내가 아는 Christian Bale 맞아요?”, 이런 내용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더욱 망설여졌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1년 여가 흐른 뒤, 어쩌다 채널을 고정하게 된 HBO에서 이 영화가 나오자 더는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적으로, 매력 만점, 연기력 만점의 Christian Bale에 대한 궁금함과 호기심 때문이었지요. (영화의 배경이 미국이어서, 그의 매력적인 영국식 영어를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시선을 뗄 수 없었던 두 번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마치 영화의 주제를 반영하듯) 아름답고 고급스런 영상이었습니다. 백색의 화면 위로 뚝뚝 떨어지는 붉디 붉은 핏방울과, 섬뜩하게 번쩍거리는 은빛 칼. 역시 영화가 영화라서 그런지 시작부터 다르군. 그래도 빛깔 한 번 곱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칼은 고깃덩이를 무지막지하게 내려치고, 이어지는 화면은 손님에게 내갈 고급 요리가 담겨 있는 접시…. 핏방울인 줄 알았던 것은 케첩이었고 번뜩이던 칼은 요리용이었습니다. 이 첫 장면이 시사하듯, 영화의 시종일관 화면은 매우 아름답고 선명하며 스타일은 코믹하기까지 합니다. Gore/Slasher 영화에 웬 영상미에 코미디 타령이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화려한 겉포장에 연연하는 등장 인물(들)의 끝갈 데 없는 허영을 조롱하는 영화의 주제를 생각해 본다면 Harron 감독의 이러한 연출 기법은 오히려 박수감이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시간 30 여분 동안 진행되는 영화 앞에 끝까지 앉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원거리로 잡은 행려자(homelss) 살해 장면 등 몇몇을 제외하면 직접적인 살인은 대부분 화면 밖에서 이루어지지만, 고난도의 연출 기법으로 인해 장면 하나 하나가 그대로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질 뿐만 아니라 비릿한 피냄새가 코 끝에 질퍽하게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심장이 조여 오는 듯한 느낌을 참을 수 없어 왔다 갔다 채널을 돌리던 끝에, 다음 번 방송분을 찾아 일단 녹화를 해 놓고 끔찍한 장면은 Fast-forward로 지나가기로 했습니다. (“봐야 한다면 비디오로” – 이것은 <사이코>나 <양들의 침묵>같이 세간에 자자한 입방아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공포 영화들을 보는 제 나름대로의 방법인데, 이렇게 끔찍한 장면들을 Fast-forward를 해서 보면 전혀 무섭지 않고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만 합니다. 그게 무슨 맛이냐고 하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영화를 끝내고 나니, 애초에 NC-17 등급 판정을 받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하기 위해) R 등급을 받으려고 여러 문제 장면을 삭제했다고는 하지만, 영화 전편에 담겨 있는 폭력적이고 잔학한, 상상을 초월하는 살인 방법과 엽기적인 살인 도구들, 불쾌할 정도로 여성을 비하하는 성적 묘사와 장면 등등…. 영화를 보고 도덕적으로 저속하다거나 역하다는 느낌을 받은 관객이 상당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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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난 개인적인 느낌은 먼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Christian Bale의 연기가 빛난다는 점입니다. 자신만만한 듯하나 위태롭고, 오만한 듯하나 열등감 덩어리고, 꽉 차 있는 듯하나 공허하고, 다 가진 듯하나 아무 것도 쥔 것이 없고, 함께 있는 듯하나 항상 혼자인 인물. 모순 투성이의 그 Patrick Bateman을 다른 누가 그렇게 연기할 수 있었을까요? (What’s Eating Gilbert Grape(1993년), This Boy’s Life(1993년), Total Eclipse(1995년) 등의 영화에서 볼 수 있듯) DiCaprio도 연기파 배우임을 인정하지만, 이 영화의 Patrick은 오로지 Bale을 위해 만들어진 역할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를 위해 상당한 감량을 한 듯 보이는 그의 마른 얼굴과 그에 걸맞는 분장은 메마르고 잔인하며 야비한 주인공의 성격 묘사에 맛을 더해 줍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세간에서 이야기 하듯, ‘헛된 세상 것을 추구하는 까닭에, 채워도 채워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탐욕’, 특별히 ‘남성들의 (드러나는) 허세·허욕과 (감춰진) 폭력성’을, 1980년대의 미국 Wall Street를 무대로 그린 영화가 바로 <아메리칸 사이코>인 것입니다. 특히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심도 깊은 기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마지막 반전이야말로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백미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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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Gore/Slasher 영화의 하나로 그저 단순하게 넘겨 버리기에는 아까운 심오한 주제를 담고 있다고는 해도, “그렇다면 이 영화를 기꺼이 추천하겠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글쎄요”라고 밖에는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끔찍한 장면에 선천적으로 앨러지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나 심약(心弱)하신 분들, 또는 영화의 숨은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청소년들은 아예 처음부터 보시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평소 전쟁 영화도 제대로 눈 뜨고 보지 못하는 (아직껏 <라이언 이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도 보지 못했습니다) 입장에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기왕이면 생각할 만한 주제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영화를, 그게 어려우면 그 표현 방법이나 수단이 지나치게 비정상적이지 않은 영화를 골라보는게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좋은 (숨은) 영화를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비슷한 교훈을 얻자고 굳이 비위가 상할 정도로 엽기적인 영화나 선정적인 영화를 찾아다닐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실제로 캐나다의 한 연쇄 강간살인범이 Ellis의 원작 소설을 읽고 그런 범죄를 저지를 생각을 품게 됐노라고 자백했듯이, 담고 있는 내용보다는 그 그릇을 먼저 보고 그것을 모방하는데 발 빠른 것이 죄인된 인간의 본성이 아니던가요 –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파트에 틀어박혀 보는 비디오란 것이 모두 Porn이나 Gore/Slasher 영화라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이런 영화를 골라 글을 쓰는가?”라고 물으신다면, “특별히 Gore/Slasher 영화를 즐기시는 분들이 혹시라도 계시다면, 또 저같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이런 영화를 보게 된 분들이 계시다면, 그냥 심심풀이로 넘겨버리기보다는 영화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라고 대답을 할 수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 Patrick Bateman은 겉으로 보기에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조건을 넘치도록 갖춘 것만 같습니다. Harvard 졸업에 Wall Street에서 내노라 하는 회사에서 부사장으로 합병·매수(mergers & acquisitions)를 맡아하고 있는 그는, 회사의 절친한 다른 부사장 친구들 사이에서 “이성의 목소리”(He’s the voice of reason), “(이웃처럼) 친근한 놈”(the boy nextdoor)라고 불리울 정도로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아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일단 자신의 겉모습 꾸미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합니다. 자신을 소개하는 그의 아침 독백을 듣다 보면, 여자인 저도 알지 못하는 심오한 미용 비법에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니까요. 날마다 이대로 하려면 참 부지런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예뻐지고 싶은 분들은 다음을 읽어 보시고 한 번 따라 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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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name is Patrick Bateman. I’m 27 years old. I believe in taking care of myself, in a balanced diet, in a rigorous exercise routine. In the morning, if my face is a little puffy, I’ll put on an ice pack while doing my stomach crunches. I can do a thousand now…. After I remove the ice pack, I use a deep pore cleanser lotion. In the shower, I use a water activated gel cleanser. Then a honey almond body scrub. And on the face, an exfoliating gel scrub. Then I apply an herb mint facial masque, which I leave on for 10 minutes while I prepare the rest of my routine. I always use an aftershave lotion with little or no alcohol, because alcohol dries your face out and makes you look older. Then moisturizer, then an anti-aging eye balm, followed by a final moisturizing protective l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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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뿐만 아니라 그는 피부 마사지와 손톱 가꾸기, 살갗 곱게 태우기에도 열심을 내며 미용 살론에 드나듭니다. 그리고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볼까,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대우할까에 불안해 하며 전전긍긍하고는 합니다. 약혼자 Evelyn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서며 Patrick은 걱정을 합니다 – “I’m on the verge of tears by the time we arrive at Espace, since I’m positive we won’t have a decent table. But we do, and relief washes over me in an awesome wave.” 그리고는 “메뉴가 메탈에 점자(點字)로 새겨져 있네”(The menu’s in braille)하고 Evelyn의 사촌이 건네 주는 메뉴판에 자신을 비춰 보는 것을 물론(!) 잊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겉모습 치장에 연연하기는 그의 다른 친구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Valentino Couture 양복과, 부티나는 Oliver Peoples 안경, 최신 스타일의 헤어컷, 고급스런 명함 등으로 경쟁하듯 자신을 두르고, 서너 명이 먹은 식사가 한 번에 570불이나 (그것도 80년대에) 하는 최고급 식당을 “거, 나쁘지 않구만”(Speaking of reasonable, only 570 dollars. That’s not bad)하고 다니는 허세를 부립니다 – 당시 최고의 식당으로 여겨지는 Dorsia란 곳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마치 자신의 능력을 반영하는 것처럼, 모두 다 거기에 자리를 예약하는데 목숨을 걸고 있는 듯 보입니다. 80년대 댄스 클럽 복장과 전혀 안 어울리게 튀는 고급 양복을 입은 채로, 클럽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무시하고 돈으로 새치기를 하며 특권층인양 으시댑니다.

이런 무리들과 어울려 한 몫을 하고자 Patrick이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는, Robert Palmer의 신곡 “Simply Irresistible”이 들리는 헤드폰 속 자기 만의 세계에 푹 빠져 있는 그에게 앵앵거리는 약혼자를 귀찮아하며 그가 내뱉는 한 마디, “Because I want to fit in!”에서 알 수 있습니다. Christian Bale은 인터뷰에서, (앞서 말한) Patrick의 아침마다의 정성어린 자기 가꾸기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배우가 연기를 위해 촬영 직전 분장을 하듯, 세상과 어울리기 위한 연기를 하기 위해 Patrick도 분장을 하는 것이라고. 피부 Masque를 벗기면서 Patrick은 말합니다 – “There is an idea of ‘a Patrick Bateman’. Some kind of abstraction, but there is no real me. Only an entity – something illusory. And though I can hide my cold gaze, and you can shake my hand and feel flesh gripping yours, and maybe you can even sense our lifestyles are probably comparable, I simply am not there.”

그러나 그런 가상한 노력은 왠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영화의 맨 처음 장면에서 우리는 이들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쟤 Paul Allen 아냐? 아니, 그건 Reed Robinson이구, Paul Allen은 저기 있잖아…. 같은 회사에서 몇 년을 부사장으로 함께 있으면서 그들은 아직까지 얼굴을 헷갈려합니다. 그런데 같은 부사장이긴 하지만 남들 눈에 유난히 더 별 볼 일 없는 인물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주인공 Patrick입니다. 특히 회사에서 가장 유능한 부사장으로 묘사되고 있는 Paul Allen은 언제나 Patrick을 다른 부사장인 Marcus Halberstram이라고 생각하는데, Patrick은 그것을 당연하다(logical)고 합리화합니다 – “Allen has mistaken me for this d***head, Marcus Halberstram. It seems logical because Marcus also works at Pierce & Pierce, and in fact does the same exact thing I do. He also has a penchant for Valentino suits and Oliver Peoples glasses. Marcus and I even go to the same barber, although I have a slightly better haircut.” Evelyn의 말로 미루어 보아(Your father practically owns the company. You can do anything you like, Silly.), Patrick은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자란 인물처럼 보이며 어쩌면 Harvard도 집안 배경으로 들어갔는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낙하산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우유부단하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교적이지 못한 그의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능력있는 (Yale 출신의) Paul Allen에게 항상 무시를 당하는 Patrick은 마음 속에 울분을 품고 있습니다. Paul에 대한 불같은 경쟁심은 (그 유명한) 명함 장면에서 잘 나타납니다. 자기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예약도 못하고 조롱만 당한 Dorsia에 (그것도) 금요일 밤 자리를 얻었다는 Paul의 자랑에 열이 받을 대로 받아있는 터에, 어제 새로 뽑아 자부심이 대단하던 자기 명함을 무색하게 하는 Paul의 점잖고 품위있는 명함을 보고 Patrick은 이성을 잃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거리의 행려자를 죽입니다. 그 장면에 놀라는 옆의 강아지까지도.

그리고 얼마 안 가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여전히 자기를 Marcus로 생각하는 Paul과 저녁 약속을 한 Patrick은, 역시 Dorsia에 갔었어야 했다는 둥, 자기라면 거기 예약을 할 수 있었다는 둥 불평을 하는 Paul에게 슬슬 비위가 상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동료의 불편한 심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오만을 드러내던 Paul은 결국, 자기가 Marcus라고 알고 있는 상대에게 결정적인 실수를 합니다.

 














Paul 그런데 (네 애인) Cecilia는 어때? 지금 어딨는데? (And uh- Cecilia. How is she? where is she tonight?)
Patrick Cecilia! 어…, 음…., 내 생각엔, 음……, Evelyn Williams하고 저녁 먹고 있을걸. (Cecilia! Uh…, well…, I think she’s having dinner with, ummmm, Evelyn Williams.)
Paul 엉덩이 이쁜 Evelyn 말야? 그 멍청이 Patrick Bateman의 애인이지. 그런 얼간이 놈! (Evelyn? Great ass. Goes out with that loser Patrick Bateman. What a dork!)
Patrick (열 받아서) 마티니 한 잔 더 할래, Paul? (Another Martini, 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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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압이 오를 대로 오른 Patrick은 만취한 Paul을 자기 아파트로 끌어들여 결국 살해하고 맙니다. 값비싼 양복을 보호하기 위해 우비를 두르고 Huey Lewis and the News의 노래에 맞춰 Moonwalking을 하는 등 코믹한 모습으로 묘사되고는 있지만, 그간 마음에 품어왔던 온갖 분노를 한꺼번에 용솟음치듯 내뿜으며 잔인한 “도끼 만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는 소리칩니다 – “Try getting a reservation at Dorsia now, you f****** stupid bastard!” 앉아서 cigar를 피우며 처참해진 Paul을 바라보던 그는 곧 시신을 Jean-Paul Gaultier 슬리핑 백에 담아 끌고 나갑니다. Paul의 사망 사실을 당분간 위장하기 위해 그의 아파트에 들른 Patrick은 여행 가방을 챙겨 그가 영국으로 여행을 떠난 것처럼 꾸밉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그는 Paul과 자기 아파트의 전망을 비교하며 시기심을 거두지 못합니다 – “When I get to Paul Allen’s place, I use the keys I took from his pocket before disposing of the body. There is a moment of sheer panic when I realize that Paul’s apartment overlooks the park, and is obviously more expensive than 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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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에서 암시되는 바로, Patrick이 이런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한 것은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주 훨씬 이전부터임을 알 수 있지만, 어쨌든 화면상으로는 이렇게 Paul을 살해한 이후로 물을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살인을 일삼기 시작합니다. 살인 도구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기상천외하고 다양하며 그 방법 또한 매우 잔인한데,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그 대상이 주로 여자라는 점입니다. Paul과, 우스꽝스런 이유로 살인에 실패한 Luis를 제외하고는, 행려자나 여자들과 같은 힘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의 분노와 좌절감을 터뜨리며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의 도입 부분, 여러 사람들과 어울린 식당 테이블에서 행려자나 여성, 황금만능주의 등에 대한 그의 현학적인 일장연설을 기억한다면, Patrick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바로 입으로는 인권이니 여권(女權)이니, 평등이니 정의니 하면서, 그리고 자기보다 힘센 사람들에게는 힘도 못 쓰면서, 그 울분이나 스트레스를 약자를 상대로 풀고, 그들을 상대로 잘난 체를 하는 이중인격자를(다른 평론에서는 ‘남자들’이랍니다. 형제님들, 죄송합니다.) 대표하는 것입니다. Patrick은 순진한 비서 Jean의 외모를 놓고 함부로 말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여자를 비하하는 농담을 주고 받기도 하며, 클럽에서 만난 여자 모델을 대놓고 무시하고 약혼녀 Evelyn에게 절교를 선언할 때도 냉혈한이긴 매 한가지입니다. 거리의 여자들을 아파트에 데려다 놓고는, 스스로를 능력있는 Paul로 위장하여 으시대며 평소에 받지 못하던 인정을 얻고자 안간힘을 쓰기도 합니다.




























Patrick 내가 뭐 하는지 알고 싶지 않아? (Don’t you wanna know what I do?)
여자들 아뇨. 아니 별로요. (No. No, not really.)
Patrick (무시하고) 거 뭐냐, 난 Wall Street의 Pierce & Pierce란 회사에서 일하는데, 들어본 적 있나? (Well, I work on Wall Street for Pierce & Pierce. Have you heard of it?)
여자들 (전혀 관심없다는 반응)
Patrick (실망한다)
여자들 (집안을 두리번거린다)
Christie 와, 집 좋네요, Paul. 얼마나 주고 산 거에요? (You have a really nice place here, Paul. How much did you pay for it?)
Patrick 사실, 니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싸지는 않았다고 말해줄 순 있지. (Well, actually, that’s none of your business, Christie. But I can assure you, it certainly wasn’t cheap.)

어쨌든 계속되는 엽기적 살인행각으로 완전히 이성을 잃게 된 Patrick은 길에서 고양이를 죽이고, 그걸 보고 뭐라고 하는 할머니를 죽이고, 그걸 보고 추격하는 경찰들을 죽이고, 아파트 수위와 청소부까지 죽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장면 장면의 묘사가 어쩐지 현실감이 떨어지고 만화 같기만 한데, 그것이 다 이유가 있는 연출임을 나중에 알 수 있게 됩니다.) 회사 자기 사무실에 쫓기듯 들어온 그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관객도 몰랐던) 살인행각 모두를 고백하고 도움을 구하는 메시지를 자동응답기에 남깁니다.

다음날 깨끗하게 ‘목욕재계’를 하고 찾아간 Paul Allen의 아파트. 사용자 삽입 이미지그런데 그곳은 알고 보니 남의 집이었습니다. 혼란함에 휩싸인 Patrick은 평소 그를 연모하던 자기의 비서 Jean에게 전화를 겁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다시 변호사를 찾아 Harry’s Bar로 나서지만 슬프게도 자기 변호사조차 그를 Davis라는 다른 인물로 착각하는게 아닙니까. 어제 응답기의 메시지를 기막힌 농담으로 받아들인 변호사는 그에게 말합니다 – “Davis, 내가 누굴 험담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말야, 뭐, 농담이 끝내 주긴 했지만, 그래도 … 자넨 한 가지 결정적인 실수를 했어. 그런 얼간이 Bateman을 두고 그런 농담을 하다니. 얼마나 따분하고 줏대없고 시시한 인간인데….” (Davis, I’m not one to bad-mouth anyone. Your joke was amusing. But … you had one fatal flaw. Bateman is such a dork. Such a boring, spineless lightweight….) 그게 아니라고, 자기가 바로 Bateman이고 Allen을 죽인게 사실이라고 고집을 부리는 Patrick에게 변호사는 급기야 화를 내며 말합니다 – “하지만 그건 전혀 불가능한 일이고, 이런 농담 더 이상 유쾌하지도 않군…. 그건 불과 10일전 내가 Paul Allen과 런던에서 두 번이나 저녁을 먹었기 때문이야.” (But that’s simply not possible, and I don’t find this funny anymore…. Because I had dinner with Paul Allen twice in London just 10 days ago.)

이제까지의 엽기적인 모든 살인 행각이 사실은 그의 머릿 속, 그만의 Matrix에서 일어난 환상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Patrick이 Paul Allen의 피가 배어 나오는 슬리핑 백을 질질 끌고 나가도 아파트 수위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이며, 다음에 이어지는 아파트 밖의 장면에서 이제까지 보이던 바닥의 핏자국이 깜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한 바대로) 충격적인 길거리의 연쇄 살인(특히 경찰차가 권총 한발에 폭발하는 장면)이 너무나 만화처럼 그려진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재미있는 열쇠는 영화의 도입 부분에 나타납니다. 댄스 클럽의 바에서 크레딧카드를 내미는 Patrick에게 여자 바텐더가 여기선 현찰만 받는다고 면박을 주자, 그녀의 등에다 대고 그는 소리를 지릅니다 – “You’re f****** ugly b*t*h! I wanna stab you to death and play around with your blood!” 하지만 바텐더는 아무 소리도 못 들은 듯 그에게 술잔을 건네고, 그는 태연히 미소를 짓습니다. 그의 무시무시한 독설을 그녀가 듣지 못한 것은 클럽 안이 너무 시끄러워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망신을 당한 그 순간 바텐더에 대해 품은 Patrick의 악한 생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이런 결말을 두고 ‘비겁하다’고 혹평을 하기도 했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다릅니다. 우리가 마태복음 5장 21-22절 말씀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머릿 속에 품는 형제에 대한 분노와 시기와 질투와 살의 등을 이 영화의 실제적인 살인 장면과 다른 것이라고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부터는 머리로라도 죄를 짓지 말라고 명하시는데, 어떤 사람더러 바보라고 생각만 해도 그것은 살인이라 말씀하시는데, 이 영화의 끔찍한 장면만을 살인이라고 말할 사람이 감히 있겠는지요? 우리들 머릿 속, 우리들 안의 Matrix 속에서 우리는 오늘 또 얼마나 많은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지요? –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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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Patrick 안의 또 다른 Matrix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Paul Allen의 행방을 추적하던 형사 Kimball 또한 실제 인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일 실제 인물이 아니라면, Kimball이란 인물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또한 관객에게 안쓰러운 느낌을 줄 정도로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영혼, 설레는 마음으로 Patrick을 연모하고, 그의 살인 일기를 읽으며 눈물을 떨구던 비서 Jean. 흉악한 Patrick 조차 죽일 수 없었던 인물 Jean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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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Kimball은 이미 죽은 듯한 그의 ‘양심’을, Jean은 참된 ‘사랑’에 대한 그의 갈구를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영화에서 행려자를 죽이고 난 후, Patrick은 다음과 같이 독백을 합니다 – “살과 피, 피부와 머리카락, 인간임을 나타내 주는 모든 특질들을 나는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분명하고 확실한 단 하나의 (인간의) 감정도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탐욕과 혐오 밖에는.” (I have all the characteristics of a human being – flesh, blood, skin, hair, but not a single, clear, identifiable emotion, except for greed and disgust.) 비록 이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아직도 양심이 살아 꿈틀대고 있었기에, Kimball의 집요한 추적에 식은 땀을 흘린 것이었을 겁니다. 혐오감 밖에 남은 건 없다고 아무리 우겨대도 그 역시 참된 사랑을 갈망하고 있었기에 그 사랑을 차마 죽여버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Patrick은 탐욕과 혐오가 넘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약한 육신의 슬픈 자화상,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쩔수 없는 우리 인간의 뿌리깊은 죄성이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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