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법


교과용 도서의 검정 제도


선교 목적으로 기독교 단체에서 설립한 초·중·고등학교에서 창조 과학에 근거하여 집필된 생물책을 교과서로 선정하여 가르칠 수 있는가? 교회나 기독교 단체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설립할 때는 그 설립 목적이 기독교적 교육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함일 것이다. 그래서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가르칠 때 진화 과학을 비평할 수 있어야 하고 창조 과학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여 주어야 그 설립 목적에도 부합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창조 과학에 근거한 교과서를 자유롭게 집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 기독교적 교육을 목표로 설립한 학교는 그런 교과서를 자유롭게 선정하여 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초·중·고등학교용 교과서의 ‘집필’과 ‘선정’의 자유는 원천적으로 제한을 받고 있다. 대통령령 제8660호로 된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초·중등학교에서 학교의 장(長)은 교과용 도서를 선정함에 있어서 재량으로 교과서를 선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1종 도서 또는 2종 도서 만을 교과용 도서로 선정하여야 하는 의무를 부담한다(동규정 제3조 제1항). 동규정의 모법(母法)은 초·중등 교육법인데 동법 제29조에 의하면 학교에서는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거나 교육인력자원부 장관이 검정 또는 인정한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도록 의무 지워져 있어 초·중등학교는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거나 검정 받은 교과서 만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1종 교과서라 함은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교과서를 말하고, 2종 교과서라 함은 교육부 장관의 검정을 받은 교과서를 말한다. 보통 국어 교과서는 1종 교과서에 해당하고 기타 생물 교과서 등은 2종 교과서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어느 학자들이 진화론을 비판하는 생물학 교과서를 집필 하였다 하더라도 그 책이 초·중등학교에서 교과용 도서로 선정되어 지기를 원한다면 먼저 교육부의 검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을 비판하는 교재를 집필한 후에 교육부에 검정을 신청하면 이것은 100% 불합격된다. 검정에 불합격된 교재를 초·중등학교에서는 교과용 도서로 선정할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법이라고 이미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적 가치를 가르치기 위해 설립된 학교라도 생명의 기원을 가르치기 위해 교육부의 검정을 통과한 교과용 도서를 선정하여야만 하고, 그 결과 진화론 일색의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칠 수 밖에 없다. 만약 교육부 검정을 통과한 교과용 도서만을 선정하도록 학교의 장에게 의무를 부과한 위 규정이 폐지되거나 개정이 된다면 어떤 현상이 발생하겠는가. 초·중등학교의 장들은 교육부 검정 유무에 관계 없이 교과용 도서를 선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선교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의 장은 창조 과학에 근거한 교과서를 비록 교육부의 검정을 통과하지 않았더라도 자유롭게 선정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게 된다. 교과서를 집필하는 사람들도 교육부 검정을 통과하기 위해서 교과서를 집필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부 검정을 통과하지 않더라도 자기의 책을 사용하여 줄 학교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학문적이고 신앙적 양심에 근거하여 교과서를 집필하게 될 것이다.


과연 이 교과용 도서의 검정 제도는 필요한 것일까? 초등학교에서 국정 교과서나 검정 교과서 만을 사용하게 하거나 국어과 과목에 대해서 국정 교과서를 사용하게 한 규정은 획일적교육의 필요성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초등학교 이상의 학교에서 국어를 제외한 다른 과목에 대해서도 모두 검정 교과서만을 고집하는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다. 더구나 국·공립학교에서 국정 또는 검정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의무 지우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나 사립학교, 특히 선교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에까지 검정 교과서를 선택하도록 의무 지우는 법은 문제라 아니 할 수 없다. 이제 교과용 도서를 국가가 통제하려는 자세를 바꾸어 자유롭게 집필하고 자유롭게 선정하도록 개인과 학교에 돌려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획일적 사고를 조장하고 창조적 사고를 방해한다는 비판의 소리도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국가가 획일적 기준을 정해 놓고 교과서를 진단하려는 생각을 바꾸어 각 개인의 자율에 맡겨 두면 위와 같은 비판의 소리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집필과 교과서 선정의 자유를 각 개인에게 맡겨 두면 터무니 없는 교과서의 출현도 막을 수 없고 결국 그 피해는 학생들이 진다는 우려를 국가로서는 피할 수 없다 하겠으나, 그것 역시 기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런 교과서용 저서가 출판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학교에서 그런 것을 교과서로 선정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 학교 교과서 선정 위원회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와 그들의 학문적 식견을 믿어야 한다. 이 규정의 전체 폐지가 어렵다면 최소한 사립학교에서는, 특히 특수한 목적을 위해 설립된 사립학교에서는 교과용 도서를 그들의 재량에 의해 선정할 수 있도록 개정하여야 한다. 검정 교과서 만을 사용하도록 의무 지우는 우리나라의 법은 기독교적 목적을 가지고 설립된 학교에 대해서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위헌의 소지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검정 제도만 폐지되거나 개정이 되면 누구든 기독교적 가치와 진리에 근거하여 교과서를 집필할 수 있고 선교 목적 학교의 장은 그의 재량에 의해 그런 교과서를 교육부의 검정에 불구하고 교과용 도서로 선정할 수 있고 결국 창조 과학도 가르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