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단상


때로는, 목사나 선교사가 되고 싶다


목사나 선교사가 “되고 싶다”는 말은 얼마나 불경(?)스러운 일인가…. 이런 말을 듣는 목사님이나 신학생들은 아마도 크게 분개할 것이다. 목사가 된다는 것이 과연 그렇게 단순한 일이냐며, 자기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며 나를 크게 꾸짖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 목사나 선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고, 목사나 선교사가 되는 일은 부르심(Calling)이 없이는 절대로 안되는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다른 모든 일도 그렇지만.)


미국에 유학오기 전 약 1년 반 동안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기회가 있었다. 스스로 생각할 때, 대학교 3학년 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 약 3년 여의 ‘훈련’기간을 통해 습득한 지식과 학교생활과(대학원에서의 실험실생활은 반쯤 직장생활이었다) 교회생활에서 체득한 경험이 내 자신에게 있어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분명히 훌륭한 직장인이 되어 직장 내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에 차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직업, 직장생활에 관한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책도 읽고 기도도 하고 묵상도 하면서 멋진 직장인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부딪혀야했던 직장생활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열심히 일해서 직장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주위의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직장 내 신우회에(직장 내에서의 그리스도인 교제모임을 보통 한국에서는 신우회라고 부른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생각했던 내 계획과 생각들은 여지없이 무너져갔다.


1. 직장상사와의 갈등


내 직속상사는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는 그리스도인은 아니었다. 술, 담배를 몹시 즐기는 것은 복음의 핵심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므로 용납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가치관은 가장 세속적인 출세주의였다. 그리고 그의 삶에서 복음의 능력과 빛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같이 식사를 할 경우 내가 식사기도를 하면 자신도 그렇게 식사기도를 하지 ‘못 하는’ 것에 대하여 약간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 완전한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유일한 차이인 것처럼 보였다. ‘출세’라는 목표의식을 가지고 엄청난 추진력으로 일을 하다보니 직장 내에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유능한 연구자로서 인정을 받는 터였다. 그는 내게 그러한 자신의 ‘개똥철학’을 매일같이 강요하는 것 같았다. 나는 도저히 그 상사를 용납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당시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내가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내며 공부할 기회를 많이 갖고 싶었는데, 내게 엄청나게 던져지는 일을 감당하면서 마치 내가 그 사람의 성공을 위하여 이용 당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또 내가 속한 연구부의 부장은 매우 권위적인 ‘비그리스도인’이었다. 내게 주일에도 일할 것을 계속해서 요구하였고,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할 수 없음을 밝히자 나를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계속해서 회식이 있을 때마다 내게 술을 권하였다. 내가 정중하게 거부하자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했는지 거의 강압적으로 술을 권하였다. 나는 직장상사의 권위에 앞선 하나님의 권위를 우선으로 두려고 노력하였다. (술 마시면 천국 못 간다는 식의 율법주의로 이 글을 이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결국 그 대가로 나는 매우 어렵고 힘든 직장생활을 감내해야만했다. 이러한 갈등의 관계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한 좌절이 나를 힘들게 했고, 온유한 마음을 유지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영적침체로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2. 시간의 문제


나는 한달 평균 300시간 이상 일할 것을 요구받았다. 평일에는 평균 12시간 이상 직장에 있어야 했고, 조금 바쁜 일이라도 있으면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연구실과 연구실 사이를 다닐 때에는 걷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항상 뛰어야 할 만큼 바빴다. 아침 일찍 일어나 겨우 연구실에 가고, ‘죽어라’ 뛰어 다니며 일을 하고, 저녁엔 녹초가 되어서 들어오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개인여가를 즐기는 것은 전혀 불가능했다. 성경공부 인도하는 일, 다른 지체들을 돌보고(care) 훈련하는 일 등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QT와 기도 등 개인 경건생활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개인적으로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GRE, TOEFL 등을 준비해야 했으므로 그러한 압박은 더욱 심했다. 하루에 4시간 여 밖에 잠 잘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서의 일도 효율적이지 못 했고, 유학관련 시험준비도, 개인생활도 모두 다 엉망이 되었다.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Ordering your private world)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그러한 상황에서 “강요 당하는 자”(driven person)가 아닌 “부르심 받은 자”(called person)로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고, 역시 이로부터도 나는 심한 영적침체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3. 동역자의 문제, 교제(fellowship)의 문제


학교에 있으면서 학원(campus)에서 성경공부를 조직해서 인도한 경험이 있던 터라 직장에 가서도 그러한 일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었다. 마음에 맞는 사람을 두세 사람만 모을 수 있다면 QT를 나누는(sharing) 모임 같은 작은 모임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으리라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나만 그렇게 바쁜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그렇게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터였고, 거기서 더 헌신하여 어떤 형태의 모임을 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당시 독신이었던 나도 그토록 버거웠는데 가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그나마 약간의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도 많은 경우 수 년간의 직장 생활을 통해 그러한 소망과 열정을 다 잃어버린 상태였다. 자연히 나도 내가 막 시작한 직장생활에서의 어려움을 그리스도인 선배들과 효과적으로 나눌 통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해야 했다. 교제는 여전히 학교에 남아있던 친구들하고나 가능했지만 그나마 적당한 시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가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신우회 활동에 적극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생활에서는 무능하거나 무기력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고민과 비전과 생각과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고 사역할 동역자를 만나지 못한 채 결국 미국으로 오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말았다.


4. 부정한 체제(system)의 문제


가장 신참이었던 내게 가끔 주어지는 일은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학교에 있을 때부터 자주 했던 ‘가짜 영수증 만들기’는 이제 이력이 나 있었다.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했다며 그 전문가의 체제비, 강의비, 식비 등을 신청해서는 같은 팀의 사람들끼리 회식을 하는 일이 두어 달에 한 번 꼴로 있었다. 같은 자료(data)로 여러 학술잡지에 짜임새(plot)만 약간 바꾸어서 논문을 내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팀의 업적을 과대포장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과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고 하신 에베소서의 말씀을 함께 생각하며 나는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과연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러한 상황에서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되는 당위를 어떻게 설명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제일 신참이고 나이도 어린 내가… 내가 자주 선택한 길은 도망하여 숨는 것이었다. 화장실이고, 자료실이고 실험실이고… 이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숨어서 그저 내가 그 일을 맡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소극적이고 비겁한 일인가! 게다가 그렇게 얻어진 회식비로 나도 함께 가서 12만원 짜리 광어회를 맛있게 먹고는 하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한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큰 체제(system)와 싸워서 공의와 정의를 지키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아 보였다. ‘타협’, ‘회피’, ‘대립’ 등 바람직하지 못한 반응 등을 보이던 나는 조금도 그들을 ‘변혁’시키지 못한 채 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을 챙겨들고 연구소를 나왔다.


나의 이러한 경험들은 매우 제한적인 것이지만, 내가 가졌던 교만한 ‘비전’들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정사정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역시 많은 부분 문제는 직장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던 나의 태만과 직장의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의 무지에 있다. 그러나 한가지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그리스도인이 한국의 반도체 관련 직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곳에도 누군가는 가서 함께 살며 복음을 전하고, 한국의 반도체 업계가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나는 다시 한국에 가서 직장생활을 할 것이 두렵다. 몸서리가 쳐진다. 사자굴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이런 식의 갈등을 겪지 않아도 되는 목사님들이 부러워진다. 그 좋은 성경을 깊이 연구하며 묵상하는 일이 ‘주업’이 아닌가! (아마도 목사님이나 선교사님의 어려움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리라) 게다가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왠지 더 거룩한 싸움을 싸우는 용사가 되는 것과 같은 (이원론적인!) 생각에 나도 그런 소명(calling)을 받고 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평신도로 부르신 것에 감사한다. 목사님이나 선교사들이 가지는 ‘영광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전 영역에서 (직장생활을 포함한 불신세계에서)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선포하게 하는 거룩한 평신도에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고 많은 ‘훌륭한 목사님’들이 있지만 ‘훌륭한 평신도’ 하나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에서, 하나님에게 ‘더운 여름날의 시원한 냉수 한 사발’같은 사람이 될 기대 때문이다. 대부분의 평신도들이 ‘병신도’로 전락해버린 상황에서 평신도였던 집사 스데반, 빌립과 같은 기준을 되찾는 평신도 사역에의 부르심이 나를 몹시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때로는, 목사나 선교사가 되고 싶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는 멋진 평신도가 되고 싶다. 그것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기쁨과 감격이 몸서리치게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 글이 목사님, 선교사님, 혹은 그 지망/헌신자들의 기운을 빼는 글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고 저는 그 모든 분들을 참으로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