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날 비전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면 과연 비전이란 그 정의가 무엇일까? 비전이란 보는 것이다. 특히 미리 보는 힘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미리 보는 힘이다. 그리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이것이 이루어질 것이라 확신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비전의 지도력인 것이다.


웨인 코디로의 “팀으로 이끄는 교회”를 읽던 중 비전 지도력을 잘 보여주는 좋은 예화를 발견하였다. 올랜드에 위치한 디즈니랜드가 개장 되었을 때에 그 위대한 회사 설립자의 미망인은 화려하며 아름다운 디즈니랜드를 바라보던 기술자들 중 한 사람과 서 있었다. 디즈니를 존경하는 기술자가 디즈니 여사를 바라보며 이야기하였다. “여사님, 저는 월트 디즈니가 이 장면을 보았다면 참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놀이동산을 바라보던 그 미망인은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그는 이 모습을 이미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디즈니랜드가 건립된 것이지요.” 월트 디즈니 그 사람은 이미 죽었지만 그의 마음속에 이미 디즈니가 하나의 그림으로 이미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아름다운 것이 이루어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비전이다. 비록 현재는 없지만 마음속에 분명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웨인 코디로는 “모든 것은 두 번 창조 되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한번은 오직 당신만이 볼 수 있는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며 또 한 번은 그 상상 속의 것이 실제적인 것이 되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실체로 드러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뒤의 것은 앞의 것의 결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앞의 것 즉 미리 바라 봄이다.


비전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Stan David라는 사람은 “Future Perfect”라는 표현을 사용 하였다. 즉 다시 말하여 영어의 시제 가운데에서 미래 완료라고 하는 시제가 있는데 그것은 과거와 오늘과 미래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 미래의 한 시점에 어떤 모습으로 완결하게 되는 시제를 말한다. 즉 미래의 한 시점에서의 완료될 그림을 미리 마음속에 그리고 그것이 완결되게 하기 위하여 오늘을 방향성 있게 채워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할 때에 주로 현재완료 시제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살아간다. 과거에 어떤 일들이 있었으니까 오늘 그 결과로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패러다임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오늘의 일들을 충실히 마무리 짓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미래에 대하여 그림을 가지고 확신 있게 전진하는 비전이 필요한 것이다. 앞으로 5년 뒤 혹은10년 뒤 에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오늘을 도전 적으로 사는 자세가 비전의 지도력인 것이다. 훌륭한 운동 선수들은 연습을 할 때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마음 속에 그리면서 처절한 연습을 이겨낸다고 한다. 미래에 연습의 결과로 금메달을 따는 것을 마음속에 그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 마음 속에 그림 때문에 어려움도 참고 자신을 채찍질하고 이겨내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그 그림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비전을 마음속에 품을 때에 비전의 내용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막연한 그림이 아니라 구체적인 그림을 가져야 한다. Dr. Phil로 유명한 Phillip C. McGraw는 그의 책 Life Strategies에서 말하기를 무엇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에 앞서서 그것을 먼저 이름 지어야 한다고 하였다(You have to name it before you can claim it)” 많은 경우 우리가 꿈꾸고 바라는 것에 대한 그림이 막연하다. 그래서는 그것을 소유할 수가 없다. 분명한 마음의 비전을 가질수록 그것을 성취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풀러신학교의 클링톤 교수는 영적인 지도자들이 비전을 가지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도 하는 삶을 사는 비전의 지도력은 일반적으로 몇 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하였다. 첫째 단계에서는 꿈과 비전을 갖는다. 꿈을 꾸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앞일에 대한 큰 그림을 가지게 된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둘째 단계에서는 그것이 개인의 욕심이나 허망한 망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자신의 꿈과 비전에 대하여 그것이 참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지를 검증하는 단계이다. 셋째 단계에서는 내적인 마음에 있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진다. 다 시 말해서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내면으로부터 확신하는 것이다. 우리의 꿈에 대하여 많은 경우 우리 스스로 확신과 믿음이 없다. 그래서 그 믿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한다. 넷째 단계에서는 패러독스의 삶을 살게 된다. 내면의 확신으로는 이루어진 것이지만 외적인 현실로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단계이다. 사실상 이 단계가 가장 어려운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지도자의 태도가 중요하다. 과거가 아닌 미래의 관점에서 일들을 결정해야 하고 많은 경우에 반대와 비난에 당면하게 되거나 현실이 꿈의 성취의 방향과는 너무 반대인 것을 직면하게 된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갱신의 시간과 하나님으로부터의 반복되는 확인해 주심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확신을 가지고 진척해 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비전만 있고 실천이 없는 지도자는 가장 위험한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비전과 꿈이 성취되는 단계가 온다.


한국의 순복음 교회의 조용기 목사님은 그의 책 ” 사차원의 영성”이라는 책에서 비전에 대하여 네 가지 원리를 강조하고 있다. 첫째, 바라봄의 믿음의 법칙을 사용하라. 목표를 바라보되 있는 것처럼 바라보라. 실체를 바라보고 마음속에 소원을 품은 후, 이미 이루어진 현실로 믿고 기도하라. 둘째, 부정적으로 유혹하는 환경과 싸우라. 믿음을 포기하도록 하는 수많은 유혹들이 있다. 싸워 이겨라. 평안이 올 때까지 기도하고 뜨겁게 부르짖어라. 셋째, 인생의 짐을 주께 맡기라. 불안한 시대, 절망할 수밖에 없는 시대이지만 염려를 내려놓으라. 당신의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움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라. 넷째, 항상 믿음으로 사는 법을 익히라. 일상 속에서 믿음으로 사는 법,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익히라. 성령님의 만나고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믿음의 사람들과 가까이 하라.


당신은 꿈과 비전이 있는가? 바른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이 성취된 것으로 확신하고 그 관점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사람들에게 5년 뒤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한다. 가능 불가능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원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을 상상해 보고 구체적으로 서술해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일까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수정하도록 하게한다. 그리고 비록 오늘 내가 어떤 현실 속에서 살던지 간에 그것이 5년 뒤에는 그 소원대로 이루어진다는 관점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성경 속에도 보면 많은 비전의 지도자들이 있다. 아브라함의 경우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자기의 고향을 떠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으며 그의 삶 가운데 지속적인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사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요셉의 경우에도 그가 어렸을 적에 하나님이 주신 꿈을 마음속에 생각하면서 많은 어려움과 위기를 이겨내고 그것의 성취의 방향으로 움직여 나아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모세와 여호수아도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살았다. 비록 현실 속에서는 소유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의 성취들을 향하여 믿음의 발걸음을 내디딘 비전의 지도자들인 것이다. 약속하나 믿고 움직인 비전의 지도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절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하고 있다. 아직 성취된 것이 아니지만 성취될 것으로 확신하고 살아가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확실히 존재하는 것으로 믿고 살아가는 비전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사실상 우리 성도들은 모두 다 비전의 사람들이다. 우리 주님의 재림을 미리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고 모든 것을 심판 하실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비전의 사람들인 것이다. 주님의 재림을 확신하면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요한일서 3 장 2-3절을 보면 예수님의 재림과 우리가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될 것을 미리 바라보면서 이 비전을 가진 사람이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모습을 제시해 주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