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와 메뚜기가 정답게 놀고 있었다. 어느덧 해가 지는 저녁 때가 되었다. 메뚜기는 하루살이에게 “얘, 하루살이야. 오늘은 이만 놀고 내일 또 놀자!”고 제안을 했다. 하루살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얘, 메뚜기야. 내일이라는 것이 뭐니?”하고 물었다. 메뚜기는 열심히 내일에 대해 하루살이에게 설명을 했다. “내일이라는 것은 캄캄한 밤이 지나면 동녘으로부터 밝은 빛이 나오고 그 밝은 빛이 나오면 찬란한 아침이 있는 그 때가 내일이지.” 그러나 아무리 설명을 해도 하루살이는 하루만이 그의 생명이지, 그 다음 날을 살아본 일이 없기 때문에 메꾸기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너하고 다시는 안논다.”하며 가버렸다. 메뚜기는 “내일이란 틀림없이 있는데….”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 메뚜기가 이번에는 개구리와 친구가 되었다. 며칠을 신나게 놀았다. 그러자 어느날 개구리가 말했다. “메뚜기야, 이제 차차 날씨가 추워오는구나. 우리 이제 그만 놀고 내년에 만나자.” 이번에는 메뚜기가 놀랬다. “개구리야, 내년이라는 것이 뭐니?” 메뚜기는 일년생이라 한번도 그 다음 해를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개구리는 열심히 내년에 대하여 설명을 했다. “내년이라는 것은 눈이 오고, 얼음이 어는 겨울이 지나면 산과 들에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를 할 때, 저 산 넘어서 아지랑이가 올 때를 말한단다. 그 때를 우리는 봄이라고 하고 그것이 바로 내년이야.”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해도 메뚜기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개구리가 자기를 업신여겨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여 토라져 “다시는 너하고 안 놀아” 하고 가버렸다. “내년이란 틀림없이 있는데…” 개구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모든 일을 대할 때에 어떤 관점에서 사건과 사물을 보는가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혹자는 말하기를 “지도자와 추종자의 차이는 관점(perspective)을 살아가는가의 차이이고, 평범한 지도자와 위대한 지도자의 차이는 좋은 관점(better perspective)을 가졌는가의 차이다”라고 하였다. 지도자들은 바른 관점, 크고 넓은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지도자는 삶을 전체의 관점(Life-long Perspective)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현재(here and now)를 그것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삶의 일부로 과정으로 볼 수 있는 관점(perspective)이 필요하다. 그러면 삶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첫째, “삶을 전체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은 끝을 마음 속에 두고 시작한다. 신학교 다닐 때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실행하게 했던 하나의 프로젝트가 있다. 하얀 종이에 묘비를 그리고 자신의 묘비에 무엇이 쓰여지기를 원하는지를 작성하도록 하게 했다.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우리 인생에 대한 궁극적인 평가는 오늘 하루 하루의 삶이 모여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을 마지막 평가를 의식하고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야 합니다”라고 하셨다.


둘째, “삶을 전체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은 현재를 일생에 걸친 삶의 개발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근시안적인 관점에서 보면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들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옴을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면, 오늘 경험한 실패가 처한 그 상황에서는 좌절의 이유이지만 긴 안목으로 삶을 보는 관점에서 발전의 기회요 성공의 예비 단계일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시야를 넓힐 때, 문제는 전혀 새롭게 다가옴을 체험한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은 작은 성공에 교만하지않고 작은 실패에 좌절하여 넘어지기보다는 도리어 그 실패를 성장의 기회로 삼는 자세를 가진다. 나는 십 여년 전에 공부를 하려는 목적으로 미국에 왔었다. 그런데 소위 말해서 실패를 경험하고, 1년 뒤에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한 채로 한국에 귀국하게 되었다. 그때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집에서 나가지도 않고 방에 꼭 쳐들어 박혀 지내고 있을 때, 아버님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내 방에 들어오셔서 나에게 조용히 위로의 말씀을 해 주셨다. 그때 아버님께서 주신 “애야! 인생은 긴 것이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차근차근히 다시 준비해라. 오늘의 아픔이 앞으로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씀이 두고두고 나의 삶에 큰 힘이 되었다. 결국 아버님의 말씀이 옳았음이 나의 삶을 통해 입증되어, 그때는 실패요 좌절이었지만 그런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사명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내가 목적하였던 것보다도 더 귀한 일들을 감당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


셋째, “삶을 전체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더욱 깊은 교제 속으로 인도하실 것을 기대하며 충성, 순종, 인격 형성을 추구한다. 다시 말해서 정말로 귀중한 것, 영원히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게 된다. 결국 가치 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이고 그로 인하여 맺어지는 인격의 성숙이요 성령의 열매인 것이다.


넷째, “삶을 전체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은 우선 순위 없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분명한 목적을 인식하고 자신의 은사에 맞는 역할을 고르고 그 일에 집중한다. 인생의 제한성을 인정하고 그 제한성 속에서 가장 효과적인 삶을 살기 위하여 집중하는 지혜를 갖는다.


당신은 오늘 당신에게 주어진 삶을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눈앞에 펼쳐지는 일을 전부로 생각하는 근시안적인 관점인가 아니면 삶을 전체적인 관점(Life-long Perspective)에서 바라보며 살아가는가? 관점이 변하면 삶의 자세가 바뀐다.


* 예화는 이용삼 목사님의 “가나안의 명상”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