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인간이해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의 기초 (6)


1. 문화와 세계관
2. 세계관이란?
3. “문화화(enculturation)” 과정과 세계관의 형성
4. 세계관의 역학적 기능
5. 세계관의 충둘 : A case study – Islamic worldview


5.2.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과 이슬람 세계관의 핵심 비교 (계속)


지난 호에서 이슬람에서도 기독교에서처럼 유일신을 고백하며,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충성하는 것처럼, 무슬림 들도 그의 마지막 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한 사랑과 신앙을 고백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것은 마치 요한 사도가, 영생이란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아들 예수를 아는 것이라고 말한(요 17: 3) 구원 조건의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슬람은 기독교 후에 나타난 종교 가운데 가장 기독교를 닮은 종교이다. 특별히 신앙고백의 구조에 있어서 이슬람은 기독교와 같은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 진위를 떠나서)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것은 집단적으로 표현되는 종교적 신념이다. 무슬림 지도자들은 이슬람의 신앙고백 내용인 tauhid(알라의 유일성)와 risalah(무함마드의 선지자됨)를 무슬림들로 하여금 종교의식들을 통하여 계속 반복하게 함으로써 이 공유된 지식과 신념이 모든 무슬림들의 의식 세계뿐만 아니라 잠재의식 속에도 자리잡도록 한다. 이 지식은 자연히 무슬림들의 세계관의 깊은 곳에 자리잡게 된다. 이 신념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더욱 굳어지게 되고 이러한 사고의 패턴은 웬만한 충격이 아니면 변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세계관을 바꾸어야 하는 전도의 사역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세계관의 충돌이며 곧 확신의 싸움인 것이다. 나는 무슬림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이해시키는 것이 다른 비기독교인들에게 전도하는 것과 비교해볼 때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절감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나의 끊임없는 사명은 그들의 신앙고백 구조 안에서 그들이 믿는 무함마드의 역할이 예수에게 원래 있었음을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무함마드에 대한 그들의 충정과 사랑은 지극한 것이기에 무함마드를 손상시키는 언급은 금물이다. 그리고 그러한 접근은 바람직하지도, 건설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무슬림들 자신들이 결정해야 할 내용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새로운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고, 그들이 나름대로 알고 있던 예수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이 생기게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언젠가 예수에 관한 그들의 paradigm에 변화(shift)가 일어날 것을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이슬람의 세계관을 염두에 두고, 무슬림들을 접하게 될 때에 복음의 전달자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것이다. 무함마드가 선지자가 아니라는 것을 변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일이다. 복음을 듣는 상대방의 세계관에 변화가 일어나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는 상대방의 세계관의 내용(즉, 믿음의 내용)의 진위를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증거하는 것이다. 이때에 우리가 예상하는 것은 세계관의 충돌이다. 즉, 상대방이 확신하고 있는 내용과 다르거나 정반대의 내용을 자신도 확신하며 이야기하게 될 때에, 이러한 내용은 상대방의 세계관을 건드리게 되어 있기 때문에 감정의 문제로 확산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세계관의 충돌은 예상하면서도 이러한 충돌이 인간 관계에 끼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한도로 줄이기 위하여 소위 “코뮤니케이션”의 기술이 필요하다. (본고에서는 이 부분은 다루지 않겠다.)


5.3. 이슬람의 세계관과 무슬림들의 세계관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만나게 될 때에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은 단순히 종교적인 충돌이나 Samuel Huntington이 말하는 문명의 충돌이라고 하는 비인격적인 이념의 충돌만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확신 곧 세계관의 충돌을 포함한다. 이러한 이해를 갖게 될 때에, 복음전달자는 무슬림들이 갖고 있는 “이슬람의 이데올로기”보다는 그것을 신봉하고 있는 “무슬림들의 세계관”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이상적이고 이념적인 이슬람 자체보다도 무슬림들의 생각들을 더 다루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슬림들의 생각과 그 구조에 더 초점을 맞추며, 그들의 사고방식, 인식방식, 또 인식한 내용들과 그 내용들에 대한 그들의 반응 등이 이제 더 큰 관심의 대상이 된다.


지금까지 이슬람 연구에 있어서 세속 학자들이나 기독교 학자들이나 심지어 무슬림 학자들조차도 이슬람의 종교적 내지 철학적 이데올로기에 더 관심을 쏟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슬람에 대한 역사와 교리와 정치적 이념 등에 대하여 나름대로 공부하면서 무엇인가 한 가지가 빠진 것을 많이 느꼈다. 그것은 내가 문화인류학적 현장조사를 수행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인데, 무슬림들, 곧 “사람들에 대한 연구”이다.


즉,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믿는 이슬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하여 (즉, 앞에서 언급한 환경들) 어떠한 해석과 대처를 하고 있는가? 무슬림들은 자신들 주변의 환경들을 이슬람의 이념에 기초하여 해석하고 이해하고 있는가? 이슬람의 이념들이 무슬림들의 삶의 문제들을 어디까지 풀어주고 있는가? 만일 이슬람의 이데올로기가 자신들의 삶의 문제들을 다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무슬림들은 어디에 호소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후자의 경우 이슬람의 이데올로기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이슬람 지도자들은 그렇지 못한 무슬림 평민들에 대하여 어떠한 시각을 갖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무슬림들의 세계관을 다루는 이슈들이다. 이렇게 무슬림들을 이해함으로써 접근하는 이슬람 연구는 이슬람 세계의 구체적인 사회적 정신적 현상들을 규명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무슬림 사회와 무슬림들의 삶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내가 자각하게 된 점은 이슬람의 내용만이 아니라 그것을 신봉하는 무슬림들의 삶을 이슬람학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서는 이슬람 연구라고 하는 것은 너무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사변만으로 끝나기가 쉽다. 특별히 선교를 수행할 때에 무슬림들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직 이슬람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만 잘 아는 것은 사랑을 기초로 한다고 하는 선교에 오히려 위배될 수도 있다.


무슬림들이 이슬람의 이념을 다 신봉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무슬림 사회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이슬람의 이데올로기만이 무슬림들의 세계관을 다 형성해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관을 구성해주는 세계관의 전제(assumption)와 가치(value)와 충성(allegiance) 등의 내용이 무슬림 사회에서는 이슬람의 이데올로기만으로 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수많은 토속적인 전통적 세계관이 함께 어우러져 있으며, 어떤 삶의 영역에 있어서는 오히려 이슬람 이전의 전통적인 세계관이 더 지배적인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무슬림 사회 역시 여느 다른 비무슬림 사회처럼 그 세계관이 복잡하며 인간 사고의 심연과 그 창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슬림들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하여서 우리는 잠시 여기서 이슬람에 대한 내용을 접어두고 다시 세계관의 주제로 돌아가서 “세계관의 주제(worldview themes)”와 “세계관의 보편요소들(worldview universals)”을 다루어야 하겠다. 이 부분을 다룬 뒤 무슬림들의 세계관의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때에는 내가 사역하고 리서치한 동아프리카 해안의 스와힐리 무슬림들의 세계관을 실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