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4년 2월호

집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Big Basin Redwood State Park라고 하는, 그다지 크지도 않고 많이 알려지지도 않은 주립공원이 하나가 있다. 공원 자체는 그리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아니지만, 이곳에는 레드우드(Redwood) 나무에 관한한 작품사진들 속에 종종 주인공으로 등장하곤 하는 멋진 모델(?) 나무들이 몇 그루 서있다. “Father of the forest”와 “Mother of the forest”라고 이름 붙여진 나무들을 포함한 오래된 Coast redwood 나무들이 그들인데, 나이는 “Father” 가 2000 살, “Mother”가1800 살이라고 알려지고 있으며, 키는 “Mother”가 조금 더 커서 330 ft (100 m; 약 30층 건물 높이) 에 이른다.


나무들이 그 당당한 위용을 숲 속에 조용히 감추듯 하며 서있는 레드우드 산책로(Redwood trail)를 천천히 걷다 보면, 매우 평화로운 분위기의 숲길이건만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경외감 같은 것에 부드럽게 사로잡히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 경외감이란 다름아닌 생명에의 경외감이요, 더 나아가서는, 이를 지으시고 기르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느끼는 데서 오는 경외감이다. 지금 2000 살이라면, 이 나무는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을 바로 그 무렵부터 자라나기 시작했다는 말이 아닌가?


레드우드 나무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가지 모양의 감탄사와 더불어 많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힘이 있다. “어떻게 이렇게 크게 자랄 수가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한점 구부러짐도 없이 똑바르게 자라날까?”, “어떻게 저렇게 높은 곳까지 물과 양분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등등… 연발 탄성을 자아내며 자리를 뜨지 못한 채 한참을 쳐다보다 보면, 이 나무들은 어느새인가 친절한 친구처럼 다가와서 삶의 영적인 의미들에 대하여 소리없는 말로 이야기해 주기 시작한다. 나무들이 가져다주는 경외감에 너무 깊이 빠져버린 것일까? 이 문자 그대로의 ‘거목’들이 주는 메세지들은 마치 우리보다 먼저 살다 간 믿음의 거목들, 즉, 아브라함, 다윗, 베드로, 바울같은 이들이 여기 이 나무들을 통하여 전해 주는 충고와 당부인 것만 같이 느껴진다.


천 오백 년이 넘도록 살아온 나무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하나같이 줄기 아랫부분에 불에 심하게 타다만 숯과 같은 검은 자국들이 있다는 점이다. 수백 살 정도 밖에(?) 안된 청년 나무들이 아무 상처도 없이 깨끗하게 쭉 뻗어올라간 것과는 대조적으로, 천 년의 세월을 넘겨 진정한 ‘거목’들로 자라난 나무들은 때때로 자연적으로 일어나곤 했던 산불이라는 ‘고난’으로부터 전적으로 무관했던 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서 때로 다가오는 고통과 고난은 우리를 정금과 같이 만드는 주님의 은혜의 도구라는 점을 성경은 수없이 반복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 이 ‘거목’들은 그 한 구체적인 증거로서 자신들을 우리에게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레드우드 나무들을 보면서 얻는 ‘은혜로운’ 깨달음의 그 첫번째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얼마나 위로와 소망이 되고 용기를 주는 메세지인가? 고난의 자국이 없는 영적인 거목은 없으되 하나도 없으며, 그런만큼 우리의 삶 가운데에 더해진 고난의 자국들 또한 우리를 주님 뜻 안에서 또 하나의 영적 거목이 되게끔 인도해주는 그 무엇을 의미하고 있다면? 천 오백 살이 된 나무의 단면이 전시된 것을 살펴보면, 이 나무는 매우 두꺼운 외피(bark)로 둘러쌓여 있어서, 이로 인하여 불에도 견디고 수분 또한 밖으로 빼앗기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불시험 가운데서도 넘어지지 않고 견디는 일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나무들의 외피와도 같이 견고한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일만이 자신을 시험으로부터 방어하고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방책이다. 그러면, 만약에 이 외피라는 방어선이 뚫리는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산책로 안에는 “Chimney tree”라고 불리우는 나무가 한 그루 서있는데, 무너진 방어선 안으로 나무의 내부는 모두 타버리고 외피만이 남아서 마치 굴뚝이나 연통처럼 그 안에서 들여다 보면 하늘이 보이는 그런 나무이다. 고난당했던 지난 날의 기억들 가운데, 성령의 전신갑주로 온전히 무장하지 못하고 주님께 절대적인 신뢰를 드리며 의지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치 이 나무와 같이 겉모양만이 초라하게 남아버리고 말았던 내 자신의 모습은 없었던가? 부끄러운 마음과 숙연한 마음이 교차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때로는 불시험을 당한 나무들이 역경을 이기고 거목으로 자라나기도 하지만, 더러는 불 가운데 쓰러지거나 썩어져 넘어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레드우드 나무의 특이한 점의 하나는, 한 뿌리에서 여러 그루의 나무가 자라난다는 것이다. 보통의 나무들의 경우 큰 가지들이 땅 위의 줄기에서 갈라져 나오는데 반해 레드우드는 줄기 자체가 땅속에서부터 갈라져 나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따라서, 가까이 서있는 나무들이 겉에서 보면 별개의 나무인 것 같지만 실상은 한 뿌리로 연결된 한 나무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 레드우드 나무가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이 있다. 한 뿌리에 연결되어 ‘공동체적’ 생활을 하는 이 나무들의 경우, 고난이나 시험 가운데서 한 나무가 쓰러지면 바로 옆자리에서 새로운 나무가 같은 뿌리로부터 “청출어람(靑出於藍)”하여 그 못다한 생명을 대신하듯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넘어진 나무의 옆에서 새 나무가 솟아오른 모습을 보는 일은, 마치 우리가 끝끝내 불시험 가운데 넘어지거나 사명을 다 완수하지 못하여 주저앉을 때 주님의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가 부축하거나 업고서 함께 가며 또한 그 사명을 계속 이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오버랩되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어떤 형태와 정도로 말씀의 씨앗을 뿌리든, 영원하신 그분의 나라 안에서 우리가 뿌린 일들의 의미는 헛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영원한 ‘뿌리’가 되시는 그분이 계시기에 우리의 신앙은 넘어짐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며, 함께 자라나고 서로 지탱해주는 동역자와 지체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신뢰 가운데 참된 희생을 이루고 사명을 다하여갈 수 있다. 한 뿌리 안에서 함께 자라나고 생명을 이어가는 레드우드의 삶의 모습을 보는 일은 그런 맥락에서 눈물이 글썽일 정도의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레드우드 나무가 현재 미국의 여러 지역에서 서식하고는 있지만, 오랜 세월을 살아 거목으로 자라난 나무들은 거의 어김없이 서부 해안선과 산맥을 따라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이 지역이 사막의 열기와 태평양의 서늘한 바람이 부딛히는 가운데 매일같이 짙은 안개가 끼는 지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무의 키가 100 미터에 달하게 되면, 펌프도 없이 10기압의 강한 압력차이를 극복하여 땅 속의 수분을 하루에 수 갤론이나 끌어올리는 일에는 한계가 있게 된다. 레드우드 나무의 잎을 자세히 보면 매우 촘촘하게 생긴 작은 잎들이 여러 갈래로 겹겹이 나 있어서 물과 접촉하는 표면적이 최대화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표면적이 향상된 잎으로 안개가 낄 때 한껏 물을 웅켜쥐므로써 부족한 수분을 채운다고 한다. 밑에서만 물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부터도 공급받으며, 또 그 일이 가능한 곳에서만 거목으로 자라날 수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뿌리로부터 끌어올리는 일이 말씀에 대한 직접적인 묵상과 직접적인 기도, 직접적인 예배, 직접적인 사역 등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잎으로부터 받는 일은 매일매일의 일상생활 안에서나 크고작은 일상의 관계들 안에서 주님의 손길과 메세지를 발견하며 배우고 깨닫는 삶이 아닐까? 아래로부터 끌어올리는 일이 스승이나 목회자 또는 멘토들로부터 배우고 영향받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옆으로부터 받는 일은 동역자나 동년배 그룹(peer group) 또는 우리가 돌보고 있는 영혼들로부터 배우고 영향받는 일이 아닐까? 숱한 인생들이 저 산 아래 이 세상에서 부대끼며 살아가고 명멸하는 가운데 저 언덕 위에서 말없이 이천 년 간이나 제자리를 지켰던 레드우드 거목들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결국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말없이 우리를 굽어보는 그들처럼, 그리고 이 나무들과 같이 천국에서 주님 옆에 서서 말없이 우리네 사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을 영적인 거목들처럼, 우리 또한 고난과 역경을 믿음으로 이기고, 공동체 안에서 함께 자라고 함께 일하며, 매일매일의 삶 안에서 주님과 이웃들과 더불어 날마다 영적인 생명수를 공급받는 가운데 영적인 거목으로 커가도록 하는 그런 삶을 일깨우려 함이 아니었을까?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히브리서 12:1-3)


[사진 출처: Big Basin State Park, Redwood National & State Parks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