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3년 9월


얼 마 전 교회 중등부에 있는 12 살 난 아이에게 요즈음 학교 생활이 어떠하냐고 물어 보았더니 한 마디로 짧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Busy! 또 어떤 잡지에서 보니, 현대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도와 생활 능력이 이전보다 매우 향상되었는데도 평균 건강은 오히려 나빠져 버렸는데, 그 이유인즉 밥 먹을 돈은 있어도 제 때에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란다.


현 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늘 분주하다. 학생은 학생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주부는 주부대로 각자 자기 위치에서 나름대로 다 바쁘다. 그렇다 보니, 중요하면서도 당장 급하지 않았던 일들이 상황에 밀려 희생되는 경향들이 생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일, 이웃과 함께 하는 일, 매일 아침 말씀 읽고 주님과 교제하는 일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곰곰이 살펴보니, 이러한 일들은 대개 관계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분주한 삶이 첫 번째로 주는 위기는 바로 우리의 가족 관계, 이웃 관계,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훼손되는 일이다.


이 바쁜 현대인의 삶 가운데에 예수님이 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아마도 예수님 역시도 바쁘게 사역하셨을 것이다.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가난한 자를 위로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제자를 키우시고… 어쩌면 평신도로서 목수 일도 계속 겸직하셔야 했을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예수님이셨다면 사역을 감당하느라 가정 안에서의 관계가 깨어지고 이웃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도록 방치하거나 택하여 가지는 않으셨을 것 같다.


성 경을 보니, 가버나움의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고,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쫓으시고,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전도하시는 등 (막 1:21-39), 예수님도 공생애 기간 동안 실제로 바쁘게 사역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이 행하여지고 있는 한 가운데에 새벽 오히려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다고 하는 대목이 평화롭게 자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분주한 사역의 현장 한 가운데에서 홀로 조용히 기도하시는 주님… 그렇다면, 상황이 바쁘게 돌아가는 중에 계셨더라도 주님 자신은 그리 바빠 하지만은 않으셨을 것이라고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아 마도 주님이 안 계시는 동안에, 아직도 많이 남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 그리고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들이 아침부터 주님을 만나고자 몰려와 아우성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리저리 당황해하며 주님을 찾고 있었을 제자들 앞에 다시 나타나신 예수님은 정작 이 모든 이들을 뒤로 두고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고 말씀하고 계신다. 주님께서는, 선한 일과 옳은 일 자체에 몰두하시기 이전에, 지금 아버지께서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지를 분별하며 순종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즉,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질 수 있을 법한 일을 행하는 것 그 자체보다, 매 순간 아버지께 귀 기울이고 순종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셨다고도 볼 수 있다.


오 늘 하루의 일을 손에서 놓고 잠들기 어려워하는 사람은 죽을 때에도 이 땅에서의 일을 놓고 가기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동양의 옛 선인들이 말했던 盡人社 待天命 (진인사 대천명), 즉 사람이 할 바를 다하고 나면 결과는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말이야말로 어쩌면 모든 일의 주재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겸손히 품어야 하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그러나 살다 보면, 예수님이 그리하셨던 것처럼 할 일을 다한 후에 모든 뒷일을 주님께 맡겨드리고 겸손히 물러나는 일이 늘 그다지 쉬운 것만은 아님을 우리는 종종 경험하게 된다. 우선은, 시급히 결과를 요구하거나 사회경제적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적 요인들 탓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자신의 집착이나 완벽 추구 심리, 조금만 더! 하는 욕심, 그리고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에 이르기까지, 다름 아닌 우리 스스로의 마음에 기인하는 이유들이 다양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오천 명이 먹기 위하여 우리가 가진 전부인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드리는 일과 우리 스스로가 오천 명을 먹이는 일을 혼동하기 때문인 경우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나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시각을 회복하기 전까지는, 자기중심적인 판단과 동기부여에서 벗어나 주님이 중심 되시고 그분께 온전히 맡겨드린 삶을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주님께 온전히 맡겨지지 않는 한은 주어진 삶을 잘 감당하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그 가운데 평안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아 버지께 맡기는 삶과 사역의 표본은 역시 예수님이시다. 헨리 나우웬이 지적한 것처럼, 예수님의 사역이 특별하였던 한 가지 면모는 그분의 최후의 사역인 십자가 구원을 이루시는 과정이 전적으로 수동적이었다는 점에 있었다. 주님은, 사람들이 심문할 때 심문 당하셨고 매를 때릴 때 매 맞으셨으며 십자가에 못박을 때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죽였을 때에 죽으셨다. 그리고는 성부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 올리실 때 부활하셔서 그분이 앉히시는 보좌에 앉으셨다.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사역을 완전하게 이루셨지만, 그 과정 자체는 외면적인 노력이나 분주함과 무관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은 내면적으로 치열한 고뇌 가운데 순종과 헌신으로 완전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지만, 외면적으로는 아무 일도 안 하셨다.


이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의 수고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최선을 다하는 것도 귀하고 잠잠히 따라가는 것도 귀하되, 이 모든 일은 나를 향하신 그분의 뜻을 그분 스스로가 이루어가고 계신다는 보다 큰 컨텍스트 안에서만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만, 내가 한다고 해서 꼭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지 못했다고 해서 꼭 안 되는 것이 아닌 현상들을 우리는 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일과 분주함에 관련하여,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관점 아래에 우리의 기회와 우리의 능력과 우리의 수고와 우리의 기여라는 측면들을 겸손히 내려놓을 때에만 비로소 이 문제들로부터 진정으로 자유할 수 있다.


우 리에게 열심히 감당할 일이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어디에선가 꼭 필요한 존재가 되도록 부르셔서, 그분의 사랑에 대한 진실한 응답의 표현으로서 주신 바에 대하여 열심히 일하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혹 지나치게 바쁘다면, 예수님처럼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마음 속의 한적한 곳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독대하는 가운데 주님의 시각을 회복하여 스스로를 재점검해야 한다. 나의 영적 상태는 건강한지, 나를 둘러싼 관계들은 온전한지, 다른 영혼들이 알게 모르게 나의 목표를 위하여 이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나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나 아가야 할 때와 멈추어 서야할 때를 온전히 분별하여 조화된 모습으로 실천하며 사는 삶은, 분명 단순한 결심이나 노력으로 당장에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 일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에 나를 부르고 계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영적인 집중력과 분별력, 매 순간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순종함, 인생의 거시적인 계획들이 세워지고 실행되는 자리에서 온전히 회복되는 하나님의 주권,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는 내가 지금 가진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내려놓고 그분께 기대어 맡길 수 있는 전폭적인 믿음과 헌신 가운데에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 모든 일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드렸던 기도를 매일매일의 생활 가운데에서 지속적으로 드리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분주함이라는 영성생활의 위기를 다루고 있는 우리의 앞에는 보다 성숙한 신앙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가 동시에 주어져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과하는 열쇠가 진정한 의미에서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며 따르는 일에 있음은 물론이다.


여 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 (시 127:1-2)


(본 글의 예수님 사역 부분에 관련하여 헨리 나우웬의 Out of solitude 및 Adam: Gods beloved에 있는 내용 일부를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