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정신과를 돌고 있었으니까 아마 4학년때였을 겁니다. 계단식 강의실에 수련의들과 저희 학생들이 앉아 있고 잠시 후 교수가 환자와 그 어머니와 함께 들어옵니다. 어머니는 저기 옆으로 가서 앉습니다. 교수가 그 환자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의학 교육의 한 장면입니다. 정신과 환자들의 대답은 엉뚱할 때가 많습니다. 교수가 물어봅니다. “만약 길을 가다가 우체통 옆에 우표가 붙은 편지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환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거 청와대로 가는 편지지요?” 이런 문답이 몇 번 오갑니다. 자리에 앉아있는 학생들과 수련의는 킥킥대고 웃습니다. 교수는 차분하게 문답을 계속합니다. 그런가하면 그같은 어뚱한 대답을 들으며 한 옆에서 눈물을 닦아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환자의 어머닙니다. 수십년전의 일이 성경을 보면서 떠올랐습니다.


 


누가복음 13 10절에서 17절을 보면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다가 18년 동안 병마에 시달려 허리가 굽은 채로 지내야 했던 여인을 고쳐주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것을 본 회당장이 분개하며 반발하여 무리더러 말합니다. 일을 해야 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엿새 가운데서 어느 날에든지 와서, 고침을 받으시오. 그러나 안식일에는 그렇게 하지 마시오.” 그가 그렇게 분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합니다. 이 여자는 이미 18년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단 하루를 더 기다리는 것이 무엇이 그리 어렵겠습니까?


어쩌면 회당장뿐아니라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 아니 심지어 그 여자 본인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18년 동안이나 이렇게 지냈는데 뭘.” 회당장은 종교적인 이유로, 다른 사람들은 무관심으로, 그 여자는 포기한 심정으로 말입니다. 만약 예수께서 다음 날 만나서 고쳐주시기로 그 여자와 약속을 하고 그날은 그냥 가르치는 일만 계속하셨더라면 그 여자는 그 하루를 오히려 반신반의 가운데서도 설렘과 기쁨으로 지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없었던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에게 떠오른 생각도 같은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18년 동안이나!” 그러나 18년 동안이나 그 여자가 그렇게 고통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다른 이들에게는 거기서 하루를 더 기다린들 무엇이 그리 큰 일이겠느냐는 이유가 되었던 반면, 그에게는 그 꼭같은 사실이 오히려 하루라도 더 기다릴 수 없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의 심정이 이 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라도 이 매임을 풀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한때 해방신학이라는 것이 유행이 되다시피 한 적이 있었고 아직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깊이 공부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제가 받은 인상으로는 해방신학의 이름으로 행해진 운동이 오히려 근본적인 해방에 대한 이해를 약화 내지는 왜곡시킨 면이 있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아마 많은 교회가 자꾸만 근본적인 해방만을 되뇌이면서 인간의 사회 경제적인 질곡을 외면하는데 대한 반발이 작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지 사탄에게 매여 있는 사람들을 예수께서 풀어주신다는 의미에서라면, 또 그런 예수를 따른다는 의미에서라면 해방은 우리에게 언제나 가장 절실한 주제일 것입니다. 그 해방의 시작은 고통 중에 있는 인간을 귀하게 여기는 예수의 마음(“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을 본 받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수께는 이 여자가 귀한 만치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이 절실하고 그로부터 놓아주는 일이 긴급하게 여겨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열 여덟해 동안이나하는 말씀에는 얼마나 참된 사랑이 담겨있습니까? 여기에서라야 참 개혁(회당장의 안식일에는과 주님의 안식일에라도”)도 나옵니다. 자기 자신과 남을 아브라함의 자녀로 여기는 훈련은 언제나 절실하며 긴급한 일입니다. 그것이 결핍된 순간 종교라는 것이 우리(나 자신을 포함한)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탄의 얽어맴을 강화하며 연장시키게 된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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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홍은 1954년생이다. 워싱턴주 벨뷰에서 가정의와 침례교 목사로 일하고 있다. 아내 윤경원과 두 아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