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5년 2월호

희랍신화에 보면 야누스란 신이 나온다. 이 신은 앞과 뒤에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신체적 특성에 맞게 도시나 집의 출입구 등 문을 지키는 수문장 신이 되었다. 그런데 문은 일반적으로 시작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야누스 신은 또한 출발점의 신이라 생각되었고, 신들 가운데 최고의 지위가 주어졌다. 모든 시작은 언제나 그와 더불어 시작되는 것으로 여겨져서 12개월 가운데 1월은 ‘야누스의 달’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그래서 1월은 야누스의 달이라는 의미에서 라틴어로 ‘Januarius’라 불렸고, 여기에서 1월을 의미하는 영어 ‘January’가 나오게 된 것이다.


영어 January처럼,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나 상표 가운데 많은 것들은 희랍신화에 그 기원을 가진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카시오페아, 안드로메다, 오리온 성운 등 모든 별자리 이름들은 희랍신화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희야신스 등 상당수 꽃이름들도 또한 희랍신화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다. 또 우리나라의 제품이름들도 상당수가 희랍신화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예를들면, 박카스는 로마신화의 술의 신 박카스(희랍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에서, 무기 가운데 발칸포는 로마신화의 대장장이 신 불카누스(희랍신화에서는 헤파이스토스)에서, 타이탄 트럭은 희랍신화의 힘센 거인족 티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문학작품과 예술작품들이 이 희랍신화에서 그 소재를 빌어오고 있다.


오늘날 희랍과 로마의 신들은 더 이상 추종자들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현대인들은 희랍신화에 대해 그다지 경계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기록될 당시만 해도 이 종교는 많은 추종자들을 가지고 있었고, 복음전파에 큰 지장을 주었다. 행 19장에서는 아데미 여신(아르테미스)을 섬기는 에베소 지역에서 은장색 데메드리오란 사람이 자신들의 신을 경홀히 한다하여 바울을 핍박한 적이 있었다. 또 루스드라에서는 바울과 바나바를 쓰스(제우스 신)와 허메(헤르메스 신)라 하여 섬기고자 한 적도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인들이 이 희랍신화에 대해 완전히 경계를 풀 일은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러한 문화를 기독교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1월은 야누스의 달이라 January란 말을 쓰고 있는데, 이것을 성경적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이 바로 알파요 오메가며 처음과 나중이라고(21:6)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성경적으로 생각하면 야누스가 아니라 예수님이 바로 시작의 신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1월은 야누스의 달이 아니라 예수님의 달이 되어야 한다. 즉 January가 아니라 Jesuary가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물론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우리만 그 언어를 이렇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미적으로는 그렇게 되게 할 수 있다. 예수님과 더불어 시작하는 달이 된다면 1월은 곧 Jesuary, 즉 예수님의 달이 되는 것이다. 1년 가운데 첫 달인 1월을 맞으면서 이 달이 예수님의 달이 되도록 해보자. 예수님과 함께 시작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시작하며, 예수님의 주신 힘으로 시작해보자.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1월은 내용적으로 예수님의 달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1년을 예수님의 달로 시작하여 예수님의 달로 마칠 수 있도록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