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3년 6/7월호

대부분의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자신들이 활동하고 살아 있는 동안에 인정 받거나 널리알려지지 못했고 어려운 길을 걸었던 것에 비해, 피카소는 매우 젊은 시절부터 그의 천재성을 인정 받아 명예와 부를 누리며 왕성한 활동을 한 대표적인 작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도 처음 파리에 와서 활동을 하던 이십대 초반에는 경제적으로 무척이나 빈궁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친구 막스 자코브의 좁은 방을 나누어 쓰던 이 년간, 먹는 것도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서 밤새워 그림을 그리며 석유가 없어 한 손에 촛불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파리의 뒷골목에 자리한 허름하고 더러운 건물에서 예술가, 행상인, 시인, 노동자 등의 온갖 직업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 공동생활을 하던 몇 년 동안에 그 유명한 청색시대가 구축되었습니다.(1901-1904)


삶에 대한 지치지 않는 탐구와 열정이 넘치는 이 젊은 천재 화가에게 가난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슬픔과 고통은 삶에 대한 명상의 기회와 깊은 통찰의 계기가 되어 그의 예술에 토양이 되어주었습니다. 깊고 차가운 청색으로 표현된 그의 작품들 속에는 우울함, 고뇌, 허무, 빈곤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가 처한 상황에서 바라보는 삶과 이웃들의 모습에서 발견한 삶의 느낌을 표현하는데 푸른색만큼 적합한 색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청색 하나만으로도 그 명암과 톤을 달리함으로써 자신의 감정과 시각을 충분히 전달하는 능력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그의 청색은 다만 절망과 우울함의 상징만이 아니라 그가 바라 본 새벽의 깊고 아름다운 하늘의 색이었을 것입니다. 어둡고 칙칙하고 비좁은 방에서 이젤도 없이 밤새 바닥에 허리를 구부리고 작업을 하고 난 뒤 창 밖을 보았을 때, 푸르고 깊은 하늘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것을 바라보며 젊은 피카소가 느꼈을 감동을 상상해 봅니다. 가슴 깊이에서 서서히 번져 오르는 삶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벅차게 그를 사로잡았을 것 같습니다. 청색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관람하였을 때 제 자신이 느꼈던 감격은 “숨막힘”이라는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흐름, 삶과 죽음, 절망과 구원의 긴 서사가 한 화폭에 압축되어 있는 ‘삶’이란 작품에서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생각에 젖기도 했고, 비참한 현실을 대변하는 그의 청색 인물들을 보며 깊은 공감과 슬픔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빈 배 한 척만이 호젓이 떠있는 바닷가에 고개 숙인 여인이 어린 아이를 가슴 깊이 껴안고서 있는 작품 ‘ 바닷가의 여인과 아이’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암울하기만 합니다. 기도를드리는 듯 손을 모으고 있는 여인의 얼굴에는 수심의 그림자가 있고, 작은 아이는 엄마의 품에 곤히 잠들어 있습니다. 온통 푸르른 화면과 창백한 그녀의 얼굴과 손에 대비되는 붉은 꽃 한 송이가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그녀의 모아진 손에 들려 있는 붉은 꽃만이 푸른 계열의 색조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아이를 안고 빈 바닷가를 거닐고 있는 여인의 상심과 슬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근심과 아이에 대한 간절한 소망..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기도가 깊고 푸른 우울의 바다에서 홀로 붉게 피어난 꽃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지요.


삶의 가장 비참한 상태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삶에 대한 관조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막막하기 만한 어두운 바다와 같은 삶의 한 복판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은 어둠과 완전히 구별되는 색조의 꽃을 피울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시기에 피카소를 사로잡던 소재 중의 한 대상은 맹인이었습니다. 영양 실조와 질병으로 인한 실명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대상이면서 또한 화가에게 절대적인 시각을 내면적인 시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반영하기에 적합한 모델 이었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어둠, 절망, 빛의 상실을 의미하는 맹인의 모습에서 화가는 삶의 다른 부분을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 맹인의 식사’라는 작품 속에 그려진 맹인의 움푹 패인 눈두덩과 가느다란 손가락은 지치고 고달픈 하루의 끼니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맹인 앞에 놓인 한 덩이의 빵과 작은 물병이 전부인 초라한 식탁에서 그의 고난과 덧없는 삶의 단면을 볼 수 있는데, 그의 여윈 손이 닿아 있는 물병과 빵은 푸른색의 전체에서 일탈한 붉은 색과 황금색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생명을 상징하는 붉은 색과 노란 색을 통해 물병과 빵이 그에게 주는 의미를 이렇게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화가는 내면적인 시각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맹인은 손의 감각을 통해 빵과 물이라는 물질에서 생명의힘을 보게 됩니다. 그 맹인의 손길은 차갑고 우울한 세상에 색채를 더함으로써 생명의 끈을 잡게 하는 화가의 손길인 것입니다. 절망과 비탄으로 맞는 저녁 식사에서 더듬어 찾아 낸 물병과 한 덩이 빵은 그에게 생명을 약속하는 양식이기에 화가는 맹인의 손에 시각을 찾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그림에 한해서 화가는 절대자이며 권능의 손길을 갖고 있습니다. 지치고 참담한 생활 속에서 상처 받은 인물들을 재현하고 그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묻기도 하며, 그들의 삶의 방향을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어 내기도 합니다. 바닷가의 여인의 손에 아름다운 붉은 꽃을 그려 넣어 주거나 맹인의 가난한 식탁에 놓인 물과 빵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하면서 화가는 작품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누군가의 손길이 닿으면서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 아름답게 채색되어지거나 삶의 꽃 한 송이로 피어나는 것을 느낄 때가 없으신지요? 우리의 고난에의미를 부여하고 어둠에 빛을 주기도 하는 손길에 의해 내 삶이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슬픔이 감사와 감격의 순간으로 바뀌어 버리는 그 따스한 손길을 경험하신적이 있으신지요?


세상이라는 넓은 화폭에 우리를 그려 넣고 그림이 완성되도록 다듬고 있는 그 손길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