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3년 12월호

 

화려하고 무성했던 잎새들이 다 떠난 나무들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낍니다.



갈색으로 변한 잎새들이 아직 떠나지 못한 채 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계절의 바뀜을 무척 아쉽게 합니다.



한 때 푸르렀고 단풍 들었던 기억들을 접고 숙연하게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며



삶의 한 자세를 깨닫기도 합니다.



 



옷을 다 벗어버린 나무는 겸허함과 삶에 대한 의지와 힘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습니다. 비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깨우고, 땅을 기름지게 하기 위해 잎새를 다 버리는 것은 내일의 풍성함을 약속하기



위한 헌신으로 보여집니다.



 



간신히 매달려 있는 잎새들을 보다가 한 시인의 시에 담겨 있는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저물어 가는 한 해를 돌이켜 보며 나의 혀는 어떤 모습의 나무를 그려내었는가



자문해 봅니다. 푸르고 싱싱한 잎새로 다른 이들을 축복하고 위안을 주었는지,



아름답고 진실한 잎새로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주었는지,



검게 시들은 잎새처럼 분노와 슬픔을 느끼게 했는지..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들어서 혀를 감추고 싶어집니다.



 



얼마 전 모 전시회에서 본 작품들 중 관심을 끌던 조각이 있었습니다.



나무 기둥 위에 분홍색의 커다란 혀가 달려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분의 다른 작품을 많이 접하지는 못했지만 그곳에 있는 몇 점의 작품을 통해서



그 작가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 깊은 관심과 통찰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작품을 통해 모든 관계의 교량이 되는 언어 소통에 대한 반성과 문제를 스스로에게



제기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나무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처럼 보이는 혀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그 나무를 쪼개는 칼처럼 보여지기도 했습니다.



우리 몸의 아주 작은 부분인 혀가 몸과 영혼을 쪼개거나 두터운 관계를



순식간에 파괴하는 칼로 작용할 때가 얼마나 많은 지요.



거대한 숲을 불사르는 불씨가 되기도 하고, 배의 방향을 정하는 작은 키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야고보서 3) 혀라는 출구를 통해 천국을 경험하기도



지옥을 경험하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는 미움과 시기, 그릇된 판단과 교만한 생각들이



험담과 자랑의 언어들을 통해 밖으로 나와 다툼과 분열을 일으키고



상처를 입히곤 합니다. 또한 그 칼은 그럴 수록 자신의 몸 깊이 박혀서



스스로를 상처 입히고 어둠의 세력을 불러옵니다.



내 입 속의 검은 잎이 두렵다는 시인의 고백처럼 내 몸의 작은 한 부분인 혀를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에 화가 나고, 그 위력이 두렵기조차 할 때가 많습니다.



 



거짓과 위선, 그럴싸한 미사여구로 포장된 미혹의 영, 추악한 욕망,



비수와 같이 날카로운 공격들이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밖으로 나올 때



나의 혀는 죽음과 절망의 검은 잎에 불과할 것입니다.



위로와 격려, 진실이 담긴 조언, 지혜와 평안을 주는 대화, 마음을 드러내는



소박하고 정직한 표현들이 나의 입술에서 나와 누군가에게 빛을 주고



기쁨을 줄 수 있다면 나의 혀는 아름다운 분홍빛의 꽃이 될 수도 있겠지요.



 



저희 이웃에 사는 한 미국인이 한국인 친구에게 배운 한국말을 자랑스럽게



저에게 들려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할 줄 아는 모든 한국말들은



저를 무척 당황하게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욕설에 가까운 언어나 어리석은 농담의



표현들만이 그가 아는 한국어였으니까요. 저는 그에게 새로운 단어를 몇 개 가르쳐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답습니다, 멋져요, 건강하세요



무엇보다 중요하게 몇 번이나 반복시킨 표현은 “사랑해요“ 이었습니다. 



 



그가 알지도 못하고 내뱉은 언어들이 그 자신을 얼마나 천박한 인격체로



보이게 하는지, 언어는 한 사람의 인격을 담는 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 아이처럼 저도 새롭게 언어를 익히고 싶습니다.



영혼을 더럽히고 다른 이를 상처 입히는 말들은 제 언어 창고에서 버려내고 싶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과 살아가는 일에 대한 감사의 노래를 부르는 혀,



기도하는 혀, 사랑한다고 외치는 혀를 갖고 싶습니다.



 



새들이 찾아와 다투어 노래하고 그늘에 쉬기 위해 나그네가 찾아와 머무는



푸르고 싱싱한 잎새 무성한 나무가 될 수 있기 위해 검은 잎새의 혀를,



칼 같은 혀를 버리렵니다. 한 해가 저물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