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4년 1월호



도자기 하나를 굽기까지 여러 과정이 필요합니다. 먼저 흙을 부드럽게 만들기도 하고 안에 기포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손으로 주무르고 두드리며 다져 줍니다. 그리고 모양을 내기에 적당한 수분을 더해주며 물레를 돌리며 형태를 잡아갑니다. 이 때 너무 건조한 흙은 단단해서 기포를 없애기가 힘들고 너무 습한 흙은 모양이 잘 변형되기 때문에 적당함을 유지하면서 작업하는 요령을 터득해야합니다. 물레를 돌리기 전에 어떤 그릇을 빚을 것인가 계획을 가지고 시작할 때도 있지만 무작정 시작하고서 마음가는 데로 손 가는 데로 만들기도 합니다. 마치 즉흥연주를 하듯이 그 때의 기분이나 흙의 기초 작업이 되가는 정도에 따라 계획 없이 만드는 과정은 미지의 완성품을 기대하게 하는 즐거움을 줍니다 .


어떤 때는 머릿속에 완성된 그릇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스케치까지 해놓고 시작하지만 중간에 실수를 하기도 하고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서 중간에 전혀 다른 모양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릇을 빚는 과정 외에도 건조, 다듬기, 문양 넣기, 초벌구이, 유약 채색, 재벌구이의 여러 과정과 긴 시간을 걸쳐서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도자기가 탄생됩니다. 이중 어느 과정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결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굽는 과정에서 균열이 일어나기도 하고 유약이 골고루 입혀지지 않거나 예상과 다른 색을 나타내기도 하고… 한 과정 과정마다 최선을 다하고 신중하지 않으면 결과는 너무나 정직하게 드러나 버립니다 .


모든 과정이 다 그렇게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물레를 돌릴 때 흙의 중심을 잡는 일입니다. 빠른 속도의 전기 물레를 돌리다 보면 조금만 중심이 기울어져 있어도 흙이 밀려 나가기도 하고, 억지로 계속 만든다 해도 그릇의 균형이 맞지 않게 되어 버립니다. 간신히 마무리지어 놓아도 그릇의 두께가 고르지 않게 어느 한쪽 면이 두껍거나 입구가 너무 넓어지게 되어 흉한 모양이 되거나, 바닥이 기울어지는 불안정한 그릇이 되어버립니다. 수분의 정도는 조절할 수도 있고 물레의 속도나 건조 정도도 조절이 가능한 것이며 채색이 맘에 안 들면 다시 칠을 할 기회도 있습니다만, 중심이 잘못 잡힌 그릇은 나중에 어떤 노력과 재주를 부려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높이가 좀 있는 그릇을 만들려면 더욱 중심의 정확성이 요구됩니다. 높고 커다란 그릇을 아름답게 균형 잡히게 만드는 가장 필요조건은 정확한 중심점을 찾는 것입니다.


중심만 확실하게 잡히면 그 이후의 과정, 즉 모양을 내는 과정은 그야말로 일사천리가 됩니다. 그런데 도자기를 만들 때마다 가장 힘들고 좀처럼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중심 잡는 일입니다. 경험이 있으신 분은 아마 빙그레 웃으시며 동감하실 것입니다. 이 문제는 살아가는 모든 과정에도 역시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너무 건조하지 않게, 너무 습하지 않게 적당하게 부드러운 흙을 만지듯이, 마음의 상태도 너무 강퍅하지 않게, 너무 감상적이지 않게 온화하고 적응력 있는 상태로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모든 판단에 있어서도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함을 지키는 일이나, 요즘 같이 기존의 윤리나 도덕개념이 파괴되는 시대에 가치관을 정립하는 일은 스스로 늘 혼란을 일으킬 정도로 어렵고 민감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럴싸한 이론으로 위장한 거짓 진리가 만연하고, 인간보다는 물질이 가치를 더 부여받는 이 혼란한 시대, 빠르게 변하는 각종 이론의 충돌과 지나친 인본주의의 주장으로 모든 것이 무가치하거나 모든 것이 수용되는 극단적 모순이 공존하는 이 시대에 현기증을 느끼곤 합니다. 어디에 내 삶의 중심을 세울 것인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이 없는 중심을 잡고 다양한 삶의 현장에 적응할 것인가, 바로 그것이 해결의 열쇠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살면서 실패도 하고 뜻하지 않은 곤경을 겪으며 계획과 꿈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될지라도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라는 중심점이 확실하다면 좌절과 포기 없는 성실한 삶을 살게 되겠지요. 자전거를 탈 때 중심을 지키기 위해 부지런히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듯이 말입니다.


중심을 잡는 일이 어느 순간 예리한 직감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서 서서히 중심점에 다가가는 것일 것입니다. 감정의 통제에서 번번이 실패하고 어떤 판단 앞에서 망설이고 이리 저리 휩쓸릴 때마다 제 자신의 한계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어떤 철학이나 이념도 확실한 중심을 잡아주지 못하고 공허한 사념의 고민을 갖게 하곤 했습니다. 물론 그러한 고민은 지적인, 정신적인 성숙을 하게 해주는 가르침을 주었기에 귀한 것이지만, 실제적인 삶의 지혜나 영적인 깨달음이나 성숙한 자아를 갖게 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말씀에 조금씩 다가가고 매일의 큐티를 통해서 말씀을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면서 어디에서 중심점을 찾아야 할 지 조금이나마 깨달아 가는 것 같습니다. 새해에는 그 중심에 조금 더 가까이 가기를, 매일 매일의 삶이 확실한 중심에서 빚어지는 아름다운 그릇으로 변해 가는 모두의 모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