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3년 8월호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키 크고 잎새 무성한 나무들이 무척 많아서 여름이 되면 곳곳에 울창한 숲이 생깁니다. 어느 날 갑자기 건너편의 집들이 사라진 아침을 맞으며 드디어 초록의 시절이 왔구나하는 감각적인 시간을 느끼게 됩니다. 이른 아침 나무들 속을 산책하는 기분은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딛는 기쁨을 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숲 속엔 새로운 사회가 형성되어 나름대로의 질서 있는 살림을 사는 존재들이 느껴집니다. 나무들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식량을 구하는 작은 동물들, 여유롭게 산책을 하는 노루 가족, 나무 밑둥에 기거하는 버섯이나 이끼류와 거기에 서식하는 곤충류등…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종류의 생물체들의 공동체를 목격하며 그들이 이루어 놓은 경이로운 세계를 바라보곤 합니다.


들 토끼, 오소리, 고슴도치등의 작은 동물들을 아주 흔하게 보곤 하지만 가장 흔하고 가깝게 대하는 것은 다람쥐들입니다. 저희 아파트 주차장과 뜰에는 늘 다람쥐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마치 이웃의 한몫을 차지하려는 듯 행동합니다. 하루에도 두어 번 아파트 테라스에 올라와서 집안을 기웃거리는 당돌한 모습이 애완견 같습니다. 끼니를 손쉽게 구하는 방법을 터득한 이들은 숫제 단골을 정해 놓고 내 집처럼 찾아와 먹이를 청합니다. 바구니 따위를 내놓으면 새끼를 치고 아가들이 자랄 때까지 기식하는 영리한 어미들도 있습니다.


저희 집에도 그런 다람쥐 친구들이 있어서 그들이 땅콩을 가장 좋아하고 콘칩과 초코렛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늘 창가에 준비를 해두고 있습니다. 지난봄에 저희 집 테라스에서 새끼 세 마리를 출산한 어미와 아기 다람쥐들이 장난치며 노는 모습을 재미있게 바라보며 함께 여름을 맞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다 자란 아기 다람쥐들은 한 둘씩 어미를 떠나기 시작했고 어미도 다른 처소로 옮겨갔습니다. 그러나 요즘도 그 친구들은 끼니를 챙기러 거의 매일 저희에게 찾아옵니다. 어쩌다 오지 않는 날은 무슨 일인가 걱정도 되고 기다릴 정도가 되었지요.


그런데 야생해야할 그들이 사람들과 너무 가까워지면서 몇 가지 걱정이 생겼습니다. 주차장이나 차도에서 너무나 자주 발견되는 그들의 주검을 볼 때마다, 그들이 적응하기에 인간의 세계는 복잡하고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머물러야할 곳은 역시 안온한 숲의 세계인 것 같습니다. 또 다른 걱정은 그들이 그렇게 쉽게 주어진 음식에 길들여진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힘들게 구한 열매 보다 사람들이 주는 고소하고 달콤한 먹이에 익숙해지고 나면, 거칠고 딱딱한 음식을 구하기 위해 애쓰려는 마음이 사라질까 하는 우려가 생깁니다. 자신이 속한 자연에 적응하지 못해 늘 낯선 세계를 기웃거리거나, 몸은 다람쥐인데 생각은 자신이 사람인줄로 착각하는 돌연변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하게 됩니다.


얼마 전 시카고에서 타올랐을 열기가 그리습니다. 뜨거운 가슴과 정화된 영혼의 아름다운 모습들, 가슴 벅차게 밀려오는 소명감과 결의들… 지금쯤 사방으로 흩어져서 각자의 삶의 현장으로 파송되었을 코스탄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지니고 있을 감격과 열의를 부러워합니다. 제 자신 신앙적인 나태에 빠질 때면 코스타 집회에서 보낸 시간들과 그 때의 영적 각성을 떠올리며 힘을 얻기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기도 합니다.


코스타에 다녀와서 그 감동의 시간이 얼마나 오래 내 삶에 영향을 주었고 신앙적인 결의를 지속시켰는가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실감에 빠지기도 했고 냉소적인 감정이 생기기도 했고,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절망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각종 부흥회, 찬양집회, 간증회, 중보기도 모임등에 참여하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드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되곤 했습니다. 영적인 충만감과 다시 눈뜨는 듯한 기쁨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이러한 상황에 스스로 자문하며, 신앙적 자립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주 생각해 보곤 합니다. 혹시 제 자신이 스스로 찾고 구하는 신앙적 진리보다는 쉽게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는 신앙의 열매에 익숙해져있는 것은 아닌가, 매일 매일의 일상 속에서 말씀을 묵상하며 실천하는 신앙보다는 피상적이고 달콤한 감정에 더 매료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 안에서 치열한 내적 전쟁을 치르며 얻어낸 말씀의 의미만이 내가 겪는 절망과 상처를 극복하게 해주며, 세상을 향한 힘과 비젼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단단한 신앙적 자아를 갖게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순간순간 들려오는 말씀에 귀 기울여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은 오랫동안 다진 흙으로 그릇을 빚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매일 밥을 먹으며 생활의 원동력을 얻듯 습관화된 큐티는 영적인 능력을 키워주며 늘 열려있는 마음과 감동을 줍니다.


초코렛에 길들은 다람쥐가 도토리를 구하기 위해 벌판과 나무 위를 오르는 일을 게을리 한 다면 그것은 자연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적응력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나무의 향내와 풀잎의 감촉에서 느끼는 기쁨을 잊은 다람쥐는 비록 벌판에 살고 있지만 이미 작은 틀 속에 갇혀서 사는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되겠지요. 진리를 발견하는 기쁨은 들판을 달리고 높은 산을 오르며 자신 안에 있는 소리를 들을 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깨달은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것입니다.


벌판에서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하여 새로운 이름과 삶을 얻은 야곱을 생각하며 숲을 바라봅니다. 그가 끈질긴 씨름을 통해 드디어 하나님과 대면한 사건이 우리 모두의 삶에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