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2년 9월호

나는 사랑에 빠졌답니다.


그는 나를 위해 창밖 가득 꽃과 나무를


심어 놓았습니다.


나뭇잎이 반짝일 때 마다 그의 웃음을


꽃잎이 흔들릴 때 마다 그의 미소를


떠올립니다.


바람으로 내게 다가와 수많은 이야기들을


속삭이는 그도 사랑에 빠진 것 같습니다.


나를 보기 위해 햇살이 되어버린 그


나를 지키기 위해 별이 되어버린 그.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참으로 오래 기다렸건만


성내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에 넘쳐 달려온 그의 따스한 품을 기억합니다.


그는 조용히 흐르는 강물입니다.


그의 앞에 앉아 나를 들여다 봅니다.


그리고 나의 손과 발을, 혀와 눈을 닦습니다.


아무리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 얼룩을 그에게


보여주었을 때


그는 하염없는 눈물로 그것을 지워 주었습니다.


나는 사랑에 빠졌답니다.


생의 어느 한 순간에도 그를 잊지 않고


생의 작고 작은 부분에서도 그를 느낍니다.


하늘 가득 노을이 물든 저녁


떠나가는 철새들의 무리를 바라 보다가


문득 외로워져 돌아보면


언제나 그가 가까이 다가와 노래를 들려 줍니다.



낡은 외투처럼 남루하고 무거운 삶을 끌고 가던


지난날 그를 만난 곳은 뜨거운 사막이었으나


그는 내게 별이 쏟아지는 사막을 보여 주었습니다.


언제나 걷던 길에서


언제나 만나던 사람들에게서


언제나 하던 일들에서


볼 수 없었던, 들을 수 없었던, 느낄 수 없었던


그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내안에 들어 옵니다.


용서할 수 없던, 참을 수 없던, 견딜 수 없던


그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떠나버렸습니다.


나는 사랑에 빠졌답니다.


그도 사랑에 빠졌답니다.


세상은 온통 빛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