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이야기이다. 어느날 사랑하는 어떤 형제가 나의 사무실에 들렸다. 너무 반가웠다. 반가움과 동시에 또 놀라버렸다. 형제의 머리털이
보이지 않아서 였다. 머리털 다 어디에 두고 왔냐고 물었다. 형제는 머리털 없는 머리를 극적거리며 “지난밤 삭발배
버렸어요!”하고 대답했다. 삭발을 해야할 어떤 큰 결심이 있냐고 물었다.

형제가
삭발은 한것은 영어 때문이었다고 한다. 영어가 자기때문에 고생하고, 자기도 영어때문에 고생한다는 이야기다. 맞는 말이다.
미국온지 6개월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유창하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특히 대학원 수업은 토론위주인데 강의 들어갔다가 기침한번 하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를 듣고 나와야 하는 아픔은 너무 크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 였다. 미국유학 첫학기 수업에서 강의실이 다음부터는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교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같은 방에서
한시간정도 기다리다가 화가 나서 교수에게 달려간적이 있었다. 휴강을 하려면 칠판이나 강의실 문에 휴강사인을 붙이기라도 할것이지
남의 귀한 시간 그렇게 무시할 수 있느냐 (나는 그렇게 말한다고 머리속으로 생각했지만, 실제 나온 말은 어떻게 나왔는지 모른다)
뭐 그렇게 안하무인격으로 화가나서 항의한적도 있었다. 교수가 웃으면서 결석을 하려면 미리 교수에게 통지하는것이 예의 인데 왜
무단결석을 하느냐라고 되물었다. 물론 나의 논리로 나의 질문에 대답했지만, 친절하게 앞으로의 강의가 다른 빌딩 103호에서
있을것이라고 하며 쪽지에 적어주며 나를 돌려 보냈다.

다시 삭발한
형제의 이야기로 되돌아가자. 형제는 영어를 잘할때 까지 삭발은 물론 앞으로 시리얼 (cereal)만 먹고 지낼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리얼 (cereal)만 먹다가 유학와서 객사할것 같아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얼른 자리에 앉아서 나와 이야기하며
진정하자고 했다. 그리고 집에 가서 밥하고 김치먹고 힘을 내라고 권유했다. 왜냐면 영어가 잘되려면 몇년이 걸려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유학생들, 특히 대학원생들은 강의실 아니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외에는 외로우니 한국학생들끼리 모여서 식사도 하고
테니스도 치면 놀기도 한다. 금요일 저녁에는 한인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를 가고, 일요일은 한인교회에서 우리말로 예배를 드린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영어를 사용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강의실 벙어리에다가, 도서관에서 책빌릴때 2-3분 사서와
대화하는것, 식당에서 무엇을 주문할때 몇마디 하는것을 제외하면 영어를 향상시킬 기회가 전혀 없다. 

삭발한
형제뿐 아니라 이렇게 영어로 고생하는 유학생들에게 내가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양로원이나 장애인들이 있는곳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라고 권유한다. 자신이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곳에 가서 잘 하던지 못하던지 떠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져야 한다.
양로원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죽을 입에 넣어 드리면서 한국이야기도 하고, 전공이야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외로운
할아버지 할머니는 너무도 감사히 서툰영어를 들어 준다. 짜증내지도 않는다. 워낙 외로운 분들이 많다보니 자신과 있어주는것 만도
감사해 한다. 

양로원에
있는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교육 수준이 상당히 높다. 유학생때 만난 어떤 할아버지는 교육학과에서 연구방법론과 통계를 가르친
은퇴교수였다. 책도 몇권 썻다고 한다. 통계로 고생하던 나는 할아버지께 기본 개념을 배워 아주 잘 사용한적이 있다. 

나는 미국에
온지 2년 반만에 전공필수과목을 가르친적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얼마나 불쌍했는지 모른다.
열심히 강의도 준비했지만 그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들의 눈동자를 보았을때 도무지 잘 알아들은것 같지 않고 불쌍해서
강의를 들어주는것 같은 생각만 지배했었다. 그러나 다음학기에 또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을 받고는 매우 기뻐한적이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을 찾지 못한탓이 더 컷을 게다. 지금생각해 보면 그나마 헤메면서 영어로 강의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자원봉사경력이 큰
도움을 주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나는 일주일에 10시간정도 장애인들과 시간을 보냈다. 어떤날은 그들과 2박 3일 캠핑을 떠나기도
했다. 물론 장애인들의 레크리에이션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가는 것이기에 교통편의, 음식, 침낭 등 모든것을 그곳에서 준비시켜
주었다. 나는 자원봉사를 통해 미국의 문화도 배웠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그때 사귄 미국친구 (장애담당 디렉터)의 소개로 그
아이의 부모집에서 약 2년을 살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줄때 기쁨과 보람을 찾는다. 영어도 배우고 기쁨과 보람을 찾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삭발보다는 더 기가 막힌 영어
공부 방법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장애인들의 발과 손을 씻으며 사랑을 나누는것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일이다. 사회에서 그 가족 조차도 찾지 않은 소외된 많은 이들이 있다. 집이 없는 Homeless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자원봉사도 있고, 집없는 사람 집을 지어주는 Habitat of Humanity (
http://www.habitat.org/)도 아주 좋은 기관이다.

엉어는 말을
배우기위함이 아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들을 섬기고 사랑하기 위함이다. 언어는 사랑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질때 바른 언어를 구사 할 수 있다. 칼빈대학의 동료인 바바라 카빌교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Foreign
language education prepares students for two related callings: to be a
blessing as strangers in a foreign land, and to be hospitable to
strangers in their own home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