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두 달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먼저 소개 할 까 합니다. 가르치는 학생 중 시력이 전혀 없는 O라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멕시코에서 이민을 와서 살고 있는데, 시각 장애를 갖고 있어 다른 형제, 자매들보다도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하지만 먹고사는 일에 많은 신경을 쓰다 보니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O라는 학생은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때때로 지나 칠 때로 말을 많이 해서 학교 생활, 특히 학급 안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언젠가 그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  O: Ms. Cha, since you are a teacher, you know everything and you can helpme. right?
-  Ms. Cha: Ah! Maybe, but not always, just because I teach you, which do not mean that I know and can help you everything.
-  O: Well, Ms. Cha, do you know how can I get some vision? I mean, Can you give? No, help me to find some vision?
-  Ms. Cha: What? What do you mean?
-  O: Well, I think it is not fair that I can’t see anything. I want to see so I can play the computer like some other kids.
-  Ms. Cha: Well, you still can play the computer with speech output.
-  O: No, I just want to see and help me to get some vision.


한 참 이런 대화를 하는데, 함께 일 하는 보조 교사인 Mrs. W가 이런 말을 합니다.


-  Mrs. W: You know what? Maybe, God will give you some vision so you can see.
-  O: God? I can’t see him either.
-  Mrs. W: No one can see him. But if you believe in him, he will bring a vision for your life.
-  O: Oh! Then, I can see, right?
-  Mrs. W: physically, you still wont be able to see, but you will see and feel his guidance as you grow up.


시력, 흔히 비전 (vision)이라는 단어는 시야, 보이는 것, 광경, 환상 등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눈을 통하여 우리들은 사물을 보고 이해하며 배운다고 대부분의 교육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시력이 전혀 없는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 비해 성장 발달이 좀 늦어 질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언어와 행동을 보고 따라 하거나 판단하여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없다는 것에 기인한 생각일 것입니다. 우리의 옛 속담에도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는데, 백 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는 의미로 그 만큼 보는 힘, 시력의 효율성을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육안이 생활하면서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들을 습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듯이 영적인 눈, 영안 역시 우리의 삶에서 특히, 신앙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핵심인데, 첫째, 영안은 세상 적인 삶과 영적인 삶을 분리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의 일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영안 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 치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인하여 간 것이니라. (로마서 8장 5-10절)


영적인 시력이 좋은 사람은 순간적인 기쁨과 쾌락 속에서 잠깐 동안의 행복과 만족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을 좇아 즉, 하나님 안에 거하면서 그 안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삶을 추구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향한 계획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볼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많은 성경적 인물들, 노아와 아브라함, 모세, 선지자들과 제자들, 베드로와 요한과 같은 인물들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계획하시는 일들에 동참했고 순종하며 열심히 주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의 삶을 통해 평범함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 특별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마음, 즉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눈을 갖고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잇겠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눈을 가진 사람은 자신들이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를 원하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실천합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만을 바라보는 것 외에도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들을 섬기고 돌보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렵고 약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꾸준하게, 가르치는 교사의 자세로 섬기셨던 만큼 영적인 눈을 가진 사람들은 헐벗고 힘든 자들을 사랑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욥기 10장 4절 말씀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눈이 육신의 눈이나이까? 주께서 사람이 보시는 것처럼 보시리이까? 결국 하나님의 눈을 가진, 그러니까 영적인 시력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혹은 학교에서 세속적인 삶을 뒤로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O라는 학생은 지금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그 분의 부모님은 그가 갖고 있는 시각 장애에 대해 매우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고 그의 학교 생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보다는 무관심과 따뜻한 애정 없이 그를 양육하고 있는데, 새로운 학교에 가서라도 좋은 선생님 만나서 충실히 학교 생활을, 그리고 언젠가 사람은 육안으로 살지 않고 영안으로 산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많은 코스탄 여러분, 이제 2004년도 새해 새 아침이 밝아 오는데, 올해에는 20/20 (1.0) 보다 더 좋은 영적인 시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해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