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호(가명)는 나와 같은 교회에 다녔던 장애우 형제이다. 지금은 은호가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평강 가운데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은호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장애우를 섬기시는 강 목사님과 함께
방문했을 때이다. 그 당시 강 목사님과 나는 일주일에 한번 장애우들을 찾아 심방했었다. 강 목사님과 함께 은호 집을 방문했을 때
오래된 주택에 대문은 열려 있었고 은호는 집에 혼자 있었다. 도둑이 들어도 가져갈 물건이 없었겠지만 은호가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아예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은호는 근육병을 앓고 있었다. 근육병은 처음에는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다가
점차 몸 위로 올라가면서 근육에 힘이 빠지면서 진행되는 병으로 진행성근마비라고도 부른다. 심한 근육병 환자들은 똑바로 앉아있지를
못하고 엎드려 있는 경우가 많다. 은호가 그랬다. 은호는 거의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다리
한쪽을 절단하시고 치료 중이셨기에 어머니는 병원을 오가며 남편과 아들을 동시에 수발하셔야 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깝게도 어머니
또한 다리 한쪽이 불편한 지체 장애셨다.

은호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밝은 성격 덕분에 우리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은호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강 목사님은 긴 널빤지를 망치와 못으로 뚝딱이며 근육병인 은호가 휠체어를 탈 수 있도록 목수 일을
하고 계셨다. 은호를 교회에 나오게 하기 위해 엎드려 지내는 은호가 탈만한 휠체어를 만들고자 목사님이 아이디어를 짜 낸
것이었다.

드디어 은호가 처음으로 교회에 나왔다! 수년 만에 첫 외출인 것이다. 휠체어 바닥에 긴
널빤지를 깔고 그 위에 조심스럽게 엎드려 있었고 교회 신실한 형제가 안전하게 휠체어를 운전하였다. 마음 따뜻하고 헌신적이신 강
목사님의 섬김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처음에 약간 낯가림하던 은호도 성도들의 환영과 친절함에 조금씩 마음을 열었고 나중에는 아예
오래된 식구처럼 우리와 하나가 되어졌다.

어느 날 몇몇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교제하다가 은호가 “저는 평생 바다에
한 번도 못 가봤어요.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TV 통해 보았을 뿐이지요.”라고 말했다. 모두들 놀라며 “이번 여름에 은호에게
바다 구경시켜주자!”라고 뜻을 모았고 아예 장애인위원회 여름 캠프를 강원도 옥계로 정하였다. 그해 여름, 드디어 수십 명의
장애우와 수십 명의 봉사자들이 은호에게 바다구경 시켜주기 위해 대장정에 나섰다.

바다가 가까운 옥계 어느 교회를 숙소로 하여 우리 모두는 3박4일 동안 드넓은 바다,
해지는 저녁, 맛있는 음식, 가족 같은 친밀한 교제 등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즐겼다. 특별히 장애우 형제자매들을 한명씩 모두
조심스럽게 바닷물에 몸을 담구어 주었을 때 그들의 입에서 나오던 놀라움과 감격의 탄성, 모래사장에서 휠체어 밀기가 너무 힘들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즐거워 함박웃음 짓던 일, 예수님을 영접한 형제자매에게 하얀 침례복을 입힌 후 고무 튜브 위에 눕혀 건장한
청년 봉사자들의 호위 속에 서서히 바다 속으로 들어가 침례 주던 일, 이때 행여 파도가 밀려올까 몸으로 인의 장막 만들고 울타리
섰던 일… 정말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들이었다.

특별히 모래사장에서 휠체어에 엎드린 채 바다를 바라보며 은호가 한 말은 지금도 생생하다.
“사모님! 어떻게 저 많은 물들이 땅을 삼키지 않지요? 너무너무 신기해요! 하나님 대단하셔요. 정말 창조주 하나님이세요.”
은호의 말에 오히려 놀란 사람은 바로 나였다.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은호에게는 만유의 주재,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감격스럽게 체험하는 사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후에 시편 104편 9절에서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는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 역시 하나님의 섬세하신 창조의 계획이셨음을 깨닫게
되었다.

한 명을 위해 수십 명의 형제자매들이 사랑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한편의 드라마였지만,
그 드라마의 엑스트라로 섬기고 온 봉사자들에게도 사람과 하나님에 대해 더 깊고 넓은 깨달음과 교훈을 얻은 유익한 캠프였다. 나와
함께 참여한 아들(그 당시 초등학교 4학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방학 숙제로 낸 글짓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목은 “사람의
아름다움”이다.

이번 여름방학 때 어머니와 함께 장애인 캠프에 갔다. 그저
봉사하자는 마음으로 갔었는데 오히려 많이 즐겁게 지내고 중요한 것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누구나 한 가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뇌성마비 우철 형아의 눈은 누구도 비길 자 없을 정도로 눈이 맑고 아름다웠다… 시작부터 끝까지 웃음과
미소를 띈 경훈 형아는 너무나도 귀하고 아름다웠다… 갈매기와 파도소리가 우리의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꿈만 같은 여름 캠프를 마치고 돌아 온 후, 그해 가을의 문턱에서 은호는 조용히 주님
곁으로 갔다. 넓고 푸른 바다, 그 바다가 땅을 덮지 못함을 보고 놀라움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던 은호… 그는 드디어 이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눈으로 뵈오며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그분께 마음껏 올려드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