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2월은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였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고3의 기간을 불안과 방황으로
보내다가 가정선생님의 전도로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당시에는 QT가 무엇인지 몰랐음에도 나를 만나주시고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주신 주님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파랗고 자그마한 신약성경을 들고 다니며 집에서 부모님 눈치, 학교에서 친구 눈치
살피며 성경말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버스를 타고 있을 때는 오래 기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학교 청소시간에는 친구들과
마룻바닥을 문지르며 불안과 초조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기도 하였다. 

  하나님을 만난 5월부터 가슴 설레며 기다리던 날이 있었는데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일, 바로 크리스마스였다. 12월에 들어서자 어떻게 하면 크리스마스를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기도하다가, 밤
새워 성경을 읽으며 주님을 사랑하기로 결정하였다.  잠이 많기로 유명한 내가 밤을 새운다는 것은 보통 큰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나의 사랑과 헌신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셨다. 아니, 그 이상을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으실 만한 분이셨다. 
드디어 12월 24일 밤, 성경을 두 손에 들고 마태복음부터 읽었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그때
느꼈던 죄송함과 부끄러움은 차라리 그분을 향한 사랑이었으리라.

  1990년 12월은 후회 없는 사랑을 이웃과 나눈 특별한 기억이 있다.  미국에서 유학 중일 때 한인교회를 다녔는데 거기서 만난 김
자매와의 교제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분은 미국인 남자와 결혼하여 테이지라는 우리 아들 진호와 동갑내기 아들이 있었다. 
남편이 마약과 방탕한 생활로 참으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신앙으로 굳건히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아들은 가정환경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산만하여 때론 교인들의 눈총까지 받아 김 자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심지어는 교회에서까지
마음이 편치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나와는 마음을 터놓고 서로 의지하며 지냈는데 참으로 귀한 우정이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우리 가족은 김 자매의 집을 방문하기로 하고 테이지의 선물을 사기 위해 쇼핑을 했다. 겨울에도
허름하고 얇은 옷을 입고 나오는 세 살배기 아이를 위해 ‘털 잠바’를 사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때 우리의 생활이 넉넉지 못했기
때문에(유학 간 후 3년 정도 까지는 우리 돈으로 햄버거를 사 먹은 기억이 없다.) 부담이 되었지만 실용적이고 좋은 털 잠바를
열심히 골랐다.  그런데 갈등이 생겼다. 모자가 없는 털 잠바와 모자가 달린 것과는 돈의 액수가 많이 차이 났던 것이다.
망설이다가 모자가 달린 것으로 구입한 후, 김 자매 집을 향해 지도를 찾으며 한 시간 넘게 고속도로를 달려갔다.  반갑게
맞이하는 김 자매는 우리가 오기를 아침부터 들뜬 마음으로 기다렸다고 울먹였다.

  그
후 다음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 가을, 테이지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주님 곁으로 가버렸다.  아이 하나 바라보고 힘든 생활을
견뎌낸 김 자매는 미친 듯이 테이지를 불러댔다.  나는 예쁜 관속에 평화롭게 누워있는 그를 바라보며 “테이지! 넌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였어!”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모자 달린 털 잠바’는 테이지를 향한 계산하지 않은 우리의 사랑이었다.

  1999년은 남편의 첫 안식년으로 미국에서 생활하였다.  유학했던 학교에 교환 교수로 일 년간 일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 뜻하지
않게 김 자매로부터 연락이 왔다.  소문을 듣고 우리의 연락처를 수소문 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으로 함께 만났다. 
그간의 일들을 함께 나누었는데 얼마나 감사한 일들이 많았는지 모른다.  테이지가 떠난 몇 년 후 하나님이 아들을 주셨는데
테이지와 너무 닮았다.  남편도 성실하게 아내와 함께 교회에 다니며, 친정 식구들도 모두 미국에 와서 잘 정착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면서 김 자매는 봉투 하나를 꺼내어 식탁에 올려놓았다.  “사모님, 제가 미국에서 얼마나 고생하며 살았는지
아시지요?  이거 백화점 상품권이에요.  100$은 저에게 참 큰 돈 이랍니다.  하지만 진호에게 꼭 선물해 주고 싶었어요. 
이 돈으로 진호에게 꼭 옷 한 벌 사 주세요.  물리치지 마시고 제 진심을 받아주세요…”  김 자매도 나도 손을 맞잡고 함께
울었다.  그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무 감사했고, 김 자매의 거친 손을 통해 느낀 그녀의 긴 고통의 세월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조금 있으면 예수님이 친히 이 땅에 오신 크리스마스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성경을 읽으며 밤을 새워 보고 싶다.  뿐만 아니라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빵과 불고기를 한 아름 안고 고아원을 방문 해야겠다.  그리고 순간의 잘못으로 20여 년간 함께 살아온
장애를 가진 아내를 살해한 후, 지금은 하나님을 만나 철저한 회개의 증거로 교도소에서 전도와 섬김에 열중인 아저씨를 만나러
여주에 가야겠다.  하늘에서 먼 이 땅에 오신 그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