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남동생이 있었다. 출산 시 호흡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신생아 황달을 심하게 겪으면서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동생 정원이는 평생을 누워만 있었으며, 소변과 대변을 받아내야
했고, 밥도 안아서 먹여주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언어 장애도 심해 자신의 의사를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그저 Yes, No 만
눈치로 표시하였다.

정원이가 10살 되던 해 까지 어머니는 그를 치료하기 위해 정신없이 방황했었다. 좋다는
의사, 좋다는 약, 좋다는 종교는 다 거치며 동생의 회복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하셨다.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일로 기억되는데, 우리가 대구에서 살 때 어머니는 추운 동지에 팔공산에 올라가 찬물로 목욕을
하시고 불공을 드리셨다. 그리고 집에 오신 후 온몸을 쏘아대는 추위에 견딜 수 없어 다리미로 다리를 찜질하셨는데, 퇴근 후 이
모습을 보신 아버지가 너무 안타까워하시며 서로 껴안고 우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동생이 10살 되던 해에 애쓰시던 모든
것을 그만 두시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셨다.

정원이는 온 가족의 사랑 속에 밝은 모습으로 가정 모든 일에 우선순위를 차지했었다. 예를
들어 TV 프로그램 선택권이 항상 정원이에게 있었으므로 서로 그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고 했었고, 자장면이 먹고 싶을 때에도
정원이를 꼬이면(?) 되었다. 하다못해 설거지 당번을 누구에게 명하는지도 모두 정원이에게 달린 일이었으므로 우리 세 자매들은
그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했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매일 재미있고 코믹하게 반복했으며 이로 인해 많이 웃기도 했다. 손님이
오시거나 친척들이 방문했을 때에도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들을 정원이에게 먼저 인사시켰다.

특별히 동생을 향한 부모님의 사랑의 깊이는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나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준다. 친척과 주변의 사람들은 혼자 앉을 수 없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음식조차 먹을 수 없는 동생을 큰 골칫덩이라고
했지만 부모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그분들의 가장 큰 소원은 바로 당신들이 돌아가시기 하루 전에 동생이 세상을 뜨는
것이었다. 즉 신체적인 어려움으로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그를 두고 눈을 감을 수 없으며, 동시에 그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 능력도 없이 오히려 고통만 안겨주는 아들을 향해 “너 없이는 하루도 못살아!”하시며 짙은 애정으로 평생을
대하셨다.

정원이는 내가 하나님을 믿은 후 처음으로 전도한 사람이기도 하다. 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제한된 환경에서 지낸 동생이었지만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는 어떤 불리한 조건도 막힘이
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20살이 되던 해, 동생 정원이는 어처구니없이 감기로 주님 곁에 갔다. 나중에 안 사실은 중증
장애인의 경우 저항력과 면역이 떨어져 엉뚱하게 감기나 설사로 죽게 된다는 것이었다. 동생이 주님 곁에 갔을 때 온 가족은 너무나
슬펐다. 특히 여동생은 자기도 정원이 따라 죽겠다며 그의 몸을 부둥켜안기도 했다. 또 아버지께서는 천국에서 마음대로 뛰어다니라고
예쁜 운동화 한 켤레를 사서 평생 걸어보지 못했던 동생의 관에 넣어 주셨다.

정원이를 향한 우리 부모님의 사랑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또 다른 차원에서
발견하게 한다. 할 수 있는 것 하나 없이 늘 부모에게 짐이 되고 어려움만 안겨주는 그 아들을 향해 “나는 너 없이는 하루도
못살아!” 말씀하시며 짙은 사랑을 보이시는데, 하나님의 사랑은 그보다 얼마나 높고 깊으신지…

사람을 대할 때 마다 연습을 한다. “하나님은 이 사람을 어떤 눈으로 보시나요? 저도
그렇게 보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예수님의 얼굴을 그 사람의 얼굴에 오버랩 시켜본다. 이것은 때로 하나님처럼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나의 ‘안간힘’이고 ‘절규’이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능력이 없음을 발견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무시 하고 싶고 하찮게 여기고 싶은 사람들이 가끔 있다. 더욱이 나에게 어려움을 주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가치와 존엄성조차 평가절하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때마다 십자가 앞에 엎드려 죄를 고백하며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의 눈과
마음을 구한다.

인간의 가치는 그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얼마나 행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개개인에게 부여해 주시느냐 에 달려 있을 뿐이다. 동생 정원이를 통해 인간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닫게 된다. 내 평생 지치더라도 끝까지 해보고 싶은 훈련은 바로 “주님의 눈으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