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사랑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사람마다  강조점이 다르므로 통일된 답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랑이  ‘함께하는 삶’이라고 정의하고 싶은데, 이런 생각을 하도록  결정적인 영향을 주신 분이 계시다.

  김효신 선생님은 내가  특수학교 교사로 있을 때 양호선생님으로 계셨던 분이다.  그 당시에는 정서장애를 가진 아동이 교육받을 곳이
마땅치 않아, 우리 학교가 지체부자유 특수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서장애를 가진 아동이 한둘 있었다.  승환(가명)이는 그중
한명으로 자폐 아동이었는데, 대학병원 정신과 간호사 경험이 있는 양호선생님이 특별히 돌보아 주셨다.  그분은 여러 아이디어와
정성어린 준비로 최선을 다하여 승환이를 돌보셨는데 특수교사인 나에게 큰 도전이 되었다.

  한
번은  모교 특수교육과에서 후배들을 위해 선배 초청 강의를 듣는 시간을 계획하였다며, 분에 넘치게도 나에게 연락이 왔다. 
직장인 학교 측에서 허락하여 주셨음으로, 그날 아침에는 직접 모교 대학으로 출근했다.  신촌의 거리는 여전히 생동감 있고
화려했다.  밝은 웃음과 자신감에 넘치는 듯 한 후배들을 바라보다 우연히 쇼윈도에 비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찌나
촌스럽고 초라해보이던지…   강의를 마친 후 주눅들은 모습으로 광명시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탔다.  ‘특수학교는 왜 이리 먼
시골에나 있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그들에게 큰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설령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한다고 해도 사회에 나가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좌절감만 생길텐데…  내 모습이 초라하게 변한 것 같아. 
변두리 지역 학교에서 아이들하고만 있어서 그런가?  젊음을 마음껏 누리고 즐기며 살아야 하는데 내가 너무 찌든 것은
아닌지…’  

  우울한 마음으로 버스를 내려 흙길을 밟으며 학교로 향하는데 양호선생님과 승환이가 정신없이 뛰어 오고 있었다.  “양호선생님! 어디
가세요?”  “저도 몰라요.  승환이가 오늘은 특별히 더 못 견뎌 하는 것 같아 무조건 뛰는 거예요.  그러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해서요.”  그리고 계속 승환이와 함께 뛰어가셨다.  갑자기 초라해진 마음에 큰 깨달음이 오는 것 같았다.  “맞아! 
바로 이거야!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저 함께 하는 거야!  그것이 사랑이야!  저기 내
사랑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어.  빨리 가자.”   새로운 힘이 솟으며 흥분된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저기 교실에서
아이들이 창밖을 내다보며 소리친다.  “선생님!  빨리 오세요!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또
다른 이야기가 기억난다. 지난 봄, 정 집사님이 수년 만에 전화를 거시며 무조건 지금 우리 집으로 오겠다고 하셨다.  사실
병원에서 수술을 앞두신 어느 할아버지를 방문하기 위해 나서던 차여서 다음 기회를 약속하고 싶었지만 음성이 매우 다급해 보였다. 
일단 오시라고 하였다.  무척 수척해지신 얼굴에 안절부절 못하시며 요즘 우울증으로 너무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셨다. 
잠깐의 대화를 마치고 다음에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큰 부담이 되었다.  강의와 상담과 성경
공부 등으로 나에게는 여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한두 번의 만남으로 회복되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기에 어려움
가운데 계신 정 집사님께 쉽게 손을 내밀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며칠 후 모처럼 화창한 봄날이 되자 새로운 부담이 느껴졌다. 정 집사님의 회복을 위해 시간을 헌신적으로 나누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드신 이 아름다운 봄날의 꽃을 잠시라도 함께 즐기고 싶었다.  정 집사님을 모시고 벚꽃으로
유명한 계룡산에 갔다.  아쉽게도 계룡산의 벚꽃은 아직 꽃봉오리 상태였다.  하지만 산과 들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좋은
레스토랑에서 긴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자기 구역장이 매일 아침마다 함께 병원에 가 준다는 이야기, 자신이 섬기던 동네 장애인
복지 기관 목사님께서 이런 때일수록 혼자 있으면 안 된다며 복지관에 와서 점심을 함께 먹자고 권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
속 깊이 사랑을 다시금 깨닫는다.  작은 도움들이지만 어쩌면 이리도 아름다운 사랑의 사람들이 많을까?

  소리를 내어 광고하지 않을지라도 세상 곳곳에는 ‘사랑의 사람들’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특별한 전문 지식은 없어도 또한 어떻게
도와야 할지 묘안이 없어도, 그저 함께하며 묵묵히 동행하는 사랑의 사람들!  경제가 어렵고 세상이 각박할수록 이런 ‘사랑의
사람’이 너무나 필요하다.  혹시, 당신은 ‘사랑의 사람’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