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어떤 직업 혹은 어떤 위치의 사람이건 별로 어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년 전만 해도 어려운 사람 두 부류가 있었다.  한 부류는 택시 기사 분들이고 다른 부류는 의사선생님이었다. 

  택시 기사 분들이 어려운 이유는 교통법규와 상관없이 속력을 내거나 빨간 불에도 마구 지나가는 담대함 때문이었다.  놀란 가슴으로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백미러로 보이는 기사님의 무섭고 짜증나는 눈빛이 나의 입을 막고 숨을 죽이게 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이 계시다.  의사선생님들도 어려웠다.  흰 가운을 입은 최고의 전문가를 코앞에서 일대일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주눅
들었다.  또한 과묵한 얼굴과 많은 사람들을 대하느라 지쳐있는 표정을 보는 것은 마치 질병을 가진 내가 죄인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게다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싶어도, 그것이 무식한 질문이 되어 의사선생님의 피곤을 가중시키는 것은 아닌지
머뭇거리며 눈치 봐야 했다.  물론 의사선생님들 역시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작은 병원이라도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영마인드와 서비스 정신이 필수이고, 행여 병원에 대한 입소문이 부정적으로 나기라도 한다면 하루아침에 환자가 급격히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택시 기사 분들도 의사선생님들도 어렵지는 않다.  오히려 의사선생님에 대해 깊은 감사와 감동을 느끼게 되는데,
거기에 영향을 미친 병원이 바로 성 내과이다.  성 내과는 내가 살고 있는 대전 유성구에 위치하고 있다.  성 내과에서 진료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두 시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대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매우 지루하다.  하지만 진료를
받고 나올 때는 기다림의 불편함은 간곳없고 만족과 감사의 표정이 사람들 얼굴에 역력하다.  바쁜 일상에서 한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이 병원으로 굳이 사람들이 오는 대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자그마한 체구에 겸손과 따뜻함이 배어 있는 여의사 성원장님에 대한 표현을 들어보면 이해가 간다.  ‘늘 환자를 환한 웃음으로
맞는다.’  ‘진료하시는 동안 환자들은 자신이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사람으로 대접받고 있음을 느끼며 감격한다.’  ‘한 사람을
진료하는 시간이 길다.  그리고 절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진료하신다.’  ‘궁금한 것 마음 편히 물어봐도 되고, 의사선생님은
그림까지 그려가며 자상하게 설명하신다.’  ‘질병에 대한 다방면의 질문과 접근으로 큰 병을 미리 예방케 하는 명의(名醫)
이시다.’  ‘환자로 하여금 염려보다는 소망을 가지게 한다.’…

  성
원장님은 특별히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들이며 따뜻하게 대하신다.  연세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
근처 과기대(KAIST)에 다니는 외국인 학생 가족, 외국인 근로자, 선교사, 그리고 재정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의지할
바위이기도 하다.  그들을 진료하시는 동안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 때문에 대기실에 앉은 사람들 마음에 조바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 느껴지는 훈훈함은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기에 충분하다.

  얼마 전에 들었던 일화이다.  미국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친 김 집사는 직장 일로 인해 아내와 어린 자녀보다 조금 일찍 한국에
귀국하였다.  아내는 집과 여러 짐 정리를 하고 귀국하려 하였는데, 그 사이 갑자기 어린 자녀가 많이 아팠다고 한다.  한국에
있던 김 집사는 놀란 가슴으로 성 내과에 가서 상담을 하였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그 증상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해 주시며 처방한
약을 먹이면 괜찮을 것이라 안심시켜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며 혹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시간에 상관없이 전화 걸라고 하셨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 안절부절 못하는 부모 마음 헤아려 주시고
함께 염려해 주시는 의사선생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했다며 김 집사가 자랑하였다.  성원장님은 이렇게 누구에게나 사랑과 섬김을
다 하신다.  희귀병을 앓는 어린 아이 위해 좋은 약을 찾아 먼 나라 마다 않고 친히 방문하시기도 한다.  그래서 성 내과를
찾는 사람들은 그분을 ‘유성의 슈바이처’라 부른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으로 섬기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그것은 평범한 하루 가운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일상생활이다.  이것이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가장 쉬운 ‘하나님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