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후반기부터 써온 ‘최주희의 사랑이야기’를 이제 마무리하려 한다. 코스타 홈페이지 담당자로부터 ‘사랑’에 대한 글을 요청받은 후 처음에는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에 대한 글을 많이 썼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혼전 성관계가 독버섯처럼 퍼지고 불륜과 욕심으로 가정이 무너지는 심각한 현실 앞에서, 올바른 사랑이 무엇인지 결혼과 가정의 기초가 무엇인지 강조하였다. 이제 마지막 글을 쓰려고 하니, 마음 깊은 곳에서 신앙생활의 본질이 무엇인지 나누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건전하고 건강하게 만들며 주님 나라 위해 이 땅에서 선한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기독교는 신앙생활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균형이 많이 깨어진 것 같다. 기도만 열심히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확신만 하면 그 사람은 신앙이 좋은 사람이 된다. 삶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넉넉함도, 섬김도 없는데 기도는 몇 시간 한다. 기도의 내용은 고난 극복, 물질 채움, 욕심(비전 혹은 꿈이라고 표현하지만) 성취가 주를 이룬다. 우리는 주인이고 하나님은 종이 되셔서 부지런히 우리를 섬기셔야 한다. 하나님은 항상 사랑과 은혜가 넘치셔서 우리의 요구를 반드시 들어 주셔야만 하고 이 일에 급급한 분이라고만 생각한다. 기도는 하는데 삶은 이기적이고 얌체 같다. 그런데도 믿음은 좋아 보인다.

신앙 좋다고 간주되는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은 부지런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성경 곳곳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 즉 ‘거룩과 사랑’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선택의 기로에서 구체적인 결정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부지런히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그분의 음성을 들으려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분명한 뜻인 거룩과 사랑은 우리에게 부담을 주고 희생을 요구하지만, 개인적인 삶의 선택 기로에서는 하나님이 결정해 주시면 안전하고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며 종종 확신에 차기도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생활의 본질은 ‘기도를 많이 해서 하나님 음성 듣기’가 아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하나님을 경외(fear & respect)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공경하는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시되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며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신 권세와 능력의 하나님을 우리는 공경해야 한다(사40:26). 그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의 죄악에 진노하시고 심판하셔도 마땅한데, 인간의 몸을 빌어 이 땅에 오시고 친히 우리 죄악을 담당하신 그 큰 사랑을 공경해야 마땅하다. 우리에게는 은혜로 거저 주시는 구원이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모진 고난 다 겪으시고 생명까지 버리신 엄청난 희생이다. 우리는 이 사랑을 단순화시키거나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애써 늘 기억하며 이로 인해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구원받은 우리들도 이 땅에서의 삶을 놓고 하나님과 반드시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혈질인 베드로도 그의 서신에서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1:17)고 권면하셨다. 더욱 더 두려운 것은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행위가 숨김없이 다 드러난다는 것이다(전12:13-14, 눅12:2-5; 롬14:11-12, 고후5:9-10, 벧전1:17).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이 없어서 생기는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다.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만큼 그분을 두려워해야 한다.(눅12:5)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기장 중요하고 기본 되는 본질임은 성경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을 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하셨다(창22:12). 행함 있는 믿음의 출발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호와께서 호렙산에 선 모세에게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고 말씀하셨다(신4:10). 우리가 즐겨 인용하는 시편 103편 말씀의 내용을 보자.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시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기심 같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그런데 이 모든 내용이 적용되기 위해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이어야만 한다(13, 13, 17절).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조건에는 관심이 없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회개(뉘우치고 돌이킴)라는 조건이 있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하나님은 그분을 경외하는 사람이나 교회를 받으신다(행9:31, 10:2, 22, 35).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남편과 아내만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엡5:21). 지식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치유의 광선을 발하신다(말4:2).

지금 우리는 입술로는 하나님을 많이 찾고 존경하는 것 같은데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다(막7:6). 오히려 하나님을 가볍게 생각하고 수단으로 삼으며 우습게 본다. 그저 자기중심적으로, 자기 성격대로, 자기 가치관대로 신앙생활 할 뿐이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의 정신세계는 이중생활 속에서 황폐화 되어가고 있다. 심지어 믿음 좋아 보이는 사람들이 우울증, 강박증, 망상, 불안증을 겪고 있다. 온갖 성적인 범죄와 투명하지 않은 돈 문제 그리고 욕심이 그리스도인들을 침몰시킨다.

이제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믿은 지 몇 년 되었고, 교회에서 어떤 활동을 하며, 무엇을 섬기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우리의 모든 삶과 생각을 드러내어 점검 받는 것부터 시작하자. 두려움 가운데 이 일을 이루자. 그리고 그분을 마음으로 공경하며 말씀하시는 교훈에 순종하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본질이다. 이 본질 위에 가정이 있고 직업이 있고 사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