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하나님이 그들을 창조하셨고 생명주시기
까지 사랑하시는 대상임을 기억하며, 이웃을 귀하게 대하는 것은 사랑의 출발점 일 것이다. 또한 그들의 필요와 기대를 채우고
만족시켜주는 것도 중요한 사랑의 표현이다. 때로는 생각과 의견이 나와 다르더라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역시
사랑이다. 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준 사람이라 할 찌라도 주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용서한다면 어쩌면 사랑의
극치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는데, 바로 사람들의 마음에 담겨져 있는 ‘진실을 보려는
눈’도 사람들을 서로 사랑하게 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일어나는 사건이나 상황을 부정적으로 혹은
자기에게 피해가 되는 방법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캠퍼스를 걸어가는데 멀리서 아는 자매가 오고 있다고 하자.
반갑게 손을 흔들며 아는 척을 했는데 그냥 지나가 버렸다. 순간 “어? 왜 나를 못 본 척 하지? 나에게 불편한 일이 있나?
나를 무시하나?”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 친구가 나를 못 보았을 수도 있고 바쁜 일이 있어 급하게 지나칠 수도
있는데, 그런 가능성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단지 부정적으로 해석할 뿐이다. 또 다른 예로 자신을 동생처럼 가깝게
생각하여 반말을 하는 형제에게 무례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이런 해석들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습관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긍정적인
인간관계 맺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와 반대로 가능하면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참으로 넉넉하고 풍요로운 관계를 즐긴다.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하는 이웃들도 편안하다. 그런데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때로 누군가가 명백하게 부정적인 행동을 하였다 할지라도 그 내면에 있는 진실을 보려고 노력한다면, 무지해서 혹은 연약해서
저지르는 실수까지 받아주고 품어주는 큰 그릇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 있어서 내가 스승으로 삼고 있는 제자가 있다. 그는 내가 특수학교 교사로 있을
때 가르치던 우리 반 학생 재복이다. 어느 월요일 아침 조회를 하기 위해 교실에 들어서는데,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책상을 치고
웃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재복이를 향하여 “네가 어떻게 보였기에 거지인줄 알고 그러냐?”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궁금하여 나도
함께 웃자며 자초지종을 물었다. 내용인즉 전날 주일에 휠체어를 사용하는 재복이가 교회 정문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재복이에게 “저런 쯧쯧… 얼마나 힘드냐?”하시면서 천 원짜리 지폐를 주시더란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도 당황하여 어떻게 재복이 마음을 위로해야 할 지 몰라 “세상에… 재복아! 너무 기분 나쁘고 속상했겠다. 그 아주머니
참 이상한 사람이네…”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재복이의 대답은 나의 수준을 넘어선 놀라운 것이었다. “선생님, 그분이 몰라서
그랬을 거예요. 아마 제가 몸이 불편하다고 돈도 없는 줄 알았나 봐요. 하지만 알고 보면 그런 분들의 마음은 따뜻해요. 몰라서
그렇지 남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 그렇게 하셨을 거예요.” 장애를 가진 중학교 1학년 재복이의 이 말은
두고두고 내 평생 교훈이 되었다. 만약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반응하였을까? “도대체 저를 어떻게 보시는 거예요?
장애를 가졌다고 나를 무시하는 겁니까? 저는 거지가 아니라고요! 아줌마도 평생 장애를 입지 않으리라는 보장 못하실 걸요? 그러면
아줌마도 거지가 되나요?”라며 분노와 협박 아닌 협박으로 소리 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재복이는 달랐다. 겉으로 표현되는 부정적인
행동보다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이런 눈을 가지고 가족과 공동체와 이웃을 대한다면 세상살이가 얼마나 평화롭고 여유 있을 것인가!

이런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Every day we are given stones.
But what do we build? Is it a wall or is it a bridge?” 우리는 매일 돌 맞는다.
억울한 돌, 부당한 돌, 거부의 돌… 그런데 이 돌들로 무엇을 만들까? ‘인간은 이기적이고 악하고 무서운 존재야! 좋은
관계란 있을 수 없어! 사랑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이상에 불과 해! 결국 인간은 혼자야!’라고 결론을 내리고 그 돌들로 아성을
쌓을까? 아니면 그 돌들로 사람들을 이해하는 다리를 만들고 그들에게 다가갈까?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나이가 들고 인생을 겪어가면서 어떤 때는 나 자신이 바다 같이 넓은 마음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너무나 속이 좁은 사람처럼 여겨져 스스로 실망스러울 때도 많다. 그때마다 재복이를 기억한다. 그리고 나도
재복이처럼 사람들을 이해하는 넓은 마음과 숨겨진 진실을 볼 줄 아는 눈을 달라고 주님 앞에 엎드려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