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과 치유의 신학 – 내 아버지의 뜻


루카스 스토리(Lucas Story)


(1)


데이브레이크(Daybreak)의 하루를 기억하라.


아마도 나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사역에 지쳐 내 영혼이 곤고한 날이 이를 때면, 데이브레이크를 회상할 것이다. 데이브레이크에서의 하루는 내 인생에서 사역적 영성을 갱신시키며 갈증 속에서 새벽이슬을 마심과 같은 영적 각성의 기쁨을 안겨준 특별한 날이었다. 육신의 피곤함을 이끌고 찾아간 그곳에서 나는 영혼 깊은 곳을 어루만지며 위로하시는 그 분을 직접 체험했다.


2002년 6월은 한국 축구의 월드컵 열기로 전 세계에 흩어진 우리민족의 마음을 한껏 달구어놓고 있었다. 캐나다 토론토 코스타가 끝난 직후, 강의하랴 축구 응원하랴 지칠 대로 지친 강사진들은 하루를 같이 보내며 조용히 휴식을 취하기 원했다. 그 전주에 벤쿠버 코스타를 이미 치르고 도착했던 나는 토론토를 거쳐 이제 다시 시카코 코스타를 향해 떠나야할 상황이었기에 더욱 휴식이 필요했다. 청년사역을 받은 소명으로 여기는지라, 어렵게 떠난 여행길에서 한 사람의 청년이라도 더 만나고 가겠다는 영적 욕심으로 무리한 스케줄을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토론토 근처의 데이브레이크(Daybreak)를 찾아갔다. 헨리 나우웬 신부가 장애인들을 위해 사역하여 널리 알려진 라르쉬(L’Arche) 공동체가 있는 곳이었다. 평소에 책을 통해 비교적 가깝게 느끼던 나우웬 신부의 깊고 순결한 영성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듯한 설렘을 품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가르치던 그가 모든 학문적 명성을 뒤로하고 세상에서 가장 소외받은 장애인들을 위해 몸을 던져 여생을 바친 일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숲 속에 한가하게 세워진 아담한 별장으로 안내를 받아 여장을 푼 우리는 바로 그 집이 나우웬 신부가 직접 장애인들과 함께 거하던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잠을 자던 침대와 그가 책을 읽던 서가를 둘러보며 한 시대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노력했던 위대한 신학자의 체취와 온기가 밤의 정적을 타고 다가옴을 느꼈다. 근처의 거리에 나가 가벼운 산책과 쇼핑을 하고 돌아온 우리 일행은 그 동안 못다한 이야기들을 하며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은 터키와의 월드컵 3, 4위전이 있는 날이었다. 코스타 강사진들을 배려하는 친절한 목사님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는 새벽 일찍 눈을 떴다. 아쉽지만 열심히 싸운 한국 축구팀을 향해 마음의 박수갈채를 보내며 다시 라르쉬 공동체로 돌아온 우리는 부족한 수면으로 거의 눈이 감기는 지경이 되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그저 쉬고 싶은 마음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그날 오전에는 채플에서 헨리 나우웬 신부의 인생을 돌이켜보는 세미나를 듣도록 예정되어 있었기에 일행은 마지 못해 또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곳에서 나는 사역에 지쳐서 잠든 내 영혼의 안팎을 뒤흔들어 깨우는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하게 되었다. 헨리 나우웬 신부의 맑고 깊은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강하고 온유한 메시지를 듣게 되었을 뿐 아니라,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이야기… <루카스 스토리>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2)


아름답게 지어진 채플에서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수(Sue)라고 불리는 온화한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먼저 소개하며 그곳으로 찾아온 우리들의 내면의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했다. 그녀의 자연스런 인도를 따라 자기 소개를 한 후 나우웬 신부의 육성 설교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되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타내 보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아름답게 재연이라도 하듯이 나우웬 신부의 온유하고 잔잔한 설교가 흘러나왔다. 둥근 빵을 하나 집어들고 축사하며 그것을 쪼개어 나누어주는 그 모습에서 비록 육신은 죽어 땅에 묻혀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있는 그의 영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인생은 본문에 나타난 4개의 동사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 취하시고(taken)
  • 축사하시고(blessed)
  • 쪼개시고(broken)
  • 나누어주심(given)

바로 이것입니다.


세례요한 앞에서 무릎 꿇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헌신을 받으셨습니다. 그는 그때 하나님 손에 붙잡힌(taken) 바 되었고, 그를 기뻐하시며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열어 성령을 비둘기 같이 내려 그의 머리 위에 머물게 하심으로 축사(blessed)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아들이라….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자신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얻으셨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찢기며(broken) 그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을 떡으로 자신을 나누어주신(given)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도 이 네 가지 동사를 통한 삶이 요구됩니다. 그것이 바로 크리스천의 삶의 핵심입니다.”


7분짜리 간결한 그 설교가 얼마나 강렬하게 내 영혼을 때렸던지…. 그리고 그 순간 지난 8년간의 나의 중국 사역을 돌이켜보며 깊이 깨달은 것이 있었다. 하나님 안에서 나의 지나온 시간들은 바로 이 네 개의 동사 안에 모두 녹아져 함축되어 있었다. 보잘 것 없는 인생이 하나님 손에 붙잡힌 바되어 그분의 축사하심을 받았고, 그리고 세상 속에 나아가 자신을 쪼개어 나누어주기 위해 애쓰며 살아온 것이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요즈음 내가 이렇듯 힘들고 기쁨이 사라졌을까 하며 생각해 보니… 네 가지 동사 중에 한 가지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 손에 붙잡힌 것에 대한 확신도 있었고, 사역지에서 자신을 쪼개고 나누어주는 일에 열심을 다하기도 하였지만, 그분이 지금도 지속적으로 나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며 내 인생을 위해 축사하고 계시다는 그 사실을 어느덧 망각해 버렸던 것이다. 사역의 출발점… 모든 기쁨과 위로의 원천인 하나님의 축사하심(blessed)을 망각해 버린 사역자에게는 더 이상 기쁨이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설교가 끝나자 수(Sue)는 우리에게 1년 전에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실제로 있었던 실화를 하나 소개해 주었다.


(3)


장애인 부부가 있었다. 서로 사랑하는 그 부부는 간절히 아기를 갖기 원했다. 그러나 그들의 바램은 오랜 기다림을 필요로 했다. 두 번에 걸친 유산은 그들의 마음을 몹시도 아프게 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렵게 들어선 세 번째 아기를 두고 기도하던 중 임신 초기에 또다시 통증이 찾아왔다. 황급히 병원으로 찾아간 그들에게 의사는 아직 아기가 살아있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들에게 정밀 검사 결과를 가지고 다시 들어온 의사는 침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당신들의 뱃 속 아이는 현재 심각한 장애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인공유산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뇌가 골 밖으로 나와 있는 치명적인 장애였다. 이런 경우는 아이가 죽지 않고 세상에 나오더라도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할 뿐 아니라 호흡장애를 일으킬 것이기에 아마도 15분을 살기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들은 부부는 순간 아연실색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얼마나 기다리던 아이인가? 그리고 지난 몇 주간 얼마나 애틋하게 사랑하며 어루만지던 그 생명을 이제 죽여야한 하다니….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의사에게 아이를 계속 뱃 속에서 키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사는 그 말을 냉정하게 잘랐다. 그럴 수 없노라고…. 당신들이 아이를 낳은 후 받아야 할 상처는 지금 아이를 유산시킬 때 받게 될 상처보다 훨씬 더 클 것이기에 의사인 자신의 충고를 받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부부는 생명을 죽일 수가 없었다. 의사는 마침내 화를 내었지만 결국 부부는 그 아이를 키우기로 결단했다.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뱃 속의 그 아이의 이름을 루카스(Lucas)라고 지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남겨진 몇 달간의 시간을 루카스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들은 매일 루카스를 위해 아름다운 찬양을 들려주었고, 루카스를 위해 기도했다. 그들은 루카스를 볼 수는 없었지만 만질 수 있었으며 느낄 수 있었기에 매일 그 아들과 깊은 영적 대화를 나누었다. 루카스의 살아있음이 느껴질 때마다 그들은 감격했으며 그로 인해 감사했다. 루카스의 심장 박동을 느낄 때마다 부부의 애절한 사랑은 루카스의 혈관을 타고 흘러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들 안에는 사랑으로 잉태된 생명의 신비가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출산의 날이 다가왔다. 긴장과 두려움과 그러나 감격 속에서 아이를 받았을 때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신의 아들의 얼굴을 보았다.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그러나 그 아이의 머리 뒤에는 뇌가 삐져 나온 주머니를 달고 있었다. 부부는 의사의 충고에 따라 루카스를 최대한 밀착하여 안아주었다. 부모의 피부접촉이 조금이라도 생명을 더 연장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루카스가 조금이라도 더 그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은 그 어린 핏덩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보물처럼 껴안고 있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루카스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평온하게 잠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주어진 15분이 지나고… 30분, 1시간이 지나도록 루카스는 여전히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살아있었다.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나자… 의사는 더 이상 병원에서 할 일이 없으니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했다.


집으로 루카스를 데리고 온 부부는 그날부터 루카스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 주기 시작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모아놓은 것과도 같은 나날이었다. 루카스를 위해 서둘러 세례를 받게 했으며, 그를 위해 기도하며 조심스레 닦아주고 매일 선물을 안겨 주었다. 공동체의 식구들을 불러 날마다 작은 파티를 베풀었다. 모든 사람들이 루카스를 보며 기뻐하고 사랑의 말을 던졌고, 서로 위로하며 또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날들이 지나간 후 마침내 루카스의 마지막이 다가왔다. 루카스는 17일을 살다가 그의 인생을 마쳤다. 부부는 사랑하는 아들 루카스의 임종을 아프게 그러나 담담하게 지켜보았다.


루카스를 떠나 보내던 날, 데이브레이크 채플의 홀에서 사랑하는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하는 장례 예배가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단 위에 놓인 작디 작은 관 안에 루카스의 어여쁜 시신이 들어있었다. 모두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또 슬퍼했다. 예식이 끝나고 루카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앞으로 걸어 나와 관 앞에 선 루카스의 부모가 잠시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했다. 자신들이 루카스와 함께 했던 지난 9개월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는지를…. 그리고 그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랑과 대화를 그와 나누었는지를…. 그리고 지금도 그들이 얼마나 루카스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그들은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루카스의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루카스로 인해 비로소 아버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나를 아버지로 만들어준 내 아들 루카스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4)


루카스 스토리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루카스 스토리를 들은 후, 우리 일행 중 어떤 이는 받은 감동이 넘쳐서 울기 시작했고… 어떤 이는 깊은 묵상 속으로 잠겼으며… 어떤 이는 아버지의 품 속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휘몰아치는 감동 때문에 도무지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테라스의 문을 열고 나서니… 채플 앞의 아름다운 연못이 있었고… 따스한 햇살이 눈부시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채플을 둘러싼 숲 속의 오솔길을 걸으며 루카스를 생각했다. 17일의 인생을 살다가 간 아이… 루카스…. 내 걸음은 신비한 사랑을 막 체험한 사람인 마냥 연못 주변을 두둥실 떠가고 있었다.


그 때 어떤 잔잔한 음성이 내 귀에 들렸다.


“바로 네가 루카스다.”


내가 70년의 인생을 산다는 것과 17일을 산다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은 모두 장애인일 수 밖에 없다. 그것도 철저하게 죽을 수 밖에 없는 치명적인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인생들…. 그런 줄 알면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태 속에서부터 알고 지명하여 이름을 불러주시며 우리를 사랑하여 이 세상에 낳게 하신 이…. 그 아버지의 사랑을 네가 아느냐? 갑자기 감동이 휘몰아치며 눈물이 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루카스는 죽었고 땅에 묻혔다. 그러나 그 부부의 마음 속에 루카스는 영원히 살아 있다. 그리고 내 마음에도 루카스는 살아서 지금도 숨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