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탄의 소리


하나님을 드러내는 신앙


전 아직도 1988년 서울 올림픽의 한 구기 종목 결승전을 밤늦게 지켜보던 때가 기억납니다. 탁구 여자복식 결승전에서 중국과 맞붙게 된 한국팀이 극적인 우승을 거두고 감격해 하던 그 장면 말입니다. 솔직히 탁구보다는 축구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한국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또 한국이 올림픽이나 국제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이 탁구밖에 없는 것도 아님에도, 전 벌써 10여년이 훨씬 지난 이 한 탁구 경기의 결승전을 잊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이제 갓 예수님을 영접한 한 어린 신앙인의 눈에 비쳐진 양영자, 현정화 선수의 담대한(?) 인터뷰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양영자, 현정화 선수의 인터뷰 장면은 제가 TV 방송을 통해 본, 그리스도인의 첫 간증(?)이었습니다. 우승을 축하하며 먼저 누구에게 가장 감사하냐는 전형적인 기자의 인터뷰 질문에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하는 양영자, 현정화 선수의 당당한 모습.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기도 한 저의 개인적인 고백이지만 전 그 인터뷰 장면을 보면서 양영자, 현정화 선수와 같이 감격의 눈물을 펑펑 흘렀답니다. 한국이 탁구 여자복식에서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나도 같이 믿고 있다는 왠지 모를 자부심과, 또한 이런 고백을 TV 방송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 그 두분의 담대한 신앙이 너무나 부러웠고 또한 아름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해 12월, 전 인터넷을 통해 제 22회 한국 청룡영화상 시상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신문을 통해 누가 어떤 수상들을 했는지 대충 알고 있었지만, 굳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시상식을 보려고 한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신문 기사에서 읽은 한 영화인의 수상 소감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한 신인 여우상 수상자의 그 수상 소감을 제 눈과 귀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왠지 모를 열망에 휩싸여 기말고사로 인해 여유 없는 제 마음을 달래며 그 긴 시상식을 보기로 작정한 것이었습니다.


언제 신인 여우상 수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그냥 처음부터 쭉 지켜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첫 순서에 신인 남우상, 여우상 시상이 있더군요. 근데 전혀 기대도 하고 있지 않던 신인 남우상 수상자가 갑자기 이런 수상소감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화(가) 처음인데 이렇게 신인상 주셔서 감사하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엽기적인 그녀를 많이 봐주신 모든 관객 여러분들께 이 상을 돌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늘에 계신 할머님과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인 남우상 “엽기적인 그녀” 차태현)


“하늘에 계신 할머님과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습니다.”라는 그 말이 제 귓전에 너무나 짜릿(?)하게 들려 왔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신인 남우상 수상자의 간증에 전 괜스레 기분이 신나졌습니다. 그냥 제가 예수 믿는 다는 것이 그 순간 배부르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후에 들리는 신인 여우상 수상자의 소감.


“먼저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구요. 그리고 제 생애 가장 탐나던 신인상을 제가 올해 22살인데 22회 청룡 영화제에서 타서 진심으로 기쁘구요…” (신인 여우상 “고양이를 부탁해” 이요원)


기분이 정말 째지게 좋더군요. 제가 무대에서 상을 받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혼자 신나고 좋았답니다. 제가 믿고 또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이름이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사람들 앞에 선포되어지고 고백되어졌다는 것이 그냥 너무 너무 좋았습니다.


여러분은 가끔씩 스포츠 시합이나 여러 시상식에서 위와 같은 소감을 밝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보실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같은 하나님을 믿는 동료 신앙인으로서 기분이 좋으시던가요? 아니면 믿는 티(?)를 내는 그 사람들이 왠지 겸연쩍고 민망하시던가요?


거두절미하고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그립습니다. 무엇이 그립냐구요? 양영자, 현정화 선수의 그 인터뷰 장면이 그립고, 또한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언젠가 그 분야에서 인정을 받게 될 때, 이 모든 결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요 도우심이었다고 그분의 살아계심을 만방에 드러내는 그런 하나님 백성들의 “드러내는 신앙”이 전 그립습니다.


지난 수년간 우리 한국교회는 너무나 많은 망신살 속에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한 안수집사님의 백화점이 이윤에 눈이 어두운 부실공사와 안전소홀로 무참히 무너지는 광경을 목도했고, 또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한 유명한 기업가 장로님이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또 그 구속된 남편을 어떻게든지 빼내어 보려고 애쓰던 유명하신 그리스도인 부인께서는 ‘옷 로비’ 사건이라는 기상천외한 로비사건을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벌이고… 거기에다가 교회세습이라는 엄청나고 황당한 일이 지난 1-2년 동안 한국의 일부 대형교회에서 심심지 않게 벌어졌습니다. 그것뿐입니까? 작년에는 한국의 유명한 대형교회 목사님의 맏아들이 신문사 탈세 혐의로 감옥에 구속되었고, 아버지인 그 목사님은 교회 재정 문제로 장로님들과 구설수에 오르는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1월에 있었던 유승준 형제님의 군 복무 문제는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을 씁쓰름하게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신앙함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던 한 유명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평소에 당당하게 약속하고 다녔던 군 복무를 결국 이행하지 못함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는 모습을 보게 될 때, “그래 나중에 저런 망신을 당할 바에는 차라리 조용히 예수 믿는게 낫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이야 바르게 합시다. 나중에 혹 내가 나의 삶의 여정에서 망가지고 넘어질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그 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으니까 그 때를 대비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냥 아예 조용히 입 다물고 얌전하게 하나님 신앙을 해야 한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됩니까? 혹 미래에 부딪히게 될지 모를 나의 죄악과 연약함으로 인해 아예 이 땅에 살면서 몸을 사리며 하나님 믿는 티를 내지 말며 살자구요?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 34-35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면, 우리가 티를 내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인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하나님 신앙한다는 것을 삶의 순간 순간마다 억지로 드러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야고보가 그의 서신서에서도 적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다면 자연스럽게 그 믿음의 열매들은 우리의 삶을 통해 행위로 드러나게 될 것이며, 그럴 때마다 우린 이를 신기하게 여기는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이루신 일임을 솔직담백하게 인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 6:3절)는 예수님의 말씀은,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신앙인의 삶을 가르치고자하는 목적으로 쓰여진 말씀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6장 3절 말씀의 전후를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이 말씀을 통해, 남을 구제하면서 하나님을 드러내기보다는 자신을 드러내는 그런 외식된 자들을 경고하시고자 위와 같은 말씀을 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곧 자신의 의를 자랑하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불며 요란을 떠는 자들을 비판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바로 그 유명한 왼손, 오른손의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드러내는 신앙”을 우리 믿는 자들에게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전 요셉의 삶을 볼 때마다 은근히 하나님을 드러내었던 그의 고단수적인(?) 삶의 자세를 엿보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그는 노예로 팔려가든(보디발), 감옥에 잡혀가든(전옥: 간수장), 왕의 꿈을 해석하든(바로왕) 가는 곳곳마다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들의 입술을 통해 자신이 신앙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게 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은혜로만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주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중에 그의 형제들이 곡식을 사러 애굽 땅에 와 자신을 대면하게 되었을 때에도, 그는 자신을 두려워하는 형들 앞에서 제일 먼저 하나님의 위대한 주권을 자랑합니다.(창 45:5-8) 그렇습니다. 자신이 잘나고 훌륭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뽐낼 만도 한데, 그는 그 순간에도 어김없이 하나님이 이 모든 것 뒤에 존재하셨음을, 자신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그런 티내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1:26-31절의 말씀도 이러한 “하나님을 드러내는 신앙”을 우리에게 권고하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는 자”와 “주 안에서 자랑하는 자”를 구별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9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고전 1:31절)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는 자는, 곧 자기의 의를 자랑하는 자요, “주 안에서” 자랑하는 자는 자신 안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일을 이루어 가시는 그분,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표준 새번역 개정판은 31절의 “주 안에서 자랑하라”를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라!”


여러분… 분명 우리는 예수님 믿는 다는 것이 더 이상 떳떳하지 못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제대로 이야기하자면 예수님이 부족한 저희들로 인해 오히려 떳떳하게 이 땅에서 고개를 드실 수 없게 되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전 더욱 당당하고 떳떳한 그리스도인들, 자신의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성실하게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그런 향기나는 신앙인들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자신이 성공해 가고 남들에게 한참 인정받게 될 때는 오히려 자기 자랑보다 하나님 자랑 실컨하고, 혹 나중에 이웃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욕먹을 큰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때는, 남 핑계대지 않고 “다 나의 잘못과 부족함으로 이렇게 되었다”고 자신을 진실하게 드러내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그립습니다. 우린 흔히 모든 일이 잘 풀릴 때 하나님 이야기를 하면 영광이 되고, 잘 안될 때에 하나님 이야기를 하면 영광을 가린다고 생각하는데, 이것 또한 성경적인 관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윗 왕을 한번 보십시오. 나단 선지자가 왕궁에 찾아와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다윗 왕의 치졸한 죄악상을 만방에 드러낼 때, 그가 자신의 자존심과 명성을 생각해 그 누구처럼(?) 끈질기게 거짓말하고 남 핑계 대며 우기 덥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서 그러한 쪽 팔리는 삶의 순간 속에서도 믿는 자답게(?) 자신의 연약함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습니까? 전 이런 점이 하나님께서 사울왕과 다윗왕을 다르게 대하실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학업이 다 잘 되어가며, 또 졸업 후의 직장도 이 세상에서 꽤나 인정받는 곳에 가게 될 때, 아니 뭐 꼭 “잘 되고 성공했다”를 떠나 나의 지나온 삶의 여정에 대한 소감을 남들과 나눌 기회가 생길 때,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라고 겸손하고 진실하게 그분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들이 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혹 자신의 잘못으로 망가지고(?) 쓰러지는 때가 생긴다면 그 때는 “다 내 탓이었습니다”하며 또 다시 겸손하게, 하나님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우리 인간의 한계를 여러 사람들 앞에 진실히 드러내는, 그런 솔직한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안에 넘쳐(?) 났으면 좋겠습니다.


학교에서 인정받고 그러다가 박사 학위 받고, 좋은 학교와 직장에 가는 것,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근데 그런 영광의 길목에서도 누가 항상 이 모든 일을 지금까지 운행하고 주관하셨는지, 확실하게 고백하고 드러냅시다. 그래야 동료 그리스도인도 힘이 나고, 또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아 참 한가지 더 좋은 효과가 있네요. 이렇게 자꾸 고백하는 습관을 들여야 그나마 “내가 이 모든 것을 이루었다”라는 추잡한 교만에 빠질 확률도 더 적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저도 저의 부족한 삶을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드러내는 그런 하나님의 한 떨기 귀한 꽃이 되고 싶습니다. 세상 속에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는, 왜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항상 일정하게 잔잔한 향을 내는 그런 은은한 꽃 말입니다.


“나 주가 말한다.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아라. 용사는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말아라. 부자는 자기의 재산을 자랑하지 말아라. 오직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이것을 자랑하여라. 나(하나님)를 아는 것과, 나 주가 긍휼과 공평과 공의를 세상에 실현하는 하나님인 것과, 내가 이런 일 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아 알 만한 지혜를 가지게 되었음을, 자랑하여라. 나 주의 말이다.” (에레미야서 9:23-24 “표준 새번역 개정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