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남들도
다 그러는데 뭐

크리스천으로서 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문제를 생각하면 유학시절
코스타 96에 참가했을 때 세미나강사 중 한분이셨던 엄기영 목사님께서 하신 “그리스도인의 자유함”이라는 강의에서 인상깊게 들은
부분이 떠오른다. 엄목사님은 교회가 금연, 금주운동이나 하고 바른생활 책에 나오는 삶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타종교와
다를 바가 없다면서 크리스천의 다른 점은 내 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여 그 분이 원하시는 삶을 찾아가고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고자 하는 것
이라고 하셨다. 한 마디로 세상적인 기준이 어떻든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크리스천의 삶”이라는 것이다. 새봄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과연 하나님이
명령하신 삶을 살고 있는지 부끄러움만 가득하다.

소위 “바르게” 혹은 “떳떳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할 때 가장 걸리적거리는
종목이 “남들도 다 하는” 부분이다. 항상 지적되는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불의와 뒷거래가 너무나 당연시되어 깨끗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바보취급 당하고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순간에 정직하지 않고 떳떳하지 못한 방법의 유혹을 받게
되는지 모른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수를 써서” 조금이라도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것에 대한, 속칭 잔머리는
누구나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살다보면 몸에 배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사실 이런 근성은 유학시절에 더 많이 나타나는데,
유학생들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그곳을 만끽하고 일종의 혜택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사회에 대해 이상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한국보다 앞선 경제와 문화에 대한 컴플렉스일까? 아니면 비싼 등록금을 내는 데 대한 분풀이일까? 그것도 아니면
남의 나라이니 나와는 상관없다는 단순한 무감각일까? 게다가 유학시절에는 한푼이 아까운 때이니 돈과 관계된 것이라면 서슴지 않고
거짓말과 불법을 저지른다.

유학시절 나는 학교에서 조교로 일하는 대학원생들이 어떠 어떠한 편법을 사용하면
세금면제를 받을 수 있다고 서로 가르쳐 주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유학생들이 자동차보험료를 적게 내기 위해
심지어 미국에서 혼인신고를 하여 기혼자의 보험료를 적용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명백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소하게는 금지되어
있는 지역에 들어가 나물을 캔다든가, 어찌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을, 실제로 큰 이득을 얻는 것도 아닌 불법들을 아무
감각없이 행한다. 실은 이런 일은 미국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다. 한국인이 가는 곳엔 어디나 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독일유학을
마치고 왔는데, 자기가 살던 지역은 야생동물들을 위해 베리(berry) 종류의 열매를 따지 못하게 되어 있어 그것들이 강가에
잔뜩 열려 있었는데 그걸 따다가 과일주를 담곤 했다고 말했다. 따지 못하게 되어 있는 걸 따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그는 다들
그렇게 한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 다들이란 게 전부 한국사람들이죠?”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여 주었다. 마치 나는 매우 정직하고
똑바르게 산다는 듯이.

미국유학 마지막 무렵 어느날 나는 Kinko’s에서 복사를 하다가 누군가가
복사기 옆에 내려두고 간 counting machine을 발견하였다-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내가 유학할 때만 해도
복사 체인점인 Kinko’s에서는 이 counting machine을 복사기에 꽂고 원하는 만큼 직접 복사를 한 후 그것을 계산대(cashier)에
들고 가면 거기 나온 숫자대로 복사비를 계산하여 지불하게 되어 있었다. 그 counting machine엔 숫자가 ‘4’로 나와있었다.
그걸 보면서, ‘어떤 양심없는 인간이 치사하게 넉 장 복사하고 돈도 안 내고 저걸 여기 내려두고 갔나’ 하는 멸시의 마음이 생겼다.
다음 순간, 거의 책 한 권은 될 법한 많은 분량을 복사하러 간 내 머리에 번개같이 스친 부끄러운 생각이 있었다. 이거 다 복사하고
계산할 때 저거 가져가면 넉 장 값만 내겠네? 아, 나도 내가 비웃던 사람 중 하나에 불과하였다. 아니, 그는 넉 장 값을 떼어
먹었지만 나는 약 백장 값을 떼어 먹을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니 더 가증스럽다.

하나님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은 언뜻 명확하지 않아 보일 지도 모른다. 성경책에
인생살이의 모든 경우가 미주알 고주알 적혀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지표가 되는 거대한 원칙들을 성경을
통해 이미 가르쳐 주셨고 또 그의 속성을 아는 우리들은 순간 순간 냉정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기준에서의 선(善)과 그렇지 않은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분명 타지(他地)이고 미국의 법이나 상식에 우리는 민감하지도 못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네 나라에서만 착실하고 정직하게 살고 남의 나라에선 조금 맘대로 해도 된다”라고는 결코 말씀하시지
않으실 거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큰 이득이 아닌 것들, 설사 큰 이득이라고 하더라도 워낙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손해보는
듯한 느낌이 좀 감소되어 줄까? 율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나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도 밝아지는 마음을 갖기 위해 조그만 일에도 하나님의 기준을 생각하고 자제하여 산뜻한 봄을 맞이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