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3년 10월


가을걷이철입니다. 한국은 올 여름 내내 비가 잦고 또 태풍의 피해도 커서 흉년이 될 거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접하는 소식마다 단조(短調, minor)풍의 우울한 얘기가 많아 한국에서 하듯 거의 매일 같이 조국 걱정을 합니다.


저 희집 올 농사는 풍작이었습니다. 특히 토마토, 방울토마토, 오이는 풍성한 소출로 제법 많은 교회 식구들 및 동네 이웃들과 나눠 먹었습니다. 내년 농사를 위해 지금은 한창 씨앗을 받고 있습니다. 해민이랑 하얀 편지 봉투에다가 나팔꽃, 금송화, 토마토, 해바라기, 코스모스 등의 씨를 모아서 이 또한 원하는 이웃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참, 그리고 뒤뜰 베란다에 널어둔 박하(薄荷, peppermint)도 거의 다 말라갑니다. 건조가 끝나면 박하잎을 가루로 만들어 예쁜 통에다가 담아둔 다음 겨우내 따뜻한 박하차를 마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즐겁습니다. 몸만 가까이 있다면 오셔서 차 한 잔 함께 들자고 하고 싶습니다.


이 곳 온타리오주는 동성결혼 합법화 문제로 한창 시끄럽습니다. 이번 달에는 동성애 얘기로부터 시작해 윈윈 전략에 관해 쓴 다음, 공포와 사랑에 관한 글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뜬금없이 웬 윈윈 전략이냐구요? 읽어보시면 알 겁니다.^^


동성애자 친구 만들기


그 러보니 벌써 11년 전의 일이다. 대학교 3학년 때 학교 후문 쪽에서 자취를 하는 후배네 집에 하룻밤 묵으러 갔다가 일종의 문화 충격 비슷한 것을 경험하고는 너무나 놀란 적이 있다. 내가 이미 잠든 줄로 안 후배는 같은 과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날? 괜찮았지? 걔네 부모님이 다 여행가셨잖아. 그래서 남자애들 셋이랑 여자애들 셋이랑 모여서 놀았지. 나는 그 기집애랑 잤는데 처음엔 흥분이 안 되는 거야. 근데 걔가 빨아줘서 겨우 세웠지. 난 여자애들하고 노는 것보다 남자애들이 더 나아.”


겨 우 스무 살이 갓 넘은 아이들이, 그것도 매일 학교에서 부딪히는 후배 녀석들이, 게다가 버젓이 교회를 다닌다는 놈들이 그렇게 성적으로 추접하다는 사실에 분노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말로만 듣던 동성애자가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놀란 가슴을 수습하며 그 후배를 위해 기도하던 나는, 다음날 아침에 기회를 보다가 어렵게 용기를 내었다. 내가 엿들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잠이 들지 않은 상태에서 어젯밤 통화내용을 듣게 되었다며 조심스레 입을 뗀 것이다.


성 경을 잘 모르던 그 후배는 성경에서 동성애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은 줄 알고 있었던 데다가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선천적 동성애자의 경우 이해받을 수 있는 소지가 많다는 내 얘기에 자신은 어릴 적부터 도무지 이성에 대해 관심을 느끼지 못했다고 주장했지만 내가 보기엔 좀 더 새로운 성적 자극과 모험을 찾아 남녀 가리지 않고 붙어먹는 쾌락적 양성애자(bisexual)에 불과했다.


다 음날 나는 동성연애에 관해 당시에 접할 수 있었던 견해 중에서 뛰어나다고 판단했던 리차드 포스터의 『돈, 섹스, 권력』과 존 스토트의 『현대 사회 문제와 기독교적 답변』을 건네주었다. 동성연애에 대해 근본주의적인 이해만을 갖고 있었던, 그리고 복음에 대한 열정만 후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박하던 일이년 전이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그 후배를 인간쓰레기 취급하듯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성서 본문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에 충실하면서도 동성애자들에 대한 깊은 공감을 보여준 포스터와 스토트의 영향을 받았기에 그 후배를 향한 안타까움을 갖고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죄에서 벗어나라고 권할 수 있었다. 그 뒤로 후배를 위해 계속 기도하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서로가 어색해져버린 뒤라 쉽지가 않았다.


그 로부터 5년이 훌쩍 지난 97년 한 여름날, 대학원에 다니다가 몸이 너무 좋질 않아 집에서 쉬면서 군입대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지금의 안해랑 만나서 밤늦도록 도란도란 얘길 나누다가 자정이 조금 지나서 집 앞 버스정류장에 닿았다. 집으로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던 나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짐을 들던 한 남자를 발견하곤 집에까지 옮기는 것을 거들어주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그가 너무 고마워서 그러니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한다. 너무 늦은 시각이라 손사래를 치다가 하도 간청을 하기에 잠시 앉았다가 가기로 했다. 얘기를 꺼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보다 대여섯 살 많던 그는 한 교회의 지휘자였다. 대화가 무르익어갈 무렵, 무척이나 동안(童顔)인 나를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그는 “선생님이 참 좋은 분인 것 같아 제 고민을 하나 털어놓으려고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하더니 대뜸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그리고는 교회의 제자이자 현재 성가대원인 예쁘장한 청년과 정기적으로 성관계를 갖고 있다는 얘기를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오럴 섹스를 잘 해주는지, 그 젊은 애인이 얼마나 황홀해하는지, 한 번은 한 시간을 넘게 계속 빨아준 적도 있다는 얘기 등을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랑스럽게 꺼내놓았다. 5년 전 그날 밤 경악을 금치 못했던 그 기분이 쭈삣 일어서서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섹스 실력을 뽐내던 그는, 근데 동성애가 죄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당 시에 숨겨진 죄가 얼마나 공동체를 파괴하는지 책과 경험으로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나는, 그 교회에 달려가 당장이라도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지만 나를 믿고 말을 꺼낸 사람에 대한 배려 때문에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일주일 후에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다과를 나누며 복음주의권의 이른바 ‘공감적 비판’ 입장에 대해 소개한 다음, 5년 전 그 후배에게 주고 나서 재구입한 그 책들을 그에게도 건네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내 이야기를 경청하기는 했지만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였다.


그 때에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도 높아졌고 개인적으로도 다양한 동성애 담론을 접하는 동안 주님께서 내 포용력의 울타리를 넓혀준 까닭에선지(그래도 계간지 『리뷰』나 현실문화연구에서 나온 책들을 펼 때 당시 유명했던 게이지식인 서동진의 이름이 눈에 띄면 썩 기분은 좋지 않았다), 5년 전에 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 있었고, 그래서 집으로 불러 교제를 나누기까지 했던 것 같다. 게다가 동성연애자라면 질겁을 하고도 남을 순복음교회 신자인 우리 어머니에게, 그 사람에 대한 여하한 정황과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적인 입장을 소상히 설명한 결과 정죄 대신 이해를 얻어내었고, 그 결과 어머니도 그를 초대하도록 허락하였으니까 말이다. 할 수 있다면 그와 계속 만나고자 하는 바램도 있었지만 군대를 가면서 그와의 만남은 더 이상 이어지질 못했고, 결혼 후에는 부모님 아파트를 찾아뵐 때마다 건너편 동에 사는 그를 찾아가고픈 마음도 들곤 했지만 왠지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그의 집 창문만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


희 한하게도 다시 5년이 지난 지난해, 토론토에 와서 나는 다시 동성애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우리 학교에서 나랑 가장 친한 친구인 에이미(Amy)와 나타샤(Natasja)였다. 친절하고 상냥했던 에이미는 오리엔테이션 첫날부터 나랑 얘기가 통하더니 이후로 우리 식구들과 내가 토론토 생활과 학교 공부에 연착륙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나와 가장 많은 시간 얘기를 나누었던 동무가 에이미였고 식사와 차를 가장 여러 번 함께 했던 벗도 에이미였다. 우리집에 제일 먼저 초대해서 저녁을 먹었던 것도 에이미와 나타샤였다. 두 사람 역시 자신들의 아파트에 맨 처음으로 우리 가족을 초대했었다.


그 러다가 나는 에이미의 생일날이던 한 겨울날, 두 사람이 연인사이이고 동거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두 사람이 학부 시절 칼빈에서 같은 기숙사에서 지냈던 친구 사이라 여기에서도 룸메이트로 지내는 줄로 알았다. 근데 나타샤랑 결혼할 거라는 에이미의 말에 나는 너무나 놀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밝혀두지만 나는 좀체 감정을 얼굴 뒤로 빼내지 못한다. 에이미는 나의 당황하고 놀란 표정에서 상처를 받았는지, 아니면 그것은 옳지 않다는 내 말에서 아픔을 느꼈는지, 내가 나타샤랑 얘기하는 사이 밖에서 울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왈칵 들어 에이미를 안아주며 눈물을 닦아줬다. 그리곤 여전히 너희를 사랑한다고, 생일날을 망치게 해서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두 사람을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한 것처럼, 그런 일이 있은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나는 두 사람을 참으로 좋아한다. 두 사람은 온타리오 주에서 동성 간의 결혼을 인정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반면 나는 두 사람이 결혼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입장이지만, 여전히 에이미는 가장 친한 내 친구이다(해민이 역시 에이미를 무척 좋아한다). 에이미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우리 사이는 각별했다. 에이미는 우리집에 와서 안해와 서로 한국말과 영어를 배웠고, 문규형이 죽었을 때나 안해가 유산했을 때에는 나의 멘토인 실비아 선생님에게 재빨리 알려서 나를 도우려고 했다. 나 역시 요즘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에이미를 돕기 위해 영어 개인지도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봐주는 등 늘 에이미를 챙겨주고 있다. 이렇게 해서 동성애자와의 세 번째 해후에서야 나는 그들을 내 친구로 삼게 되었다.


보 수교단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나는 동성애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믿는다. 복상의 독자라면 상당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동성애자 친구를 둔 필립 얀시와 토니 캠폴로가 각각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천이 다루기 힘들어하는 20가지 뜨거운 감자』에서 보여준 동성애에 대한 탁월하고도 감동적인 이해를 여기에다가 다시 풀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나는 낙태와 동성애 얘기만 나오면 눈에 불을 켜며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처럼 간주하는 북미 보수교회의 풍토만큼은 다시 짚고 넘어가고 싶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서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단정한 음란함, 우상숭배, 간음, 탐색, 도적, 탐람(the greedy), 술취함, 후욕(중상모략), 토색(남의 것을 거짓으로 속여 빼앗음) 하는 자들을 왜 동성연애자와 같은 강도로 정죄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에 따르면 미국 목회자 중 절반 이상이 인터넷 포르노에 중독되어 있어서 목회자 역시 목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너무나 당연한 얘기인데 새삼스럽기는!)는 개탄이 나오고 있는 실정인데 왜 목회자들 자신에게는 동성애자들에게처럼 지옥행이라는 냉혹한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는가. 『라이프액션』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남성 70% 이상이 성적불순 이슈에 관련되어 있고 그중 유혹에 말려 실제로 혼외정사에 연루된 남성이 90%나 된다고 하는데, 미국인 대다수가 간음죄로 인해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것은 왜 소리 높여 외치지 않는가. 성공과 돈에 대한 집착, 쇼핑과 명품에 대한 중독, 섹스와 외모에 대한 탐닉은 분명한 우리시대의 우상인데, 이에 빠진 대부분의 교인들은 과연 천국행을 장담할 수 있겠는가. 미국인들은 힘없는 나라를 악랄하게 착취하면서 말도 안 되는 부유한 생활을 무궁히 지속해가려고 반면 미국인들의 안락한 삶의 대가를 대신 치르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한 나라 페루에서는 태어난 어린이의 반이 5살이 되기 전에 죽고 있다. 동성애자에게 지옥행 티켓을 발부하기 전에 자신들이 그 어린 것들의 피값을 치를 수 있겠는지 따져보는 게 순서가 아닐까?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 집회를 스케치하며


이 미 한국에서도 보도되었듯이 캐다나에서 동성간의 결혼(same sex marriage)이 합법화될 것으로 보인다. 개신교 보수교단에 속한 교회는 죄악이 합법화되고 있는 것을 경악하며 서명을 하고 집회를 하고 정치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동분서주하고 있다. 비록 늦었지만 보수교회가 해주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로마 가톨릭 교황도 캐나다 연방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가톨릭 정치인들의 신앙 양심에 호소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 의원의 말대로 이미 신앙과 정치전략 사이에 계산이 다 끝난 상황이라 뒤집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제 해민이가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와서 “압바, 왜 브래드네 엄마 아빠는 둘 다 남자야?”라고 물어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사 실상, 개인의 자유와 절대시되고 기독교가 변방의 한 목소리로 치부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동성결혼을 막을 합당한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에이미와 나타샤처럼 선량하게 살면서 세금 납부 등 국민의 의무를 다 이행한 사람들이 동성커플로서 자녀를 입양했을 경우, 이성부부 자녀에게 주어지는 모든 혜택이 그들 자녀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독신도 입양이 가능하기 때문에 법적 부부가 아닌 경우에도 자녀에 대한 교육이나 의료보험 등은 제공된다), 나라가 국민에 대해 할 바를 다 했다고 할 수 있을까?(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일부 현실론자들은 국민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주되 결혼이라는 호칭을 부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동성애 커플들은 경제적 혜택 외에도 결혼의 그 상징적, 사회적 의미까지 얻어내고자 한다.)


이 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 9월 6일(토) 토론토 중심부인 퀸즈 파크(Queen’s Park)에서는 ‘도시 속의 예수’(Jesus in the City)라는 행사가 개최되었다. 도심을 행진하면서 예수님이 토론토의 주되심을 선포하는 이 행사는 국제찬양페스티벌이 주최하는 것으로서 토론토에 복음을 전파하고 백인교계와 소수민족 교계의 화합의 자리를 마련할 목적으로 매년 열려져 왔다. 아마 한국의 대학 캠퍼스 내에서 예수전도단에서 주도하던 ‘예수대행진’ 같은 행사를 떠올려보면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5번째를 맞은 올해는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 집회의 성격이 더해짐에 따라 중국교회, 한인교회 등 이민교회의 참여가 증가했으며 행사 이전부터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아왔었다


행 사 당일은 하필 학교 재학생과 신입생의 교제를 위한 하루수양회(day retreat)가 있던 날이어서 그쪽으로 가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복상 토론토 특파원으로서의 투절한 기자 정신(^^)을 저버릴 수 없어 퀸즈 파크로 발걸음을 돌렸다.


퀸 즈 파크 전철역에서 내리자마자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 피켓을 든 이들이 삼삼오오 계단을 올라가는 등 사뭇 분위기가 후끈거렸다. 장소에 도착하니 엄청난 인파가 모여–나중에 언론 보도에 의하면 2만 5천명이 참석했다고 한다–한 흑인 여가수의 인도 하에 찬양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만국기가 나부끼는 하늘 아래에 흑인과 황인과 황인의 삼인종이 한 자리에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은 100개 이상의 민족이 살아가는 토론토가 아니면 보기 힘든 풍경일 것이다. 내가 본 국기만 해도 헝가리, 필리핀, 자마이카, 중국, 한국, 브라질, 이스라엘 등 각양각색이었다. 게다가 오순절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장로교회 등 온 교파가 함께 하여 하나됨의 의미를 더해주었다.


한 동안 찬양과 기도를 하고, “예수님은 토론토의 주님이시다”(Jesus is the Lord of Toronto)를 외친 다음 드디어 행진을 시작하였다. 항상 춤과 음악에 버무려진 삶을 사는 흑인들이 역시 앞장서서 행진을 흥겹게 주도하였다. 대형 트레일러 위에서 밴드와 합창단이 노래를 하는 모습과 다른 트레일러 위에 가설무대를 꾸며 각종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모습은 역시 흑인들이라는 감탄을 나오게 했다. 행진의 맨 끝은 칠천명명이나 모인 중국인들이 맡았다. 이들은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붉은 티셔츠를 입고 ‘결혼을 재규정하는 것을 반대한다!’(No redefining marriage!)고 적힌 배너를 들고 끝없이 이어지는 붉은 물결을 이루며 행진하였다. 중국 교회도 트레일러를 수대 마련해 밴드를 꾸렸지만 흑인들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점잖은 편이었다. 중국 교우들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주님 당신의 사랑의 빛’ 등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곡을 주로 불렀다. 각별히 아름다웠던 장면은 흑인들이 중국인들이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이었다. 천여명 가량이 참석한 한인들은 중국인들 속에 묻혀서 행진하였다.


사 실 나는 오늘 행사를 앞두고 적잖이 걱정을 했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게이-레즈비언들이 그들의 인권 옹호를 외치며 행진할 때에 섬뜩한 보수기독교인들이 보여주었던 증오심과 “Go right into hell”과 같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저주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혹시나 오늘 토론토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살벌한 정죄와 적대의식이 혹시나 표출되지는 않을까, 또 그로 인해 게이, 레즈비언들과 충돌하지는 않을까 자못 염려되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내가 취재를 하는 한에 있어서는 그러한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간혹 동성애자들이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을 자극하려는 듯 선정적인 의상을 하고 거리에 나와 비난의 말들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맞받아치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 지만 우리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으로 흡족해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반대의 목소리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늘 상기해야 한다. 그날의 행사는 우리와 우리의 자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동성애자들을 위한 것임을–비록 그들은 억압이라고 생각할지라도–의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외치는 동성결혼 반대의 목소리가 사랑으로 품어야 할 동성애자들보다 더 중요해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사실 허다한 문제가 우리가 하고 있는 무엇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잊게 될 때에 발생한다. 풍부한 영적 감수성만으로도 내가 최고의 작가로 뽑기를 주저하지 않는 켄 가이어는 『영혼의 창』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준 비하는 식사가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보다 더 중요해질 때, 나는 바퀴가 떨어져 나가려 한다는 것을 안다. 내 일이 그 일의 수혜자인 가족들보다 더 중요해질 때. 내가 주장하는 말이 그 말을 듣는 사람보다 더 중요해질 때. 이런 것들이 내가 고정 축을 잃었다는 증거가 된다. 더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할 때. 다른 사람, 특히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내 가족의 성스러움을 느끼지 못할 때.


다 알다시피 록 허드슨이 AIDS로 죽은 20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동성연애가 뭐지?” 하며 낯설어 했는데 이제는 법이 그것을 보장해주는 상황이 되었으니 세상이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동성애뿐이던가. 많은 나라에서 낙태가 여성의 권리로 보장되었고, 포르노와 마약이 허용되었고, 성관계 경험이 없는 고교생들이 매력 없는 애들로 조롱을 받게 된 지 오래되었다. 필립 얀시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서 충분히 공감하며 지적했듯이 세상이 이처럼 엄청난 속도로 교회에 대해 적대적이 되어가면서, 보수교회 역시 세상에 대해 방어적이 될 뿐만 아니라 호전적으로 변해갔다. 나 역시 보수교회에 속한 사람으로 그러한 정황을 십분, 백분 이해한다. 위협을 느낄 때에 공격적이 되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그 러나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대감이 우리를 갖고 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동성애자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패배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품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승리가 곧 그들의 승리임을 알려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승리를 독점하려고 하지 않고 나누려고 할 때 놀랄만한 변화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제로섬 게임이냐, 윈-윈 전략이냐


마 르틴 루터 킹 목사는 이미 오래 전에 이러한 깨달음을 온 몸으로 실천한 사람이다. 알고보면 사회를 변혁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에 대해 열매는 없이 대적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상대에게 패배를 가함으로 승리를 쟁취하려고 하는 우리의 전략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킹의 위대함은 상대에게 패배를 가함으로 승리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나의 승리가 곧 적들의 승리도 된다는 점을 적들에게도 알렸다는 데에 있다. 킹의 트레이드마크인 비폭력저항도 실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킹의 연설 중 한 부분을 옮겨본다.


“우 리들의 집에 폭탄을 던지고 싶으면 던져라. 우리들의 어린 아기들을 죽이고 싶으면 죽여라. 우리들은 그대들을 계속하여 사랑할 것이다…끝까지 참고 견디는 우리의 사랑의 투쟁은 반드시 이기고 말리라는 것을 확신해 달라. 어느 날엔가 우리는 자유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들의 자유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승리하는 날, 그것은 곧 당신들의 승리로 되는 이중의 승리가 될 것이다(이것이 바로 진정한 윈윈 전략이다! – 필자 주). 그 날까지 우리는 계속하여 당신들의 양심에 호소할 뿐이다.”


킹 에게 백인은 싸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흑인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백인들 역시죄악에 눌리고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로 보였다. 흑인들에게도 해방이 필요했지만 백인들에게도 해방이 필요했고 흑인들에게 승리가 필요하지만 백인들에게도 승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간파했다.


따 라서 단언하건대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의 근본적인 차이는 폭력과 비폭력이 아니다. 그것은 제로섬 게임(zero-sum, 게임의 이론 등에서 한 쪽의 득점이 다른 쪽에 실점이 되어 한쪽의 득점과 상대의 실점을 합하며 제로가 되는 게임)이냐 윈윈 게임(win-win)이냐에 있다. ‘너의 승리는 나의 패배’라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상대를 패퇴시키는 데에 급급할 뿐이지 상대를 감동시킬 순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윈윈 전략에 기초한 것이다. 원수 된 우리들을 진노로 무릎 꿇린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짐으로써 우리를 죄로부터 승리케 하시고 그 결과 우리 스스로 그 분 앞에 무릎을 꿇어 그 분을 내 삶의 진정한 승자로 인정하게 하신 것이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는 예수님의 선포는 일개 사단의 천사를 소집하여 자신을 못 박으려는 자들을 응징함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멋도 모르고 자신을 잡으러 온 말고의 귀를 붙여주신 그 사랑으로 이뤄진 것이다. 뻔한 얘기지만 예수는 자기를 잡아 죽이려는 세상을 사랑으로 무릎 꿇렸다.


윈 윈전략이 통용되어야 할 것은 통일문제도 마찬가지다. 육이오 전쟁과 이후의 각종 도발로 인한 상흔이 채 아물질 않아서인지, 아니면 군사정권 연장의 도구로 오용된 레드 콤플렉스의 여파가 남아 있는 건지는 몰라도 어떻게든 북측을 굴복시켜서 승리의 쾌감을 누리려고 하는 그 마음씀씀이가 문제다. 자신을 패배시키겠다는데 어느 누가 순순히 백기를 들겠는가? ‘남측도 승리가 곧 북측의 승리가 되고, 북측의 패배가 곧 남측의 패배가 되는’ 윈윈 전략으로의 발상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 한 통일은 지난한 과제일뿐더러 통일이 되더라도 그 후유증으로 인해 안함만 못하다는 말이 두고두고 나올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뭐라 말하든 간에 적어도 우리 기독인들만큼은 우리 남한이 아닌 북한을 위해 통일이 이루어지지기를 바래야 한다. 흔히 말하는 가엾은 북한 인민들을 위한 통일을 말함이 아니다. 그들을 착취하고 억누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위시한 소수의 절대지배층을 위한 통일 말이다. 개방에 대한 공포, 체제붕괴에 대한 공포로 떨고 있는 그들에게, 우리는 통일이 바로 그들의 승리가 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자 연을 경작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윈윈 전략이 요청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땅이 엉겅퀴와 가시를 내어 우리에게 적대적으로 변했다 하더라도 서구인들처럼 자연을 이기고야 말겠다는 태도가 피조물로 탄식을 내뱉게 한다. 내가 늘 하는 얘기이지만 문화명령의 다스림이란 바로 피조물들을 섬기고 가멸게 하는 다스림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그것이 바로 자연을 승리하도록 돕는 것이고 우리도 이기는 것이다.


문 화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문화 변혁 모델이야말로 칼빈주의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임임은 분명하지만, 사탄이 대중문화를 선택해서 온통 마성(魔性)을 들여놨으니 주의 군사가 되어 악한 문화를 초토화시키겠다는 식은 곤란하다. 물론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그 때부터 악한 영들의 원수가 되는 것이고, 예수 믿는다는 것에는 그 분의 친구, 제자, 종, 자녀, 양, 동역자 등이 되는 것과 동시에 그 분의 군사가 되는 것도 분명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주의 군사가 되는 것이 홍위병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며 문화사역이 문화혁명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이러한 공격일변도의 태도는 개혁주의자들로 하여금 변혁을 투쟁으로만 이해하게 만들고 세상에 대해 호전적인 마음을 품게 만든다. 그러니 변혁의 대상으로 ‘찍힘’을 당한 이들은 죽고살기로 우리에게 덤벼들게 마련인 것이다. 그럴수록 세상은 교회를 해방자가 아니라 억압자로 인식되고 만다.


월 터스토프가 『정의와 평화가 껴안을 때까지』(Until Justice and Peace embrace)에서 뼈아프게 지적한 대로 칼빈주의는 본디 내가 남보다 낫다는 승리주의(triumphalism)적 성향을 타고 났다. 이런 태생적 약점은 우리로 하여금 제로섬 게임에 더욱 몰두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말씀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했건만 내 교회와 교단과 교파가 다른 데보다 낫다(특히 그 지긋지긋한 ‘장자교단’ 소리!)는 지극히 반성서적인 확신은 타교회 타교단 타교파가 내게 맞출 것을 요구하게 되고 이런 곳에 윈윈 게임은 들어설 자리가 대체 없다.


내 가 믿기로 교회의 제로섬 게임 애호는 무엇보다도 믿음과 사랑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내 안의 믿음이 바깥세상의 위협에 대해 여유 있게 맞설만하지 못하면 우리의 속은 좀팽이처럼 좁아져서 바늘 하나 찔러도 들어갈 틈이 없는 그런 기독교인이 되고 말 것이다. 앞에서도 인용했던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 33)는 예수님의 선포는 환난을 당해도 세상에 호전적이 되지 말고 사랑으로 세상을 이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품으라는 것으로 읽힌다. 그런 믿음이 있을 때에야 우리는 모진 세상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고 나를 치려는 상대의 형편까지 염려해줄 수 있는 사랑을 품을 수 있게 된다.


그 러므로 나 자신이 적대감에 휩싸이게 되고 호전적으로 변할 때마다 내 믿음이 겨자씨 하나만도 못하지는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만약 우리 믿음이 겨자씨만하기만 하다면–이 험한 세상에서 그 작은 씨앗이 싹이나 제대로 틔워 자라랴 싶겠냐마는–놀랍게도 그 작은 믿음은 나중에는 씨앗을 주워 먹는 새들, 즉 우리를 삼키려는 세상을 이기고 나무가 되어 종내에는 새들에게 가시를 내어 찌르며 앙갚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쉴 곳을 제공해주는 나무가 된다. 나무는 항시 이렇듯 자신도 승리하고 새들도 승리하게 하는 것이다. 새들이 무지 좋아하는 해바라기씨를 밭에 뿌려놓으면 씨앗들은 부리를 피해 겨우 싹을 틔우지만, 훌쩍 자라 여름이 되면 장미처럼 새들에게 가시를 내지 공격하는 대신 새를 향해 환히 웃을 뿐만 아니라 가을이 되면 그 맛난 씨앗을 얼굴 가득 채워 새들을 먹이곤 한다. 내게 겨자씨 비유는 이렇듯 윈윈 전략에 관한 것으로 읽힌다. 이 모든 것을 차지하고서라도 하늘나라 그 자체가 바로 모두가 이기고 즐거워하는 곳이 아니던가?


공포가 우리 눈을 멀게 만들 때


위 에서 세상에 대한 근본/복음주의 교회의 적대감 및 분리 정책이 세상의 급속한 세속화에 따른 두려움에서 비롯된다고 한 바 있거니와, 두려움과 공의 간의 관계를 밝힌 가톨릭 신학자 매튜 폭스(Matthew Fox)의 통찰은 근본/복음주의 교회의 치명적인 결함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그는 일찍이 토마스 아퀴나스가 공포에 거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격정에만 몰두되어 있어서 다른 이들의 고통에는 관심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면서 이것이 바로 근본주의 교회가 왜 그토록 정의와 불의에 관해 무관심한지 잘 설명해준다고 꼬집는다. 그는 공의와 불의가 근본주의 교회 설교자들의 어휘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성서에 의하면 사랑을 행하는 것이 공의를 행하는 것이고, 에크하르트(Eckhart)에 의하면 공감이 곧 정의(Compassion means justice)라고 덧붙인다.


근 본/복음주의자들은 지난 세기 내내 사회의 불의에 대해서는 입을 싹 닦았기 때문에 매튜 폭스의 지적은 실로 뼈아프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무서워지더라도 세상을 향해 사랑이 아닌 두려움을 갖게 되면 그시로부터 교회는 세상에 대해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입장을 갖게 되고 약자의 아픔에 대해서는 눈멀게 되고 만다. 세상과의 전쟁을 결연히 선포하면서 대형 전투에만 모든 전력을 집중시키는 교회는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를 간과하게 되고 나아가 사회구조적인 악에 대해서는 유물론의 세례를 받은 사회학자들의 얘기일 뿐이라고 회피하게 된다. 이제 선지자적 사명은 쓰레기통에 던져지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고 악을 쓰는 막가파식 모습뿐이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이러한 모습은 주님의 얼굴보다는 사탄의 모습에 가깝다.


따 라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최종 승리는 주님께 있음을 믿고 세상보다 더 통 큰 마음으로 여유를 머금은 포용의 자세를 갖고 세상을 껴안을 필요가 있다.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처럼 자신을 적대시했던 이들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모두가 자신을 좋아하고 따르던 주위 분위기가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돌하는 상황에서도 전혀 분개하지 않고 도리어 “저들은 저들이 하는 바를 모르옵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그들을 품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 가슴에 진하게 판박이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 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하마스와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용감무쌍해보이고 더 이상 영웅적일 수 없는 자폭테러의 장면 역시 공포에 눌려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결과일 뿐이다. 근본주의 종교와 독재 정치는 바로 이러한 면에서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종교와 정치라는 다른 영역에 속해 있지만 ‘공포’를 먹고 자란다는 점에서는 이란성 쌍둥이와 같다. 예를 들어, 버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가 자신의 나라에서 발악을 하는 독재 군사 정부를 보면서 일찍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공포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겉으로 보면 사람이기를 포기한 독재군사정부가 권력에 대한 집착 때문에 저렇게 비인간화되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권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사탄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하웃즈바르트는 돈이든 권력이든 핵무기든 기술문명이든 모든 우상숭배의 종말은 공포이고, 종국에는 공포심 때문에 우상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참한 상황이 연출된다고 지적한 것이다.


근본주의는 기독교가 아니다


우 리는 기독교의 여러 지류 중의 하나로 근본주의를 언급한다. 더구나 다수의 한국 교회가 근본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는 근본주의가 곧 기독교의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장담하건데 사랑 대신 공포에 기초한 근본주의는 기독교가 아닌 그 자체가 하나의 구별된 세계관이다. 그것이 이슬람으로 스며들어가면 이슬람의 외피를 입은 근본주의적 회교도를 낳고 기독교로 침투하면 기독교의 탈을 쓴 근본주의적 기독교인을 잉태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근본주의는 참된 기독교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독재적 기독교 혹은 파시즘적 기독교이다. 박정희 독재와 한국 근본주의가 그토록 궁합이 잘 맞아서 양자가 고루 양적인 발전을 해가며 수명을 연장해왔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로 설명이 된다. 독재정부와 근본주의 교회가 공히 공산주의를 사탄의 정치적 현현(epiphany)으로만 이해하는 것 역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포를 이기는 첫 번째 길은 증오심을 불태우는 것이었고(증오는 두려움의 대상을 작게 보이게 하는 착시 현상을 일으키지 않던가!), 둘째는 미친 듯이 자신의 몸을 불려 크기로 적에게 맞서는 것이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경제개발과 교회성장이 무차별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말 이 나왔으니 말인데, 한국 가정의 권위주의 역시 같은 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세대차가 큰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다고 두려워하게 되고, 나아가 아이들이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면 그 때부터 독재적인 부모가 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가부장제의 탈을 쓴 권위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이 없는 부모는 아이들의 항변을 끝까지 듣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나니


이 제 다소 길어진 글을 맺어야겠다. 고백하건데 나는 여태껏 사랑 안에는 공포가 없다는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에 와서야 그 그윽한 말뜻을 조금은 헤아릴 것 같다. 이제 근본/복음주의 교회와 한국의 근본주의 사회는 이 말씀을 삶에 녹여내야 한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쫒나니” (요일 4.18)


後記) 원고를 보내고 나자마자 연방의회에서 이성결혼만이 합법적이라는 안을 5표차로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4년전에는 216-55로 압도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제 머지 않아 이성간의 결합만이 유일한 결혼의 모습이 되지는 않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