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2 이야기


유학생 배우자의 소고


열시 쯤 연구실로 출근하는 유학생 남편에게 맞추어 아홉시 쯤 기상.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나서 점심식사 준비. 열두시 쯤 칼같이 점심을 먹으러 들어오는 남편과 점심식사. 주섬 주섬 설겆이와 청소를 마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스런 미국 토크쇼 두 개를 보고 나면 어느새 저녁식사 시간. 여섯시 삼십분에 수업을 들어가는 남편을 보낸 후에, 한국 TV의 드라마 몇 편을 보면서 집안 일을 하고 있노라면 남편이 돌아온다. 그날의 수업 내용을 리뷰하는 남편 옆에서, 인터넷을 이용하여 한국의 소식을 접한다. 가끔 괜찮은 레서피도 다운 받고, 여러 개의 사이버 카페에 들러 수다를 떤다. 그리고 한 시 쯤 잠자리에 든다. 일주일에 두어 번 근처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무료 영어수업을 받는 걸 제외하곤, 매일 매일이 동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가 없다면, 대부분의 유학생 배우자들의 사는 모습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간혹 남편의 도시락을 쌀 때도 있고, 남편이 일찍 출근한다면 같이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드물게는 남편과 함께 학위를 밟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의 와이프들은 요리와 TV 시청, 인터넷과 함께하는 단조로운 생활을 한다. 그러나, 이런 생활 이면에도 갈등과 문화적 충격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학생인 남편을 향한 배우자의 배려 속에서, 때로는 피곤한 남편의 외면 속에서, 이러한 갈등들이 전혀 해소되지 않은 채 날이 갈수록 증폭되기도 한다. 훈련과 사역의 장에 가정의 영역이 포함되는 것이라면, 유학생들과 같이하는 유학생 와이프들의 삶과 생각이 그 장에서 소외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다음의 글에서, 유학생 와이프로서 가지고 있는 나의 갈등과 불만들, 문화적 충격 등을 나누고 싶다.


1. OO 씨 와이프, 내 이름은 어디로?


결혼과 동시에 나의 이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학 졸업식도 전에 결혼한 나로서는, 이런 풍토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민) 교회에 가니 부인 성을 남편 성과 갈아 치우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는 사실. 다른 곳도 아닌 한국 교회에서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살려고, 진학도 직장도 고려치 않고 유학생인 남편과 결혼한 내게, 내 남자의 와이프로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 억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누구 누구에게 얹혀 사는 누구’라는 인상을 주는, 씨 와이프, 이 호칭이 전혀 달갑지 않다. 배우자는 달랑 이름과 생년월일만 기재하게 되어 있는 KOSTA 신청서를 받고 나서, 내년에는 내 이름으로 신청한다고 남편을 달달 볶던 일이 생각난다. 내게도 관심 영역이 있고, 전공이 있고, 훈련받은 공동체가 있는데, KOSTA 역시 배우자는 유학생에게 얹혀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는구나 싶어서 두고 두고 서운했다. 물론 배우자들을 배려해서 통곡의 방까지 운영하는 KOSTA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김혜진이라는 개인에게 관심이 없는 듯한, 교회 공동체나 유학생 공동체에 나 역시 관심을 갖게 될 리가 없다. 남편 때문에 시카고로 오게 된 것, 남편이 다니는 교회에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다니게 된 것, 내게는 어떤 선택권도 없었던 것마저 억울한데 말이야.


2. 영어, Culture Shock의 시작


남편의 학교는 흑인 주거지역인 시카고 남부에 위치해 있다. 인적이 드물어 조용한 학교 도서관 안. 이 학교는 어떻게 된 건지 도서관에 사람이 없다. 갑자기 접근하는 흑인 아이 두 명. 영어로 말을 걸어온다. 이웃집 아줌마는, 이런 경우 무조건 내 빼라고 하였지만, 나, 영문학 전공자다. 내 비록 영어는 서툴지라도, 다가오는 도전(challenge)을 피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곰곰히 뭐라고 하나 귀 기울여 듣는다. 돈을 달라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아이들 표정이 험상궂다.



헤이, 레이디, 나 너의 태도가 맘에 안들어!


이쯤 되면 도망갈 채비를 한다. 아무래도 “돈을 좀 주세요”가 아니라 “돈 내놔!”였었나보다. 사전과 책을 주섬 주섬 챙기는데, 진땀이 흘러 손이 더디다.



어쭈? 도망가려고?


끝까지 날 협박하는 지긋지긋한 아이들. 더 험한 꼴은 안 당하고 빠져 나왔지만, 옆에 다른 인도인 남자도 있었는데, 내게 접근한 이 흑인 아이들이 어처구니없다. 동양여자가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으면. 소리도 못 지르고 도망갈 생각만 한 나도 참 담력이 없다.


그 후론 한 동안 영어가 싫었다! 텔레 마켓팅으로 걸려오는 전화도, 가끔 찾아가야 하는 하우징 오피스의 아줌마도, 무료 ESL 코스의 사무실 직원도, 길을 묻는 아랍인도, 마주하기 싫었다. 영어로 따라가는 수업이 고달프다는 남편들의 한숨은 오히려 사치다. 한국의 아줌마들은 요즘 강력하게 목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이곳의 유학생 와이프들은 그냥 숨 안 쉬고 산다. 날마다 무능해지며 작아지는 자신을 느낀다.


3. 예기치 않은 Culture Shock,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


72년생인 남편은 유학 4년차이다. 하지만, 불과 일년 전만 해도 과 한인 학생회에서는 막내였다. 아무리 막내라고 해도, 나에게는 하늘같은 남편인데, 이것 저것 시키는 과 선배들의 태도는 참을 수가 없었다. 반말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불러내는 것은 물론, 꼭 하기 싫은 일들은 나이 어린 사람을 시킨다. 한국인 유학생들이야 늘상 겪는 일이기에, 구태여 내가 길게 이야기 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유학생 와이프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있다는 것.


76년생인 내가 미국에 왔을 때, 만 23세였던 나는 명실상부한 막내였다. 막내라고 귀여움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어리다고 그토록 무시를 당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이가 어린데 결혼부터 덜컥 했다고 생각없는 아이라고 무시함, 직장 경력이 없다고 무시함, 공부를 하고 싶다니까 어려울 거라고, 철이 없어서 그런다고 무시함, 요리를 못 한다고 무시함, 아이를 돌볼 줄 모른다고 무시함. 한국에서 그래도 전문직에 있던 사람들이 남편 때문에 이 곳에 오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그 스트레스를 다 푸는 것은 아닌지. 여자 싱글 유학생 역시 와이프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물론이다. 그럴 때는 자신들이 결혼했다는 사실이 큰 자랑이 된다.


며칠 지나니 모임의 맏이쯤 되는 한 언니가 안 보이기 시작했다. 80년대에 유학 온 남편의 졸업이 예상보다 한참 늦어지게 된 것. 또 한 언니가 안 보였다. 남편이 박사과정 자격시험에서 두 번이나 미끄러진 것. 유학 때문에 고생하는 남편들도 그렇겠지만, 남편들 때문에 와이프들 역시 맘 졸이고 몸 상하며, 와이프들 사이에서의 눈길에 민감해진다. 지난 학기 남편이 석사 디펜스 했을때, 나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


얼마 전, 자주 들리는 유학준비 사이트에 유학생 와이프들을 위한 게시판이 생겼다. 고달픔을 토로하는 유학생 와이프들과, 정신과 상담이나 받으라는 싱글 여학생들과, 와이프들의 글에 불만이 가득한 남성 유학생들의 글로 연일 싸움판을 방불케 한다. 정녕, 해결책은 없는 걸까?


4. 네 이웃을 사랑하라구요?


남편이 다니는 학교는 유독 인도인들이 많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도 열 두 가구 중 여덟 가구가 인도인들이다.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이웃집에 세 명의 인도 처자들이 이사왔다. 인도인들이 가까이 살 경우, 그네들 집에서 나오는 솜털 먼지가 복도를 돌아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것은 예사이고, 때때로 그 집의 바퀴벌레 등의 설치류들이 침입하기도 한다. 그래도 여자들이 이사를 왔기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러던 며칠 후, 건장한 인도인 남자 두 명이 큰 트렁크를 들고 그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어떤 키 작은 인도인이 학기 내내 열쇠가 없어 그 집 문을 두드려 누군가가 열어주길 기다리는 걸 보게 된다. 도대체 이 집에는 몇명의 남녀가 동거하는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워낙에 지저분하기로 소문난 인도인들이지만, 더욱 분개하는 것은 그들이 너무나도 불친절하다는 것. 미국인들에게 무시 당하는 것 역시 억울한데, 학교 편의점에서 일하는 인도인 직원은 거스름돈을 잘못 주고도 상대편 잘못이라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른다. 남편이 들어가는 수업의 TA 역시 인도인인데, 질문에 불친절하게 대답했다가 교수에게 보낸 남편의 이메일로 단번에 수그러들었다.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 아니 영어를 못하는 자에게는 강한 척 하는 그들, 포용하기 힘들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인도인들도 있다. 유학생 와이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인도인 여성이 한 명 있는데, 이 사람은 늘 자기는 다른 인도인들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문화에서 오는 다른 점들을 극복하고, 각각의 문화와 사람들로부터 장점들을 배워야 외국 생활의 잇점들을 진정으로 누렸다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러한 이웃사촌들과 같은 엘리베이터 타는 것도 꺼려지니 어쩌면 좋을까. 수업에서 이들과 부대끼는 남편들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웃을 사랑하기란 뼈를 깎는 고통이다.


5. 무인도에서 표류하기


유학생 와이프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무인도에서의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공동체의 소중함. 대학시절을 부대낀 공동체와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15년을 동고동락한 지역교회의 동기들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가슴 아프게 다가올 줄 알지 못했다. 어학연수 때문에 일년 간 떨어져 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외로움. 언제 돌아갈 지 모르고, 갈 수 있을 지 알 수 없는, 무인도에 표류하고 있는 삶.


무인도에서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이 가능한가? 물론, 이전에는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과 단 둘이 있는 큐티시간은 얼마나 감미로우며, 혼자 드리는 찬양의 재미는 또 어떤가. 내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가끔은 공동체 안에서의 사역이나 내 신앙에 대해 깊이 점검할 수 있는 값진 시간들. 내게도 광야가 필요해! 하고 절절히 외쳤던 때도 있었으니. 그러나, 신앙생활은 역시 무리지어서 할 일인 것 같다. 대학시절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큐티를 나누고, 기도 모임을 갖고, 후배들 때문에 울어도 보고, 그 때처럼 열심히 성경 연구를 할 수는 없겠지만, 세워 주고 세움 받는 공동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격려받는 공동체, 정말로 필요한 것 같다. 오랜 광야 생활, 무인도 생활 속에서, 나와 같은 일반인들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때로는 잘못된 생각과 상상력을 쌓아간다.


문제는 어떻게 공동체 생활을 시작할 것인가이다. 여러 군데 찾을 것 없이, 지금 속한 교회 공동체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손쉬운 일이겠지만, 한인 교회에서도 내가 설 곳은 없다. 교회 청년회의 사역 대상은 분명 유학생이며, 유학생 와이프는 인원을 채우기 위한 덤일 뿐이다. 하긴, 교회 전체적으로 보면 유학생이 사역 대상인 것도 절대 아니다. 그저 궂은 일을 시키기 위한 일꾼들일 뿐. 어쨌거나 이름뿐이라도 유학생들을 위한 청년회가 존재하는 반면, 그것들도 싱글인 학생들을 위한 청년회이며, 더군다나 유학생 와이프들은 한국에서의 신앙생활의 결과로 참여하기는 하지만 내 공동체로 삼기에는 이질감을 느끼는 그런 청년회이다.


내가 아는 것은 시카고에서의 상황뿐이다. 한국의 대학 선교단체에서 수년 간 간사를 하신 분(역시 유학생 와이프)도 소그룹 시작하기를 어려워하는 곳이 시카고라고 하니, 간혹 유학생 와이프들이 아름다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지역이 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어떻게 그러한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는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6. 남편은 화성인, 난 금성인


신혼부부에게는 누구나 깨어질 환상이 있다. 사랑만 있으면 서로의 어떤 부족한 점도 감싸안을 수 있을 것 같던 시절은 금방 지나간다. 2년 여를 결혼을 전제로 교제했으며, 대학에서의 성 관련 수업과 각종 데이트와 결혼에 관련된 서적, 남성과 여성 심리, 가정생활에 관한 서적으로 무장을 하고 결혼했던 우리 부부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그러던 중, 교회에서 열린 도은미 사모님의 아버지 학교에 참여한 남편의 노력과, 여러 가지 좋은 책들을 함께 읽은 결과로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유학생 사회를 보면, 유독 특별하게 결혼한 부부들이 많다. 많은 유학생들이 결혼 적령기를 넘기고 있다 보니, 선이나 소개팅을 통해서 한 두달 사이에 급속으로 결혼을 진행시킨 경우가 잦다. 이런 경우에, 서로의 단점에 대해 잘 알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되고, 이것이 고달픈 유학생활과 더불어 냉담한 부부관계로 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문제가 꼭 유학생 부부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유학생 부부에게 더 큰 문제가 되기도 하는 이유는 남편은 시간이 없기 때문. 가령 아버지 학교가 모 교회에서 열린다고 하자. 금, 토, 일요일에 있는 이 학교에 꿈같은 주말을 할애할 유학생 남편들이 얼마나 될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부부가 같이 딱 한 번만 읽어봤으면 좋겠다 싶어 권하면, 와이프들은 그것에 호의적인 반면, 공부하는 남편들은 학업 외의 또다른 책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와이프나 남편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무뎌지고, 포기할 때까지 그들의 서로에 대한 불만은 쌓여만 간다.


1999년 전공별 모임을 잊지 못한다. <여성학>이라는 이름 하에 모인, 유학생 남편으로 인해 상처받은 많은 와이프들. 아무런 이야기 하지 않아도, 자신의 하던 일도 버리고, 말도 안 통하는 미국에서 아이들 기르며 고생하는, 때로는 한국에서 방문, 유학오는 다른 가족들까지 수발해야 하는 와이프들에게 불만이 없을 리 없다. 2000년 KOSTA에서는 참으로 좋은 부부관련 세미나들이 열렸는데, 안타깝게도 참여가 저조했다고 들었다. 그 이유가 남편들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근거없는 내 생각일까?


주변을 보건대, 많은 유학생 와이프들이 ‘이러한 고민들은 시간이 해결하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오랜 유학생 와이프 생활 끝에 고민과 긴장에 대해 무뎌지고, 익숙해지며 포기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은 아니라고 본다. 또한, 유학생 와이프들의 문제 해결은 자신의 노력 뿐만 아니라, 유학생 남편들의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유학 사회 안에 제대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유학생 와이프들의 정체성 회복, 가정 안에서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 인식, 그들의 잠재력을 하나님께 헌신된 사역으로의 인도하기 위한 대안이 기독 유학인 사회 안에서 고민되어져야 한다.


유학생 배우자로 2년을 채 살지 않은 나의 경험들이, 모든 유학생 배우자들의 경험을 대표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 글을 통해서 다른 선후배 유학생 배우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tmKOSTA의 F2/배우자를 위한 웹 보드를 활용하여, 안으로 숨겨져 있던 문제들을 고민하고 나누면서 해결점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역시 기대하는 것은, 이런 열려 있는 공간을 통해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선배 배우자들의 모범을 접할 수 있으리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