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사역 Q&A


교회 봉사는 꼭 해야 합니까?


교회 봉사를 해야 하느냐의 질문을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 봉사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목적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요점만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복음서에서 교회라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곳에서 처음 언급됩니다(마16:18). 여기서 사용되는 헬라어는 ekklesia로서 ek(a primary preposition denoting origin, i.e., the point whence action or motion proceeds)와 kaleo(to “call”, i.e., properly, aloud, but used in a variety of applications, dir. or otherwise)의 복합어인데, 이 단어는 a calling out, i.e. a popular meeting, especially a religious congregation(Jewish synagogue, or Christian community of members on earth or saints in heaven or both)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Source: Biblesoft’s New Exhaustive Strong’s Numbers and Concordance with Expanded Greek-Hebrew Dictionary. Copyright (c) 1994, Biblesoft and International Bible Translators, Inc.).


성경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엡1:20; 3:10-21; 5:23-32).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모든 자들의 집합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신약에서 교회에 대한 언급은 많이 나오고 있으며 특히 사도행전에는 지역 교회를 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역 교회는 이런 그리스도의 몸이 구체적으로 이 세상에 표현된 하나의 subset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 이후에 세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은 교회는 그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으며 또한 지킬 때만 그 머리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명령은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 자에게는 불가능한 일 입니다.


교회가 맡고 있는 책임은 바로 제자 삼는 일 입니다. 마태복음 28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모아 놓고 (여기서 제자들의 모임은 교회입니다) 하신 명령은 바로 제자 삼으라는 것입니다. 명령을 이해하는 과정 가운데 각 지체의 회복으로 말미암은 참된 교제와 나눔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런 나눔 가운데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일과 교회 밖의 사회에서의 빛과 소금의 역할도 감당하게 됩니다. 이런 교회의 역할은 각 지체들이 말씀 가운데 설 때 이루어지는 자연적 결과들입니다. 물론 각 지체의 불완전함(죄성) 때문에 많은 갈등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교회의 성장의 자연적인 부분입니다. 각 지체의 성화는 곧 교회의 성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교회의 팽창은 지체들이 증가할 때, 즉 제자의 수가 더할 때, 이루어집니다.


육신의 세계 안에서 현존하고 있는 한 현재 지역 교회와 para-church의 체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재 지역 교회는 지역 중심으로 몇 사람들이 모여 신앙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도하고 제자 삼는 일을 함으로 그 지역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그 지역이 있는 사회와 문화 등등 많은 요소들에 의하여 지역 교회의 특성들이 형성될 것입니다. 또한 이런 지역 교회 간의 협력을 통해 국가적 차원의 중요한 일에도 한 목소리를 냄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일반 지역에 국한된 전도보다는 특수 지역, 혹은 특별한 목표를 가지고 형성된 신앙의 공동체인 para-church도 포함 합니다. 캠퍼스 미니스트리나 선교 단체들이 모두 이런 para-church에 속합니다.


교회(지역 교회 및 para-church)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질서가 필요합니다. 이런 질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각 지체들의 역할들을 규명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본적 질서는 규모가 작을 때는 informal한 이해 관계에 의존할 수 있지만 규모가 커지면 질서를 체계화시킬 필요가 생깁니다. 즉 하나의 체제(institution)를 형성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효율성을 위함입니다. 예를 들어 일요일에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가 필요하고, 성가를 부르는 성가대원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예배의 형식에 따라 또 그 신앙의 공동체의 목적에 따라 각기 다른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각 지체들이 의견을 조율하여 하나의 체제를 만들 필요는 있습니다.


교회 봉사는 교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각자가 맡은 책임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봉사(service)라는 단어에는 보수(return)가 없는 노동(labor)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헌신의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 봉사는 헌신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일 부분 입니다. 교회 봉사는 궁극적으로 제자 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받은 은사가 다른 만큼 맡은 직책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받은 은사에 따라 자신이 직책을 찾아야 합니다. 물론 신앙의 선배 분들의 의견을 참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직책은 지역 교회 안에 국한된 일일 수도 있고 para-church를 통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봉사는 궁극적으로 제자 삼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하는 일 입니다.


올바른 교회 봉사를 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에 굳게 서서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직접적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지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물론 신앙이 어릴 때는 선배 분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이제는 구약시대처럼 우리들에게 우리와 같은 인간이 중계자 역할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봉사를 할 때 교회의 질서를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무질서한 행위는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질서는 인간 사회의 가치관에 의한 위계 질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직책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동역하는 자들과의 화목과 협동, 그리고 서로 섬김으로 말미암아 형성되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의 질서입니다.


말씀의 묵상과 성령님에 대한 민감성이 없이는 참된 봉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죄성 때문에 자연적으로 보다 구체적인 체제를 형성하려는 성향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각 지체들의 타락된 마음의 성향이 반영되어 사랑과 섬김의 체제보다는 명예와 다스림의 체제를 이루어 갑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보다는 인간의 정치적 감각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는 경우가 많고 참된 제자 삼는 목적보다는 종교 집단을 만들려 하는 강한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향을 대적할 수 있는 방법은 각자가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이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교회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우리에게 봉사가 강요될 때 사랑으로 이겨야 합니다. 특히 교회의 각 지체들이 아직은 모두 불완전한 상태에 있습니다. 또한 참된 제자의 삶을 살 수 있는 인식도 없는 상태이며 교회의 참된 목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부는 교회 운영을 ‘멋있게’ 하여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고, 또한 활동을 많이 하여 지역 교회의 일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게 하는 것이 교회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섬김과 겸손에 근거한 질서가 아닌 인간의 권력 중심의 위계 질서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잘못된 가르침으로 자신들을 대항하는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통하여 순종하게 합니다. 또한 본질적으로 가치가 없는활동을 다수의 의견들을 모아 한 사람들에게 무언중 강요합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처한 참된 제자는 이런 자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받아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받아 주는 것이 그들의 잘못된 의견에 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기다려 주시는 것처럼 인내하며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더라도 끝까지 사랑하며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