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탄 현장 이야기


산 위에 있는 동네 – 선구자의 땅


(1)


연변과학기술대학은 연길시 가장 북쪽의 북산가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다. 앞에는 시가지가 한눈에 나지막이 내려다보이고 뒤에는 시원한 들판이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져 있어서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 학교 부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연길 시에서는 시내 중심의 좋은 땅을 주려고 하였으나 김진경 총장이 당시 공동 묘지였던 이 언덕바지 땅을 극구 고집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두 피하는 묘지 터를 요구하는 김 총장의 생각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여 고개를 내 저었지만, 이제 학교가 완성되고 나서 이 학교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과연 이곳이 명당(?) 중의 명당이라며 김총장의 앞을 내다보는 식견에 감탄을 하곤 한다. 더구나 오목한 분지를 형성하고 있는 연길 시는 여름에는 먼지와 바람이 거리를 휩쓸고 겨울에는 굴뚝에서 내뿜는 매캐한 석탄 연기 때문에 온 도시가 안개 속에 잠겨버리기 때문에 학교에 올라와야만 비로소 숨통이 열리는 듯한 기분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학교를 단장하는 분들이 학교 안팎에 온통 꽃길을 만들어 놓아서 계절마다 화사한 새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정서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소나무로 일체 조경을 이루어 학교를 처음 찾는 분들도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한눈에 이곳은 중국 속의 섬처럼 다른 세계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교정 바로 앞에는 푸른 잔디로 카페트를 깔아 놓았고 그 위에 멀리 두만강에서 옮겨다 놓은 큰 바위가 카메라를 의식하며 점잖게 놓여 있다. 연길시 어디에서도 아직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운 녹색 공간이기에 휴일에는 산책을 위해 학교를 일부러 찾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띈다.


이 학교를 이렇듯 모든 사람들이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언덕에 자리잡게 한 의미를 생각해 본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사회주의 나라 중국에 기적과 같이 세워진 학교—,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의 물결을 타고 최초의 중외 합작 대학으로서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세운 이 학교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는지, 이 곳을 통해 배출된 인재들이 앞으로 중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낼는지 중국 사람들은 예의 주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학교에 봉사하러 온 외국인들이 모두 크리스천이라는 사실 때문에 한편으로는 경계를 하고 있지만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며 나름대로의 판단들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 학교를 중국 사람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학교로 키워나가야만 한다. 이곳에서 진정한 의미의 진리, 평화, 사랑의 교육이 실천되고 그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중국 다른 어떤 대학의 졸업생들과는 다르다는 좋은 평가를 받는 길만이 이 학교가 세워진 참 목적을 달성하는 길이 될 것이다.


만주 벌판의 강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학교 내의 모든 건물을 연결통로로 길게 이어놓았다. 이름하여 연변과기대의 만리장성이다. 그 복도마다 온통 조선의 정취와 풍습을 느끼게 하는 골동품과 장식류가 진열되어 있다. 장소도 절약할 겸 방문자 누구나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열린 박물관인 셈이다. 미술을 전공하신 총장 사모님의 정성이 담긴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분의 본업(?)은 식당 앞 슈퍼마켓 점원 아줌마이다. 총장 사모가 슈퍼에서 일하는 것을 미처 몰랐던 방문자들이 종종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일손이 부족한 대학의 구석구석마다 자원봉사자로 돕는 사모님들의 손길들이 이 대학을 만지고 있다.


아직은 도서관다운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여서 임시 도서관의 열람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로 밤에는 식당을 자습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저녁 식사만 끝나면 학생들이 식당의 빈 테이블을 가득 메우고 밤 열두 시까지 조용히 공부하는 모습은 정말 대견스럽기만 하다. 중국의 사회주의 교육 체제 내에서는 일단 대학에 합격하기만 하면 졸업 후에 국가에서 책임지고 학생에게 직장을 분배시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책이었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는 모습은 중국 대학에서는 여간해서 찾아보기 힘든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북산가 언덕에 높다랗게 세워진 학교—,
깜깜한 밤중에 환하게 불을 밝힌 도서관—,


갑자기 말씀 한 구절이 생각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2)


언젠가 활빈 교회의 김진홍 목사님이 조선족 사기 사건의 대책 마련을 위하여 우리학교를 방문하신 차에 교직원들과 자리를 함께 한 일이 있었다. 당신이 찾아오신 곳이 바로 선구자의 땅임을 의식한 그 분이 자기가 바로 선구자라고 하시며, 선구자의 뜻은 “선천성 구제불능성 자아도취증” 환자를 뜻한다고 하여 한바탕 폭소를 자아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학교에 와보니 김진경 총장님을 비롯하여 모두 자기보다 중증(重症)인 선구자들만 모여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다시 한번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연변 과학 기술 대학을 방문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북산가 언덕의 광활한 벌판을 바라보며 바로 이곳이 과거 우리 민족의 한과 쓰라림의 역사를 담고 있는 만주 벌판임을 실감하곤 한다. 과거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던 역사적인 배경은 차치하고서라도 나라를 빼앗겼던 근대사의 뼈를 에는 아픔들이 스며있는 땅이 바로 이곳이다. 그 시절 일본의 학정을 피해 개나리 봇짐을 지고 압록강 두만강을 넘었던 우리의 선조들이 피와 땀을 흘려가며 개간했던 땅들이 지금의 만주 곡창을 이루었던 것이다. 일본에 항거하여 잃어버린 나라의 주권을 되찾고자 고향산천의 부모 형제를 내버려둔 채 일신의 고초를 무릅쓰고 찾아 나선 독립투사들은 또 어떠하였던가?


그 시절을 향한 역사적 향수감에 젖어 한번씩 시간을 내어 찾게 되는 곳이 또한 인접해 있는 용정시(龍井市)이다. 연길에서 시골길을 삼십 분 남짓 차를 타고 가다보면 거대한 사과배 농장을 지나게 되고 올망졸망한 용정시 한 복판에 옛 대성 중학(지금은 용정 중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의 터를 찾을 수 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아로새겨진 시비 앞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에 대한 의미를 한참 묵상하다가 발길을 돌려 오르는 곳이 일송정(一松亭)이다. 우리 민족의 정기를 뽑아버리기 위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이미 제거되고 말았다는 역사 속의 소나무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산꼭대기에 솟아있는 초라한 정자 옆에는 어느덧 새로 심은 작은 소나무가 한 그루 미래의 소망을 키워가며 자라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일송정에서 사방으로 광활하게 내려다보이는 만주 평야와 그 속을 가로질러 흐르는 해란강을 굽어다보고 있노라면, 조선인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심장을 요동쳐 흐르는 한줄기 감개를 억제치 못하여 선구자라는 노래, “일송정 푸른 솔은—” 을 한바탕 외쳐 불러야 속이 후련해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그와 같은 조선의 역사적 배경을 잘 알고 있기에 한국 사람들이 찾아와 만주 벌판에 대한 옛 향수를 자꾸 느끼는 것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다. 정작 중국인들은 만주(滿洲)라는 말 자체를 과거 자신들이 일본에 의해 겪었던 치욕의 역사를 돌이키는 말로서 생각하여 듣기 싫어하며 쓰지 않는다. 더욱이 한국인들이 이곳이 바로 우리 조상 고구려 사람들의 영토였다는 것을 내세워 “만주도 우리 땅”이라는 등의 눈치 없는 소리를 하게 되면 비록 우리는 그것을 반 농담 삼아 하는 말일지라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며 노골적인 반감을 나타내는 것을 볼 수 있다. 55개의 소수민족을 포함하고 있는 다민족 국가로서 소수 민족의 분리 독립이 국가의 존립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강 위구르족과 티벳족을 위시한 정치적 독립을 꾀하는 소수민족과 더불어 역사적 배경 속에서 향수를 느끼는 한국인들에 의해 조선족들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는 것이다. 비록 소수 민족의 인구 비율은 한족에 비해 10% 미만이지만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토는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소수민족의 동향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중국 정부의 입장이다.


그와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우리 학교로서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조선족 학생들 앞에서 내세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학교를 세운 목적 자체가 민족 운동을 하여 잃어버린 옛 땅을 되찾자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 곳에서 그와 같은 역사적 의미를 신앙의 눈으로 승화시켜 재해석하게 된다.


중국 지도를 보면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이다. 언젠가 우리 졸업생 중 하나가 중국과 한반도 지도를 보여주며 닭이 젖통을 물고 있는 형상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다시 말해 한반도는 중국이라는 닭에게 복음의 젖을 먹이기 위해 하나님이 물려주신 젖통이라는 것이었다. 때때로 닭 주둥이에 매달린 먹이처럼 느껴지는 한반도가 조금은 처량하게 보이던 나는 기발한 설명에 귀가 번쩍 뜨이며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실로 이곳은 선구자와 독립투사의 땅이다. 어찌하여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사람들만이 선구자이겠는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 보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 미래의 대륙에 먼저 들어와 새 시대의 일꾼들을 양성하고 있는 이 학교의 교직원들이야말로 선구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찌하여 지난날 일제 치하에서 잃어버린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투쟁하던 사람들만이 독립투사이겠는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상실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일신의 안일함을 버리고 고향과 부모 형제를 떠나 묵묵히 일하고 있는 우리 교직원들이 바로 독립투사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예수를 위시한 지난날의 선구자와 독립투사가 모두 그리하였던 것처럼 이들의 가슴속에도 고향 땅을 떠나올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아야했던 손가락질과 조롱의 남모르는 아픔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독립투사들의 희생과 땀과 피에 의해 나라가 회복되었듯이 그리고 그 후에야 그들을 회고하는 시비가 세워진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어지는 그날 천국에서 이들을 위한 기념비가 찬란하게 세워질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