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좁고 미국은 두렵다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니 말라”(수 23:5-6).


들어가는 말


“한국은 좁고 미국은 두렵다”는 칼럼을 본회로 끝맺고자 한다. 특별히 미국이나 타국에 이민을 고려하며 고민하고 있는 유학생들을 주 대상으로 썼던 칼럼이었기에, 고국에 돌아가서 직장을 얻길 원하거나 그래야만 되는 유학생들에게는 다소 공격적이요 이해하기 힘든 글이 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학생들은 고국을 떠나 타국의 문화속에 살면서, 타국에서 자신과 고국과 세계를 바라볼수 있는 눈이 열린 사람들이다. 자신의 밖에서 자신을 보길 원하며 또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자신과 더불어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볼수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유학생이 보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을 향한 시각과 사고의 폭은 필연적으로 넓고 깊어야 할 것이다. 미국에 이민을 고려하는 유학생들이 크리스천으로서, 미국 땅에서 어떻게 삶과 예배의 균형을 유지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 것인가에 관해 썼던 수많은 논제들은, 고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들에게 더 절실히 필요한 논제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크리스천으로서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정직하고, 성결하게,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Integrity를 갖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기로 결단하라”는 촉구는 이민을 고려하는 유학생보다는, 도리어 고국에 돌아가는 유학생들에게 더욱 간절히 부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하나님의 강력으로 무너뜨려야할 여리고성들은 미국보다는 우리의 고국땅에 더 많은 것같이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태평양을 건너서 고국에 돌아가는 것이 더 단단한 각오를 가지고 건너야 될 요단강 건너기가 될 수도 있겠다.


다시 여호수아서의 말씀으로 되돌아가자. 이민자의 땅이 저들과 저들의 자손이 진정으로 차지하는 땅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나누어 보자.


아이성은 정복되었다. 거의 모든 가나안 지방을 결국 정복되게 된다. 정복이 완료된 후에, 요단의 서편과 동편에 걸쳐서 가나안 지경을 12지파에게 분배하며 그들의 기업이 되도록한다 (수13-19장).


저들이 기업으로 분배된 땅을 차지하며, 실제로 저들의 땅이 되게하기까지는 감내해야 될 책임과 지켜야될 약속의 말씀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제 미국에서 새로운 직장을 잡고 생업의 터전을 마련한 유학생 크리스천들은, 이제 막 12지파에게 분배되었던 것과 같은 기업을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약속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 그 기업의 약속이 진정으로 유학생 이민자의 것이 되어서, 그 땅을 차지하고 그 자손들이 번성하기까지는 꼭 지키고 따라야 할 약속의 말씀이 있다. 즉 “나와 내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수24:15)는 가나안 땅의 이민자였던 여호수아의 마지막 고백이 유학생 이민자들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브온 거민에게 속지말라


기브온 거민이 속임수를 써서 이스라엘 백성과 화친의 언약을 맺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거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여호와께 묻지 않고, 그들과 화친의 언약을 맺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그것으로 인하여, 가나안 족속의 완전정복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흠집을 내게된다. 뿐만아니라, 이 실수에 기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먼 훗날에 큰화를 입게된다. 다윗왕 시대에 까닭없이 삼년간의 기근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고통을 당하게 되는데, 이는 사울이 기브온과의 언약을 어기고 기브온 사람을 죽인 것을 인함이라고 성경을 기록하고 있다(삼하 21:1-14).


새로운 직장을 미국에서 얻게되고, 열심히 일하여 직장에서 인정을 받고, 이민생활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이민생활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이민생활을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나서, 이민 생활에 적응할 때쯤이면, 자칫 자만심에 빠지기 쉽다. 여호수아가 기브온 거민에게 속은 것같은 실수를 저지르기가 쉽다. 항상 화친하자고 유혹하는 물질, 명예, 학문과 교만이라는 기브온 거민의 속임수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이 속임수를 바로 분별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분별하고, 항상 하나님께 묻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여호와께 묻고 새로운 진로를 결정하며 나아가게 되면, 때론 더딘 것 같으나 가장 믿을만한 이민길이 된다. 쉬지말고 기도하며, 항상 하나님께 묻고 나아가는 길이 가장 쉽고 탄탄한 이민길이다.


영주권 취득 – 첫 번째 기업(Inheritance)


아직도 정복하지 못한 지역이 남아있긴하지만, 정복한 땅들을 이스라엘 지파에게 나누어주어 이제 저들의 기업이 되게하라고 한다 (수13-19장). 유학생 이민자들이 하나님께 받아야할 첫 번째 기업은 취업에 이어서 미국의 영주권 취득이 될 것이다.


대학이나 연구소, 또는 기업에서 tenure position을 얻었든지 또 임시직을 얻었든지간에, 유학생 이민자가 가장 먼저 신경을 써야 할 일은 미국내에서 자신의 거주신분을 확정시키는 일이다. 결국 미국 영주권은 이민자로 살기 위해서 얻어야 할 첫 번째 기업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미국이민을 고려하며, 몇 년간의 임시직이나 방문고용직에 취업하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의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을 가장 우선적으로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유학생 출신의 박사후 연구생이나 임시직 취업자들은 취업이 시작되면 본인의 거주신분 조정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연구 못지않게 자신들의 영주권 취득에 즉각 골몰하는 중국 및 인도계 유학생들의 지혜를 한국 유학생 이민자는 꼭 배워야 될 것이다. 자의이든 타의이든 간에, 중국 및 인도계 유학생의 이민 개척정신이 대학생 수준이라면, 한국유학생은 이제 초등학생 수준이라고 말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싶다. 대체로 영주권 신청이나, 시민권 신청은 이민전문 변호사를 통하여 하는 것이 통례인데(자신이 직접 할 수도 있음), 능력있고 신뢰성있는 이민변호사의 선택은 무척 중요하다. 제한된 시간과 싸우며, 거주 신분조정을 확정하고자 할 때, 책임감있고 신뢰성있는 이민변호사의 조언과 도움과 서류작성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학생활중에 전공한 전공분야의 취업을 통하여 영주권을 신청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긴 하지만, 다른 수많은 합법적인 방법이 있음을 숙지하고, 이민 변호사와 상담하면 좋을 것이다. 만일 학위취득 후에 미국 이민과 해외취업에 뜻이 있다면, 유학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좀더 적극적으로 영주권 취득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새로운 직업관


우리의 고국에서는 아직도 전통적인 유교사상에 뿌리를 둔 관념적인 선비주의와 권위적인 관료주의가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본다. 미국에 수년간 공부하고 학위를 취득한 한국유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전공분야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한국유학생들은 고국이나 미국에서 대학교수의 직업을 얻기를 원하는 듯싶다. 물론 가르치고, 연구하고, 창의적으로 학생을 지도하길 좋아하는 사람에게 대학교수는 어디서건 권장할 만한 직업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미국에서는 대학교수라는 직업이 모든 전문직 종사자에게 인기있는 직업이거나 선망이 되는 수입 좋은 직업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대학교수직을 얻기가 쉽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대학교수나 전문연구직은 도리어 개인의 적성과 개성에 따라 선택되어야 할 직업이라 생각된다.


미국에 이민하여 살기 원하는 한국유학생들의 직업관에 관한 새로운 의식구조와 인식의 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대학교수직이나 전문연구직보다 더 좋은 직업과 기회가 즐비한 미국에서, 수입도 낮고, 일도 힘든 대학교수가 선망이 될 이유는 별로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능한 직업의 다양성을 적극 고려해야 될 것이다. 교수나 연구직 말고도, 수입도 좋고, 평생 자기계발도 할 수 있는 전문직이 얼마든지 있음을 이해하기 바란다.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면, 고국에서 굳어진 전통적인 직업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물론 고국에서 직업을 찾는 사람도, 관념적인 선비정신과 권위적인 관료주의적 직업관으로는 이제 세계속에서 경쟁하는 한국인으로 살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평생에 보장된 안정된 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진지 이미 오래이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라면, 한달에도 몇번이고 기업을 통합하고 쪼개는 것이 다국적 미국기업들의 실상이다. 기업을 위한 고용인의 기여도와 분야에 관계없이, 미국의 전문직 종사자의 60%가 기업의 통폐합 때문에 해고를 당하거나 타의적인 이직을 경험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아마도 미국에서 전문직에 종사하고자하는 거의 대부분의 유학생 이민자들도 몇번의 해고나 타의적 이직을 꼭 경험하게 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새로운 직업윤리가 이민자들을 압박해 온다면, 이를 대처하며, 뛰어넘고, 새롭게 적응하고자하는 정신력을 갖는 자만이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해고사태도 많고, 상응하는 재취업의 기회도 많다. 따라서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별로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미국에서 박사보다 더 좋은 석사학위


내가 이미 박사학위 소지자요 또 대학의 현직교수인 까닭에, 논란의 여지가 있긴하지만, 미국에 유학하는 거의 모든 한국유학생들이 박사학위를 취득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별히 미국에 취업이나 이민을 하고자하는 유학생들은 석사학위 취득 후에, 미국에서의 더 많은 취업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볼일이다. 박사학위 수학능력과 자질은 논외로 하더라도, 박사학위를 취득하려면 시간도 오래걸릴 뿐더러, 이에 상응하여 학위취득 후에 기득권자가 되던 시대는 한국이나 미국에서 더 이상 존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이든, 학문이든, 예술이든간에 공급과 수요의 균형적인 원리를 깨뜨리기는 쉽지 않다. 가정과 사회에 책임있는 크리스천 전문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얻게될 전문직업의 안정적인 수요와 공급의 균형은 너무 중요한 것이다. 수년간 부모와 고국에서 학비와 생활비 지원을 받고, 힘든 유학생활을 감내하며 박사학위를 취득한 많은 유학생들이 고국에 돌아가서 전문성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은 가슴 아픈 일이다. 최근 보고된 바에 의하면, 많은 해외 학위취득자들이 고국에서 전문직업을 얻지 못하고 택시운전자들의 직업을 빼앗고 있다고 하니, 이는 결코 생산적인 해외유학 투자라고 볼 수 없다.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곧 미국직장에 취업을 하는 것은 전공분야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여러면에서 장점이 있다. 특별히, 수년이 더 걸리기는 박사학위 과정을 고려한다면, 석사학위 취득후 취업은 궁극적으로 박사학위 취득자와 동등하거나 아니면 더 나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미국에 이민하여 살고자 한다면, 박사학위보다 석사학위로 더 취업하기 좋은 분야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직장을 얻고자하는 경우, 석사학위 취득 후의 취업은 다음과 같은 여러장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권장할 만한 것이다.


첫째, 미국에서는 석사학위 취득자가 박사학위 취득자보다 취업이 쉽고 기회가 많다는 점이다. 박사학위 취득자는 대학교수나 회사나 연방정부의 제한된 연구직에만 고용이 필요하지만, 석사학위 취득자는 비전문적이든 연구직이든 더 많은 고용의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2년이라는 짧은 수학기간 때문에 부모님의 경제부담도 줄이고, 경제자립을 속히 이룰 수 있다. 취업후 몇 년간 일하며 경제자립과 실제적인 경험을 한후에, 본인이 원하면 부모의 도움없이 박사학위 수학을 계속 할 수도 있다.


셋째, 기업의 창업(start-up company)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질수 있다. 몇 년의 미국 직장생활 후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곧 창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마도 박사학위를 취득할 만큼의 시간을 투자한다면, 창업한 회사의 사장이나 회장이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특별히 미국에 정착한 한국유학생 출신 이민자는 자신이 창업하고, 기업가로 성공한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중국계 및 인도계 유학생 출신 이민자와 비교해 볼 때, 한국 유학생 출신 이민자의 창업은 너무도 미미한 편이다. 미국에 정착하고자하는 수많은 한국계 유학생 출신 이민자들이 이제 눈을 돌려, 창업에 새롭게 도전하였으면 한다. 좋은 아이디어와 열정만 있으면, 수많은 정부지원 무료 창업자금이 널려 있다는 것에 눈을 뜨기 바란다. 유학생 이민자들이 이제 창업을 좀더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라고 권면하고 싶다. 어느 이민 사회이든 경제를 장악함이 없이는 결코 바른 주인행세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계 미국이민자 협회(ACO)에서 주최하는 Chinese American 젊은이들을 지원하는 수많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Korean American의 꿈을 심어 줄 수 있는 더 많은 프로그램들을 지원하는 길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부터는 많은 유학생 출신 이민자와 기업가들이 한국유학생과 Korean American 젊은 세대에 적극 투자하여, 하나님 나라와 이민세대를 위한 큰 꿈을 키워주는 많은 지원 프로그램들을 개발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네가 개척하라


각 지파에 분배한 땅을 소유하는 것은, 그저 가나안 지방의 지도에 선을 그어서 지파의 기업이 되게하는 것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던 듯싶다. 이스라엘 지파들은 계속적으로 그 곳 땅에 사는 거민들을 쫒아내며, 자기분파의 땅이 되도록 개척하고 일구어야 했던 것이다. 예를들면, 에브라임 산지를 기업으로 받은 요셉의 족속은 자신들이 큰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좁은 땅을 분배받았다고 여호수아에게 항의를 한 듯하다. 이에 여호수아는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에 올라가 스스로 개척하라”(수17:15)고 책망하면서, “그 산지가 네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한자라도 네가 능히 그를 좇아내리라”(수17:18)고 권면하고 있다. 그저 기업으로 받았다고 저들의 땅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싸우고, 지키고, 개척하여 그 지경을 넓혀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약속 가운데에, 미국 이민자로서 생업의 터전을 얻은 유학생 이민자들은 이제 막 미국 땅에서 기업을 얻은 셈이다. 기업의 약속이 저절로 요셉지파의 분깃이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유학생 이민자는 삼림이라도 올라가 스스로 개척하여, 하나님께 받은 기업이 자신과 후손들을 위한 분깃이 되도록 힘써 개척해야 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가나안 땅의 대적을 다 멸하시고 안식을 이스라엘에 주신지 오랜 후에, 이제 여호수아는 나이 많아 늙은지라, 온 이스라엘 장로들과 두령들과 재판장과 유사들을 불러놓고 그들에게 마지막 부탁의 유언을 남기게 된다.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한 그 땅들을 차지하게 될 것이니, 꼭 힘써서 말씀을 지키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니 말라고 부탁한다 (수23:1-6). 오직 스스로 조심하여 여호와 하나님만 사랑하라고 권면하며, 여호수아는 자신과 자신의 집은 오직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다짐하고 있다(수24:15). 여호수아는 자신이 죽은 후에 미래의 세대를 생각하며 유언과 같은 다짐과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막 가나안 땅에 이민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어느곳이든 이민 1세는 고난의 세대이다. 이민 1세는 수많은 고난을 감내하고서도, 새땅에 태어나는 새로운 세대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세대이다. 소수점이하로 나누어진다는 이민 1세, 1.5세 및 2세간의 세대차이와 의사소통의 간격은 여느 동질문화 속에 늘상 존재하는 그런 세대차이와는 다르다. 나이와 문화와 언어의 3중적인 격변을 단번에 격게되는 이민 세대간의 갈등을, 나는 격변적인 갈등이라고 분류하고 싶다. 이런 격변적인 갈등을 넘어서,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자손들에게 여호수아처럼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고 보여주고 또 가르칠 것인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염려하였던 것처럼, 미국에서 어떻게 우리의 자손들이 믿음을 지켜서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되게 할 것인가? 이는 한인 이민자들의 가장 중요한 기도의 제목이다. 모이면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며 여호와 중심으로 살고자 했던 한인이민 1세들의 굳건한 믿음의 유산을 미래의 세대에 걸쳐 어떻게 전수해 줄 것인가? 지금 우리는 고민하고 기도해야 할 때이다. 한인 이민교회와 크리스천들은 당면하는 수많은 이민자로서의 힘든 삶과 싸우면서도, 어떻게 하면 다가오는 세대의 Korean American 크리스천들이 “오직 여호와만 섬기게” 할 것인지 여호수아만큼이나 심각하게 생각해야 될 것이다.


결론


마지막으로 여호수아의 유언과 같은 권면과 부탁을 들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수24:24)라고 다짐한다. 이에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고, 큰돌을 취하여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세워서 “증거의 돌”로 삼는다. 즉 우리 자손들은 만대에 걸쳐 “오직 여호와만 섬기자”는 언약을 하고 이의 증거하기 위해 세운 돌이다.


나는 최근에 청교도들이 미국 이민의 첫발을 내디뎠던 Massachusettes주의 Plymouth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Plymouth에는 미국 이민의 첫발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기념물이 많이 있지만, 특히 “Plymouth Rock”이라는 돌은 대서양을 건넌 첫 이민선인 Mayflower에서 내린 청교도들이 미국대륙에 첫발을 디딘 돌이라고 하여, “1620”년이라고 새겨놓고 저들 선조의 이민사를 기억하고 있다. 별로 크지 않은 돌이지만, 미국 첫 이민을 기념하며, 미국 이민정신의 원류를 기억토록 하는 “증거의 돌”인 셈이다. 물론, 이 Plymouth Rock 자체보다는, 그 돌을 볼 때마다 그 돌에 담겨진 청교도들의 이민 개척정신을 기억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미 미국에 이민하여 살고있는 Korean American은 거의 3백만명에 육박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제 미국의 도시이든 시골이든, 어느곳에서나 Korean American을 쉽게 만나게 된다. 몇 사람만 모이면, 교회를 개척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유일한 민족, 위기 앞에서 쉽게 단결하는 민족, 그러면서도 열심히 서로 싸우는 민족- Korean American!. 짧은 미국 이민사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을 능가하는 억척스러움으로 미국에서 번영하는 자랑스런 민족이요, 또 후세대의 교육에 모든 것을 투자하는 지혜로운 민족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축복받은 민족이다. 그러나, Korean American의 이민사는 그러한 현세적인 성공과 억척스러움만 가지고는 올바르게 쓰여질 수도, 결코 세대를 넘어 지속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Korean American은 다가올 세대와 무엇으로 언약을 삼고, “증거의 돌”을 세울 것이며, 미국이라는 약속의 땅을 진정으로 차지하는 이민사를 쓸것인가? 가나안 땅에 이민하였던, 이스라엘 백성이 쓴 이민사는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할 때”에만 바르게 쓰여졌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여호수아서를 통하여 배웠다. 이제 우리는 눈을 열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따라 아주 멀리 수백년 후를 바라보며 온세계를 품에 안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Korean American의 다가올 세대와 하나님 말씀으로 언약을 세우되, “Korean American과 그집들은 여호와만 충심으로 섬기자”라고 증거의 돌 위에 써야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한민족을 세계 각곳에 복음을 들고가는 이민자로 흩으셨다면, 주님께서는 분명히 흩어진 한국 이민자를 통하여 아름다운 복음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