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4년 6월호

2003년 코스타 준비가 막바지로 가던 일년 전 이 즈음 코스타 2004 주제를 위한 모임이 있었다. 2003년에는 “세상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로 하나님 앞에서의 정결함을 촉구했다면, 2004년에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전세계적으로 흩어져있는 한국인 학생 디아스포라에게 어떤 메세지를 주시기를 원하실까? 미국 전역에 있는 한국인 학생들의 상황과 시대적인 상황을 가지고 뇌폭풍(브레인 스토밍)을 하는 가운데, 몇가지 주제들이 희미하게 드러나고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먼저 “낮아지신 예수, 섬기는 그리스도인(2001)” ,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2002)”, “세상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2003)”으로 이어지는 주제들이 한결같이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강조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신앙의 바탕 하에 ‘우리’를 돌아보아야한다는 마음을 주셨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테러, 집단적 반목과 살인 등은 세상의 권세잡은 자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군중’으로 세상의 가치를 좇으며 서로 살리기보다는 서로 죽이는 삶으로 끌려다니고 있는 지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을 때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시기보다 스스로 고난을 지심으로 세상을 이기는 방법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그 고난을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함께 질 것을 명하셨다. 이러한 바탕 가운데서 올해의 주제 “고난받는 공동체, 거룩한 공동체”가 잉태되었다.


‘우리’라는 단어는 한국인들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고 친근한 단어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우리’와 한국인이 생각하는 ‘우리’와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성경에서 말하는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만이 궁극적인 이유요 양보할 수 없는 기준이다. 나머지는 자유하다. 성경에서 말하는 ‘우리’는 ‘우리’ 외의 사람들을 ‘죽이기’ 위함이 아니요 ‘살리기’ 위한 ‘우리’이다. ‘우리’ 외의 사람들을 지배하고 그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하는 ‘우리’가 아니라, 섬기고 긍휼히 여겨야 하는 ‘우리’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함께 지도록 격려하고, 희생하며, 섬기는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이다. 하지만 한인 학생 디아스포라는 유학 또는 이민의 상황에서 소수 민족으로서의 ‘우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함께 이웃을 품고 동역하고 고난을 지기보다는 ‘우리’ 외에는 무관심하고,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며, 삶의 현장에서 스스로 만든 ‘우리’ 안에 갇혀서 이방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코스타 2004는 진정한 ‘우리’에 대한 성경적 인식을 제공하고, 함께 ‘고난’을 받기까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우리’의 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아울러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고난’을 지고갈 동역자들과 믿음의 선후배와의 만남을 제공할 것이다. 코스타 2004 연차 수련회를 통해 우리는 지역적으로 흩어져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만들어내는 지역을 초월한 하나님의 공동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코스타 2004는 연차 수련회로 마쳐지는 것이 아니다. 코스타 2004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난’을 받기까지 순종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일년 내내 이루어 나가는 삶으로 드리는 제사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우리’의 섬김과 순종을 통해 지역을 초월한 ‘고난받는 공동체’를 경험하게 할 것이요, 그것으로 인해 ‘우리’의 교회, 캠퍼스, 일터가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려질 것을 꿈꾼다.


해가 더할 수록 코스타 사역을 통해 각 지역에서 영혼들을 섬기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세워지고 있다는 것으로 인해 주께 감사드린다. 오직 그리스도 때문에 자신의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이득을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영혼들을 섬기기를 기뻐하는 제자들을 보며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리고 그러한 제자들로 말미암아 또다른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배태되고 움을 틔울 것이다. 전국에 있는 많은 한인 학생들이 이 거룩한 대열에 함께 참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우리’가 되기를 기대하며, 함께 ‘고난’을 받기까지 성숙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