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5년 3월호

2005년은 코스타가 시작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많은 유학생들의 삶이 코스타를 통해 도전을 받고 변화되었습니다. 코스타가 끼친 영향도 많았는데 20주년을 맞아 코스타의 역사와 정신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이코스타에서는 처음 코스타 운동을 시작하셨던 지구촌 교회 이동원 목사님과의 만남을 마련했습니다. 이동원 목사님과의 인터뷰는 1월 31일 지구촌 교회에서 약 1시간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eKosta: 안녕하세요 목사님. 시간을 내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스타를 처음 시작하실 때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으며 어떤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동원 목사: 제가 한국서 사역하다가 미국에 온 것이 1983년도인데 저는 한국에서도 목회를 했지만 젊은이 중심의 목회, 또 학생사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학생집회에서 설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 오자마자 1983년도 여름에 이 곳 워싱턴 지구촌 교회 (당시에는 워싱턴 제일 한인 침례교회) 담임 목사로 취임해서 83년 여름, 84년, 85년 이렇게 2-3년 시간이 지나가면서 미국의 유학생 촌에 가서 집회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어요. 그렇게 몇 번 보니까, 지금은 유학생들이 있는 곳에 좋은 한인교회, 건강한 한인교회가 세워져 있는데 당시에는 거의 없었어요. 80년대 중반과 초반만 해도 목사님 안 계신 그런 유학생촌 교회들이 상당히 있었고, 어떤 목사님은 두군데 교회를 담임하시기도 하고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성경공부 형식으로 존재하는 곳도 있었어요.


그런데 몇 곳을 다니면서 한국에서 가지고 있었던 신앙도 미국에 와서 그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을 보았어요. 전도는 커녕 선교는 커녕 자기 자신의 신앙 생활도 유지하지 못하고, 교회가 그런 필요를 공급하지 못하고 있었고, 유학생촌의 상황이 열악하기 때문에 목사님을 모실 수 있는 형편을 가진 교회도 당시에는 굉장히 적었어요. 그래서 85년 말부터 우리 교회 안에서 그러니까 워싱턴 제일 한인 침례교회에서 그런 필요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내가 주로 대화했던 분이 우리 교회 부목사님으로 있었던 김 두화 목사님(뉴저지 지구촌 교회 담임)이었고, 그 다음에 장 세규 목사님이 당시에는 학생이었어요. 여기 메릴랜드 대학의 학생이었는데 내가 두 사람과 대화를 많이 한 것 같아요. 김 두화 전도사하고 장 세규 학생하고 대화를 제일 많이 했죠


그러면서 미국 땅에 흩어진 유학생들에게 우선 1차적으로 영적인 힘을 공급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필요에 대해서 제가 얘기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같이 셋이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마다 기도하고 그러면서 우리가 그런 모임을 한 번 가져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얘기했어요. 한국에서는 그래도 여름철에 교회를 통해서 혹은 선교단체를 통해서 여름 수련회를 갖고 그 여름 수련회를 통해서 신앙의 열정을 회복하고 캠퍼스에 돌아갈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공급 받는데, 우선 유학생들에게 그럴 수 있는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필요를 느낀거죠. 그리고 거기에 한 가지 욕심을 낸다면 믿지 않는 학생들에게 전도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두 가지가 처음에 출발할 때 중요한 생각이었어요. 86년도 들어서면서부터 구체화하기 시작했죠. 그러면 86년부터 구체적으로 코스타, 한국 유학생들을 위한 유학생 수련회를 기획해보자. 86년부터 구체적인 계획에 막들어가기 시작하니까 제일 큰 문제가 경비인데 만만치 않게 들더라구요. 그래서 계속 그걸 기도하고 있었는데 경비 문제를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 하다가 제가 어느 날 새벽 기도회에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그런 모임이 많이 생겼는데, 그 당시에는 그런 관행이 없었고 당시로서는 굉장히 새로운 아이디어였어요. 학생들을 사랑하는 젊은이 강사들이 자원하면 강사비는 안들거고, 또 목회하는 목사님들 중에 그런 뜻있는 분들이 조금씩 스폰서를 할 수 있다면 비용이 많은 것 같아도 그것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유학생들이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는 전제를 했을 때는 한국에 있는 강사들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1986년 초에 가까이 지내는 홍 정길 목사님께 전화를 한거죠. 이런 것을 기획하고 있는데 코스타라는 모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강사들이 자원해서 오고 그리고 뜻있는 몇몇 분들이 스폰서를 해주면 여기에 있는 우리 교회가 최선을 다해서 함께하면 가능할 수 있겠다고 그러니까 한 마디로 홍목사님이 좋다고 그러더라구요.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하시면서, 사실은 본인도 본인의 교회에서 유학간 학생들이 신앙적으로 방황하는 모습들을 많이 봤고 그래서 그들을 돕기 위해서 보스톤 지역에 가끔 유학생들을 찾아가서 바이블 스터디를 하고 그러는데 함께 하면 좋겠다고 해서 시작된 거에요. 처음에는 그 두 가지 그러니까 이미 예수 믿는 유학생들이 신앙의 열정을 회복하고 신앙의 부흥을 체험하는 어떤 장을 마련하고 그들이 올 때 자기 주위에 믿지않는 친구들을 데리고오면 전도의 좋은 기회가 되겠다. 이렇게 두 가지가 아주 단순한 동기였어요.


그렇게 했는데 첫 번째 모임을 우리가 여기 워싱턴 메릴랜드의 Summit Lake Conference Ground에서 했죠. 첫 모임을 가지면서 그 때는 보스턴에 있는 학생들이 참석을 못했어요. 제2회부터 참석을 했어요. 보스턴에 장 평훈 당시 학생이었죠 지금은 장 평훈 교수가 되었는데 장 평훈 교수를 위시해서 Gateway Bible Study 모임이 있는데 홍 목사님이 가끔 가서 돕고하던 그 모임 출신들이 제2회부터 참석을 했죠.


첫번째 모임 끝나고 나서 우리가 평가를 하면서 그 평가에서 코스타의 목적을 분명히 하자고 해서, 처음 두 개가 기초가 되었는데 기존 크리스챤 유학생들이 다시 신앙의 열정을 회복하고, 부흥을 체험하고, 믿지 않는 학생들에게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 두 가지만 가지고는 동기가 부족하지 않느냐해서 욕심을 부린게 세 번째 목표입니다. 결국 한국에 돌아가서 중요한 리더십을 담당해야 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이 신앙과 학문이 어떻게 통합할 수 있는지 학생들이 제일 고민하는 것이 그것인데, 학생들의 요구도 그런게 많았고 가장 큰 고민이 내 전공 과목하고 어떻게 고국에 돌아가서 크리스챤으로 섬길 것인가, 어떻게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 될 수 있는가 이런 부분을 코스타가 독특하게 좀 다루어주었으면 좋겠다. 거기다 한 걸음 나아가서 네 번째 목표로 한 것이, 거기서 코스타에 출석한 학생들이 꼭 타문화권에서 전적인 Full Time 선교사가 아니라도 Tent-Maker 선교사로서, 평신도 선교사로서 타문화권에 가서 많이 기여하는 사람도 있었으면 좋겠다. 선교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그 두 가지가 더 첨부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번째 모임부터는 꼭 세미나 할 때부터 신앙과 학문의 통합, Tent-maker Missionary, 또 코스타에서 구원 초청과 헌신 초청하면서 꼭 Tent-Maker Missionary로서 헌신할 사람들을 초청하기로 하자. 그리고 Follow-up 하기로 하자고 하면서 이 두 가지 목표가 추가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초창기 기획은 장 세규 목사님과 김 두화 목사님이 잘 알아요. 초창기에 제일 많이 도우셨던 분들로 홍 정길 목사님, 오 정현 목사님, 송 인규 목사님들이 계셨죠.


eKosta: 코스타의 비전으로 복음, 민족, 학문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시대 상황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 키워드인 것 같은데요. 이 비전들을 설명해주시고 20주년을 맞는 지금 그 비전은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보시는지 말씀해주십시요.


이동원 목사: 조금 아까 말했던 것처럼 조국에 돌아간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조국에 돌아가서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얘기하면서 사실은 그런 얘기가 사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시대상이 암울했고 특별히 제2회 코스타, 제가 기억하기로 두 번째 모였을 때인 87년도 그 때가 아마 민주화 투쟁의 절정에 이른 때였거든요. 그것을 보면서 우리가 해외에 디아스포라로 나와서 민주화 투쟁에 함께 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 나름대로 우리가 민족의 내일을 위해서 기도도 하고 나중에 조국에 들어가서 기여할 만한 리더십을, 우리 나름대로 유학생들에게 조국관을 바로 건강하게 세워주고 복음적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참여에 대해서도 올바른 관점을 잡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것들이 첨부되면서 아마 그때 슬로건 비슷하게 세 가지 개념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복음, 민족, 학문이 제시된 것이죠.


우리가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코스타 운동이 얼만큼 직접적으로 그런 목표를 달성했는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코스타가 그렇게 시작되서 10년이 지나가면서 많은 분들이 코스타를 거쳐가면서 나중에 소감문 쓴 것을 보면 크리스챤으로서의 학문관, 조국관이 많이 확립되었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가서 그런 분들 가운데 몇몇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동체나 기관들을 만드는데 기여를 한 것 같아요. 1회인지 2회인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데 외무장관 지내신 윤 영관 씨도 그 때 학생으로 참여했거든요. 방문 연구원으로 와서 학생으로 코스타에 참석하고 나중에는 다시 세미나 강사로 왔죠. 그런 분들 가운데 서 경석 목사님이 하던 경실련 운동에도 참여하고, 이 만열 교수님이 하던 기독교 역사 연구소에도 참여하고 그런 기독교 사회 운동과 문화 운동에 코스타 출신들이 적지 않게 참여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 그런 것에 대한 보람을 느껴가고 나중에 홍 목사님과 같이 우리가 직접적으로 북한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자고 해서 남북 나눔의 운동과 같은 기관도 탄생을 했습니다.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코스타가 파생한 큰 영향과 물결들이, 이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해서 이렇게 서로 참여도 하고 기도도 하고 동참하는 물결들로 일어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eKosta: 일반 수양회와 달리 코스타는 뚜렷한 비전으로 코스타 운동을 지향하고자 했는데 그 동안 기억나시는 가시적인 성과는 조금 전에 설명을 해주신 것 같구요. 그 외에 기억나시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주시고 지금 코스타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유학생들을 격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동원 목사: 에피소드라 하면 코스타에서 결혼한 사람도 많아요. 제일 초창기에 재미있게 생각한 것이 우리 송 인규 목사가 초창기에 열심히 강사로 참여했는데, 2회인가 3회에 2년동안 내리 송 인규 목사님이 싱글의 행복, 독신의 행복에 대해서 강의하고 그 세미나에서 여학생 만나서 코스타에서 결혼했죠. LA에서 돕고 있는 이 현수 목사도 코스타에서 스스로 자기가 봉사하고 기여한 보람을 안고, 코스타 끝난 후에 바로 그 자리에서 결혼식을 했죠. 그런 에피소드도 재미있는 에피소드이구요. 코스타에서 만나서 결혼했다는 사람은 굉장히 많고 아마 가시적인 제일 큰 효과는 코스타에서 만나서 결혼한 커플들이 많지 않았느냐 그게 아마 제일 큰 효과가 아닌가 합니다. 코스타 가정, 코스타 패밀리를 탄생하는 일에 가장 큰 기여를 하지 않았나 합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1회부터 7-8회까지는 코스타 모이기만 하면 울었어요. 그 때 나라가 너무 힘들때라 코스타 하기만 하면, 너무 많이 울어서 죽 가라앉아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던 그런 기억도 생생하게 납니다. 나중에 조국이 민주화되면서 그런 이슈들은 조금 더 폭넓고 구체적으로 기여하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그 당시로서는 기억의 자체보다도 너무 가슴이 아팠기 때문에 모이기만 하면 통곡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제일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eKosta: 네번째 질문인데요. 코스타 운동을 주도하셨던 복음주의관 지도자들은 전세계로 퍼진 코스타 운동의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 어떤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계신지요.


이동원 목사: 저희 1세대, 제가 코스타를 처음에 창립하는데 도왔던 1세대인데, 나와 홍 목사님이 같이 하셨고 또 주변에 같이 했던 지도자들 여러분들이 있었는데 우선 저하고 홍 목사님은 나이가 60이 넘었기 때문에 우리가 비전을 제시할 만한 입장은 아닌 것 같아요. 여기까지 20년 동안 끌고 온 것으로 한 마무리를 해야 하고 새로운 지도자들이 일어나서 새로운 비전과 주제를 제시할 때가 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초의 민주화 운동, 조국의 복음화. 이 두 가지 즉, 복음화와 민주화가 가장 큰 코스타의 이슈였고 유학생들이 조국으로 반드시 돌아간다는 전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지금부터 20년 이후의 코스타의 과제는, 그래서 금년도 코스타 주제 자체가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되었지만, 꼭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글로벌한 비전을 갖고 전세계를 내다보면서 조국이라는 좁은 마당뿐만 아니라 우리가 전세계를 우리의 선교 교구이자 사역의 마당으로 알고, 어떻게 하면 열방 속에서, 세계 가운데 코스타 출신이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가 생각합니다. 꼭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자기들이 공부했던 터전, 나라, 대륙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어떻게 기여하느냐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죠. 새로운 지도자들이 그 비전을 보고 그 곳으로 이끌어갈 책임이 있지 않은가 생각을 해요.


eKosta: 이와 관련해서 현재 한국 사회는 많은 혼란과 무질서가 상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년 전과 같이 새로운 비전이 요구되는 시대인 것 같은데요 현재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새로운 비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이동원 목사: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제일 첨예한 이슈가 좌우 대립의 문제인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기독교가 가진 비전은 좌우익의 비전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비전이고 그것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 있다고 생각해요. 그 하나님의 나라는 전통적인 좌익, 우익 이데올로기가 강조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 중에 기독교를 특정한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은 좌익 이데올로기를 닮은 점도 있어요.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껴안고 가야 한다는 측면은 굉장히 유사성이 있고. 그런가 하면 자유라는 측면에서 보면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가 훨씬 기독교와 가까운 면도 있지요. 그러나 그 중에 한 측면으로만 기독교의 모든 비전을 전부처럼 보는 것은 큰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기독교가 우익 이데올로기의 어떤 측면을 지지할 수도 있고, 때로는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한 측면을 지지하기도 하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높은 하나님 나라의 비전 이미 주어진 그 비전을 가진 한국의 크리스챤 젊은이들은 현실적인 이데올로기와 자신들을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본래 주셨던 그것보다 훨씬 높고 넓은 하나님 나라라는 비전을 갖고, 우리 한국 사회가 잘못될 때는 예언자적 비판을 하고, 잘 할 때는 지지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왕국 비전 즉,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향해서 우리 사회가 계속 움직여 갈 수 있도록 그렇게 기독교도 코스타도 그런 비전을 지지하고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Kosta: 이코스타 독자들과 유학생 여러분들께 당부의 말씀있으시면 간단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이동원 목사: 코스타는 유학생들의 광장이니까 유학생들의 일차적 책임은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죠. 저는 학문 연구 열심히 하는 것도 선교라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이원론적으로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는데, 공부하는 것 자체가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 내가 공부하는 학문이 결코 하나님 나라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 또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은 꼭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좁은 의미의 전도가 전부는 아니란 말이죠. 그것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와 은사가 있으니까 그 와중에 하나님의 창조 명령과 문화 명령에 복종하는 것, 우리의 기술을 발달시키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도 넓은 의미의 미션이라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그 일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이죠. 일단은 유학생들이 학문 연구를 위해서 왔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그 책임을 다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공부 하면서 계속 물어야 할 질문은, 내가 하고 있는 공부나 학문 연구가 하나님 나라와 어떻게 연관될 것인가, 내가 졸업하면 어떤 직장에 취직해서 조국이든 제3세계이든 미국이든 내가 어느 나라에서 일하게 되든, 내가 가진 전공과목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기여할 수가 있는가를 공부하는 동안에 계속 질문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 질문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를,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될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이 인도하는 그곳에 서서 우리가 Tent-Maker로서, 평신도 선교사로서, 전문인 선교사로서 직업을 가지고 직업의 상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복음을 전하고 또 사람들을 양육하는 책임을 다할 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코스타가 태어나도록 허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eKosta: 처음에 코스타를 시작하셨을 때의 그 당시 유학생들의 상황과 요즘의 유학생들의 상황이 똑같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요.


이동원 목사: 우선 우리가 코스타 시작할 때는 KOrean Student in America 에서 A가 America를 의미했어요. 글자 디자인을 제 아내가 했었죠. (웃음) 코스타라는 단어 A자에 별을 넣어서 미국을 상징했죠. 미국서 시작을 했지만 그 당시에는 주로 유학하면 미국이었죠. 근데 이제 제 3세계가 열리면서 일본, 중국으로 많이 갔고 적지 않은 수의 유학생들이 이미 유럽에 나가 있었고 그러면서 유럽 코스타, 일본 코스타, 캐나다 코스타, 중국 코스타 그렇게 되면서 America를 Abroad로 바꾼거죠. 그러니까 유학생들의 다변화 세계화가 그동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고 연령 계층도 다양화 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 옛날 유학생은 대학원생 중심이었는데 미국 코스타도 처음에는 전적으로 대학원생을 초점에 맞춰 시작을 했는데, 이제는 대학생 유학생, 고등학생 유학생, 심지어는 중학생 유학생, 초등학생 유학생도 많이 생겼고 연령도 다양화되고 사고 방식도 다양해졌습니다. 옛날 유학생들은 심각했죠. 돈도 별로 없었고 일하면서 공부했으니까요. 지금은 어느 정도 돈도 준비해서 오는 전혀 다른 풍경의 유학생 세대인 것 같아요. 20년 동안 굉장히 많이 변한 것이죠. 한국 사회가 20년 동안에 변한 것 못지 않게 코스타의 풍경과 문화도 그만큼 다양화되었고 변화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eKosta: 프로그램 전체를 봤을 때, 초창기와 지금과 비교해서 프로그램이 더 많아지고 더 세분화되면서 전문적으로 되었는데 그것에 대한 대략적인 평가라든가 하시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이동원 목사: 그건 어느 공동체나 겪는 변화인데요.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초창기에는 단순했죠. 단순한 대신에 뜨거웠고 용광로를 연상할 정도로, 초창기 코스타가 통곡, 눈물, 감격을 대표하면서 가슴이 더 뜨거웠습니다. 또 당시 시대 상황이 그랬구요. 시간이 지나면서 전문화에 대한 요구가 생기고 세미나에 대한 다양한 필요들이 등장하면서, 전문화된 세미나가 필요했고 당연한 변화라고 생각해요. 근데 특별히 기독교 공동체 운동에서는 중요한 것이 항상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좋겠다 얼마든지 다양화될수 있고 전문화될 수 있는데 본래의 코스타 정신 그런 것들만 강조되고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특별히 세미나에서 이런 특별한 질문을 받을 때 저는 항상 얘기하는데 전세계 코스타가 다양화 되다보니까, 그리고 준비하는 분들에 의해 여러가지 색깔과 개성들이 많이 등장하다 보니까 코스타의 Real Color가 뭐냐 Real Sprit이 뭐냐 이런 문제들이 자꾸 생기거든요. 그래서 초창기부터 코스타의 Sprit을 강조하기 위해서 꼭 이것은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한 몇 가지가 있었어요. 예를들어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세미나를 통해서 코스타가 정말 기독교의 복음의 기초를 항상 강조했으면 좋겠다. 또 실제적으로 코스타가 QT를 강조해서 개인 경건 생활을 유지할 만한 훈련을 받고 돌아가야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자기 개인 경건을 유지할 수 있겠다. QT는 꼭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세미나를 할 수 있는 강사가 오면 꼭 해서, 자기 신앙과 학문의 갈등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 잘 안되는 것 같은데 교회 생활을 잘 했으면 좋겠다. 건강한 교회 생활, 행복한 교회 생활도 항상 강조했으면 좋겠다. 다양한 이유들이 많은데 학생들이 젋으니까, 결혼과 성에 관심이 많고 많이 들어가는데, 물론 그것도 해야되지만 코스타가 하려고 했던 기초를 계속 붙들고 같으면 좋겠다하는 바람이죠.


eKosta: 마지막 질문입니다. 조금 전 답변과 비슷할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코스타를 되돌아보면서 남는 아쉬움이 있다면 무엇이 있으십니까?


이동원 목사: 코스타의 약점이 강점이고 강점이 약점이었다고 생각해요. 코스타가 Volunteer Movement니까 저도 직업이라고 말하면 우습지만, 직업은 목회니까 코스타에 전적으로 시간을 낼 수는 없었거든요. 코스타를 돕는 사람들도 모두 volunteer로 도와왔고 한국 교회 운동 가운데 코스타처럼 volunteer가 많이 사용된 운동이 없었을 거에요. 비교적 최근에 여러 나라에 코스타가 생기면서 코디네이팅을 위해서 국제본부에 간사 몇 사람을 고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pay-step이 몇 사람 처음으로 최근에 와서 생겨났지만, 처음부터 철저하게 volunteer sprit이죠. 그러다보니까 철저하지 못한 엉성한 면이 있는거죠. 하지만 그런 엉성한 면이 코스타의 매력이 아닐까 해요. 너무 전문화되고 잘하게 되면 회사가 하는 일처럼 되는데 우리가 가진 부족함 때문에 하나님 의존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것이고, 그래서 코스타의 강점이 약점이고 약점이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더 최선을 못한 게 후회죠. 근데 더 잘 할 수 있었을까라고 다시 질문을 던져보면, 우리가 해야 할 priority는 목회거든요. 코스타가 priority는 아니거든요. volunteer하는 학생들과 직업을 가진 분들도 그게 priority지 이게 priority는 솔직히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코스타를 소중히 여기고 코스타를 통한 건강한 영향이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때문에, 자원해서 섬긴 사람들에 의해 이끌려 나온 것이 코스타의 어떤 자랑스런 유산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eKosta: 목사님 바쁘신 가운데 시간을 내어 인터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