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3년 11월호

삶을 살아감


아침에 일어나면 졸린 눈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가장 만만한 것이 계란 후라이에 토스트와 커피 한잔. 한 손으로 만들며 한 손으로 먹으며,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고, 한편에는 어제 먹었던 도시락 그릇을 설거지하며, 몇 가지 일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활기찬 아침이다. 학기 시작하여 주어진 Syllabus.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수업 내용보다 프레젠테이션 어사인먼트와 텍스트북이다. 어사인먼트 확인되면 필요한 책과 textbook이 도서관에 있나 잽싸게 확인하고 다른 사람이 빌려가기 전에 빨리 빌린다. 수십 불씩이나 하는 교과서를 모두 샀다가는 렌트 값 못 낸다. 한두 달 빌린 책을 보다가 정말 필요하고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인터넷으로 유스드 북을 주문한다. 인터넷으로 사면 소비세가 면제되니 몇 불이라도 싸니까. 점심은 도시락으로 간단히 해결한다. 사 먹으면 빈곤한 식단에 돈까지 나가는 이중고에 시달리니까 아예 샌드위치로 먹는 게 마음도 편하다. 먹는 데에는 외국 학생뿐 아니라 미국 학생들도 다들 아끼고 절약하는 것 같다. 수업이 대충 끝나면 이메일 체크 겸 신문, 잡지를 도서관의 인터넷으로 읽고 필요한 부분을 스크랩하여 웹에 잘라 붙여 놓지만 프린트는 대개 하지 않는다. 종이 한 장도 아껴야 하니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을 때 도서관으로 향하여 인터넷의 무료 음악사이트에서 다운받고 영화는 티비에서 녹화했다가 틀어본다. 중간에 광고가 있긴 하지만 그런 대로 볼만하다. 그러나 가끔은 혼자 비참해진다. 공부도 힘들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하나님, 일과 안식의 주인공


하나님이 안식일을 쉬신 이유가 항상 궁금해왔다. 안식일 뿐 아니라 각종 절기, 안식년, 희년에 이르기까지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인간들에게 삶을 중단시키는 하나님의 질서는 무엇일까? 성경책을 펼쳐본다.
너희가 저마다 이웃에게 무엇을 팔거나, 또는 이웃에게서 무엇을 살 때에는 부당하게 이익을 남겨서는 안 된다. (레위기 25:14, 표준 새번역)
일곱째 해에는 씨를 뿌려도 안되고, 소출을 거두어 들여도 안 된다면,  그 해에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하고 물을 것이다. 그러나 여섯째 해에, 내가 너희에게 복을 베풀어, 세 해 동안 먹을 소출이 그 한 해에 나게 하겠다. (레위기 25:20-21, 표준 새번역)
같은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일함에 있어서 정직과 안식을 취함에 있어서 근면은 일견 상반된 명령인 듯하다. 상반되어 보이는 일과 안식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일관된 메시지는 뭘까? 하나님이 정직하고 근면한 노동을 원하시는 건 분명하다. 열심히 일해서 정직한 대가로 돈과 재물을 얻고 불필요한 소비와 지출을 최소화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 칠 일째, 칠 년째, 오십 년째 되는 날과 해는 확실하게 또는 정직하게 쉬어야 함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일을 통해 나에게 베풂이 있다면 안식과 구제의 일을 통해 이웃에게 베풂이 있다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재물의 사용처 보다는 마음의 정직함이 아닐까 싶다. 일을 할 때는 일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고, 안식을 취할 때는 나에게는 쉼을 이웃에게는 베품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다하는 것이 하늘의 뜻인 듯 싶다. 하루의 피곤이 조금은 풀린다. 오늘 하루도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살았고 이제는 나에게 안식을 선물로 줄 때다. 일을 열심히 했으니 쉼에도 감사가 따르며 갑갑하고 가난한 일상에서도 보람이 뒤따라온다.


재정 생활의 원칙: 검소와 품위


대학교를 입학하여 재정적으로 반독립 상태에 들어선 이후 돈 문제에서 떠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르바이트에 학과 공부에 어느 것도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좌절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거기에 교회와 기독학생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아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만 둔 실패의 기억이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다. 어느 곳에서도 이해 받지 못했다고 할까. 그 와중에 그래도 배운 것이 있다면 재정 사용에 있어서 검소와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 천 원 아끼려다가 만 원 잃고 만 원 아끼려다가 건강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학 생활에 있어서 재정 생활의 원칙이 있다면 검소와 품위, 두 가지를 들고 싶다. 얼마 되지 않는 수입은 수입을 떠나서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지출은 동전 세어가며 최대로 줄이지만 안식을 해야할 땐 최대한 감사하게 품위를 지키며 살고 싶다. 쪼들리는 가계부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방법은 안식일을 최선을 다해서 충실하게 즐기며 사는 것 같다. 안식을 위해 시간을 떼어놓고 쉼을 위해 돈을 구분하여 놓을 때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나를 위해 쓸 수 있다. 그렇게 얻은 힘으로 다시 검소하고 성실한 일주일의 삶을 누리며 살 수 있겠다. 안식과 일 모두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감사한 마음으로 일과 휴식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의 영성


가난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돈의 결핍, 정서적 안정의 결핍, 사랑하는 사람의 결핍, 안전의 상실, 자신감의 상실 등이 그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가난한 장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임재하시길 원하는 장소입니다.                        
-Henry Nouwen, Bread for the Journey


미국에 와서 유학 생활을 하는 사람이 생활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호사스러운 일이 아닐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은 원해도 재정적인 문제로 오지 못하는 사실을 생각할 때  호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적은 수입으로 생활까지 영위해야 하니 가끔씩은 혼자만 고생 다 하는 것 같다. 유학 생활에서 가끔 느끼는 가난에서 내가 얻는 것은 힘들게 생활할 때 하늘의 위로가 더 크다는 것이다. 항상 약자와 가난한 자의 편에 서 주신 하나님은 가난과 결핍의 장소에 임재하시길 원하시며 그곳을 비울 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힘들 때마다 그 약속의 말씀을 떠올리며 다시금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인 정직과 성실로 그 삶에 충실하며 안식으로 함께 하실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곤 한다.
가난의 영성으로 얻는 또 다른 유익은 나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한다는 것이다. 편하게만 살아온 내가 궁핍으로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된 것은 그들과 함께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좀 더 충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 해준 것이다. 지금은 얼마 안 되는 물질로 나누는데도 인색할 수밖에 없지만 나중에 직장이 생기고 돈이 생기면 이때의 기억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물질위주의 사회에 편입되어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기를 바랄 뿐이다.
교회에 가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함께 하는 짧은 시간에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위로와 이해를 찾는다. 자주 서로 이해하지 못해 불신과 상처를 주고받지만 성령의 끈으로 하나된 공동체가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찬양과 말씀으로 하나되는 공동체, 얼마나 많이 듣던 이야기던가! 하지만 아직은 교회가 빈자와 약자를 돌보는 하나의 모습이 되면 더욱 좋겠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도 같은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되는 모임이 되면 좋겠다. 유학생의 처지를 인정받기 어려워 유학생은 유학생들끼리 모이게 되는 현상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유학생들도 교민들의 생활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겠다. 


다시 가계부를 꺼내며


저녁 5시가 되면 대개 집에 돌아간다. 그래도 한끼는 여유 있게 잘 차려 먹어야 하니까 고기도 굽고 국도 끓이고. 디저트로 과일도 한 조각. 쉬면서 보는 각종 고지서들 살펴보면 한숨만 나온다. 수입은 빠듯한데 빠지는 물구멍은 왜 이리 많은지… 가계부를 꺼내어 정리를 시작한다. 요즘 이래저래 너무 많은 돈을 쓰지 않았나 자책감이 몰려온다. 이런 추세로 학위 받을 때까지 수지를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다.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까?
다시 마음을 정돈해본다. 하는 일에 정직하고 검소하게 그대로 신앙 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품위를 잃지 않기. 결과가 어떻게 되건 이 길로 정진하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면 다음 단계의 일이 맡겨질 거라고 기대하며 최선을 다해서 하고자 한다. 만약 그게 안 된다면 아직 내가 그 일에 준비가 덜 된 거라 받아들이면 된다. 지출은 최대로 줄이며 생활을 지혜롭게 짜 내본다. 부지런을 더 떨면 좀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주일이 기다려진다. 다음 주를 계획하며 머리를 쉴 수 있는 평안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일의 시간표를 확인하며 가계부를 덮는다.
주님과 함께 한 내일도 무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