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4년 5월호


이렇게 이코스타 좌담회에 참여해 주신 여러분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우선 각자 자신에 대해 소개를 해주시겠습니까?


차문희: 저는 차문희이고요 현재 살고 있는 곳은 조지아 아틀랜타입니다. 처음에는 공부하러 미국에 왔다가 졸업하고 교사로 일하면서 계속 공부하고 있습니다. 직장생활하면서 학생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조한상: 저는 조한상이고 시애틀에 살고 있고 전자공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 유학생입니다.


권오승: 보스턴에 있는 권오승입니다. 반도체 제조학을 공부하고 있고 보스턴에서 유학생 성경공부를 섬기면서 그레이스 채플이라는 미국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이코스타에서는 1월부터 고난과 공동체라는 주제로 기획기사를 준비하였습니다. 이번 코스타의 주제인 고난받는 공동체, 거룩한 공동체에 대한 일종의 사전준비형식이었는데요, 이 주제가 2004년을 살고 있는 우리 유학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번 짚어볼까요?


조한상: 사실 저는 주제가 나온 것을 처음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사실 흔하게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미국이 편한 곳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을 일을 없다 고난을 받으려면 미전도 종족에게 가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어디에 살던지 고난을 받는 것이고 공동체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요, 그런 말을 한 다는 것 자체가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고 기독교인이 고난에 대하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고 삶 속에 적용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차문희: 저같은 경우 이번 기사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느꼈습니다. 보통 유학생들을 보면 경제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비교적 안정된 사람들이고 처음 미국에 올 때 꿈이나 비젼, 야망을 갖고 오기 때문에 성공 지향적인 삶을 살기 위해 이기적인 마음이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난이 닥쳐오면 내가 왜 이런 고난을 받아야 하는가 내가 성공의 길을 가고 싶은데 하는 사고로 좌절감에 빠지기도 하고 그런 것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피해가려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유학생활을 해보았지만 유학생들은 고난에 부딪쳐도 도전받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피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같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코스탄들이 고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고난을 하나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권오승: 저도 차문희 자매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다만, 유학생들이 받는 고난에는 제가 생각하기에 두 가지 종류의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유학생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문화적 충격, 경제적 어려움, 학업에서 받는 스트레스 등 일상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나름대로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사는 것이고요, 두번째는 세상의 가치관에 싸워 살아가기 때문에 예수님의 삶을 살면서 받는 고난이 아닐까 싶습니다. 첫번째 고난은 우리 유학생들의 삶에 많이 발견되는 것이고 성경공부 시간등에서 많이 나눠지는 것인긴 한데 사실 이번 좌담회와 코스타의 주제는 두번째의 고난의 것에 더 강조가 되어있는 것같습니다.


고난이라는 가치를 별로 생각하지 않는 현대 교회에서 고난의 이슈를 머리 속에 담으려고조차 하지 않는 태도가 팽배해 있는 시대에 이번 주제가 아주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활절의 절기에 맞게 고난이라는 주제와 파편화되어가는 사회에서 기독 공동체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인 것같습니다. 먼저 기독공동체의 여러 경험을 조한상 형제님께서 정리해주셨는데요 그 글을 준비하시면서 어떤 마음이 들으셨는지요?


조한상: 기독 공동체에 대한 정의를 글을 쓰면서 좀 보았는데, 역사적으로 왜 공동체성이 점차 결여되어가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현대에 역사에 나타나는 공동체성이 왜 없어졌는가하는 의문에는 공동체에 대한 개념이 중요한 것같습니다.


공동체에 2개의 극단이 존재하는 것같애요. 성경적인 공동체가 어떤 것인가 고민없어서 없거나 우리 공동체가 제일이다는 자부심을 고조하는 공동체게 존재하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완전히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친 나머지 교만에 빠지는 두 유형이 있는 것같습니다.


공동체로서 받을 고난을 고민하기 이전에 어떤 공동체를 형성해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바른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과정 자체가 고난을 수반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생각의 변화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권오승: 저도 그 글을 아주 잘 읽었습니다. 한가지 사족을 단다면 예수님의 몸(Body of Christ)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추가하고 싶습니다. 특별히 유학생 집단 같은 엘리트 집단에 던져지는 메세지 중에 하나는 유학생 리더 같은, 훈련된, 잘 나가는 크리스챤은 수퍼 크리스챤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를들면 성경공부 리더가 된다면 학교에서 공부도 잘해야하고 직장에서도 잘해야 하고 기도도 잘하고 성경공부도 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심지어는 교회 봉사도 못하는 거 없이 다 잘해야 하고, 상담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그러나 성경적인 관점에서는 개개인이 수퍼스타가 되기 보다는 각자가 장점과 단점을 서로 맞춰가면서 예수님의 몸을 만들어가고 세상이 상상하지 못하는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것에 강조가 더 있는 것같습니다.


고난의 이슈에 이런 원리를 적용하면요, 개인이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닌, 공동체가 고난을 받을 때 각 지체가 감당해야할 고난의 영역이 있고 함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고난을 감당해 낼때 진정한 기독공동체의 하모니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실질적으로 그런 하모니를 가진 공동체를 별로 보지 못한 점이 중요한 이슈인 것같습니다.


조한상: 역사적으로 보면 한사람의 뛰어난 수퍼 스타같은 지도자에 의해서 세워지고 유지되는 공동체, 그러나 그 사람이 사라지면 철저하게 타락되는 공동체의 모습이 많았습니다. 좋은 지적이신 것같습니다.




예, 공동체가 능력있는 개인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이신데요, 예수님에 대한 신앙과 공동체 생활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있음은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도 많이 느끼는 부분입니다. 각자 기독 공동체를 경험하시면서 어떤 모습이 진정한 조화를 추구하는 기독공동체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차문희: 기독 공동체의 바른 모습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선교 단체를 섬긴 경험에 비춰보면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사실 실망스러운 부분도 많이 있었던 것같습니다.


기독 공동체에서도 직책에 너무 의존하는 경우가 있는 것같애요. 섬기는 사역자와 봉사하러 오시는 분들 사이에 조직 사회가 유지되는 것같거든요. 지위가 높으신 분은 권위를 내세우는 경우도 있고 서로 못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었어요.


두번째로는 기독 공동체는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해줘야하는데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자신의 것을 강요하는 것이 많았던 것같아요.


세번째로는 말씀 위주의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같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권오승 형제님께서 말씀해주셨는데, 기독 공동체의 기초가 말씀을 바탕으로 성립 되는 것이 옳지 않나 봅니다. 물론 친교가 중요하긴 합니다. 먹는게 없으면 안오니까요.(웃음) 교회 안의 공동체도 너무 사회 클럽같은 것을 느끼곤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느 조직이건 갈등이 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갈등을 부인하고 없는 것처럼 가정하고 피하려고 하는 것은 문제를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놓는 것같애요. 교회에서도 갈등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어떻게 이것을 잘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게 좋을 것같아요.




그런 다양성을 어떻게 담아내야할까요? 보이지 않는 분위기로 다양성을 억압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요.


차문희: 다양성에 대한 훈련 자체도 기독 공동체에 많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기숙사 RA를 하면서 학교나 세미나에서 다양성에 대한 훈련을 많이 받았는데요, 교회에서도 그런 훈련이 많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조한상: 다양성이 중요하긴 한데 열려 있지만 닫혀 있는 공동체로서의 기독 공동체의 특징으로서 정체성이 중요한 것니까요, 기독 공동체의 보편성과 다양성을 조화하는 기초가 말씀이 될 것같은데요, 삶의 나눔이 필요하지만 말씀 중심으로 공동체의 기반이 분명히 설 때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같습니다.


교회는 한편 보편성을 가지면서 다양성을 유지하는 균형을 갖기가 어려운 문제이긴 한데요.


권오승: 제가 보기에는 신앙 공동체에는 제자 공동체와 회중공동체의 형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자 공동체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공동체에서 회중 공동체는 바울 서신 등에 나타난 교회에서 볼 수 있는데요. 제자 공동체는 선택과 배제(selection & exclusion), 회중 공동체는 포용이라는 원칙이 보여지는 것같거든요. 예를 들면 교회에서 문맹인 사람과 철학 박사와 같이 성경공부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몸이라는 이유로 같아져야 한다고 강압할 수는 없거든요. 지혜롭게 동심원적 구조를 세우면 선택과 배제라는 원칙과 하모니를 가져야 한다는 균형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조한상: 밑에서부터의 공동체, 한 사람에 의해 주도되지 않는 공동체가 세워지고 말씀이 소그룹에 기초가 되고 조직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닌 위로 올라가는 공동체가 되면 힘이 생기는 것같애요. 공동체가 조직이지만 조직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공동체로서 실패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밑으로부터의 공동체 조직이 되면 굉장히 어려워지는 것같아요.




한편 기독공동체가 세상의 공동체 혹은 조직과 근본적으로 다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많은 한국 교회가 한국 사람들이 교회에 오니까 오는 사람을 이민에 정착시키고 교회를 통해서 미국 사회에서 적응하고 성공하는게 좋다는 것이 기조인데요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긴한데 문제가 있는 것같습니다. 기독 공동체가 다른 타자를 위한 기독공동체의 정체성을 세우지 않으면 쉽게 교회가 흔들리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한상: 기독 공동체가 근본적으로 다른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 정답이긴 한데요. 나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기독교인, 기독 공동체가 중요한 것인데요, 몇몇의 헌신된 제자가 작은 공동체가 점차 우리가 갖고 있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이 될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차문희: 타자를 위한 공동체라는 표어는 매우 중요한 것같습니다. 교회 공동체 구성원의 역량이 중요한 것같은데요. 제 경우도 교회를 생각해보면 교회 신도수는 어느 정도 되고 재정도 튼튼한데 왜 섬기는 사람이 없는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몇몇의 헌신된 제자, 구성원인 제자의 역량이 중요한 것같습니다.


권오승: 때로는 교회에 뭔가를 원하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그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 가끔은 필요한 것같습니다. 금과 은을 찾는 거지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는 것이 필요한 것같거든요. 최근 교회에서 섬김이 없는 것보다는 선포(케리그마)가 적은 것이 공동체의 문제가 아닐까요.


신앙의 원론적인 메세지가 없는 상태에서 잘해주는 섬김만으로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같습니다. 메세지가 좀더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이것은 상황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경험한 유학생의 사회속에서는 그렇습니다.




고난이라는 주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각자 생활에서 어려움과 시련이 많았을 것같은데 생활의 어려움이나 유학 생활 중의 어려운 점이 있으면 나누어주시겠습니까?


차문희: 저 같은 경우는 고난이 좀 많았던 것같은데요(웃음) 언어의 문제로 힘들었고 남부라서 인종 갈등도 있었고 직장 생활에 적응하기까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미국 어린이를 다루는데 어려운 일이 많이 있었고 오해도 많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처음 오는 한국 유학생들이 이런 얘기를 하면 다 겪어봐야 하는 일이다라고 말을 해주죠.(웃음)


그러면서 내 자신을 알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권오승: 다른 문화에 적응하느라고 겪는 어려움은 저도 참 많았는데요, 제가 나름대로 생각했던 것은 세상의 가치관에 적극적으로 대항했던 그리스도께서 능욕을 지고 십자가를 지셨던 고난은 아니었던 것같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받으셨던 고난이었거든요. 앞으로 직장생활을 하면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가치있지 않은 일을 붙들고 오랫동안 씨름해야하는 경우가 있을 것같고 성공보다 다른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고난이겠죠.


기획 기사가 기독공동체의 고난을 연결시켜보려고 노력했는데요, 원론적으로 생각해서 기독인이 또 기독공동체가 고난을 수반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죄때문이라 하겠는데요, 고난이 창조질서의 붕괴에서 나왔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치유책이 나와야 할 것같습니다. 각자 신앙이 고난을 극복하는데 어떤 의미가 있으신지요?


차문희: 저는 유학생 생활을 시작하면서 인터내셔날 미니스트리에서 다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는데요, 행동으로 보여준 좋은 친구의 전도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바탕이 되서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을 시작하니까 먼저 평안해지고 그분을 의지하게 됩니다. 예전처럼 내가 왜 이래야되지 하고 불평을 늘어놓기 보다는 고난을 통해서 뭔가 또 배우고 있구나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고난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통해 성숙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름대로 큐티도 더 열심히 하고 성경공부도 더 열심히하고 있습니다.


권오승: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두가지의 고난 가운데에서요, 첫번째 카테고리의 고난은 세상과 싸우면서 생기는 고난은 아니지만 그 나름대로 제 스스로를 돌아보고 예수님 닮은 사람으로 만들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느껴졌고, 두번째 종류의 고난은 그것을 경험할 때 표면적으로 힘들지만 보이지 않는 기쁨이 있었던 것같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그런 고난 속에서 아주 자랑스럽더라구요. 사소한 얘기지만 제가 직장생활할 때, 제 신앙의 양심에 비추어 하기 어려운 일을 요구받았을 때, 그러면서 갈등할 때 금방은 아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기쁘고 평안한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이런 일들을 통해서 스스로 어디에 서야할 것을 확실히 발견하게 됬던 것같습니다. 제 삶에서의 전선(battle line)도 더 명확해지는 것 같고요.


기독인과 기독 공동체의 정체성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데요, 이번 코스타의 주제가 세상에 대해 대항하는 기독공동체가 고난과 더불어 거룩함을 유지해야 할 필요에 의해 정해진 것같습니다. 이번 코스타 주제가 어떤 배경에서 정해지게 되었는지 한번 생각해볼까요?




권오승: 고난을 받음으로써 공동체가 거룩해진다라기 보다는 거룩한 공동체는 고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요? 이번 코스타 취지문에 잘 나와있듯이 실질적으로 초대 공동체나 모델 공동체들이 가지고 있었던 공통점, 독특성이 있는데 그런 아이덴티티가 고난을 견딜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크리스챤 공동체만이 지니고 있는 힘이 닥쳐왔던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는 점이지요. 예수님이라는 궁극적인 목표가 우리안에 약해졌기 때문에 우리안에 당연히 있어야할 영광스러운 모습이 약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에서 주제가 잡혔던 것같습니다.


차문희: 유학생들에게 이번 주제가 시의적절한 것같습니다. 이런 주제를 통해서 기독 공동체의 바른 모습에 대해서 올바른 지식과 시각을 심어주길 기대합니다. 대부분 공동체에 대해서 생각을 안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코스타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올해 코스타 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 주제와 관련되어서 어떤 기대를 갖고 계신지 나누면서 오랜 시간의 말씀을 줄였으면 좋겠습니다.


권오승: 제가 코스타에 참여한 지가 벌써 8번이나 되었네요. 매년 다른 기대를 갖는데요, 저도 이제 박사과정을 마치면서 좀더 세상과 직접 맞부닺치는 단계에 들어갔는데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세상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가야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배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함께 공동체의 약해짐을 가슴아파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차문희: 저같은 경우는 여러 강사님의 말씀을 통해 많을 것을 배웠으면 좋겠고 그것을 공동체에 적용하는 전략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컨퍼런스를 참여함으로써 알게된 지식을 공동체에 최선을 다해서 적용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컨퍼런스 기간까지 코스탄들의 삶에도 고난과 공동체라는 주제가 준비되고 내면화되기를 기도해봅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