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4년 11월호

헨리 나우웬(Henri Josef Michiel Nouwen, 1932-1996)은 심리학을 전공한 카톨릭 사제이며, Yale과 Harvard 대학 등에서 강의한 교수이면서, 말년에는 캐나다의 데이브레이크(Daybreak)에서 지체 장애아를 섬기는 삶을 산 20세기의 대표적인 영적 지도자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그의 저작 여러 곳에서 고독함과 친밀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시끌벅적한 도시에서 매일 정신 없는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혼자 있는다는 사실, 고독(solitude)이라는 상황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지만, 헨리 나우웬에게 고독은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며,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받은 은혜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변화 받는 공간이며, 피곤하고 번잡한 일상으로부터 물러나와 하나님과만 대면을 갖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Clowning in Rome’은 ‘로마의 어릿광대’라는 제목으로 카톨릭 대학교 출판부에서 번역 출간되어 있으며, 고독과 공동체, 독신과 거룩함, 기도와 묵상, 관상(reflection)과 보살핌에 대한 깊은 묵상을 담고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국내 미번역본으로 알고 있어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번역본이 아닌 원서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헨리 나우엔은 고독함에 대해 묵상하면서, 고독함을 통해 우리가 세상에서 벗어나 은둔자와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고독함을 통해 우??우리 형제 자매, 혹은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고독함은 바쁜 일상과 복잡한 관계로부터 ‘벗어나 있는’ (time-out)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성을 발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원동력이며, 고독함 속에서 공동체와의 친밀감이 자라난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고독함에 대한 깊은 묵상은 현실의 피상적인 상황 너머에서 은밀하고 세밀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두려움이나 외로움과 같은 고통들을 통해, 나우웬은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슬픔이 기쁨으로 가는 한 과정임을 고백하면서 ‘포도 알처럼 뭉개어지는 순간에는 후에 포도주가 되리라는 사실을 생각할 수 없다’는 묵상을 독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님이 로마에 체재하는 동안의 체험과 묵상을 바탕으로 기록된 ‘로마의 어릿광대’는 공동체와 독신생활 및 기도에 대한 많은 묵상들을 담고 있지만, 제목에서 함축되어 있는 ‘로마’라는 물리적인 공간과 ‘어릿광대’라는 구체적인 인간상을 이해하는 것이 ‘로마의 어릿광대’라는 영적인 묵상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로마 시내의 빈 공간으로서의 교회당 그리고 돔
거대하고 분주한 도시 ‘로마’의 도심에 위치하고 있는 성당들의 돔(dorm)을 바라보면서, 나우웬은 기독인의 삶 속에서 침묵과, 고독과, 묵상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우웬에게는 몇 백명, 몇 천명이 들어차도 될 것 같은 거대한 ‘빈 공간’으로서의 로마의 성당들과 그 성당을 이루는 돔은 그저 비어있기만 한 불필요한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지치고 상처받은 이들이 일상에서 물러나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그 관계를 회복하는 혼자됨(solitude)을 위한 공간이며 그 혼자됨의 시간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는 공간입니다. 현대인은 바쁘다는 사실에서, 주변 사람들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조차도 돌아볼 수 없는 상황을 직시하면서, 나우웬은 신앙인으로서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과, 그러한 교제는 일상에서보다 세상과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난 ‘고독함’ 가운데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고독함은 물리적 시간뿐 아니라 우리 마음을 비우는 일까지를 포함합니다. 로마 시내의 비어있는 돔은 공간적인 낭비와 같이 여겨질 수도 있지만, 실제 그 로마 시내의 성당들과 돔은 복잡하고 바쁜 로마의 한 구석에 여유와 고요함이 존재하고 있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나우웬은 로마의 시내처럼 바쁜 우리의 삶과 마음 속에도 성당과 돔과 같은 비어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오직 한 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그분 앞에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정직한 모습으로 홀로 나아가 그분과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나우웬의 묵상은 많은 도전이 됩니다.


‘실없는’ 어릿광대
나우웬은 어릿광대의 연기를 보면서, 그들이 어리석고 쓸데 없는 것 같은 행동을 통해 자신들을 희화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로마와 같이 거대하고, 분주하며 번잡한 도시에서 성당의 돔과 같은 빈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과 같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의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들 가운데에도 타인의 미소를 위해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공허하고 외톨이와도 같은 어릿광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맹수 조련사나 곡예 그네 연기자가 받는 관심과 경이감과는 달리, 우스꽝스럽고 실없어 보이는 어릿광대들은 관중들로부터 동정과 웃음 정도를 받을 뿐이지만, 그들의 쓸모 없어 보이고 무의미하면서도 외톨이처럼 비춰지는 삶은, 그 이면에서 우리에게 희망과, 웃음과 위로와 평안을 공급해주고 있습니다. 어릿광대의 삶은 우리의 염려와 걱정, 그리고 긴장으로 채워진 삶에 미소가 필요하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조금씩은 어릿광대와 같은 삶의 모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나우엔의 ‘로마의 어릿광대’를 읽고 나서는 하얀 얼굴에 빨간 코를 하고 사람들에게 희망과 미소를 줄 수 있는 삶의 모습, 자신을 희화화하고 한없이 낮춤으로써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는지를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커스의 곡예 그네 연기자들에 관해 언급하면서, 나우웬은 그들이 서커스에서 위험한 묘기를 펼칠 때, 공중 그네의 손잡이를 놓으면서 반대편에서 동료가 자신들의 손을 잡아줄 것을 확신하는 서커스 단원들의 믿음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혹은 해야만 하는 유일한 일은 그네의 손을 놓은 일과 자신들의 손을 잡아줄 상대편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우웬은 이런 곡예 그네 연기자들의 공연에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지를 발견합니다. 우리의 구원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잡는 데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놓지 못하고 잡고 있었던 그네의 손잡이를 과감히 놓고, 온전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리라는 사실을 확신할 때 일어납니다. 그네의 손잡이를 놓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공중에 몸을 던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고, 결코 우리 손을 놓지 않으시기 때문에, 설령 우리가 그분의 손목을 놓칠지라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묵상은 하나님을 신실하시고 한없는 사랑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 Sharlom Day Care 에서 아이들을 보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학기 중에는 어찌 지나는지도 모르게 흘러가는 시간이지만, 매주 금요일은 제게 어떤 의미에서는 나우웬 신부님의 ‘로마의 어릿광대’에서 말씀하시는 도심의 ‘성당과 돔’과 같은 의미를 갖는 시간이 됩니다. 어린 아이들을 섬기는 작은 일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많은 은혜를 깨닫습니다. 유아부/유치부에서 섬기는 일은, 예수님께서 그분께로 나아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새로이 깨닫는 통로가 됩니다. 어린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아이들과 함께 찬양하고 율동하고 때로 아이들을 위한 짧은 설교를 준비하면서 아이들 앞에서 낮아지는 제 모습, 하나님 앞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저 역시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유치’해지는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아이들과 하나님 앞에서 ‘어릿광대’와 같이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율동, 그리고 말투를 내보일지라도 부끄럽지 않은 이유는, 어릿광대가 하는 것처럼, 제 작은 행동 하나, 표정 하나가 어린 영혼들이 그분을 느끼며, 행복한 웃음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한 斂?학교 일들과, 수업, 시험이나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떠했든지 그 아이들 앞에서 제 어려움은 모두 뒤로 하고 온전히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헨리 나우웬의 ‘로마의 어릿광대’는 고독함 가운데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비록 하얀 얼굴에 빨간 코는 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가 속해있는 공동체에 희망과 웃음을 줄 수 있는 어릿광대와 같은 삶에 대한 성찰과 도전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영적인 삶에 내포된 구체적인 요소들인 고독, 독신 생활, 기도 그리고 명상에 대한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어릿광대’와도 같은 삶의 실제적인 모습과 적용에 관한 개개인의 깊은 묵상이 가능합니다. 하나님 앞에 그분이 원하시는 모습과 그분께 기쁨을 드리는 모습으로 나아가기 원하는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많은 도전으로 다가오는 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