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6년 9월호

만 서른이 넘어 미국에 유학오곤 만 2년이 되던 여름, 그러니까 약 11년전 즈음 시카고 코스타에 처음으로 참석한 뒤, 깨달은 바가 많아 그후로도 세번을 더 다녀오면서, 나도 언젠가는 평신도 지도자로서 코스타에서 청년들을에게 내게 임한 하나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하는 기도를 하늘에 올렸었다. 그리고는 10여년을 남들 알아주지 않는 자칭 코스탄으로, 한인 유학생 교회에서 대학부, 청년부 교사로 섬기면서, 청년들에게 코스타를 소개하고 참석하도록 종용하면서 지내다가, 작년 늦여름 미국 중서부 gpKosta 개회 예배 말씀을 전하면서 그렇게 말한 기억이 난다. 꼭 10년전 드렸던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이렇게 코스타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서 청년들에게 말씀을 전하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긴다’고. 그리고 또 다시 1년이 지나, 06 cKosta에 조장 멘토로, 그리고 세미나 강사로 참여하게된 것은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큰 감격으로 다가왔다.


세미나 준비를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대체로 두가지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발견하곤 비교적 힘든 기도의 시간을 가졌었다. 하나는 대학생 나이의 어린 청년들과 생활한지 3년이 지나면서 그들에게 적합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조금은 보수적 관점을 벗어난 개혁적 관점에서의 ‘직업 영성’에 대해 강의하려니 (제목: 기독 청년의 직업 준비), 혹 강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는 않을까 하는 근심이었다. 이런 고민들과 함께, 조장들을 위한 3주간의 큐티 나눔은 시작되었고, 멘토로서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관심이라고 판단되어, 그들의 큐티 나눔에 한줄 기도문을 덧글로 남기곤 하였다. 코스타 주제에 대한 말씀을 적용하고 나누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그들의 멘토로서 그들의 내면은 물론 외면을 알아가는데에는 턱없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뽀족한 방업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기대하는 것 외에는.


바쁜 초여름 회사일을 정리하고, 부랴부랴 세미나 강의 내용을 마무리하고, 드리어 인디아나 폴리스로 향하던 날. 난 뭔가를 놓고 있다는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기도 부족이라는, 언제나 있어온, 정답외에도 한두가지 무언가 빠져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인디아나 폴리스 대학 캠퍼스로 들어섰다.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시작된 조장수련회에서는, 그동안 온라인으로만 접해온 4지역 조장들의 참신한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된 즐거움과 50여명의 젊은 리더들이 기도로 준비하는 과정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으로 기쁘고 셀레는 마음이었다. 여기 저기서 집회를 성실하게 준비하는 간사들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즐거움과 함께. 멘토의 정확한 역할에 대해 스스로 준비하고 싶었던 여러 부분에 대한 준비는 부족했지만, 조장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자 보여준 충성된 마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귀한 시간이 되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같이 움직여야할 가족이 없는 대학생과 취업 초년생인 cKostan의 구성원 성격상, 조별 모임은 전체 집회 못지 않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조장의 역할은 시카고 코스타에 비해 더욱 중요한 비중을 갖는다. 코스타 일정이 시작되고 분주해진 조장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멀리서 보면서 그들의 수고함에도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성장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확인할 때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감추기도 힘들었다. 때로는 여러 다양한 문제로 가슴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조장들도 있었지만, 내가 직접 그 문제를 해결하려 나서는 것보다는. 이를 영적 성장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한걸음 물러선 뒷자리에서 서 있었는데, 이러한 나의 태도가 조금은 그들에게 아쉬움을 사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진정한 멘토는 성령님외에 그 누구도 될 수 없음을 멘토나 멘티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었다.


한인 유학생 교회를 떠나 미국교회 생활을 해온 지난 몇년동안 청년이란 단어에 대한 그 두근거림이 다소 줄어든 듯 했다. 지금 믿음의 생활을 함께 하고 있는 한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지체들이 대부분 서른 아래 위의 대학원생들이어서 그런지, 그리고 처음 코스타에 강사로서 참여하게 되어서인지, 설레임보다는 어찌 감당할 것인가에 더 관심을 두었나보다.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조장수련회를 마치고, 개회예배로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게다가 월요일 밤 처음으로 가지게 된 강사모임 시간. 어찌나 낯설게 느껴지던지. 미국 전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이 땅에서 헌신하는 30여명의 목사님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 내가 앉아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겸연쩍은 마음에 가장 구석진 곳을 찾아 앉았는데, 그곳 지역 교회에서 정성스레 준비해주신 간식을 받아들고는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가 하는 질문을 쉬 놓지도 못했다.


그러면서도, 겸손으로 포장한 나의 교만은, 솔직히 말하자면, 이 30여명의 강사진들 개개인의 신앙의 기저가 무엇인지, 코스타를 향한 그들의 시각이 어떠한지, 또 각자가 담당한 설교나 세미나 등의 내용에 대해서도 조금은 궁금증 이상의 의구심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경계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무너졌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는 그들과 직접 대화하는 기회가 늘어날수록, 은밀히 표현되는 그들만의 지혜와 겸손과 청년을 향한 사랑이, 나 스스로 먼저 쌓아두었던 돌담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뭐 그다지 높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생각하면서, 이런 저런 마음으로 화요일 첫번째 세미나를 인도하고, 그날 저녁때까지 조장 멘토로서 그리고 강사로서, 그리고 상담을 통해 만날 청년들을 생각하면서 뭐랄까 그저 분주한 마음으로만 다녔다.


화요일 저녁 집회 시간.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 소리치며 춤추는 어린 청년들을 보며, 나도 그 한사람이 되어 찬양하다 울컥 가슴에 뜨거움이 내려앉았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그토록 사랑하다 두고 떠나온 서른 명의 젊은이들 대신, 이제는 여기 이 450의 청년을 네 가슴에 품으라”그 순간 거짓말처럼, 몇년전 경험해야했던 아팠던 상처와 하나님 함께 하신 회복의 과정들이 영화처럼 지나가고, 북받쳐오는 감동을 참지 못해 통곡하며 울었다. 처음엔, 잊었던 30명 청년의 얼굴이 떠올라 그리움과 보고픔에 울다가, 회복의 과정에 동행하셨던 하나님이 고마와 엉엉 울었다. 그리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말씀 들려주심에 어찌할 바를 몰라 울었다. ‘하나님, 이 작은 자의 가슴에 어찌 이 많은 영혼을 품으라 하시나요?’ 밤 10시경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쉬지않고 흐르는 눈물 훔치면서 되묻는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내내 은혜의 미소만 지으셨다.


그 밤부터 집회 기간 동안 내내, 조금이라도 기뻐하는 청년, 근심하는 청년, 슬픈 기색의 청년, 도움 청하는 청년, 말씀에 귀 기울이고자 하는 청년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빨갛게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일 조장들이 제출한 평가서를 읽으면서, 조장과 조원들 이름 하나 하나에 손을 올리고 기도하곤 했는데, 언제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영혼들과 함께 하는 특권,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내게 있음을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랑하는 영혼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다가왔고 어쩌면 주님의 아픔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가까이서 마음 문 여는 대화도 나누지 못했지만, 청년 한사람 한사람을 이해하며 기도하고자 했던 마음만은 성령님을 통하여 그들에게 충분히 다가갔을 것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그렇게 하나께서는 무언가 빠트리고 참석하게된 준비되지 않은 나를 만지시며 다시금 준비시켜 주셨다.


코스타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은 욕심때문에, 내가 원했던 속도로 강의했다면 아마도 4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70분의 분량으로 줄이는 것이 첫시간에는 어렵다 싶어, 강의 녹음을 다음 날로 미루었는데, 다음 날 강의시간에는 마침 녹음기계에 이상이 있다며 그 다음 날 다시 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날에도 녹음을 하지 못하게 되어, 전체 집회와 세미나를 통틀어 나의 강의만 녹음이 되지 않은 해프닝이 일어났다.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다. 처음과 두번째 강의에서는 강의실이 모두 채워져 나름대로 힘을 얻어 강의했지만, 마지막 날 두번의 강의에서는 절반 정도만 채워졌다. 게다가 그 가운데 절반은 피곤한 일정탓인지 잠을 청하고 있어 그리 흥은 나지 않았지만, 한두명의 청년이 부릅뜬 눈으로 경청하여 주어 그들덕분에 강의를 마칠 수 있었다. 강의 내용의 한부분이라도 그들의 미래에 적용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한 강사분은 이렇게 말씀을 나누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준비과정도 그랬지만, 여기 와서도,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영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저의 깊은 내면은 참안식을 누리고 있답니다.” 한 분께서 나누어주신 말씀이었지만, 사실은 30여명 모든 강사들이 느끼고 있던 심정을 그분이 대표가 되어 말로 표현해 주신 것이라고 여겨졌다. 하루 하루를 정신없이 청년들을 만나고 설교하고, 강의하고, 상담하면서, 새벽 1시가 되어야 공식적인 일정이 마무리되던 날들속에서, 그들 모두 참평안을 누리고 있었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 표현할 밖에. 바쁜 일정속에서 ‘청년 사랑’으로 붙들린 바된 빚장이가 되어 평생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빚을 갚기 위해, 그 먼 곳까지 달려와 주었던 강사님들. 종된 마음으로 섬기러 왔음을 그들의 언행과 눈빛에서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혹 부족한 나의 모습을 비기기도 하면서, 강사분들과의 만남이 축복으로 다가왔다.


한번은 여러가지 문제로 상담하러 온 학생으로 부터 이런 말을 전해들었다. “강사님께서 십자가 복음을 설명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어요. 그러니 저도 따라 눈물로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팽창과 긍정과 부유함과 초자연으로 때묻은 현대 교회사안에서, 복음을 말하며 눈물 흘릴 수 있는 지도자들이 청년들 곁에 있는 한, 참소망은 하늘을 향해 되살아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Kosta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 20여명의 강사분들은 서로 전체 이메일을 통해 감사와 감격과 은혜를 함께 나누는 기회를 가졌는데, 모두들 예기치 못했던 하나님과의 만남과 충만히 경험한 은혜에 감복하고 있었고, 나는 또 그들의 모습에 내려앉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엿볼 수 있었다. 청년들과 함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같은 공기를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축복 누림에 감사 기도하는 나에게, 그리도 많은 믿음의 선배와 후배와 기도의 동역자들을 알게 하시니, 난 참으로 복있는 사람이다.


코스타가 중반을 거쳐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청년들에게서 조금은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처음 시작할 때 가졌었던 두려움이나 기도 응답의 불확신, 진로에 대한 고민 등이 하나씩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면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면모는 전체적인 분위기에서도 그러했지만, 상담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학생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중반이후에 상담을 하게 된 학생들의 대부분은 이미 기도의 응답을 얻었으며, 그 기쁨을 나누고자 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마치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 참으로 다행스런 현상이라 여겨졌다. 무엇보다 이번 코스타의 주제처럼, 하나님과의 화목함을 꿈꾸고 간구하면서, 이 땅에서 화목하지 못한 많은 문제들에 대해 그 잠겨져 있던 화목의 자물쇠를 열게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때 상담받으러왔던 학생들의 미소가 그립다.


학생시절 코스타에 다니면서 간사들의 수고를 짐작한 적이 많으나, 강사가 되어 그들과 가까이서 그들의 움직임을 더 자세하게 보게 되니, 그들의 노고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식사는 물론 잠을 설치면서 자신의 맡은 바를 충실히 수행하려는 그들을 보며 혀를 내두른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가끔은 학생들로부터 조금은 불친절하지 않느냐는 불평도 듣지만, 내가 보기에, 나라면 화부터 내었을 주변 상황임을 알고 나면, 그들이 감당하고 섬기고 있는 그 자리는 분명 큰 자리였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을 곁에서 바라보는 것도 큰 행복이었는데, 무엇보다 그들의 섬김을 보며 참섬김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코스타 사진을 스크랩하다 코스타후 간사들의 회식 사진을 발견했는데, 그 자리에 나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아마도 그들의 섬김을 배우고 싶은 부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날 아침, 조장들과 식사를 하면서, 그들이 이때에 읽었으면 하는 책을 한권씩 구입하여 이별의 선물로 건넸다. 또 한해가 가면서 더욱 자라갈 그들이, 그 성장속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님과의 체험이 간접적으로나마 책을 통해 경험하면서, 내년에는 더욱 성숙한 리더가 되기를 소망했다. cKosta에서 청년들을 만나기 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변함없이 가슴속에 한가지 믿음의 꿈이 있다. 그들의 지금 모습이 조금은 연약해 보이고 부족해 보일지 모르지만, 실로 그리 오랜 세월 지나지 않아 그들 모두 나의 멘토가 될 것이라는 믿음. 그들 모두 나의 멘토가 되어 있을 그날을 꿈꾸어 본다. 그날에는 그들은 더 큰 꿈을 꿀 것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 만들기에도 충성을 다하는 청지기적 화목자로 살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 청년 예수의 모습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코스타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 한 형제의 수고로 온라인 만남의 장소를 만들어, 약 180여명의 cKostan들이 회원이 되어, 서로의 믿음 생활을 나누는 연락처로 삼고 있다. 코스타 기간동안에 가졌던 은혜와 감동을 간증하고, 코스타 이후에 변화되고 체험하는 삶의 모습들도 나누며, 혹은 중보기도를 나누면서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참으로 기쁜 일이다. 지금은 조금 분위가가 가라앉긴 했지만, 코스타 follow-up에서 가져온 규티 나눔도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더욱 흐뭇하다. 이번 cKosta를 통해 나에게 주시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아직은 온전히 헤아릴 순 없지만, 청년 그들의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알고 이해하며,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함으로 그들을 품으라시는 음성에 더욱 귀 기울이고 살고 있다. 이토록 미련하고 약한, 천한 자를 들어 쓰시고자 하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나의 하나님. 오늘도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의 단에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