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3년 9월


얼 마 전 내가 살고 있는 워싱턴 지역의 한인교회에서 활동하는 몇몇의 청년사역자들과 오랜만에 깊은 만남을 가진 적이 있다. 우리는 청년 사역에 관한 이런저런 고민들과 생각들을 나누다가 주제는 어김없이 예배와 찬양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게 되었다.


8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닌 한 선배는 이렇게 그의 고민을 표현했다. “우리 시대에는 고형원의 부흥을 부르며 시대의 아픔을 생각하고 자신의 젊음을 돌아보는 역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의 N세대들에게 그러한 정서를 강요하거나 기대할 수 있겠냐는 것이 그의 고민이었다.


80 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닌 한 다른 선배는 이런 고민을 나누었다. “요즘 불리는 찬양들을 보면 도대체가 단조, 마이너(minor) 찬양이 하나도 없어요. 하나같이 밝고 분위기 띄우는 찬양들이에요. 때때로 그런 찬양곡조들은 우리의 다른 정서를 나타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와 동시에 나는 이렇게 반론했다. “요즘 세대의 문제는 단조로 부르지 않아도 자기들의 마이너적인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데 있지요.” 우리는 어설픈 웃음으로 서로의 정서가 동감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맞 다.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상당히 독특하면서 전무후무한, 그래서 나와는 얼마든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그런 세대와 함께 부대끼며 사역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실 모든 새로운 세대는 전무후무한 세대가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또 이렇게 생각한다. 해 아래 완전히 새로운 세대가 또 어디 있겠느냐고.


79년도에서 84년도에 태어난 젊은이들과 함께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한지 이제 거의 만 일년이 되어 간다. 간접적으로 지켜만 보거나 그냥 넌지시 건너뛰어서 생각하던 이들의 삶의 방식(Lifestyle)을 좀더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때론 당혹감이 들 정도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던 순간이 많이 있었다. 자유로움을 주지 않으면 거의 질식할 정도로 힘들어하고, 단체적인 행동이나 막무가내의 의사결정에 대해선 거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을 나는?월드컵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2002년도에 한반도를 붉게 물들였던 그들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엇박자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으며, 사이버 공간에서의 사귐이 매우 익숙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강한 비트의 음악을 들으며 자란 사람들이다. (한국에서는 이들이 초등학생이던 92년경부터 지금까지 댄스음악이 주류음악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들과 함께 하는 예배 시간에 나는 항상 볼륨이 좀 크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멜로디 위주의 흐름보다는 비트가 강한 리듬섹션이 강한 찬양이 이들에게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볼륨을 좀 줄일 수 없겠냐?’는 고리타분한 부탁은 눈치를 보며 좀처럼 하지 않는 편이다. 나 역시 밝고 강한 찬양을 주로 인도하는 편이기에 이들 역시 나를 같은 편 정도로 생각하여 주기를 바라는 것이 나의 심정일까. 그러나 역시 나는 ‘부흥’의 정서와 단조음악의 정서를 이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선배들의 연민 어린 마음을 읽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보다 늘 천편일률적인 똑같은 축제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에게서 삶의 고백과 성찰이 담긴 묵상적인(Contemplative) 찬양을 기대하는 것이 나의 심정이다. 나 역시 그러한 묵상적인 찬양이 갈급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들뜬 금요일 밤의 열기가 아니라, 잔잔하게 가라앉은 어느 화요일 아침의 찬양을 함께 퍼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시장 바닥의 번잡함과 들뜬 마음뿐만 아니라, 적들의 화살을 피해가며 동굴 안에서 하나님을 묵상하며 찬양으로 퍼낸 다윗의 영성을 퍼내어 찬양으로 연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사랑하는 ‘월드컵 세대’에게 기대하는 또 한가지의 부탁과 바램이 있다면 그것은 평생동안 계속 되는 나의 고민과 비전일 테지만, 우리 민족(Korean 혹은 Corean)의 정서에 흐르고 있는 그 어떤 물줄기가 있다면 이제는 이들에게서 바로 그 정서와 물줄기를 담아 낼 수 있는 찬양이 어서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보아’라는 가수의 국제화를 기뻐하며 과연 이것이 우리 민족음악의 미래이기를 기대하는 것만이 대세일까.


이 들의 음악이 얼터너티브 계열의 대학로에서 들려지는 거친 롹음악일 수도 있겠고, 홍대 앞 전위적인 음악 카페에서 들려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의 본질이 무엇이건 간에 송창식이나 강산에의 포크 음악에서 느껴지는 어떤 민족적인 동감, 혹은 조수미의 아리랑이나 백남준의 비디오에서 느껴지는 고급문화로 덧입혀진 조선의 정서, 아니면 고형원의 ?부흥?을 부르며 시대의 아픔에 동감하던 우리 민족이 하나님께 쏟아내던 어떤 부르짖음이 담긴 그런 찬양이길 바란다. 더 이상 ?서편제?의 성공을 생각하며 순수민족음악만이 진정인 것처럼 강요하는 것도 힘들다고 본다. 70년대에 태어난 나 역시 솔직히 고백하자면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서양음악을 밥먹듯이 먹고 듣고 호흡하며 자란?다른?세대이기 때문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나는 그러나 윌로우 크릭 스타일의 예배만이 최상의 예배인 것처럼 호도 되는 안타까움을 나타내 본다. 윌로우 크릭의 예배는 베이비 버스터 세대인 백인 중산층들을 타겟(Target) 삼아 시작했던 전략적인 예배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예배를 걱정하며 담아낼 새 부대와 새 술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