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4년 10월


현대 예배에 있어서 찬양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성경에서는 찬양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생각을 했었지만 그 일들이 실제적으로 지금처럼 일어나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린 것에는 틀림이 없다. 물론 아직도 그러한 교회가 있겠지만 처음 찬양인도를 하던 한국의 90년대 초에만 해도 기타를 들고 본당에서 찬송을 인도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드럼같은 악기는 보이는 곳에 놓을 수 있을만한 거룩한 악기가 아니였다.


허 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어느 교회를 가도 드럼이 없는 교회는 거의 없을 정도로 이러한 악기에 대한 생각들과 상황이 바뀌었다. 만약에 내르가 이러한 이야기를 지금의 중고등부 아이들에게 한다면 거의 비웃음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시대와 생각들이 많이 달라졌다. 기독교인들이 듣는 음악역시 장르가 다양해졌다. 이전에는 클래식한 분위기의 찬양들이 주도하였는데, 지금은 클래식 뿐만 아니라, 락스타일과 모던한 워십 스타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정말 많이 변하고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들이 정말 좋은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오랫만에 한국을 방문해서 여러 군데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동안은 늘 인도자로 있었기에 다른 인도자들이 예배인도를 하는 것도 잘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다른 예배에는 어떤 식으로 찬양이 드려질 까 하는 직업의식 비슷한 소명을 가지고 예배를 참석했다. 특히나 미국에 있기에 한국의 예배가 변형되고 있는 것을 건너서 듣기는 들었지만 실제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정말 좋은 기회였다. 놀라운 것은 한국의 예배가 전체적으로 엎그레이드가 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건방지게 일개 사역자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하지만, 내가 한국을 떠날 때와는 정말 많은 차이가 있었다. 불과 4년정도밖에는 안 된 시간이지만 한국교회의 예배는 참으로 수준이 높아져 있었다. 찬양역시 이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특히 좋은 젊은 예배와 찬양인도자들이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이 새로운 세대를 예배와 찬양을 통해서 일으키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많은 곳에서 예배와 찬양에 대한 학교와 컨퍼런스를 열어서 이제는 예배와 찬양이 올바르게 교회들안에 보급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좋 은 점이 있듯이 역시 아쉬운 점들도 있었다. 예배와 찬양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다 아시는 것 처럼 최근에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셔서 사용하시는 호주에 있는 힐송교회를 알고 계실 것이다. 이 교회는 최근에 많을 앨범과 찬양을 보급하고 있다. 호주 뿐 아니라 현재는 이 힐송교회의 찬양과 음악들이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호주의 힐송교회의 찬양곡들을 한국의 웬만한 교회나 예배 모임에 가면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찬양을 따라 하는 수준이 아니라 곡을 완전히 카피해서 그 곳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좋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더군다나 그러한 교회가 한 두군데가 아니었다. 웬만한 밴드를 가진 찬양팀은 힐송의 앨범에 나온 곡을 카피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했다. 그러다 보니, 한 앨범에서 나온 찬양을 여러 교회에서 똑같이 연주를 한다고 생각을 해 보라. 물론 성도가 많지 않고 조그마한 교회에서는 똑같이 연주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배 부른 소리라고 할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 정도의 밴드와 팀의 구성이라면 충분히 자기것으로 소화를 시켜서 자기 스타일로 만들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모방은 창조를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으로 더 좋은 예배와 찬양 음악이 한국안에 흘러갈 것을 기대한다.


일 전에 한국에 예배앨범이 많이 소개되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다. 그 때 당시에는 앨범을 구입할 수 조차 힘들어서 가끔 나왔던 호산나의 앨범들을 구입하면서 카피해서 여러 사람들과 나누면서 이렇게 한 번 연주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소원이라는 생각했던 것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마 지막으로 전에 알지 못했던 사실이 하나 있어서 한 가지 이야기를 나눌 까 한다. 그것은 우리가 드리는 찬양의 볼륨에 관한 것이다. 찬양은 볼룜을 가지고 승부하는 것이 아닌데 많은 분들이 보통 귀에는 과다한 데시벨을 사용해서 예배와 찬양을 이끌어 가려고 한다. 악기 사용을 제한 하는 것이 아니라, 악기를 성경말씀처럼 공교히 연주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 역시 아는 분에게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지적받은 적이 있다. 찬양인도할 때 너무 시끄럽다는 지적을 받고, 너무나도 자존심이 상한 적이 있었다. 요즘 예배는 이렇게 드리는 것이 아니야라는 말이 입까지 튀어 나왔지만 그 날 순종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인도한 적이 있었다. 그 날 나이가 지긋한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통해서 그 분들이 은혜를 받으시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 날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내가 그 말을 언급할 때인 것 같다. 정말 그렇다. 너무나도 연습이 안 된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와 찬양은 시끄러울 수 밖에는 없다. 왜냐하면 공교함이 사라지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예배와 찬양을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향한 안테나를 돋우고 민감함을 가져야 하겠지만, 가끔 너무나도 소란스러운 찬양은 하나님을 향해서 나가게 하는 데 오히려 방해를 가져다 줄 때가 너무나 많다. 어쩌면 우리 모두 다 음악적 찬양방법에 익숙해져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법은 어떤가? 오늘 지는 석양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을 묵상하는 것은? 혹은 길가에 있는 아름다운 가을의 꽃을 보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음과 섬세하심을 묵상하는 것은? 아니면 푸르른 바다를 보면서 창조주의 위엄과 영광을 생각해 보는 것은 더 깊은 찬양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