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4년 4월

최 근에 탐 크라우터의 새로 나온 책 “예배자가 알아야 할 60가지 메세지”를 보면서 중요한 원리들이 느껴지는 것이 있어서 몇 자를 적어 본다. 예배와 찬양을 인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중보기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허나 실제로 그 중요성을 알면서도 예배와 찬양팀에게 늘 부족한 것은 이 중보기도이다. 지난 몇 년간 코스타 찬양팀을 섬겨 오면서도 사실 가장 큰 부담감은 중보기도에 관한 문제이다. 어떨 때는 예배와 찬양을 인도하는 우리조차 중보기도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인도를 할 때가 많은 것 같았던 것을 기억한다. 사실 찬양인도를 하는 팀은 중보기도를 위해 모였다기 보다는 음악적인 사역을 위해 모인 것이 오히려 더 가깝다. 그러기 때문에 중보기도는 중보기도를 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야 하지 왜 찬양을 인도하는 사람이 중보기도에 오랫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느냐라고 말한다면 나로서는 감사할 일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중보기도는 하나님이 주신 하나의 은사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기도를 한다는 것은 은사차원이 아니라 날마다 꾸준하게 하므로 하나님앞에서 자라가게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중보기도가 은사라고 말하는 것은 찬양에 은사가 있는 사람이 있듯이 중보기도에도 정말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계속해서 미안하지만 오랫동안 나에게 중보기도는 정말 괴로운 시간이었다. 예수전도단라는 선교단체에서 섬길 때에도 중보기도시간만 되면 나는 졸음의 영과 싸워야만 했다. 찬양을 인도하라고 하면 몇 시간이고 할 수 있었지만, 중보기도를 인도하는 날이면, 어떻게든 빠른 시간 안에 해 치워야 했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께서 중보기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에 있는 동안 잠시 미국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서 한 교회의 영어권목사님과 교회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던 적이 있었다. 마침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교회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을 때였다. 갑자기 내 마음속에 영적인 부담감이 일어나면서 내가 만나는 존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야 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시 기도방을 찾아서 기도하려고 했지만,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찾아서 들어간 기도방의 이름은 성경에서 모세를 도와 기도했던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은 아론과 훌 방이 있었다. 훌 방에 들어가서 이마에 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열심히 기도했다. 기도하는 동안 몇 시간을 기도한 것 같았는데, 눈을 떠 보니 단지 10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목사님과의 약속시간이 되어서 올라가서 전화를 기다리는데 기도하는 동안 음성메세지가 들어와 있었다. 음성메세지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약속시간에 맞춰서 오다가 한강대교에서 불법 유턴한 택시와 정면충돌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차만 부서지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라고. 사고가 난 그 시간은 내가 훌 방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던 시간과 일치했다. 나는 그 시간에 기도했다고 했던 이야기를 목사님과 나누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하나님은 내게 새로운 것을 가르치시기 원했던 것이었다. 그 후에 내가 인도하던 모임에는 중보기도 팀이 생겨났다. 사실 이전에 간사들이 중보기도를 해 왔었는데 따로 모임을 위한 중보기도 팀이 세워진 것이다. 그들은 찬양팀이지만 악기나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모임시간 전부터 중보기도를 하면서 준비한다. 그 중보기도는 예배 안에서도 일어난다. 예배를 드리는 각 처소에서 그들은 중보기도의 사역을 한다. 그들의 찬양은 중보기도의 찬양이다. 우리의 모임은 이 중보기도팀이 생긴 이후로 모임 자체가 변화가 되었다. 단순히 찬양을 드리는 모임에서 찬양과 중보기도가 합하여 이루어진 온전한 예배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찬양팀 전에는 단순하게 모여서 기도를 하는 정도였지만, 중보기도팀이 같이 기도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찬양팀이 가지는 고질병같은 기질들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우리 팀안에는 놀라운 간증들이 많이 일어났었다.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예배를 드릴 때 찬양인도자는 먼저 하나님앞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단 1분이 되더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회중을 위하여 예배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반대로 우리의 원수인 사단은 이 시간을 가장 싫어한다. 작년 여름의 시카고 코스타의 중보기도팀에게 교통사고가 일어났던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영적인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영적인 전쟁에는 찬양과 경배, 그리고 중보기도,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가 반드시 함께 해야 승리를 할 수 있다.


말을 맺도록 하겠다. “기도를 통해 예배를 섬기라.” 탐 크라우터가 강조했던 것처럼 얼마나 오랫동안 기도하는 것, 얼마나 자주 기도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기도가 쉽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나의 경험을 이야기한 것처럼 사실 의미를 가지지 않는 중보는 또 다른 무거운 짐에 불과할 것이다. 허나, 진정한 예배와 찬양을 드리기 원한다면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는 부족한다. 엎그레이드가 필요하다. 나를 위해서 부르짖고 간구하는 것 이상의 것을 하나님은 기대하신다. 우리가 드리는 찬양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의 중보의 마음을 가지고 찬양한다면, 예배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함이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