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4년 6월


지난 주에 새들백 교회를 갔었다. 나중에 알은 사실이지만 우리 집에서 불과 1마일 밖에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거리였는데, 불행히도 캘리포니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리에 익숙지 않은 지라 몇 번이나 간다고 했었지만 가지 못하고 이번에 토요일 찬양 팀 연습을 마치고 갈 수 있었다.


좋은 예배를 드리고 나면 정말로 나의 영이 새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내 자신이 예배의 감격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신학적인 논의를 떠나서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생각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 그리고 나의 반응으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그러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부자동네에 돈 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잘 해서 그렇게 된 것일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 전에 내 눈은 자연스럽게 새들백 교회의 예배인도자인 릭 무쵸를 보면서 그가 인도하는 찬양을 보면서 도전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십이 넘어서 예배와 찬양인도를 한다는 것은 한국적인 사고방식에는 이제 예배와 찬양인도는 그만 두고,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그 자리에 아직도 기타 통을 매면서 찬양을 인도하는 모습은 나에게는 도전이었다. 예배와 찬양인도를 잘 한다고 하는 것 보다 “릭 무쵸”는 찬양인도를 할 대상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회중을 위한 배려와 그리고 회중 역시 인도자에 대한 신뢰가 느껴졌다. 물론 한 번 가 본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릭 무쵸”의 새로운 앨범이 나온 것을 광고할 때, 소개해주시는 목사님이나 회중이 정말 축하해 주는 것을 보고 처음이지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많은 목사님들이 내게 조언을 해 주는 말씀이 있다. 기타 통은 30대까지 메고(예배와 찬양인도하는 것을 소위 딴따라식으로 표현해서), 그 이후에는 말씀을 선포해야 장래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뒤 돌아서 보게 되면 그렇게 말씀하신 그 교회에서는 정말 예배와 찬양인도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대 부분의 교회의 예배와 찬양인도자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영성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실력이라고 말한다면 물론 노래를 잘 하는 것과 요즘은 밴드를 이끌 수 있는 음악적인 능력을 이야기 할 것이다. 이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자주 우선권이 바뀌지만 하여간 예배와 찬양을 인도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필수 요소이다. 결국 자연스럽게 세 번 째는 그에 따른 결과로서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예배와 찬양인도를 해야 한다. 남녀 노소에 관계없이, 어느 상황에서든 예배와 찬양인도를 해도 기름부으심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실 그런 사람이 정말 몇 명이나 있을 까 생각한다. 그런 기준으로 예배와 찬양인도자를 뽑는다면 나는 아마 첫 번 째로 짤리지 않을 까 생각된다.


너무 인도자 쪽으로 치우쳐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 찬양은 인도하는 사람에 따라서 많이 좌지 우지 되어 진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용하셔서 사역하시기 때문에 예배와 찬양인 도자는 찬양을 올바르게 소개하는 중요한 포인트 중에 하나이다. 기름부으심은 예배와 찬양 인도자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곡을 해석하는 능력과 개인의 영성이 노래를 통해서 흘러나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찬양은 상한 심령을 회복시키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며 하나님 아버지앞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이 된다. 찬양이 일반음악과 다른 것은 이 부분이다. 혹시 여러분 중에 음악회나 좋은 콘서트에 가서 여러분의 상한 심령이 치유받은 적이 있는가? 아니면 회개하면서 자기의 삶을 돌아볼만한 음악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가? 좋은 음악은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하고 감정을 풍요롭게 하지만, 진정한 찬양은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의 역할을 한다. 작년에 칼리지 코스타에서 예배드릴 때 “내 이름 아시죠-He Knows my name-Tommy Walker지음-천관웅역)라는 찬양을 할 때, 한번도 가르치지 않고 처음 연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회중들을 치유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좋은 악기를 소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악기를 연주한 사람을 통해서 흘러가는 영적인 요소이다. 다윗이 하프를 연주할 때 악신이 떠났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찬양을 인도하는 자는 찬양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고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참 쓸데없는 데 관심이 많다. 찬양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찬양을 하는 대상이다. 허나, 우리는 찬양을 할 대상보다는 우리 자신에게, 아니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우리가 가지는 근심걱정을 더 경배한다. 시편을 자세히 읽어 보게 되면 사실 시편기자도 많은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께 하소연을 하지만 결국은 찬양과 하나님에 대한 경배로 맞추고 끝을 맺는다. 이번 코스타 기간도 그러한 진정한 배와 찬양이 드려졌으면 한다. 미국 각지에서 모인 훌륭한 연주팀이 연주를 해서 찬양이 훌륭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제 거품을 좀 빼자. 단지 찬양팀만 기도해서는 부족한다고 생각한다. 코스타에 참석하는 모든 코스탄이 하나님이 들으시기에 합당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한다면 이번 코스타기간은 어느 때보다 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기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번에 찬양과 중보기도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을 때, 나에게 한 분이 보내 준 메일을 소개하고 이번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Worship Intercessor(예배 중보자)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시편 149:6


예배 중보자는 그들이 부르는 찬양과 노래 자체가 중보기도이다
예배 중보자는 한절의 노래를 계속해도 지루해 하지 않는다
때로는 같은 노래지만 가사를 조금 바꿔서 할 수도 있다
같은 노래를 반복할 때 그 가사가 실제로 사람들의 삶 속에 역사 한다


원수의 척추를 끊을 수도 있는 파워가 있다
이 예배 중보는 치유와 축사와 하나님의 임재를 가져온다
단순히 화음을 만들어내는 성가대식이 아니라 군대의 강력한 노래를 만들어내어서 어둠의 영을 물려내고 치유를 가져오게 한다. 악한 영에 대한 제사를 하나님에 대한 예배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