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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광우병 사태를 보면서 마음이 찹찹합니다. 우왕좌왕하는 정부도, 초등학생까지 참여하는 국민적 촛불시위도, 종교계의 대처 그 어느 곳에서도
가슴 시원한 해법이 보이질 않습니다. 생산적인 논쟁보다는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 ‘천민 민주주의’ 등 유희적 논쟁으로 매체가 들끓습니다.
비난을 위한 비난의 소리가 더 깊은 불신의 병을 낳을까 염려됩니다. 광우병을 둘러 싼 몇몇 입장에 묘한 공통점이 드러납니다.

시민들과
야당, 국민대책본부가 여당과 정부, 대통령을 향해 쏟아내는 성난 목소리, 그 속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졌습니다. 플래카드마다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비난의 소리가 가득합니다. 질책을 넘어 인격 모독입니다. 대통령을 무슨 길거리 촌부 취급합니다. 참여정권을 심판한다는 국민의 힘에 의해
압도적 표차로 뽑힌 대통령이 100일도 안 되어 그 국민에 의해 짓밟혔습니다. 국민의 권위가 국민에 의해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국민의
생존권을 책임지는 나라의 권력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 생명이 담보가 될 소지가 있는 소고기 협상 과정에서 국민을 배려한 최선의 신뢰적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문제가 터지고 촛불시위가 일어났을 때 국민의 입장에서, 민초의 마음을 읽으려는 낮은 자세도 없었습니다. 국정의
책임자들이라면 적어도 국민들이 ‘국민의 생명의 존엄성과 인권을 헌신짝처럼 취급하는’ 느낌이 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일부
크리스천 정치인이나 목회자가 ‘사탄의 세력’ 운운하는 것도 조심했어야 했습니다. 비 신앙인도 인간의 생명 그 자체로 존엄합니다. 긍휼과 사랑의
언어로 존중해야 합니다. 교회가 사회의 모든 현상을 성속의 이분법적 태도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오만입니다. 그 어느 종교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귀하게 여기는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지 100년… 최근 사회에 기독교 불신과 안티세력이 급속도로 커져가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반기련 등
수십 개에 달하는 안티 기독교 단체들이 ‘한국사회에 패악질을 일삼는 기독교를 박멸’하겠다고 도전합니다.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를 한국교회 총체적
난관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자정의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 이것은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자유 민주주의의 기본 철학이며, 교육의 핵심개념입니다.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인간의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인간은 존엄합니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사형수라도 형틀에서 마지막 죽기 직전의 순간만큼은 엄숙합니다. 바로 생명 그 자체가 존엄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를 기치로 삼고 달려왔습니다. 이제 그
민주주의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성숙이 무엇인지 돌아볼 때 입니다. 80년대와 사뭇 달라진 좌파우파의 논쟁도, 물고 뜯기가 끝없는 국회의 야당과
여당도, 권력의 추가 정부에서 국민에게 이동하는 시국현장에서도, 노동자와 사주 사이의 협상 테이블에서도 인간존중의 언어와 소통의 미는 없고
비난과 반목질시만 난무한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역행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는 12년간 혈루증으로 앓고 있는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당시에는 혈루증을 부정한 병으로 취급했기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고,
고통스럽게 살다가 생을 마쳐야했습니다. 그 사회에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의사들은 말합니다. “이제 당신은 안 돼요! 이 병은 더
이상 치료 불가능합니다!” 병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끊임없이 괴로움을 주었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종교 지도자들도 말합니다.
“당신은 부정한 여인이요!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마시오.” 종교적 기준으로 가차 없이 처단합니다. 이처럼 주변에서 들려오는 불가능과 절망, 비난의
소리에 갇혀 있던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문을 박차고 무리를 뚫고 예수께 가까이 가서 그 옷자락을 만진 순간 즉시 혈루병의 근원이
말랐고 병이 나았습니다. 근본적인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12년 동안 짓밟혀 있던 이 여인의 가치는 그 짧은 순간 예수 안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예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인간의 외형적 껍데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살아있는 존재 그 자체로 충분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비난, 불신, 정죄, 절망의 소문이 아닌 예수의 소문이 필요합니다. 이름 난 대형교회의 소문이 아닌 예수의 소문이 필요합니다.
예수를 만나기 위해 그 어떤 정치적 입장, 이데올로기, 학술적 권위, 종교적 허울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존재의 회복을 열망하는 솔직한 한
생명이면 충분합니다. 이 예수 복음은 개인과 사회, 국가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신념의 근본적인 회복과 변혁을 가능케 합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이번 광우병 사태의 위기가 오히려 실종된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이유정
/ 한빛지구촌교회 예배목사, CCM 남성듀엣 좋은씨앗